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작시
없는 사람
오피스텔 문을 따고 들어가니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없는 게 아니라 꽉 채우고 있었다고 한다 그가 화장실과 거실을 메우고 복도와 엘리베이터와 이웃집 문틈으로 스며든 이유가
외로움 때문이라고 예단해선 안 된다
단지 그는 갑갑했을 뿐이다
갑갑함이 저 스스로 몸 부풀려 이웃 집 현관문을 노크한 것일 게다 경계를 벗어나 공기를 장악한 그는 원래부터
바람이었다
오십이 넘도록 할리 데이비슨을 타고 다니며 공간을 확장하고 저를 부풀렸다
미처 따라가지 못한 뼈는
화장실 문턱에 가지런히 누워 스멀스멀 구더기를 불러들였다
날개를 달아주기 위해서였다
견디다 못해 이웃들이 문 따고 들어가니
낡은 소파 밑에서 그가 키우던 포메라니안이 꼬리 흔들며 기어 나왔다고 한다 도대체 무얼 먹었는지 통통하게 살이 오른 개는 묵비권을 행사했다고 한다
제가 본 것들을 끝내 다 말하지
않은 영특한 개였다 세를 준 주인이 서둘러 개를 데리고 나가도 그는 따라나서지 않았다
이미 집의 일부가 된 것이다
벽지, 바닥은 물론 콘크리트 뼈대만 남기고 뜯어내도 그는 결코 그 오피스텔을 떠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진상은 세상에 드러나지 않았다
소문을 막은 거라 속단해선 안 된다 사려 깊은 이웃들이 선택한 최선의 의례이기 때문이다
결코
그는 없는 사람이 아니다
이웃의 비강에, 공중에 불멸이 되어
새겨졌기 때문이다
서쪽으로 걸었어
그늘이었지. 해는 서쪽이었어.
개나리꽃은 지고 없었어. 잎만 무성했어.
얼굴을 간질이는 바람.
비둘기들이 잔디 씨를 쪼고 있었어.
죄다 서쪽으로 기울어 있었어.
애초부터 다 서쪽이었는지도 몰라.
복면을 쓴 나무들이
어제의 그림자를 뒤집어쓰고 있었어.
유방이 불룩한 여자들이
분홍 마스크를 쓰고 부지런히 걸어오고 있었어.
서쪽은 거들떠보지도 않아.
돌 자갈이 많은 개울이 흘러가고 있었지,
물살에 한쪽 다리 담근 채 흰 새들이
한 방향으로
바라보고 있었거든.
서쪽이라곤 말하지 않겠어.
바람이 무엇을 숨기고 있는지.
어쩌면 애초에 넌 없었을지도 모르겠어.
하지만 믿고 싶어.
서쪽엔 고여 있을 거야. 흘러간 강물, 지는 해.
서쪽에 기대고 싶어.
서쪽을 견뎌야겠어. 네 등 뒤에서
얼굴을 가리고.
다물어지지 않는 입
1
엎어져 찢어진 무릎의 상처
한 달째 아물지 않는다
진물 흘리며 몸이 나름 수습하려 애쓰지만
딱지 굳을만하면 벌어지고 또 찢어지니 난감할 따름이다
그럼에도 몸은 끝내 포기 모르니
참 딱하다 할밖에
2
며칠 전 폭설에 찢어진
벚나무 팔뚝
검은 수피(樹皮)에 유독 흰 속살이 생경한데
난데없는 봉변, 이 난경
진액 흘리며 떨고 있는
저 가지에 홑이불이라도 덮어줘야 할 텐데
진상 드러난 사태 앞에
마음은 오직 머뭇거릴 따름
3
구멍 속으로 돌 하나를 던져 넣는다
바닥에 닿지 않는다
돌을 삼키고
금세 잠잠해지는 어둠 속
저 시치미의 고요를 누가 감당할 것인가
벌어져 오므라들지 않는
구멍, 마개가 없는
자선시
오줌에 빠진 발
섹스를 남의 손 빌려 하는 사람 있을까
영화 『파리넬리』에서 주인공 카스트라토 카를로 브로스키는 연인의 몸 뜨겁게 만들어놓고는 쌍둥이 동생 들여보내 일을 마무리하곤 했다
남의 손을 빌려서는 안 되는 것들
