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시인
 
이달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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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


 

 

 

너였던 내 모든

 

 

 

심장이 몸밖에 달렸더라면

네 마음을 더 잘 볼 수 있을 텐데

 

뿔이 눈 아래에 돋았더라면

네가 더 아프도록 찌를 수 있을 텐데

 

그 뿔에 손이라도 있었더라면

네 상처를 더 어루만질 수 있을 텐데

 

그러니까 생각이 나보다 먼저 잠들기만 했어도

너와 더 오래 한집에 머물 수 있을 텐데

 

그게 아니라면 집에 바퀴라도 달았더라면

가출하지 않고도 달아날 수 있을 텐데

 

사랑을 감시할 수 있었더라면

서로를 찌를 때까지 그리 파고들지 않을 텐데

 

그랬더라면 우리도 없었겠지?

 

 

 

 

 

사막거북

 

 

 

사막에서 물을 잃는다는 건 치명적인 일이다

 

사막거북은 가뭄에 콩 나듯 만나는 풀이나 선인장에서 병아리 눈물만큼의 물을 얻어 몸속에 모았다가 위험에 빠지면 그마저도 다 버린다

 

살기 위해 배수진을 치는 것이다

 

나도 슬픔에 빠지면 몸속에 모았던 물을 다 비워낸다 쏟아내고서야 살아남았던 진화의 습관이다

 

어떤 것은 버렸을 때만 가질 수 있고

어떤 것은 비워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

 

살아남은 심장은 단단하다

 

쏟아내고서야 단단해지는 그 이름은?

 

핏자국이 엉켜 있는 발톱을 본 적이 있다

어느 거리에서였을까

어느 전쟁터에서였을까

 

 

 

 

 

 

 

물새와 고래

 

 

 

아침까지는 돌아와야 해, 꼭!

 

노을 속으로 타들어간 물새를

잊을 않을 거야 그게 너니까

 

소실점을 잃으면 중량은 중력이 된다

 

바다 속 하얗게 말라가는 산호초는

바닥을 파고든 흰 물새의 날개였을까

 

바닥에 묶여도 괜찮아 그것도 너니까

 

아침 태양처럼 가벼워진 흰 돌고래가

꼬리 날개로 수평선을 찢고 있다

 

그때 또 나여도 괜찮아?

 

 

 

 

 

 

 

 


자선시


 

 

 

춤

 

 

 

내 숨은

쉼이나 빔에 머뭅니다

섬과 둠에 낸 한 짬의 보름이고

가끔과 어쩜에 낸 한 짬의 그믐입니다

 

그래야 봄이고 첨이고 덤입니다

내 맘은

뺨이나 품에 머뭅니다

님과 남과 놈에 깃든 한 뼘의 감금이고

요람과 바람과 범람에 깃든 한 뼘의 채움입니다

 

그래야 점이고 섬이고 움입니다

 

꿈만 같은 잠의

흠과 틈에 든 웃음이고

짐과 담과 금에서 멈춘 울음입니다

 

그러니까 내 말은

두 입술이 맞부딪쳐 머금는 숨이

땀이고 힘이고 참이고

 

춤만 같은 삶의

몸부림이나 안간힘이라는 겁니다

 

 

 

 

 

 

 

 

벌받는 별

 

 

 

출생신고서에 등재한 내 이름이 이 별의 별명이자 병명이 되리란 걸 아버지는 아셨을까

 

노을이 구름을 지날 때였고 바다에 산호가 필 때였다

울음이 쏟아질 때였고 살이 터질 때였다

그때가 사랑이었고 그때마다 이름에 색칠을 했다

 

몇 날 며칠을 물고기자리에서 뒤척이다 일어난 새벽이면 천길 물속 같은 밤이 등뒤로 밀려나 있었고 아침이면 아무런 별도 아니었다

 

늙거나 비우거나, 힘을 빼고

희미해지거나 지우거나, 힘이 빠지는 건

별똥별의 일이다 자기 앞의 밤을 오리온자리처럼 사수한다는 건 별의별 일이다

 

움켜쥐다보면 잠 못 이루는 날이 오고

겨누다보면 중력을 앓게 되고

놓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날이 온다

그러니 척력을 잃어서는 안된다

 

긴 꼬리를 끌며 별 하나가 시위를 떠났다

 

두고 온 겨드랑이 털과 등 비늘은 춥겠다 더 말랐겠다

덧칠된 색칠은? 이별의 징후나 증세는?

