

신작시
거울집
봄내에 가면
거울집이 있다지요
여름을 만들려다 봄의 다리가 잘렸어요 노란 아지랑이 흘러나오는 언덕에서 올챙이국수를 먹고 나온 선생이 꾸물꾸물 시내를 가로질러요 나는 여기에 있고 여기에 없어요 볼록하게 나를 바라보던 골목이 몸의 색깔을 바꿔요 다리를 절룩이던 개가 철길을 건너다 실직을 했고요 바람도 없는데 눈의 눈이 맨홀 뚜껑처럼 열려요 잘린 봄의 다리가 빨려 들어가요 그 안에서 깨어나지 않는 푸른 잠을 청해요 슬그머니 닫혀요 그늘로 휘어진 햇볕이 오후 3시의 해바라기를 괘종시계에 잡아둬요 바퀴의 문장을 다 읽기도 전에 스키드 마크 같은 통증이 도로에 박혀요 직선으로 질주한 비명이 거울 밖으로 튕겨져 나와요 여섯 개의 웃음이 선생의 계절을 앞서가고 여름 이전에 생겨난 구름과 주름이 후루룩 죽어가요 부지불식간에 내 손을 탈출한 동전이 거울의 집을 말끔히 재단해요 미안해요, 할 일도 없는데 번지를 잘못 찾았나 봐요 어떡해요, 스크래치 나, 나는
귀에 붙잡힌 소리가
잘근잘근 잘려요
상봉
당뇨 검사를 하려고 새끼손가락의 지문을 찔렀다.
돌아가신 아버지의
붉은
눈과 마주쳤다.
동거
피아노 위에 옷들이 쌓여가면서
집안에
음악이 사라졌다
작아지거나 허름한 옷들
과감히 버려야 했는데 그만
웃음을 내다버렸다
아이들이 커가면서 집은
작아졌는데
방문은 더 자주 닫혀 있다
고요하거나 시끄럽거나
서로 얼굴 마주보고 싸우다가도
틈과 틈, 사이
거미 한 마리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꾹
눌러 죽였다
자선시
비밀의 기둥
살아있는 동안 절대 입을 열지 않겠다는 듯
그의 입은 오래전에 난파한 목선(木船)처럼 닫혀 있다
그래도 못 미더운지 뻘 속에 몸을 숨긴 채
은둔 생활을 하고 있다 그의 입이 단단히 닫혀 있는 건
거창한 집안 내력이라기보다 그저
개인사이거나 소소한 가족사일 뿐이다
바다를 끌어당겼다 놓는 일처럼 늘상 있는 일이다
서로 비밀을 품고 있는 가족은
일정한 거리에서 자신을 숙성시킨다
외줄 타기를 하며 부패를 견딘다
서로의 잘못을 질타하다 되돌아올 수 없는
높은 파도를 타기도 한다
기척이 잠든 고요의 밤
그가 베개로 입을 틀어막고 사리 때처럼 운다
바다가 절벽에 부딪쳐 하얗게 부서지는 건
발설할 수 없는 비밀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알고 보면 뻘도 바다의 비밀을 간직하고 있기에
발목을 잡고 놓아주지 않는 것이다
밀물처럼 기척의 촉수에 빠져버리면
그는 스스로 불구덩이에 뛰어들기도 한다
마침내, 안으로 잦아들던 비밀이 열리고
그 안에서 속살을 드러낸 내막이 비집고 나온다
땅과 땅을 막아선 방파제 위 포장마차
먼 길을 돌아온 가족이 조갯살을 쏙쏙 빼먹고 있다
비밀을 쏟아 낸 입들이 무더기로 쌓여 있다
목발
한동안
나를 끌고 다녔던 그를 내다 버렸다
버리지 않으면
또 다친다는 오래된 말씀에
한 십 년 더 쓸 수 있을 것 같은 그를
집 앞 담벼락에 내놓았다 한때
내 몸을 온전히 감당하고도 남았던 그가
그림자처럼 기대 건들바람에도 넘어갈 듯
불안한 자태로 서 있다
헐거워진 무게 고스란히 담벼락에
돌려주고 있다 뚜벅뚜벅
담쟁이덩굴 걷는 길을 멀뚱히 바라보고 있다
그가 걸어왔던 길이 사위어가는 동안
창마다 귀가한 소리를 내어 달고
손잡이에 감긴 헐겁고 때 절은 붕대에
가로등 불빛이 머문다 삐걱,
혼자 나타난 대문이 길에서 잠든 그를
납치해 간다 빛과 그림자 사이를 통과한
통증이 골목 어귀를 돌아 나가고 있다
세상에,
다 아무는 상처란 없다
망종(芒種) , 태양의 그림자를 밟다
사막 한 귀퉁이에 운동화를 심었다
봄빛 사흘 만에
발이 돋아났다
먼 길을 흘러왔는지 겹겹이 옹이가 박혀 있었다
땅속에서 바람이 불어오자 한쪽으로 내력을 드러낸 운동화 바닥에서
붉은 발톱과 잔뿌리가 흘러나왔다
간신히 모래 언덕을 넘은 낯선 발자국이
길을 물었다
태양의 이마를 찢고
입이 솟아났다

1990년 《현대시학》 등단.
