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시인
 
이달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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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


 

 

임피리얼 팰리스 호텔 저녁 6시

 

 

 

십몇 년 만에 서울을 간다는 종형을 모시고 한강을 건넜다

 

이게 무슨 잔치냐 돈지랄이지

호텔 좋은 일만 시키는 거지

 

당신이 혼주인데 남의 잔치처럼 사진 찍으라면 찍고

절하라면 절한다

 

주례 선생도 기어이 만세를 삼창하며 잔치는 끝나고

십몇 년 만에 온 서울에 딸을 두고 집으로 돌아간다

 

서울 같은 건 아무것도 아니다

 

 

 

 

 

 

 

 

할리우드 영화광

 

 

 

우리끼리 얘기지만 우리 영화는 지나치게 정치적이다

거기엔 메타포는 없고 서사만 있다

싸움도 훤칠한 싸움이 아니고 쌍욕만 있다

브레히트는 진실은 구체적이라 했지만

한국 영화는 너무 친절해서

깨알 같은 인생을 다 보여주려 한다

인생은 진실한 것도 아니고

세상은 정의로운 것도 아니므로

나는 악당들이 은행을 터는 게 좋다

멋진 스파이들은 또 어떻고……

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치며

열에 아홉은 실패해도

반전의 반전을 거듭하다가

성공하는 사람들의 불의가 좋다

특히 악당을 기다려주는 아름다운 여자들이 좋다

인생은 악착같아 보여도

허술하기 이를 데 없는 것인데도

우리끼리 말이지만 한국 영화에는

조롱이나 야유가 없다

어쨌든 보고 나면 다 잊어버리는 나는

할리우드 영화광이다

 

 

 

 

 

 

 

 

물은 아직 그 물이다

 

 

 

 

옛 중국의 노자라는 사람은 물이 이 세상에서 가장 약하고 부드럽고 저를 낮추며 겸손하므로 사람이 물처럼 살면 얼마나 좋겠느냐고 예찬했다. 그로부터 이천 년도 훨씬 지나 대한민국의 경찰은 물로 대포를 만들어 쌀값을 올려달라고 거리에서 사정하던 농민 백남기를 쏴 죽였다. 물은 아직 그 물이다.

 

 

 

 

 

 

 

 

 

 

 


자선시


 

 

 

마당의 풀을 뽑다

 

 

 

1908년 옥천에서 태어난 김기림은

도호쿠 대학을 나와 시인이 되었다

바다를 청보리밭으로 알았다거나

무슨 산맥들이 아라비아 옷을 입었다든지 하는

구라파 풍의 시를 남기고 북으로 붙들려 갔다

같은 해 양양에서 태어난 나의 아버지는 시골 유생으로

필사본 만세력과 주역을 가지고 담배벌이를 하거나

비오는 날 공회당에서 자아비판을 했고

세필 끄트머리에 침을 발라가며

나에게 축문 쓰는 법을 가르쳤다

김기림은 북조선에서 인민으로 죽었고

아버지는 수복지구에서 촌부로 생을 마치는 동안

자빠지고 엎어지고 그 사이가 백년이 넘었다

시인은 넘쳐나고 노래는 많아도

아버지가 부르던 학도가를 나는 지금도 부른다

사회진보 깃대 앞에 개량된 자 임무가 중하다지만

봄은 짧고 나라는 힘이 없다

그때나 지금이나 인민은 죽어나고

그렇게 개고생한 아버지들은 가고

아무것도 아닌 아들만 남았다

북에 있는 김기림의 아들은 뭘 하며 사는지

며칠째 미세먼지가 하늘을 뒤덮은 날

마당의 풀을 뽑다가 이런

쓸데없는 생각을 했다

 

 

 

 

 

 

 

 

 

멸치와 맥주

ㅡ 이승훈 시인 생각

 

 

 

그가 비 내리는 북천을 등에 지고

맥주를 홀짝이고 있을 때

의자 다리 같은 몇 개의 말이 겨우 그를 받쳐주고 있었는데

 

그의 事物들이 나중에 불립문자와 내통하는 것을

나는 일종의 불륜처럼 생각했다

볼장 다 봤거나 타락했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결국 禪에게 속았거나 선이 속은 것이다

그러나 못 속는 게 바보다

 

이형 공양간에 맥주랑 멸치 있겠지요?