 

누구도 말 걸지 않았다 아무도 그립지 않았다 해야 할 건 다 했는데 아직도 숨이 차다 어깨가 처지고 손이 풀렸는데 그래도 아침은 되풀이된다 매일이 벌처럼

 

사망신고서에 등재될 내 이름이 이 벌의 죄명이자 사인일 것이다 완성이란 그렇게 인과적이고 인위적인 것

 

늘 다른 내가 되고 싶었으나 별안간의 이름으로 불릴 때마다 철렁 받는다 꼬리가 조금 더 길어졌다는 건 잘 받았다는 거다 조금 더 무거워졌다는 거다 매일의 별처럼

 

나는 아직 모른다 내 이름의 꼬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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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문학사상》 시, 199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평론 당선.

시집 『자작나무 내 인생』 『흰 책』 『삼천갑자 복사빛』 『와락』 『은는이가』 『봄이고 첨이고 덤입니다』 등이 있음.

<유심작품상><소월시문학상><청마문학상> 수상.

현재 이화여자대학교 국문과 재직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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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쾌한 서정과 라임의 미학

― 정끝별의 시

 

 

 

 

1.

모든 예술이 다 그렇듯이 문학의 역사도 결국은 문학적 형식과 형상화가 이끈다. 과학은 진보하고, 그에 따라 삶의 여건도 개선되어 나가지만, 삶의 근본 조건과 숙명은 변하지 않는다. 더구나 인간의 마음과 지혜는 결코 발달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인간의 내면을 다루는 서정시는 모든 예술 가운데서 주제가 가장 협소한 장르이다. 서정시는 엇비슷한 주제를 반복해 써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의 서정시가 지금도 계속 쓰여 지고, 한국의 서정시가 천년을 넘어 오늘 이 시간에도 영롱한 빛을 내며 독자들의 눈을 끌고 있는 것은 그 형식과 형상의 갱신 때문이다.

정끝별은 서정시의 형식적 갱신을 첨단에서 실행해 나가고 있는 시인이다. 그는 언어, 내면, 자연, 운율을 기본 요소로 하는 서정시의 문법을 충실히 지켜나가고 있지만, 그의 시들은 막 출시된 신상처럼, 갓 건져 낸 물고기처럼 신선하고 싱싱하고 탱탱하다. 그것은 전적으로 그의 참신한 시적 형식과 형상에서 비롯된 것이다.

 

심장이 몸밖에 달렸더라면

네 마음을 더 잘 볼 수 있을 텐데

 

뿔이 눈 아래에 돋았더라면

네가 더 아프도록 찌를 수 있을 텐데

 

그 뿔에 손이라도 있었더라면

네 상처를 더 어루만질 수 있을 텐데

 

그러니까 생각 나보다 먼저 잠들기만 했어도

너와 더 오래 한집에 머물 수 있을 텐데

 

그게 아니라면 집에 바퀴라도 달았더라면

가출하지 않고도 달아날 수 있을 텐데

 

사랑을 감시할 수 있었더라면

서로를 찌를 때까지 그리 파고들지 않을 텐데

 

그랬더라면 우리도 없었겠지?