밥이나 똥, 아기 낳는 일은 남의 손 빌려선 안 된다 빌려선 안 되지만 안 빌릴 수 없는 순간도 있다
멀쩡히 아침밥 잘 먹고 119에 실려 간 아내
간호사가 내게 플라스틱 통 주며 오줌을 받아라 한다 난감한 바지 벗기고 팬티 벗기고 오줌 받는데,
얼굴 컴컴한 내일이 등 뒤에 서 있었다
나도 아내도 놀라,
아내는 받아놓은 오줌통에 그만 발을 빠트리고 말았다
비린내 물씬,
생명 품은 것들은 비린내를 풍긴다
공기를 머금은 빗방울이
그렇고, 산란 직전의 고등어가 그러하다
또한 나는 안다
비린내 때문에
물고기를 못 먹는 사람들을
입술에 달라붙은 젖비린내 때문에
사내들 그토록
유방을 탐하는 건 아니겠지만
살아있기에 오직 새어나오는
붉은 비린내
발길에 짓이겨진 풀잎에조차 풍겨나는
생의 비린내
어젯밤 야성의 고양이 한 마리
쓰레기통 옆에서
쓰고 버린 콘돔 핥는 걸 보았다
비린내를 핥고 있었다
개기월식에 겹쳐진 슈퍼 문 블루 문
수십 년 만에 찾아온
밤이었다
비린내 물씬, 풍기는 오래된 밤이었다

1987년 《세계의문학》 등단.
시집 『황금 연못』 『바퀴소리를 듣는다』 『하늘 우물』 『달과 뱀과 짧은 이야기』
『그 겨울 나는 북벽에서 살았다』, 동시집 『내 배꼽을 만져보았다』 등이 있음.

감각의 재구성과 죽음의 형상화
장옥관은 생의 강렬함을 포착하고 그것을 생생하게 재현하는 데 남다른 강점을 가지고 있다. 관능적이고 육감적인 이미지들로 가득한 시들은 에로티시즘의 한 경지를 보여주고, 생명을 가진 것들이 생을 영위하는 현장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보여준다.1) 비근한 예로 가장 최근의 시집 『그 겨울 나는 북벽에서 살았다』2)에 실려 있는 「대추나무 가지에 돌멩이 끼우듯」만 보아도 그렇다. 화자는 철물점을 지나치다 자물쇠들이 주렁주렁 걸려 있는 것을 보고 ‘대추나무 시집보내기’를 연상하고, 자신 또한 두 몸이 하나가 되는 에로틱한 결합을 꿈꾼다(“음부가 열쇠를 물고 있는 동안 / 자물쇠는 입이 다물어지지 않네 어릴 적 소출 없는 대추나무 가지에 굵은 돌멩이 끼우듯 / 나도 네 가랑이에 거멀못 박으리라”). 이 때 두드러지는 관능적 상상력은 ‘소출 없는 대추나무 가지’에 굵은 돌멩이를 끼우는 것처럼, 왕성한 청춘의 한때가 지난 화자의 ‘환(幻)’이어서 오히려 더 간절하고 생생하다(“네 몸에 딱 맞는 열쇠 들고/ 환(幻)으로 환을 쑤셔 환하게 밝혀보리라 쑥부쟁이 엉클어진 덤불에 / 속곳 벗은 어둠이 덮쳐올 때까지”). 성적인 결합은 생산과 성숙으로 이어지는 생명 활동의 과정으로 연결될 때 충일한 상태에 도달하는 것이다.
시인은 시각과 청각, 촉각, 미각, 후각 등 온몸의 감각으로 대상의 생명력을 포착하고, 그것을 한 가지 이상의 감각으로 재생산한다. 예를 들어 “두 장의 나비 날개 비로드 같은 붓꽃 이파리 새빨간 피 머금은 통통한 찰거머리 썰면 두 접시는 너끈할 것 같은 천엽 컴컴한 구멍을 감싸는 두 장의 검붉은 꽃잎”(「입술」)에서 ‘입술’은 시각과 촉각, 미각을 빌려서 다양하게 표현된다. 이렇게 다양한 감각으로 재구성된 ‘입술’은 관능성만으로는 설명될 수 없는 육체성을 획득하고 있다. 그것은 ‘키스를 부르는 매혹적인 입술’보다 들뢰즈가 프란시스 베이컨의 회화에서 읽어낸 ‘고깃덩어리’의 느낌에 가깝다. 그것은 가시적인 형상(신체)으로 솟아오르기 전의 잠재적인 상태(살)에 해당하는 것으로서, 그만큼 원초적이거나 본질적이며 물질적인 영역에 닿아 있다.