그럼요 禪 속에 뭐가 없겠어요!

 

젊은 이성선도 살아있었고

겨울 속초에서 처음 만난 그는 검은 가죽가방을 들고

면도날처럼 새파란 시인이었다

비 오는 날 파키스탄풍의 모자를 쓰고

30여 년의 말들이 오늘은 북천을 흘러간다

 

굳이 문자로 표현하자면 그는 돌아갔다

이것은 사람이 세상에 없다는 비유이다

그에겐 다행이다

더는 말에게 멱살을 잡히거나

아부할 이유도 없고

사랑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

고백하건데 나도 이제 말은 지긋지긋하다

 

말과 이별할 무렵 그는

맥주와 구부정한 멸치교에 입문했다

나는 그때 그가 더 좋았다

사람은 어딘가 약해 보일 때가 좋은 것이다

내가 이 시를 쓰는 건 그에게

이 말을 전하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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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양양 출생. 1976년 《심상》 등단.

시집 『집은 아직 따뜻하다』 『뿔을 적시며』 『달은 아직 그 달이다』 등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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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장의 너그러움, 그러나 분발서정(憤發抒情)의 세계 

 

 

 

 

 

이상국 시인을 처음 뵌 것이 언제인지 정확한 기억은 없지만 근년 원주에서, 강릉에서 뵐 때마다 건네는 따듯한 말 한 마디와 눈빛에서 노장의 깊은 정을 느껴왔다. 더러 세상을 바라보는 쓸쓸한 눈빛도 후배들에 대한 자상함도 아마 여기에서 비롯되었을 터였다. 이상국 시인을 생각할 때마다 선방(禪房)의 대덕 같은 유유함을 떠올리곤 한다. 설악산 어느 암자에 앉아 하염없는 연민의 눈으로 사물과 세상을 보듬고 괜찮다고 일러주는 노장의 온기를 이상국 시인이 품고 있다는 생각이다. 큰 산은 요란하지 않다. 그는 큰 귀를 지니고 있는 까닭에 무릇 중생들에게 인기가 많다. 술자리에서 조용조용 이야기를 이어가다보면 타인에 대한 그의 맞장구는 마치 판소리의 추임새를 연상시킨다. “그렇지”, “그럼”, “어이쿠”, “그래서”, “맞다 맞어” 등 정확한 기억은 없지만 계속 말을 해보라는 배려의 추임새로 인해 정겨운 이야기는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옛말에 동지위우(同志爲友)라 했으니 뜻이 같으면 우(友)라 칭한 것이다. 더 나아가 이년위우(異年爲友)요 망년지우(忘年之友)라 했으니 벗[友]이란 연배를 초월하기 일쑤이다. 아마도 이상국 시인은 시를 쓰는 후배들을 망년지우로 대해왔을 법하다. 그 큰 뜻에는 오롯이 시라고 하는 매개물이 자리하고 있음을 아는 까닭에 더 삼갔던 것도 사실이다. 대관령 너머로 눈발이 치고 바람이 불어도 늘 따뜻한 문학적 온기를 느끼게 되는 것도 이상국 시인 때문이라 해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닐 듯 싶다.

몇 편의 시를 읽으면서 그의 시가 여항을 떠돈다는 사실에서 큰 위안을 느끼게 되는 것은 탈속의 지경으로 갔을 때 시가 아닌 경우를 너무 많이 보아온 탓일 것이다. 그는 자연에서 멀지 않지만 늘 장터와 세속의 공간을 걸어왔다. “사는 일은 대부분 상처이고 또 조잔하다”(「그늘」)는 표현은 여항을 살아가는 소시민으로서의 고백적 성격을 띠고 있다.