ㅡ 「너였던 내 모든」 전문

 

남녀 사이의 이별과 갈등은 서정시의 영원한 주제이다. 서정시의 역사는 연가의 역사이고, 이별가의 기록이다. 이 시도 그런 연시의 전통에 맥이 닿아 있다. 하지만, 시인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사랑과 이별을 노래한다. 시인은 연시를 쓰면서 생명체의 신체구조와 가옥의 설치형태를 돌아본다. 떠나간 사람을 두고, 사람의 심장이 몸 밖에 있으면 그 사람의 마음을 더 잘 볼 수 있었을 것이고, 또 뿔이 눈 아래에 있으면 정확히 상대를 찔러 그를 사로잡을 수 있었을 것이고, 또 뿔에 손이 붙어 있으면 그의 아픈 상처를 어루만질 수 있었을 것이며, 몸보다 생각이 앞서지만 않으면 그에게 상처를 주지 않았을 것이고, 또 집에 바퀴가 달려있다면 가출할 일도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해 본다. 그러나 그런 신체구조를 지녔고, 그런 가혹형태를 갖춘 곳에 사는 이라면 그는 지구상의 사람은 아닐 테이니, 애초에 우리들의 만남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읊조리며 시를 마감한다. 그러고 보면, 이 시는 삶의 본질적 숙명을 전하고 있기도 한 것이다. 낡고 무거운 시적 주제가 시인의 기발한 상상력으로 밝고 경쾌하게 그려지고 있으며, 이를 통해 익숙한 시의 의미가 참신한 전언으로 거듭나는 것이다.

이 시의 경쾌함은 또한 운율과 화법을 통해 이룩된다. 이 시는 1연부터 6연까지 “~라면/~을 텐데”의 구문으로 진술되어 있다. 동일한 구문의 반복은 율동 감을 조성하고, 흥겨움을 일으키며, 속도감을 유발한다. 그 즐거운 질주는 폭죽처럼 터지는 발랄한 상상력을 더욱 신나게 만든다. 여기에 구어체의 화법이 접목된다. “그랬더라면 우리도 없었겠지?” 라는 마지막 진술이 이 화법의 백미를 이룬다. 사실, 이 작품은 전체가 한 문장이니 마지막 구절이 이 시의 화법을 결정짓고 있는 셈이다. 그 구절은 이 시에서 극적인 반전을 도모하는 곳이고, 이 시를 연시로부터 삶의 본질을 드러내는 심중한 주제의 시로 확산시키는 핵심 대목이어서 그 화법의 구사가 더욱 효과를 거둔다. 여기서 구사된 구어체의 경쾌한 화법은 무거운 주제를 환하게 전해주고, 이 서정시를 젊고 탄력 있게 만드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이번 신작시의 또 다른 두 편 「사막거북」과 「물새와 고래」는 동물을 시의 제재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지닌다. 동물 또한 서정시의 영원한 대상이다. 「황조가」에서 새에 시인의 감정을 투영시킨 이래 한국의 서정시는 동물과 함께 걸어왔다. 자연을 모방한 예술 행위를 가장 지속적으로 실천하고 있는 것이 시일 것이다. 서정시의 동물 애호는 과학의 발달과 더불어 그 외양에 대한 관찰로부터 생태적, 해부적 지식의 수용으로 이동되고 있는 것이 현대시의 추세이다. 정끝별의 시들도 예외는 아니다. 그런데 시인은 여기서도 예의 특별한 상상력을 펼치면서 독보적인 시 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먼저 시인은 사막에 사는 사막거북과 자신을 비교하고, 이어서 그들을 전쟁터의 육신과 견준다. 물이 귀한 사막에 사는 사막거북은 사막에서 어쩌다 만다는 풀이나 선인장에서 눈물만큼의 물을 얻어 몸속에 모았다가 위험에 빠지면 그것을 다 써서 생명을 유지한다는 사실을 전한다. 시인도 슬픔에 빠지면 몸속에 모았던 물을 다 비워내고 쏟아내고서야 살아났을 수 있었음을 돌아본다. 시인이 소진한 그 물은 눈물일 것이다. 이어서 시인은 그 두 가지 체험적 사실과 거리나 전쟁터에서의 핏자국 엉킨 발톱을 비교한다. 구체적인 경험 현실과 그 안에서 길어 올린 이미지를 통해 시인은 비움과 맺힘의 의미를 선명하게 전해준다. 그런데 이 시에서 더 눈길이 가는 것은 그 대상들의 배경 이미지이다. 사막거북의 생존 현장인 ‘사막’과 피맺힌 발톱의 현장인 ‘거리’의 대조가 그것이다. ‘거리’ 보다는 ‘사막’이 살기에 훨씬 열악하고 힘겨운 곳임은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곳서 생명체는 삶의 지혜를 갖고 생명을 연명해 나가고 있는 것이다. 사막거북의 이미지는 거리의 우리들을 한없이 부끄럽게 만들고 있다. 동물 이미지 자체보다도 그들의 삶의 조건을 포착하고 성찰함으로써 시인은 새로운 서정시를 빚어내고 있다.

