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작시
감정의 평균
부푸는 무지개를
슬그머니 끌어내리고
뚝 떨어지는 마음의 빙점에는
손난로를 선물할 것
감정의 평균에
중심 추를 매달 것
꽃잎처럼 달아오른 가슴 밑바닥에서
그 어떤 소리도 올라오지 않도록
천천히 숨을 쉴 것
불에 달궈진 쇠가 아니라
햇살에 따스해진 툇마루의 온기로
손끝만 내밀 것
일찍 뜬 별 하나에 눈을 맞추고
은하수가 흘러간 쪽으로
고개 들고 걸어갈 것
먼저 이별을 준비할 것
땡감처럼 바닥을 치지 말고
상처 없이 감꽃처럼 내려앉을 것
감꽃 목걸이처럼
감정의 중심에 실을 꿸 것
시나브로 검게 잊혀질 것
그렇고 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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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묘 판에 씨앗을 심고 잎이 나오길 기다려 봐. 떡잎이 가리키는 방향이 다 다르지. 그런데 이파리 무성해지고 키가 자라면 다 거기서 거기여. 꽃도 두엇일 때는 동서남북 고개 수그린 놈 쳐든 놈 제각각이지만 무더기로 피면 그렇고 그려. 꼬투리도 열매도 당연히 모양이며 빛깔이 다 다르지. 우리네 삶도 그렇고 그려. 좋은 것도 안 좋은 것도 하나둘일 때는 나만 부실하고 응달 얼음판이고 억울하지만 살다 보면 다들 걱정거리가 꾸러미로 두릅으로 바지게 짐짝으로 거기서 거기여. 굶어 죽은 놈보다 많이 먹어서 병 걸리는 놈이 많다잖여. 올챙이 배처럼 창자가 복잡해도 똥구멍은 단순한 거여. 추워지면 죄다 땅속으로 겨울잠 자러 가는 거여. 슬픔도 괴로움도 다 무더기로 피는 꽃이여. 우리는 거름 치지 않은 꽃밭이고 참깨밭이여. 육묘 판 떠난 지가 언제여. 어우렁더우렁 꼴값하며 사는 거지. 굴러다니는 깡통도 다 개성적으로 빛나는 거여. 그나저나 막걸릿잔은 누가 이렇게 찌그려 놨대. 상처가 참 억울하게 빛나는구먼. |
노란 주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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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은 노란 주전자 같아. 황금을 꿈꾸지만 빛깔뿐이지. 게다가 뚜껑이 자주 열리고 동굴처럼 시끄럽기 일쑤지. 끓기도 전에 들썩거리고 잔바람에도 나뒹굴 때가 많지. 뚜껑에 끈을 달아야겠어. 가슴과 머리가 짝이 안 맞아. 가벼운 충격에도 안으로 쭈그러지니까 자꾸만 속이 좁아져. 상처를 닦고 지우려해도 달무리처럼 사라지지 않아. 벽에 걸린 주전자처럼 둥근달이 되고 싶어. 시든 꽃나무나 목마른 목젖에 달빛을 따라주고 싶어. 맞아. 주전자는 성선설 쪽이야. 후딱 달아오르고 쉬이 식는 게 흠이지만, 맹물이나 모래라도 채우고 나면 바닥에 착 가라앉는 느낌이 좋아. 온몸에 차가운 물방울이 잡힐 때는 이지적이란 생각도 들어. 마른 화단이나 파인 운동장에 몸을 기울일 때 가장 뿌듯해. 다 내어주어서 어둡고 서늘해질 때 나는 잠깐 황금 주전자가 돼. 하지만 황금보다는 가볍고 명랑한 황금빛이 좋아. 나는 노란 주전자가 좋아. |
자선시
그럴 때가 있다
매끄러운 길인데
핸들이 덜컹할 때가 있다.
지구 반대편에서 누군가
눈물로 제 발등을 찍을 때다.
탁자에 놓인 소주잔이
저 혼자 떨릴 때가 있다.
총소리 잦아든 어딘가에서
오래도록 노을을 바라보던 젖은 눈망울이
어린 입술을 깨물며 가슴을 칠 때다.
그럴 때가 있다.
한숨주머니를 터트려버리려고
가슴을 치다가, 가만 돌주먹을 내려놓는다.
어딘가에서 사나흘 만에 젖을 빨고
막 잠이 든 아기가 깨어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촛불이 깜박,
까만 심지를 보여줬다가
다시 살아날 때가 있다.
순간, 아득히 깜깜한 먼 곳에
불씨를 건네주고 온 거다.