 

십몇 년 만에 서울을 간다는 종형을 모시고 한강을 건넜다

 

이게 무슨 잔치냐 돈지랄이지

호텔 좋은 일만 시키는 거지

 

당신이 혼주인데 남의 잔치처럼 사진 찍으라면 찍고

절하라면 절한다

 

주례 선생도 기어이 만세를 삼창하며 잔치는 끝나고

십몇 년 만에 온 서울에 딸을 두고 집으로 돌아간다

 

서울 같은 건 아무것도 아니다

ㅡ 「임피리얼 팰리스 호텔 저녁 6시」

 

십몇 년 만에 종형을 모시고 서울 결혼식에 참예한 경험을 소회의 형식으로 쓴 이 시는 도회의 삶의 양식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다. 늘상 경험하는 일이지만 오늘날의 결혼식이란 통과의례처럼 봉투를 내밀고 결혼식은 보는 둥 마는 둥 허겁지겁 밥을 먹고 떠나기 일쑤이다. 더구나 혼주조차도 절차에 따라 서라면 서고 앉으라면 앉아 있다가 사진 찍고 뒤늦게 맛도 모른 채 밥을 먹고 큰돈을 치르고 식장을 떠나는 것이다. 이 비정함은 전날 잔치라고 하는 개념을 송두리째 날려버렸다. 뷔페라는 음식 문화가 결혼식장을 완전히 점령해버린 오늘날의 결혼식은 한 그릇의 국수 혹은 갈비탕에 머릿고기와 각 지방 토산 음식으로 짭짤했던 지난날의 잔치와는 크게 대조되는 것이다. 서로 손을 잡고 음식을 나누며 잘됐다고 덕담을 내는 인정은 갈 데 없는 천덕꾸러기가 되고 만 것이다. “십몇 년 만에 온 서울에 딸을 두고 집으로 돌아”가는 아비의 심정은 착잡하기 그지없었을 것이다. “서울은 같은 건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시구는 시인 백석이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라고 일갈했던 장면을 연상케 한다. 아마 버스를 타고 대관령 넘어 터미널 부근에서 안도의 숨을 쉬며 술을 한 잔 했을 것이다. 그냥 그냥 잘 되었다 위로를 건네며 서울은 갈 데가 못된다고 한탄하다가 집으로 돌아갔을 법하다. “이게 무슨 잔치냐 돈지랄이지”에서 뿜어내는 분노는 사라져버린 전날의 인정과 세태에 대한 그리움을 뜻하는 것이기도 하다. 최근의 시와 문학이 신기(新奇)에 지나치게 집착한 나머지 마음의 정을 그리는 것을 오래되고 낡은 것으로 치부해버리기 일반이지만 사람살이는 여전히 그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 않음을 이 시는 보여준다. 시 제목과 시의 내용이 주는 아이러니는 시적 화자의 화해할 수 없는 감정의 폭을 뜻하는 것이기도 하다. “서울 같은 건 아무것도 아니다”는 표현은 오래 산 자로서의 혜안이며 분발서정의 한 정점이기도 한 것이다.

이상국 시인의 시는 아닌 듯 보이지만 늘 현실에 감각의 더듬이를 드리우고 있다. 그의 시에 보이는 사물과 세계에 대한 연민도 현실의 성찰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러니 늘 작고 가엾은 것에 대해 무한 애정을 갖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늘 작고 힘없는 것들에 대해 폭력적이며 깔보기 일쑤이다. 이러한 현실은 시의 예리한 더듬이에 걸려들고 만다.

 

옛 중국의 노자라는 사람은 물이 이 세상에서 가장 약하고 부드럽고 저를 낮추며 겸손하므로 사람이 물처럼 살면 얼마나 좋겠느냐고 예찬했다. 그로부터 이천 년도 훨씬 지나 대한민국의 경찰은 물로 대포를 만들어 쌀값을 올려달라고 거리에서 사정하던 농민 백남기를 쏴 죽였다. 물은 아직 그 물이다.