 

노을 속으로 타들어간 물새를

잊지 않을 거야 그게 너니까

 

소실점을 잃으면 중량은 중력이 된다

 

바다 속 하얗게 말라가는 산호초는

바닥을 파고든 흰 물새의 날개였을까

 

바닥에 묶여도 괜찮아 그것도 너니까

 

아침 태양처럼 가벼워진 흰 돌고래가

꼬리 날개로 수평선을 찢고 있다

 

그때 또 나여도 괜찮아?

ㅡ 「물새와 고래」 전문

 

이 시는 ‘물새’와 ‘고래’ 라는 이미지의 비교, 제시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두 동물은 모두 물이라는 삶의 조건 속에서 생활하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지닌다. 그러나 삶의 양태는 완전히 대조적이다. 물새는 공중을 날지만 연약하고, 고래는 바다 안에 갇혀 있지만 강하다. ‘노을 속으로 타들어간 물새’는 아름답지만 죽어가는 생명체의 존재를 환기시킨다. 그렇게 중력의 힘으로 떨어진 물새는 바다 속으로 들어가 바다 생물체의 먹이가 되고 그 중 일부는 산호초로 거듭난다. 하늘을 날던 아름다운 물새가 바다에 갇혀 바다의 일부가 되는 것은 물새의 운명이다. 반면 돌고래는 바다를 자신의 신체 일부로 가르면서 나아간다. 돌고래는 거대한 바다를 자신의 몸으로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물새와 돌고래는 다 같이 물과 더불어 살고, 동일하게 흰 빛을 띠고 있지만, 살아가는 방식은 대조적이다. 하나는 물 위를 날지만 결국은 떨어져 물속에 갇히고, 다른 하나는 물속에 갇혀 있지만 그 물을 지배하고 있다. 시인은 이렇게 대조적인 두 종류의 동물 이미지를 제시하고 그 동물에 자신을 투영시킨다. 그러면서 양 극단의 두 이미지를 가진 자신이 괜찮으냐고 반문하며 시를 맺는다. 동물에 자신을 투명시키는 것은 서정시의 오랜 문법이지만, 시인은 매력적인 이미지의 제시와 화법의 신선한 변주를 통해 발랄하고 경쾌한 서정시를 빚어내고 있다.

 

 

2.

