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작시
고공식사
불멸
거미가 가진 가장 슬픈 꿈
그러나 불멸
허공 높은 곳 거미가 집을 짓는 까닭
오랜 침묵 끝
날것들의 비상을 거머쥐고
오찬을 누리는 거미
날것의 죽음을 다시 빛실로 뽑는다
잡히지 않는 바람
그것을 자유로이 두어야
비로소 완성되는
텅 빈 집
아침 천 개의 이슬이 눈을 뜨는
찬연한 그러나 불멸을 위해
허물어야 하는 집
이 적막한 눈부심 속의
고공식사
어쩔 수 없는 거미의 슬픈 작업
거미의 흔들리는 높이다
빛의 음화(陰畵)
1
나무의 잠귀에 꽃을 달아주는 봄
그 손길도 닿지 않고
어둠의 눈을 들여다본 자에게만 보이는 나무
까마귀 마른 깃털이 붙어있고
귀 잘린 그믐달이 걸려있고
피었다 바람에 날리는
검은 얼굴들
2
거울 속 나에게 손을 내민 순간
뚝뚝 떨어져버리는 내 손가락들
꿈 아닌 꿈처럼
연못 속 썩어가는 물방개와
물거품을 뿜는 수렁의 아가리와
늦가을의 손끝에서 푹 꺼져버리는 늙은 호박과
무덤 속 두개골을 움켜쥔 아카시아 뿌리와
언 발자국 속 치솟은 서리의 이빨과
태양을 향해 날아가는 안개의 날개와
꿈 아닌 꿈처럼
거울 속
지워져버리는 나의 눈, 코, 입
3
어둠이 오고
유리창 속 불현듯 마주한
검푸른 얼굴
사산된 빛
어둠의 봉지에 담겨 세상 밖으로 내던져지고
나, 내 마지막 날에 이미 와 돌처럼 하얗게 운다
4
우악스레 뻗은 손들
내 머리를 석류처럼 비틀어 딴다
내 두개골을 게걸스레 파먹고 쓰레기통에 처박아버린다
태양은 또다시 떠오르고
죽은 나는 또
세상의 광란을 본다
별
바람 솟는 밤 지상의 아픈 것들 하늘에 올라 별이 되나요
별들이 지나는 길목 천공의 등뼈가 휘고 있어요
내 별의 항로에서 나는 얼마나 멀리 비껴나 있는 것인지
흰 나리꽃은 내 화병에서 썩어가고
죽음을 봉인한 편지봉투 그 피 묻은 입술을 열었어요
맨드라미 씨처럼 왈칵 쏟아진 비명
주워 담을 수 없었어요
죽음의 암초
피의 격류
청춘은
파란 거머리
내 피를 다 빨아버리고 말았어요
가시덤불 속 꽃은 왜 그토록 몸부림쳐 피는지
오늘 오후를 탱고에 다 바쳐야 했어요
벼랑 끝 아스라한 은방울꽃
내 절망의 깊이에요
뒤틀린 별자리들
새떼들이 날개를 꺾어 늪으로 떨어지는 꿈
어둠의 심연을 들여다보기 두려워요
바람은 깊은 밤 속으로 별들을 휘몰고
나는 처음으로 상처를 깊이 들여다봐요
상처마다 들어와 박히는 별들
빛의 길을 얼마나 달려온 것인지
어쩌면 그 별 중 더러는 지금 절대어둠일지 몰라요
지상의 아픈 것들 하늘에 올라 별이 되나요
바람은 더 세차게 별들을 몰고
폐허의 뜰
나는 내 별의 항로를 다시 찾아보아요
자선시
소금쟁이의 노래
물은 유혹, 부드러이 나를 잡아끄는 유혹, 밀치며 나는 팽팽히 그 유혹을 누리는 소금쟁이, 가만히 떠 있거나 재빨리 움직이며 물 위에 춤을 그리는 나는, 가벼움으로 나의 중심을 잡는 나는,
맑은 물은 깊이를 숨기고, 달처럼 떠오르는 돌, 닿으려 하면 내 목을 감싸는 말랑한 손, 황홀한 죽음의 시작, 순간 잔털 속의 공기들이 나를 떠올리어 나를 깨우고, 떠 있는 낙엽, 죽은 나방과 개미들, 물 위는 풍요로운 소금쟁이의 천국,
물은 늘 내게 깊이를 강요하지만 내가 자유로운 것은 마음을 물 위에 두기 때문, 까닭에 나는 물 위에서 물의 깊이를 누리는 소금쟁이, 물 위에 춤을 그리는 나는, 자유로움으로 나의 중심을 잡는 나는,
나는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변하는 거예요
―궁극적 실체에 관한 구름의 말
# 마술
모자를 벗으며 살짝 인사를 하고 텅 빈 모자 안에서 마음먹은 대로 하나씩 꺼내기 시작하는 마술사
그대는 방금 무엇을 보았나요?