ㅡ 「물은 아직 그 물이다」 전문

 

노자는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하고 다투지 않고 많은 사람들이 싫어하는 바의 곳에 거처하니 고로 도에 가깝다(水善利萬物而不爭 處衆人之所惡 故幾於道)고 했다. 그러니 상선약수(上善若水)라고 규정지었던 것이다. 자신의 처지를 알아 낮은 곳에 처하면서도 자연에 어긋남이 없는 물의 속성은 인간이 두고두고 찬양해온 바의 것이다. 그러나 노자가 살다간 지 이천 년도 더 지난 오늘날 “대한민국의 경찰은 물로 대포를 만들어 쌀값을 올려달라고 거리에서 사정하던 농민 백남기를 쏴 죽였다”. 상선의 물질인 물로 농민을 쏴 죽인 현실에 대한 분노는 이 땅을 살아가는 일원으로서의 참담함을 의미한다. 이 시의 핵심은 “물은 아직 그 물이”라는 사실이다. 이것은 물질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운영하는 주체가 누구냐 하는 문제 제기이다. 언제나 사물은 그대로 사물일 뿐이다. 사물의 속성을 지속적으로 변형해 온 것이 오늘날의 문명이다. 물로 대포를 만들고 힘없는 농민을 향해 그것을 쏘고 죽음에 이르게 하는 무자비한 현실은 이 땅에 살아가는 우리들은 도대체 누구인가 하는 물음을 갖게 하기에 충분하다. 야만적 행위에 대한 수치심과 분노가 이 시에 서려 있다. 물을 어떻게 쓸 것인가 하는 문제는 이 땅의 현실을 어떻게 가꾸어 나갈 것인가 하는 문제 제기와 같은 물음이다.

이상국 시인의 시를 읽으며 평소 느껴온 것은 어떤 악착같음에 대한 혐오 의식이 내재되어 있다는 것이다. 세계는 여전히 빈틈으로 이루어져 있고 허술한 부분들로 구성되어 있다. 인간의 삶도 마찬가지이다. 만약 빈틈과 허술한 부분들이 없다면 나와 세계 혹은 세계와 세계 사이의 관계는 빡빡하기 이를 데 없을 것이다. 약간의 거리 혹은 허술함이야말로 관계의 윤활을 담당하는 것인데 세상은 마치 딱딱 맞아 떨어지는 이치가 있는 듯 가르치고 행동한다. “인생은 악착같아 보여도 / 허술하기 이를 데 없”(「할리우드 영화광」)다는 진술은 범속한 일상에서 걷어 올린 통찰이라 할 수 있다.

 

한국 영화는 너무 친절해서

깨알 같은 인생을 다 보여주려 한다

인생은 진실한 것도 아니고

세상은 정의로운 것도 아니므로

나는 악당들이 은행을 터는 게 좋다

ㅡ 「할리우드 영화광」 부분

 

“메타포는 없고 서사만 있”(「할리우드 영화광」)다는 비판은 사유의 문제이면서 앞에 말한 관계의 문제이기도 하다. 관계와 관계 사이의 거리 혹은 틈이야말로 허술한 듯 보이지만 사유와 행동의 자유가 숨 쉬는 공간이기도 하다. “깨알 같은 인생을 다 보여주려 한다”는 한국 영화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한국 사회의 정체성 문제와도 통하는 측면이 있다. 모든 것을 인과적으로 다 설명해야만 직성이 풀리고 동의를 구할 수 있는 사회 구성체로서 우리의 모습은 모순으로 점철될 수밖에 없다. “인생은 진실한 것도 아니고 / 세상은 정의로운 것도” 아니라는 고백을 문면 그대로 받아들여 인생은 거짓되고 세상은 부정한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곤란하다. 특정한 이념에 대한 지향 혹은 결정된 선(善)에 강제적 요구와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받아들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지나친 선과 악의 구분은 사회를 이분화 할 뿐 아니라 타인의 말과 행동을 인정하지 않는 기제로 작동한다. “우리끼리 말이지만 한국 영화에는 / 조롱이나 야유가 없다”(「할리우드 영화광」)는 진술은 주류에 대한 혹은 강자에 대한 조롱과 야유가 통용되는 사회를 의미하는 것으로 헐리우드 영화에서 곧잘 볼 수 있는 장면들이다. 분명한 것은 이 시는 영화만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지나치게 서사와 인과에 집착했을 때 논리만 남고 인생의 여유 혹은 잉여는 쓸데없는 것으로 폐기되고 말 것이다. 그리고 정의라는 것도 상대적인 것이기 때문에 인간에 대한 배려 혹은 여유가 없다면 교조적으로 흐를 위험을 늘 내포하고 있다. 세상의 질서는 외적인 것도 있지만 내적인 것도 있다. 내적인 질서는 산만해보이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인간의 꿈과 함께 기능하는 것이다. “악당을 기다려주는 아름다운 여자”(「할리우드 영화광」)라는 황당한 설정에는 집요하게 외적 질서만 추구하는 서사는 없을지라도 꿈과 웃음이 내재되어 있는 것이다.