정끝별 시인은 모국어의 말소리를 활용하는 데에 남다른 경지를 보이고 있다. 원래 서정시는 소리 결을 시의 중요한 형식적 장치로 삼는 장르이다. 서정시의 원형적인 형태는 소리 결로 화음을 조성하여 음악을 만들어 내는 것이었다. 그래서 시에서는 언어의 운이 중요한 요소로 간주되었다. 시의 운은 두운, 요운, 각운 등의 형식으로 발전되어 갔으며, 그런 규칙적인 운이 시의 리듬을 조성하였다. 그런데 굴절어인 영어는 단어의 끝 음상이 다양하게 형성되어 있는 반면 교착어인 우리말은 그것이 단조롭기 때문에 우리 시는 영시에 비해 상대적으로 운율을 조성하기에 어려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게다가 우리말은 영어와 달리 서술어가 문장의 마지막에 놓이기 때문에 특히 라임(Rhyme)의 활용에 불리하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그런데 정끝별 시인은 언어학의 일반이론이 무색하게도 라임을 능수능란하게 구사한다. 시인은 문장의 끝에서 발생하는 라임 대신에 문장의 중간 곳곳에서 동일한 말음을 지닌 어휘들을 반복시키는 방식을 구사한다. 시인의 독특한 라임 활용은 시의 음악성만을 겨냥한 것이 아니다. 시인은 라임을 시의 의미를 나타내는 핵심 장치로 삼으면서 서정시의 신경지를 개척하고 있다. 「춤」이란 시는 이러한 시인의 태도를 극적으로 보여준다.

 

내 숨은

쉼이나 빔에 머뭅니다

섬과 둠에 낸 한 짬의 보름이고

가끔과 어쩜에 낸 한 짬의 그믐입니다

 

그래야 봄이고 첨이고 덤입니다

 

내 맘은

뺨이나 품에 머뭅니다

님과 남과 놈에 깃든 한 뼘의 감금이고

요람과 바람과 범람에 깃든 한 뼘의 채움입니다

 

그래야 점이고 섬이고 움입니다

 

꿈만 같은 잠의

흠과 틈에 든 웃음이고

짐과 담과 금에서 멈춘 울음입니다

 

그러니까 내 말은

두 입술이 맞부딪쳐 머금는 숨이

땀이고 힘이고 참이고

 

춤만 같은 삶의

몸부림이나 안간힘이라는 겁니다

ㅡ 「춤」 전문

 

이 시는 /m/운을 맞춘 작품이다. 이에 해당하는 시어들을 뽑아 보면, ‘춤’, ‘숨’. ‘쉼’, ‘빔’, ‘머뭄’, ‘섬’, ‘둠’, ‘보름’, ‘가끔’, ‘어쩜’, ‘짬’, ‘그믐’, ‘봄’, ‘첨’, ‘덤’, ‘맘’, ‘뺨’, ‘뼘’, ‘머뭄’, ‘님’, ‘남’, ‘놈’, ‘감금’, ‘요람’, ‘바람’, ‘범람’, ‘채움’, ‘점’, ‘섬’, ‘움’, ‘꿈’, ‘잠’, ‘흠’, ‘틈’, ‘웃음’, ‘짐’, ‘담’, ‘금’, ‘울음’, ‘숨’, ‘땀’, ‘힘’, ‘참’, ‘삶’, ‘몸부림’, ‘안간힘’ 등이다. 명사 외에 형용사 어휘까지 포함하면 ‘멈춘’, ‘머금는’도 있고, 표기가 아닌 발음을 기준으로 하면 ‘입니다’, ‘겁니다’도 포함되며, 초성의 /m/까지 포함하면 ‘말’, ‘맞부딪쳐’도 해당된다. 그야말로 /m/운으로 된 말들의 향연이다. 이 시에서 이 단어들을 제외하면 대부분 조사이고, 그 조사와 나머지 소수의 말들은 대체로 유성음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m/운의 효과가 훨씬 두드러진다. 이 시는 어린아이들이 끝말 이어가기를 하듯 /m/으로 끝난 말, 또는 /m/이 들어간 말들을 연속해 호명하는 말놀이를 연상시킨다. 끝말 이어가기에 음절수의 변화로 리듬이 조성되어 있듯이 이 시에도 음절수의 변화가 도모된다. 1음절 단어가 연속되다 2음절 단어가 나타나고, 그런 패턴이 반복되다, 마지막 연에 가서는 1음절 단어만 반복되다 3음절로 끝난다. 마지막 연에 나타나는 음절수의 변화는 개구리가 움츠렸다 뛰어오르는, 용수철이 눌렸다 튀어 오르는 것 같은 느낌의 탄력과 속도감을 전해준다.