장옥관은 이러한 ‘살’의 영역을 종종 후각을 사용하여 포착해낸다. 김치 냄새, 굳어 있는 생리혈, 몽정한 속옷(「붉은 꽃」) 혹은 시렁에 매달린 메주, 비릿한 배내옷(「꽃 찢고 열매 나오듯」), 굽다가 태운 고등어 냄새(「고등어가 돌아다닌다」)까지, 숨기려야 숨길 수 없는 냄새들이 스멀스멀 배어나온다. 시인은 이를 ‘몸이 흘리는 말’, ‘비언어적 누설’이라고 표현하고 있다(「붉은 꽃」). 그 중에서도 살아있는 것들, 산 것들의 냄새는 ‘비린내’라는 단어로 요약된다. 생리혈이나 정액이 풍기는 비린내, 생선에서 나는 날 비린내 등은 생명 활동의 정점에 있거나 싱싱하고 신선함을 증거하는 상징이다.
주어진 다섯 편의 시 중에서 「비린내, 물씬」과 「없는 사람」에도 역시 ‘냄새’가 있다. 그러나 「비린내, 물씬」의 냄새가 익숙한 삶의 비린내라면, 「없는 사람」의 냄새는 썩은 시체에서 나는 ‘시취(屍臭)’이다. 똑같은 ‘냄새’이지만 하나는 살아있음을, 다른 하나는 죽었음을 의미한다.
「없는 사람」은 시 전체가 아이러니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서 죽음은 육신의 ‘죽음’과 냄새의 ‘살아있음’이라는 이중적인 현상으로 설명된다. 경찰이 오피스텔 문을 따고 들어갔을 때, 시신은 부패해서 살이 거의 없어지고 뼈만 남아 있었다. 그러니 ‘사람’은 없었던 셈인데, 그 대신 시체에서 나는 냄새가 문을 빠져나와 이웃집 사람을 불러오고 오래도록 그 주변을 맴도는 것이다. 이웃들은 그가 죽어 없어지고 나서야 냄새 덕분에 비로소 거기에 누군가가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냄새’는 삶과 죽음의 경계에 걸쳐져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이 냄새조차 사라진 후는 어떨까. 지인이 죽고 다시 그를 볼 수 없다면, 이제 ‘그’를 어떻게 감각할 수 있는 것일까. 누군가의 부음을 듣고 문상을 다녀오는 길을 소재로 한 듯한 「서쪽으로 걸었어」에서, 화자는 잎 진 개나리, 바람, 비둘기들까지 죄다 서쪽을 향해 있다고 여길 만큼 온통 죽음에 사로잡혀 있다. 한 사람이 사라져도 아무 것도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어쩌면 애초에 넌 없었을지도 모르겠어.” 라는 생각에 이를 정도의 허망함을 느끼게 한다.
죽음이 시적인 주제가 되는 것은 시인이 나이들어감에 따라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변화이다. 육체의 감각이 퇴화되고 기능이 떨어져 자신의 의지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 자기도 모르게 등 뒤에 있는 “얼굴 컴컴한 내일”(「오줌에 빠진 발」)을 감지하게 되는 것이다. 이 컴컴한 어둠은 『그 겨울……』의 「마르지 않는 샘」을 비롯한 몇 편의 시에 나오는 ‘거울’, 「다물어지지 않는 입」의 ‘어둠 속 구멍’과 같은 맥락에 있다. ‘나’의 후방에 있는 깊고 맑은 거울, 컴컴한 어둠, 깊이를 가능할 수 없는 구멍 등은 모두 죽음과 연관된 성찰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주어진 다섯 편의 시는 죽음을 소재로 한 시들이 더 많다. 다섯 편 중 삶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은 「비린내, 물씬」 한 편뿐이다. 물론 생명을 강조하는 예전의 시들 중에도 죽음과 연결된 시들이 없었던 건 아니다. 꽃이 진 자리에서 나오는 열매처럼 하나의 죽음이 다른 하나의 삶을 불러오기도 하고(「꽃 찢고 열매 나오듯」), 며느리가 없는 밥상에서는 식은 밥 한 공기를 다 비우는 노인처럼 죽음이 가까워질수록 오히려 삶에 대한 집착이 강해지기도 한다(「쥐면 꺼지는 봉곳한 뽕브라처럼」). 그러나 사실 이것은 죽음이 아니라 ‘삶’의 강렬함을 강조하는 것이다.