―비둘기, 토끼, 장미?
텅 빈 모자를 쓰고 입에 초승달을 물고 마술처럼 사라지는 마술사
그대는 방금 무엇을 보았나요?
―평화, 선, 사랑?
―전쟁, 악, 증오?
# 페르소나
차고 맑은 거울을 마주하여 비로소 목덜미에 곤두선 불안을 쓰다듬고 다독이는 그녀
붉은 손톱으로 시간에 맞서 끝없이 자신의 얼굴을 찾으려는
천의 얼굴이 다 그녀라는 것을, 그 천의 어느 얼굴도 그녀가 아니라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지금 막, 거울 속으로 들어서는
긴 손톱이 더욱 짙붉고 예리한
# 理에 대한 헛된 고찰
반죽한 흙덩이 속으로 스미는 아이, 숨을 쉬기 시작하자 말랑말랑 살아 움직이는 반죽
흙덩이를 주무르며 또 헛되이 생각을 반죽하고 그 안을 열어보는 사내
흙덩이 속에서 나와 자신이 빚은 새와 같이 노는 아이, 여전히 아무것도 없는 그 안을 서성이는 사내

평택 출생. 2002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등단. 시집 『나를 사랑한다, 하지 마라』가 있음.

지상에 결박된 천상의 춤꾼
1. 얼굴―시간
얼굴은 시간의 무늬다. 그 무늬는 내부의 솟구침과 외부의 침범이 부딪히며 만든 전투의 흔적들이다. 하여, 어떤 사람을 이해하려는 무모함의 시작은 그 사람의 얼굴―시간 속에 그려진 표정의 내막을 읽어가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2002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옹이가 있던 자리」가 당선되어 불혹의 나이에 시인이 된 이윤훈 시인의 첫인상은 들판에 즐비하게 방치된 운주사의 어느 석불처럼, 투박하면서도 질감 있는 웃음을 짓고 있어 적잖이 넉넉해 보였다. 그러나 그 넉넉함이 순조롭게 보이지만은 않았다. 뭔가 내막이 묻어 있는 넉넉함이라고나 할까. 그 내막의 단초는 “문득 옹이 하나 내 가슴에서 빠져나가고/세상 한 곳이 환히 보인다.”는 등단작의 마지막 구절에서 어렴풋하게 드러난다. ‘옹이’는 상처들의 누적이고, 감정들의 응결이다. 그래서 옹이의 시간은 쓰리고 단단하고 또 깊다. 그가 시인이 되기 전에 겪었을 세속의 풍파와 내막을 나는 잘 모른다. 중요한 것은 옹이가 빠지고 난 후 “세상 한 곳이 환히 보인다.”는 그의 심적 변화일 것이다. 상처들이 빠져나간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아마도, 세속에서 얻은 상처들을 후련하게 파 버리고 그 빈자리에 시인으로서의 꿈과 열정을 기둥 삼아 지은 은밀하고도 내밀한 자유의 거처일 것이라 짐작된다. 상처를 준 세상에 대한 복수의 정념보다는 세상의 중심으로부터 멀어지려는 탈주의 꿈이 이윤훈 시인의 얼굴―시간에는 드리운 詩的 표정이자 생의 도약의지다. 도약의 꿈은 일탈의 시간으로 치닫는 속성을 갖기 마련이다. 일탈은 세계에 대한 결연한 부정이며, 회귀의 길목을 스스로 차단하는 확고한 의식의 지향성이다.
그대는 내 새하얀 털을 좋아하나 나는 내 발톱의 본능을 좋아한다
그대는 내 둥근 눈을 믿으나 나는 내 수염의 직관을 믿는다
그대는 내 아양을 즐기나 나는 내 고독한 천성을 즐긴다
그대는 나를 소파와 침대에 두나 내 마음은 난간과 지붕에 끌린다
그대는 나를 따스한 품속에 가두나 내 심장은 미친 종처럼 울린다
사랑은 실로 참혹한 끈이다 나를 사랑한다, 하지 마라
―「나를 사랑한다, 하지 마라」 전문
부드럽고 따뜻하고 안락한 ‘새하얀 털’의 감각과 날카롭고 위태롭고 광기서린 ‘내 발톱’의 본능이 대위적(對位的)으로 전개되는 위의 시는 “사랑은 실로 참혹한 끈이다 나를 사랑한다, 하지 마라”는 선언 내지는 부탁의 속내로 결연히 끝을 맺는다. ‘하지 마라’라는 부정의 단호함 속에는 ‘그대’의 세계로부터 흘러드는 유혹의 애절한 잔광들이 남아 있다. 그 잔광이란 바로 ‘끈’의 참혹성이다. 끊어내려 해도 끊어지지 않는 끈―세계의 숙명을 향해 나를 사랑하지 말 것을 명령―부탁하는 모습에서 이윤훈 시인의 기질적 낭만성을 읽어내는 것이 무리는 아닐 것이다. 「나를 사랑한다, 하지 마라」의 표면에 드러난 ‘그대’와 ‘나’의 대위는 이윤훈 시인의 내면에서 꿈틀대는 안주(安住)와 탈주(脫走)의 두 욕망이 빚어낸 생의 리듬이고, 시의 표정이다. ‘난간과 지붕’에 끌리고, ‘미친 종’처럼 울리고 싶은 탈주의 욕망이 ‘그대’로 표현된 구심력의 세계에 의해 지체될 때 그의 의식은 절망하고 분열한다.