그렇다고 이 시의 말놀이가 음악성만을 겨눈 것이 아님은 물론이다. 이 시의 라임은 궁극적으로 시의 의미 조성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시인은 ‘숨’에 대한 이야기를 /m/운으로 된 단어들로 진술한다. 시의 서두엔 숨의 신체적 동작과 작동원리에 대해 진술하고, 그 다음엔 숨과 대비되는 맘의 신체적 동작과 작동원리에 대해 진술한다. 시의 전반부는 호흡과 마음이 신체에서 발생하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이제 후반에 가서 그 의미는 확산된다. 6연에서 숨이 땀이고, 힘이고, 참이라고 했을 때, 그 숨은 단순한 호흡이 아니라 긴장과 집중을 동반한 ‘심호흡’이고, 마지막 7연에서 숨이 춤만 같은 삶의 몸부림이고 안간힘이라고 했을 때, 그 숨은 ‘헐떡이는 호흡’인 것이다. 이 시는 결국 삶의 여러 표정과 국면을 ‘숨’이란 단어의 라임 변주로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라임으로 함축적 의미까지 드러내는 것은 그 누구도 시도한 바 없는 매우 창의적인 시적 발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벌받는 별」은 유사 음, 또는 동음이의어의 반복을 통해 운율을 조성하고 시의 의미를 드러내는 작품이다. 이 시는 ‘끝별’이란 자신의 이름으로부터 시작된다. 그 이름은 보통의 일반적 이름과 달라서 사람들은 그것을 본명이 아니라 ‘별명’으로 간주하고, 시인은 그것에서 마음의 병을 얻어 자신의 이름이 ‘병명’이 되고 만다. ‘별’이란 각별한 이름은 시인의 일상적 삶을 지배한다. 시인은 밤마다 물고기자리나 오리온자리 같은 꿈을 꾼다. 시인은 때로 ‘별똥별’이 되어 떨어지기도 하고, ‘별의별’ 일처럼 자신감을 갖기도 하지만, 그 특이한 이름은 시인에게 ‘벌’이 되고 만다. 시인은 자신에게 특별한 존재의 사명을 부여한 ‘별’이란 이름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지만, ‘별안간’ 그 이름이 호명될 때마다 ‘별’로 되돌아오곤 한다. 시인은 ‘벌’ 같은 ‘별’이 되어 매일 매일 떠오르는 ‘별’처럼 살아간다.

어떤 ‘말’ 하나에서 시를 시작할 때, 많은 시인들은 그 말의 의미나 느낌에서 다른 이미지를 연상해 나가거나, 그 말소리와 유사한 말들을 찾아 음악성을 추구해 나가지만, 정끝별은 그 말들과 동일한 운을 지닌 말, 또는 동일한 음절을 지닌 말들의 변주를 통해 또렷이 각인되는 시의 의미를 전한다. 동일한 말들의 변주가 시의 의미를 이끌기 때문에 그의 시들은 전반적으로 템포가 빠르고, 시의 의미가 무겁고 깊은 경우에도 운율은 밝고 경쾌하다. 그는 우리의 모국어를 싱그럽게 하며, 우리의 서정시를 젊고 탄력 있게 만들어내고 있다. 이것이 모국어에 대한 그의 탁월한 언어감각에서 비롯된 것임은 말할 것도 없다. 라임의 구사에 관한 한 그는 우리 시대 최고의 언어 마술사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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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고형진 | 문학평론가

1988년 《현대시학》 평론 등단.

저서 『시인의 샘』 『또 하나의 실재』 『현대시의 서사지향성과 미적 구조』 『백석 시 바로 읽기』 『백석시를 읽는다는 것』 『백석의 물명고』 『정본 백석 시집』 『정본 백석 소설 수필』 등이 있음. <김달진문학상> 수상. 현재 고려대학교 국어교육과 재직 중.

 

 

 

 

월간 웹진 공정한 시인의 사회 2019년 11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