시집 『서랍 속의 사막』 『하늘로 가는 혀』가 있음.
제28회 〈경희문학상〉 수상.

가족극장 훔쳐보기
이상하게도 김정수 시인을 생각하면 제일 먼저 탁구가 떠오른다. 말로만 들었지 그가 직접 탁구를 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는데도 그렇다. 엄청난 힘으로 스매싱을 하면서 작은 공에 온 정신을 집중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땀을 뻘뻘 흘리고 발을 구르고 환호의 소리를 외치는 모습, 탁구를 치는 사람에게서 가장 평범하게 보일만한 풍경이, 이상하게도 가장 특별하게, 내게는 김정수라는 한 사람을 규정하는 무게처럼 느껴진다. 왜 그럴까? 그가 여러 번 내게 탁구를 치러 가자고 졸랐지만, 운동이라고는 겨우 걷기밖에 모르는 내가, 그의 제안을 오래 거절해왔고, 이제는 아예 초대조차 받지 않게 된 것에 대한, 내 나름의 기대와 배반 틈에 마음이 끼어 있기 때문일까? 잘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그가 탁구광이라는 사실.
어디 탁구뿐인가. 그는 시인들 모임인 <글발>에서도 축구로 십여 년을 다져온 풍부한 이력이 있다. 물론 나는 그들의 원정 경기이든 홈그라운드 경기이든, 어디에도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다. 그러니 그가 어느 포지션에서 뛰는지, 정말 소문처럼 공을 잘 차는지 모른다. 혹시 알려진 바와 다르게, 내가 예전 학생이었을 때 그랬던 것처럼, 공이 굴러다니는 10미터 밖에서 배회만 하다가, 게임 내내 딱 두 번 발에 공이 우연히 부딪는 행운을 가슴에 품은 채 경기를 끝내는 건 아닌지, 역시 모른다. 그러나 하여튼 그의 운동에 대한 애착은(집착일지도 모르지만) 남다르다. 나 같은 스포츠 혐오주의자 입장에서는 납득하기 힘들지만, 그는 정말로 탁구를 포함한 만능 스포츠맨 겸 시인임에 틀림이 없다.
시와 스포츠 사이에 어떤 연관 관계가 있을까. 김정수의 작품에서 축구와 탁구는 물론, 여느 스포츠가 소재로 등장하는 일은 내가 알기론 거의 없다. 오히려 운동을 끝내고 동료들과 어울려, 지나간 경기를 ‘복기하며’ 나누는 술잔에 대해 오히려 더 많은 이야기를 쓰고 있다. (아,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이 ‘복기’라는 표현은 그가 어느 잡지에 실은 「자술연보」에 고백한 바이다. 그리고 이건 그의 내면 세계를 들여다 보는 매우 중요한 단서가 된다. 여기에선 일단 건너간다.) 술을 마시고 예민해진 감성으로, 사람과 직장과 가족과 사회에 대하여, 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스포츠에 대한 애정은 한 시인으로서의 기본 자세에 그 모습을 잘 반영해준다.