그러한 분열의 실체는 “설산의 희디흰 얼굴/눈부신 가면/악마적이야”(「생의 한가운데 3」)라는 외침에서 확인해볼 수 있는 바, 그것은 폭로와 자학이 뒤섞인 자기분열의 육성(肉聲)이다. 설산의 흰 가면과 그 가면 뒤에 숨겨진 얼굴은 도덕과 윤리로 덧칠된 얼굴과 세계를 향한 본능성의 얼굴이 대립하고 갈등한다. 이러한 대치 국면에서 설산의 얼굴을 ‘악마적’이라고까지 말한다는 것은 그만큼 내면의 숨겨진 욕망이 뜨겁고 절실하다는 것을 드러낸다. 그런데 묘한 것은, ‘악마적’이라는 표현이 부정적이면서도 유혹적인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는 것이다. 악마성에 대한 탐닉까지는 아니지만 그의 첫 시집 곳곳에 폐허와 관능과 야생과 죽음에 대한 도취의 흔적들이 빈번히 드러난다. 그것을 그는 “악마 같은 투명함”(「생의 한가운데 3」)이라는 모순적 진술로 표현한다. 그러한 진술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희디흰’이나 ‘투명함’ 같은 염결적인 수식들이 내면에 가하는 압력과 하중이다. ‘미친 종’처럼 울리고 싶지만 그러지 못하는 상황의 치명적 원인이 그러한 수식들 안에 있다고 본다. 밥벌이 때문인지, 아니면 윤리적 염결성 때문인지 명확하게 판단할 수는 없지만 그의 내면에는 극단으로 치닫고 싶은 날것의 비릿한 감정들이 무언가에 의해 꽁꽁 감금되어 있다. 그러한 감정들이 어느 순간 불쑥 치솟아 오를 때, 이를테면 술자리에서 흥이 올라 불콰해진 얼굴로 ‘사철가’를 부르며 어깨를 덩실댈 때 나는 그의 아득한 얼굴에서 언뜻 조르바의 모습을 떠올린다. 냉정히 말하자면 ‘조르바가 되고픈 이윤훈’의 몸부림을 느낀다.
2. 표면장력―춤
이윤훈 시인은 2002년 등단 후 6년 만인 2008년에 첫 시집 나를 사랑한다, 하지 마라를 발간하고 거의 십년 만에 두 번째 시집을 발간할 예정이라 들었다. 이윤훈 시인의 첫 시집 나를 사랑한다, 하지 마라는 야생과 자유에 대한 동경이 가득하다. 그의 자유는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것이라기보다는 억눌린 내면의 감각들을 분출하고픈 원시적 본능의 표출과 밀접한 관련을 갖는다. “몇 만 년 전의 원시인처럼 왕성한 식욕으로 한 무리”(「불의 춤」)가 되어 ‘불의 알몸’으로 ‘불의 춤’을 추는 것이 그가 염원하는 자유의 세계다. “고통이 노래하고 비탄이 춤”(「프놈펜, 죽음 현상소」)을 추고, “바다의 춤과 태양의 숨소리”(「에피타프」)가 하나 되어 절정으로 치닫는 ‘그리스 음악’의 시간을 그는 뼈저리게 그리워한다. 허위와 가식을 벗어 던지고 지중해의 바닷가에서 생명 가득한 원시의 춤을 추는 조르바를 동경하지만 현실은 그리 녹녹치 않다는 것을 그는 직감한다. 현실의 혹은 관계들의 ‘참혹한 끈’이 얼마나 강력한 억압인지를 알아버린 자의 춤은 위태롭다.