이와 비교할 때 신작시는 죽음 자체에 대한 생각으로 관심이 전환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야말로 맹렬한 삶의 중심에서 서서히 죽음을 향해 가는 과정을 마주하고 있는 것이다. 「다물어지지 않는 집」은 삶의 현장과 죽음에 대한 성찰을 나란히 놓음으로써 그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다. 1에서 찢어진 채 아물지 않는 무릎의 상처는 2의 폭설에 부러져 진액을 흘리는 벚나무와 나란히 제시된다. 상처 난 자리에서 덧나는 진물과 나무의 진액은 살아있는 몸이 스스로를 아물리고 치유해가는 과정이다. 즉 생명 활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리는 증거인 것이다. 이에 비해 3에서는 열려 있기는 하지만 ‘바닥을 알 수 없는 어둠’이 등장한다. 돌을 던져도 바닥을 알 수 없고 금세 잠잠해지는 어둠은 수많은 생명들을 삼키고도 고요한 알 수 없는 심연과도 같다. ‘다물어지지 않는 입’은 1,2에서는 아물지 않고 덧남으로써 삶을 증명하고 3에서는 바닥을 알 수 없는 죽음의 심연을 암시한다. 시인은 1,2와 3을 나란히 배치함으로써 삶의 이면에 깊숙히 들어와 있는 죽음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사실 이 구멍의 이미지는 “벌초 간 어머니 묘에 커다랗게 구멍이 뚫려 있다 검게 아가리 벌린 그 구멍은 죽음에 뚫은 문”(「죽음에 뚫린 구멍」)이라는 구절에서 이미 형상화된 바 있다. 그는 이제 삶의 곳곳에 더불어 있는 구멍들, 삶을 밑받침하고 있는 죽음을 포착하고 형상화하려는 것일까?
이에 대한 대답보다 더 분명하게 짐작할 수 있는 것은, 주제 혹은 소재가 변화한다고 하더라도 그의 시적인 톤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아마도 그는 병과 죽음을 소재로 하더라도 비극성에 감염되지 않고 낭랑하고 밝은 톤을 유지할 것이다. 생명의 기미를 맹렬하게 포착해내었듯이, 죽음 또한 그만의 방식으로 생생하게 포착하지 않을까. 그러한 기대를 걸어보는 것은 비단 나만은 아닐 것이다.
1) 그의 시집 중에서도 특히 『달과 뱀과 짧은 이야기』는 자연 현상을 ‘생산’이라는 측면에 초점을 맞춰 해석하거나(「가부좌 틀고 앉아 새끼를 낳다」, 「꽃」 등) 살아있는 것들의 맹렬한 생명활동을 그려내는 일에 집중하고 있다(「꽃 피는 소리」, 「맨드라미, 닭벼슬 붉디붉다」 등).
2) 주어진 다섯 편은 신작시이거나 근작시이므로, 가장 최근 시집의 시들을 비교 대상으로 해서 설명했다. 인용된 시들은 「쥐면 꺼지는 봉곳한 뽕브라처럼」(『달과 뱀과 짧은 이야기』)을 제외하고는 모두 『그 겨울 나는 북벽에서 살았다』(2013)에 실려 있는 것들이다.
글 · 문혜원 | 문학평론가
1989년 《문학사상》 등단.
저서 『한국 현대시와 모더니즘』 『한국근현대시론사』 『존재와 현상』,
평론집 『흔들리는 말, 떠오르는 몸』 『돌멩이와 장미, 그 사이에서 피어나는 말들』
『비평, 문화의 스펙트럼』, 대담집 『문학의 영감이 흐르는 여울』 등이 있음.
서울대 국문과 및 동대학원 졸업. 문학박사. 현재 아주대 국문과 교수.
월간 웹진 공정한 시인의 사회 2019년 02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