스포츠의 기본은 이기고 짐이 분명하게 갈린다는 것, 그리고 그 승패는 나의 능력과 노력에 따라 정직하게 나온다는 것. 김정수 시인을 보면, 바로 이 점이 너무나 선명하게 드러난다. 너무나 명확해서, 그렇지 않다고 도저히 말할 수가 없다. 나는 2003년쯤에 그를 처음 만나 이제 거의 15년쯤 가깝게 지내오고 있는데, 그 처음부터 이 친구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는지, 아주 쉽게 알아챌 수가 있었다. 그는 싫은 것을 말하면서 ‘좋다’고 눙치거나 감출 줄을 모른다. 얼굴에 ‘나 거짓말에 익숙하지 않아요’ 하는 게 다 드러난다. 다행히 그 좋고 싫음 대부분은 사심 없이, 좀 거창히 말해, 정의에 바탕을 둔 것이라서, 나 역시 그의 견해에 기꺼이 동의하곤 한다. 우리가 잘 통한다는 뜻이다. 그도 역시 나를 ‘동족’의 연대감으로 나를 기껍게 받아주는 것 같아 고맙다.
우리가 만난 인연은 <빈터문학동인회>를 통해서이다. 그리고 내가 교직 초창기에 경기도 안성군 일죽면에 소재한 한 학교에 근무한 적이 있는데, 거기가 바로 그의 모교였다는 사실, 또 같은 시간은 아니지만 경희대에서 공부했다는 공통점이 우리를 가깝게 만든 첫 단추가 되었던 것 같다. 물론 나는 좀 냉정한 편이어서, 그런 시시한 사유로 ‘저 사람을 내 사람’이라고 함부로 접수하지는 않는다. 내가 김정수라는 인물에 매력을 느낀 건, 그의 문학 작품 때문에도 아니고, 더구나 학연 지연 때문에도 아니다. 그가 문학에 남다른 열정이 있다는 걸 알게 된 건 훨씬 훗날의 일이고, 그 당시엔 (솔직히 말해도 될까?) 그의, 뭐라 표현하기 힘든 ‘촌스러움’ 때문이었다. (이건 처음 고백하는 거다.)
그의 시는 화려하지 않다. 추상적인 언어나 복잡한 수사도 없고, 경험 밖의 세계를 희롱하는 과장도 없다. 자신이 가꾸는 작은 텃밭에서 상추와 쑥갓도 뜯어 소박한 밥상을 차릴 뿐이다. 아침에 일어나 직장에 가고, 처자식을 부양하느라 애쓰고, 친구들과 어울려 소주잔 기울이고, 사회의 불의에 함께 분노하는 시인의 삶, 그런 일상 밖으로 그는 나가지 않는다. 나가지 못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 지점에서 나는 그의 촌스러움을 읽는다. 스스로 감당할 수 없는 경계 너머의 세계를 해석하지 않는(어쩌면, 못하는) 것이 바로 촌스러움의 핵심 아니겠는가. 나는, 그래서, 오히려, 그런 정직함이 예쁘다. 마음에 든다. 나는 본디 자타가 인정하는 ‘거짓말 전문가’이지만, 그래도, 그러니까 더, 그런 순결이 좋다.
그의 시에는 가족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여기에도 그의 촌스런 염결성이 드러나는 바인데, 어찌 안 그렇겠는가. 누구보다 가난하게 커서, 가족의 그리움을 내면에 적층시켜온 사람이라면 누군들 안 그렇겠는가. 생각해보면 가족은 한 개인이 만들고 쌓아가는 가장 애틋한 공간이면서 끝없이 책임을 강요받는 집단이다. 그의 작품 중에서 가장 걸작이라 꼽을만한 「만월(滿月)」에서 묘사한 풍경을 보라. 추석 명절에 가족들이 모여 고스톱을 치고 있다. 인연이 끊긴 큰형과 무소식이 희소식인 넷째 동생 등등을 후경으로, 요양병원에서 잠시 나오신 노모가 “똥을 싸는” 장면이 전경으로 오버랩된다. 형제들이 “쓰리고에 피박까지 쓰는” 가운데, 하늘엔 만월이 뜬다.