근작 두 편에는 시인 김기림과 이승훈에 대한 단상이 그려져 있다. 대범하면서도 예리한 휴머니즘으로 말해질 법한 인식이 두 시인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그려지고 있는 것이다.

 

굳이 문자로 표현하자면 그는 돌아갔다

이것은 사람이 세상에 없다는 비유이다

그에겐 다행이다

더는 말에게 멱살을 잡히거나

아부할 이유도 없고

사랑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

고백하건데 나도 이제 말은 지긋지긋하다

 

말과 이별할 무렵 그는

맥주와 구부정한 멸치교에 입문했다

나는 그때 그가 더 좋았다

사람은 어딘가 약해 보일 때가 좋은 것이다

내가 이 시를 쓰는 건 그에게

이 말을 전하기 위해서다

ㅡ 「멸치와 맥주」 부분

 

 

이승훈 시인이 세상을 떠난 것이 근년의 일이니 이 시도 최근에 쓴 것일 듯 싶다. 오래전부터 교유하면서도 그들의 시적 경향이 판이하게 달랐다는 점은 과연 이들이 서로 어떤 생각을 하였을까 하는 궁금증을 유발시킨다. 그러나 그들에게 공통적인 화두가 있었으니 그것은 “말”이다. 글을 쓰는 과정이란 말과의 지난한 싸움을 뜻하며 더러 말에 치여 깊은 내상을 입기도 하는 것이다. 시의 내용처럼 이승훈 시인의 시가 禪을 속였거나 선에 속았거나 간에 평생을 말과 싸운 자라는 것은 부인할 길이 없다. “그는 돌아갔다”는 사건과 그것이 “그에겐 다행이다”는 결론은 일상의 눈으로 보며 무례하게 보일 법하다. 그러나 “더는 말에게 멱살을 잡히거나 / 아부할 이유도 없고 / 사랑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라는 부연은 고개를 숙이게 한다. 말과 싸워온 한 생이 세상을 떠남으로써 이제 말에서 자유로워졌다는 인식은 글쟁이가 아니고는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사실 그것도 “나도 이제 말은 지긋지긋하다”고 고백할 수 있는 정도가 되어야 이러한 조문이 가능한 일이다. 시를 쓰는 것이 너무 행복하다는 사람도 있을 터이지만 지긋지긋하게 말과 싸웠다는 고백을 들을 때 나 같은 후배는 다시 창을 꼬나들고 말의 전쟁터로 나가야 한다는 전의를 불사르게 되는 것이다. 언젠가는 말과 이별할 것이다. 그때 나는 어느 교에 입문할 것이며 약한 모습을 누구에게 보여줄 것인가? 이 시를 읽으며 생각한다. 말의 전쟁에 기꺼이 임하리라. 그리고 약해지리라. 아직은 더 싸워야 한다.

이상국 시인의 시 몇 편을 읽으니 겨울이 왔고 간혹 눈발이 날린다. 영(嶺) 너머는 더할 것이다. 회 몇 점에 생선찌개 한 냄비 그리고 술 몇 잔 정도면 이상국 시인을 모시고 족할 것이다. 말의 사슬에 매인 자들이 모여 철커덩철커덩 사슬 소리를 내며 그에 맞추어 노래도 부르며 다음날이면 말의 전쟁터로 나가는 장수처럼, 오 그렇게,

 

 

 

​우대식 ■ 시인

강원 원주 출생. 1999년 《현대시학》 등단. 시집 『늙은 의자에 앉아 바다를 보다』 『단검』 『설산 국경』. 산문집 『죽은 시인들의 사회』 『죽에 죽고 시에 살다』 등이 있음.

 

 

 

 

 

 

 

 

 

 

 

월간 웹진 공정한 시인의 사회 2020년 01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