물은 늘 내게 깊이를 강요하지만 내가 자유로운 것은 마음을 물 위에 두기 때문, 까닭에 나는 물 위에서 물의 깊이를 누리는 소금쟁이, 물 위에 춤을 그리는 나는, 자유로움으로 나의 중심을 잡는 나는,
―「소금쟁이의 노래」 부분
잡히지 않는 바람
그것을 자유로이 두어야
비로소 완성되는
텅 빈 집
아침 천 개의 이슬이 눈을 뜨는
찬연한 그러나 불멸을 위해
허물어야 하는 집
이 적막한 눈부심 속의
고공식사
어쩔 수 없는 거미의 슬픈 작업
거미의 흔들리는 높이다
―「고공식사」 부분
「소금쟁이의 노래」는 첫 시집에 실린 작품이고, 「고공식사」는 신작시다. “물 위에서 물의 깊이를 누리는 소금쟁이”와 “적막한 눈부심 속의/고공식사”를 하는 ‘거미’는 이윤훈 시인의 자화상이라 할 수 있다. 소금쟁이는 물 위에서, 거미는 거미줄 위에서 춤을 춘다. 그 춤은 중력으로부터 탈각된 자유의 춤이 아니라 물과 거미줄의 표면장력에 의지한 춤이다. 그러하기에 그의 춤은 ‘매달린 춤’ 혹은 ‘미끄러지는 춤’이며, ‘솟구침(도약)’과 ‘떨어짐(착지)’의 리듬과 율동이 없는 평면의 춤이다. 그래서 단조롭고 또한 위태롭다. “자유로움으로 나의 중심을 잡는 나는,”이라는 진술은 균형적 포즈처럼 보이지만 기실은 현실에 대한 타협이며 자기위안일 것이다. 그러한 타협이, 그의 내면에 숨겨져 있는 야성의 춤들을 표면장력의 자장에 붙들어 맴으로써 춤―자유의지 자체를 퇴화 내지는 소멸시키는 것은 아닌지, 라는 염려가 생긴다. “어쩔 수 없는 거미의 슬픈 작업”으로 자유의 집을 허물어버린다는 사실이 생활인으로서의 고뇌에 근거한 물러섬인지 아니면 시인으로서의 창조적 고뇌와 자기한계에 근거한 시적 치열함의 양상인지 명확히 분간되지는 않지만, 그는 어쨌든 춤을 추고자 하는 춤꾼이다. 더 정확히 말해보자면 지상에 결박된 천상의 춤꾼이다. 나의 편벽한 진단이 이윤훈 시인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내심 마음이 쓰인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스스로를 억압하는 ‘참혹한 끈’을 잘라버릴 때 그리고 춤의 도약을 가로막는 표면장력을 과감히 제거할 때 시인으로서의 진정한 표정과 춤이 세계의 표면으로 화려하게 펼쳐질 것이라 생각한다. 도약은 떨어질 것을 예감하는 자의 아름다운 운명일 것이다.
3. 에필로그
이윤훈 시인의 시에는 진정한 비탄(悲嘆)이 있다. 비탄의 포즈(pose)가 비탄의 내용을 잠식하는 경박(輕薄)의 시대에 그의 탄식은 우리들이 잊고 있던 ‘어떤 시절’을 환기한다. 야생과 자유와 관능의 해변에서 형식이 없는 자유의 춤을 추는 조르바의 모습을 동경하는 한 시인, 그것이 내가 이윤훈 시인을 보면서 떠올린 ‘어떤 시절’의 풍경이다. “내 별의 항로에서 나는 얼마나 멀리 비껴나 있는 것인지”(「별」)라는 그의 조용한 비탄이 잔잔한 울림을 준다. “예술은 비탄의 내밀성이다.”라는 모리스 블랑쇼(Maurice Blanchot)의 정의가 그의 시에 온전히 깃들기 바란다. 하회탈 같은 웃음을 지으며 “Hey, long time no see.”를 연거푸 되뇌며 다가오던 어느 여름의 느닷없고 화려했던 만남을 기억하며 그리스인 조르바의 한 대목을 이윤훈 시인에게 전해 본다.
아니요, 당신은 자유롭지 않아요. 당신이 묶인 줄은 다른 사람들이 묶인 줄과 다를지 모릅니다. 그것뿐이오. 두목, 당신은 긴 줄 끝에 있어요. 당신은 오고 가고, 그리고 그걸 자유라고 생각하겠지요. 그러나 당신은 그 줄을 잘라버리지 못해요. 그런 줄은 자르지 않으면…….
글 · 신종호 | 1964년 경기 여주에서 태어나 숭실대학교 국어국문과 대학원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1997년 《현대시》로 등단했으며, 시집으로 『사람의 바다』 『모든 환대와 어떤 환멸』이 있다.
월간 웹진 공정한 시인의 사회 2017년 10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