이번 특집에 초대된 몇 편의 시에서도 역시 가족 이야기가 많이 등장한다. 그는 “서로 비밀을 품고 있는 가족은 / 일정한 거리에서 자신을 숙성시킨다”(「비밀의 기둥」)고 한다. 이게 뭐지? 이 말은 가족이 결코 행복하기만 한 인연이 아니라는 것, 따라서 비밀의 근원이 뭐 그리 대단한 것도 아닌데, 거기에 끊임없이 속박당할 수밖에 없는 게 우리 보통 사람들의 삶이라는 이야기처럼 들린다. 김정수 시인 못지않게 복잡한 가정사를 통과해온 나로서는 너무나 공감이 가는, 슬픈 윤회인 것이다. 아버지를 벗어나려고 애쓰지만, 결국은 내가 또 아버지가 되어 “아버지의 붉은 눈과 마주치지”(「상봉」) 않으면 안되는 것, 누구도 벗어날 수 없는 숙명이다. 이보다 더 촌스런 슬픔이 세상에 어디 있겠는가.
김정수 시인과 만나면, 주로 그가 이야기를 하고, 나는 듣는 편이다. 그의 조금 무심한 듯한 말투 속에는 세상에 대한 ‘복기’와 배려가 깔려 있다. 그와 함께 나눈 술잔이 적잖을 터인데, 그게 주로 <빈터> 일로 공적인 자리에서의 만남이었고, 우리 둘이 은밀히 뒷골목 선술집에서 간첩 접선하듯이 만난 적은 드무니, 어쩌면 우린 아직도 속내를 다 보여준 사이라고 말할 수 없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찌되었든 몇 년 전 내가 맡았던 <빈터> 대표 임무를 그에게 반 강제로 떠넘기고 나서, 어쩔 수 없이 공사가 뒤섞인 대화를 수시로 나눌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서로의 얼굴에 씌워진 가면 너머로, 서로의 진짜 얼굴을 어느 정도는 볼 수 있었다고 말하고 싶다. 지금 내가 그의 어쭙잖은 시인론을 쓰는 사연이기도 할 것이다.
그의 말투는 툭툭 던지는 방식이다. 내 자신이 그렇기 때문에, 그 방식이 얼마나 비효율적인 것인지 안다. 그건 앞뒤를 잘라낸 (아주 촌스런 스타일이라 할 수 있는데), 또 어찌 보면 ‘나 중심주의’의 산물일 수도 있다. 아니면 내가 나를 감추고 타자를 나처럼 배려하려는 마음, 그런 부끄러운 속성을 감추려고 하지만 잘 안되는 경우에 나오는 방식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나도 그렇지만, 부끄러움을 잘 타고 남 앞에 나서는 것을 별로 즐기지 않는 사람에게서 흔히 보이는 화법이기도 하다. 그는 예의 그 「자술연보」에서 ‘무대 공포증’이라 말했다. 지금은 낭송회나 인터뷰 등에 유명 인사처럼 불려 다니다 많이 극복되었다고 했다. 내가 보기엔 극복이라기보다는 나이 들면서 낯선 것에 무뎌지는 건 아닐까. (물론 내 경험을 통해 내린 판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김정수 시인을 잘 모른다. 오히려 그가 아닌 척 보여준 상처를 통해, 그가 어떤 사람인지 짐작할 뿐이다. 가족이라는 기쁨과 질곡의 끈질긴 인연에서 온 상처들, 그에게 지워진 생을 끌고가다 난 생채기들이 늘 곁에 있다. 그래도 그걸 아무에게나 말하지는 못한다. “세상에, 다 아무는 상처란 없”(「목발」)는 이유는 상처를 치유할 방도가 없어서가 아니라, 그 상처를 드러낼 용기조차도 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참고 견디는 것, 그게 우리 인생이다. 그러니 우리는 이 상처를 내 안에 숨기고 가야 한다. 사람에 따라서는 훗날 그 상처가 사리로 변할지도 모를 일, 그러니 아프다고 말할 필요도 없다. 시인이라면 더욱 그렇다.
글 · 정한용 | 시인, 평론가. 충북 충주 출생. 1980년 《중앙일보》 평론 등단. 1985년 《시운동》에 시를 발표하며 작품활동 시작. 시집 『얼굴없는 사람과의 약속』 『유령들』 『거짓말의 탄생』 등과, 평론집 『지옥에 대한 두 개의 보고서』 『울림과 들림』 등이 있음. 〈천상병시문학상〉 수상.
월간 웹진 공정한 시인의 사회 2017년 4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