돌
내 서랍은
당신의 호기심보다 깊지 않아요
손끝에 닿지 않는 설렘까지
꺼내가지 말아요
내 밥그릇은
당신의 허기처럼 물방울이 맺혀 있어요
발끝에 떨어지는 눈물처럼
마냥 식어가게 두지 말아요
내 우물 속 하늘은
당신이 높아질수록 깊어지지요
마냥 밤하늘이 고이게 하지 말아요
당신의 한숨만 퍼 올리지 않겠어요
나의 봄은
당신의 입김이 닿을 만큼에서 피어나요
발끝에 차이는 돌멩이처럼
가까이에 있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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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대전일보》, 199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 『의자』 『정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것들의 목록』 등, 산문집 『시인의 서랍』 등, 어린이 책 『똥방패』 등이 있음. |

태도에 관하여: 가장 가까이 핀 꽃은 가장 먼 곳의 악취를 지운다
ㅡ 이정록 시 읽기
시인은 오지 않은 것들, 미지의 것들에 대해 예민하게 감지하는 존재이다. 시는 시인이 발 딛고 있는 시간과 공간의 접점에서 감정과 세계의 변화를 담는다. 지금 우리는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감염병 대유행(펜데믹)의 재난 상황에서 신자유주의와 경쟁이데올로기로 초래된 불안과 불안정의 고통과 크고 작은 불평등을 경험하고 있다. 이정록의 세 편의 신작시와 두 편의 근작시는 ‘연결됨’의 의미를 통해 세상과 인간에 대해 바라보게 한다. 그의 열 번째 시집인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것들의 목록』에서 나아가 한층 깊은 목록을 탐색하고, 『동심언어사전』에서 펼쳐낸 언어의 마음과 따듯한 결로 감정의 프리즘, 내면의 목소리, 보이지 않는 동시성의 상황과 삶의 스펙트럼을 보여준다. 그는 현재 우리가 처한 상황을 섬세한 언어로 위로하고 따듯하게 매만진다. 삶과 존재에 대해 인간이 가져야 할 태도에 관해 응시한 점에서 주목된다.
부푸는 무지개를
슬그머니 끌어내리고
뚝 떨어지는 마음의 빙점에는
손난로를 선물할 것
감정의 평균에
중심 추를 매달 것
꽃잎처럼 달아오른 가슴 밑바닥에서
그 어떤 소리도 올라오지 않도록
천천히 숨을 쉴 것
불에 달궈진 쇠가 아니라
햇살에 따스해진 툇마루의 온기로
손끝만 내밀 것
일찍 뜬 별 하나에 눈을 맞추고
은하수가 흘러간 쪽으로
고개 들고 걸어갈 것
먼저 이별을 준비할 것
땡감처럼 바닥을 치지 말고
상처 없이 감꽃처럼 내려앉을 것
감꽃 목걸이처럼
감정의 중심에 실을 꿸 것
시나브로 검게 잊혀질 것
ㅡ 「감정의 평균」 전문
「감정의 평균」은 ‘감정’의 향방을 조감하고 복잡다단한 감정의 파고를 ‘평균’에 수렴하도록 이끈다. 이미지로 그려진 선명한 표현과 간결한 문체는 담백함과 여백의 공간을 생성한다. 반복과 점증되는 시적 표현이 깊은 여운을 남기며 과연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감정의 중심이 있었는가 자문하게 한다. 어그러짐은 “가슴과 머리와 짝이 안 맞아”(「노란 주전자」) 생기는 불균형 상태이다. 시행과 연이 반복될수록 감정을 어루만지며 평균을 향해 진전된다. “먼저 이별을 준비할 것 / 땡감처럼 바닥을 치지 말고 / 상처 없이 감꽃처럼 내려앉을 것”에서는 슬픈 단호함마저 느껴진다.
우리 모두는 집단이나 제도에 속해 있다. 그때 중요한 것은 어느 한쪽으로 함몰되거나 반사적으로 다른 존재들을 배제하거나 배타적이지 않는 것이다. 잠시 시소 놀이를 떠올려 보자. 놀이를 살아가는 일의 은유라고 한다면, 서로의 자리와 힘이 응대 가능할 때 놀이는 지속된다. 한쪽이 너무 큰 힘으로 누르면 다른 한쪽은 허공에 처해지고, 다른 쪽 또한 자유를 잃고 정지된다.
감정의 농도와 크기에 따라 ‘슬그머니, 천천히, 시나브로’ 자신에게 집중하고자 하는 절제의 태도와 의지로 이 시는 다가온다. 시인이 형상화한 평균은 단순한 양적 배분이 아니라 균형과 조화를 통해 이루어지는 의지적 힘의 소산이다. 그리고 ‘손난로와 손끝’의 ‘온기’로 하여 ‘마음의 빙점’은 마침내 내면의 평화로 향한다. 시인은 결핍되고 지친 마음들에 위로와 성찰의 에너지를 전해준다. 감정의 온도에 집중한다는 것은 이처럼 인간답게 성숙하고 성장할 수 있는 토대가 된다.
나와 무엇과의 ‘균형 잡기’가 중요한 이유다. 특히 감정의 균형을 잃게 될 때 삶은 더 빠르게 부서지고 망가진다. 합리적이지만 냉정하지 않고 열정적이나 과하지 않은 자세로 세상에 지혜롭게 대처할 “감정의 평균에 / 중심 추를 매달 것”을 시인은 당부한다. 마음의 안과 밖을 살피는 진정성은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을 대하는 태도와도 연결된다. 균형과 조화가 이루어진 평온의 상태일 때 온전히 타인을 돌아볼 수 있게 된다.
마음은 노란 주전자 같아. 황금을 꿈꾸지만 빛깔뿐이지. 게다가 뚜껑이 자주 열리고 동굴처럼 시끄럽기 일쑤지. 끓기도 전에 들썩거리고 잔바람에도 나뒹굴 때가 많지. 뚜껑에 끈을 달아야겠어. 가슴과 머리가 짝이 안 맞아. 가벼운 충격에도 안으로 쭈그러지니까 자꾸만 속이 좁아져. 상처를 닦고 지우려해도 달무리처럼 사라지지 않아. 벽에 걸린 주전자처럼 둥근달이 되고 싶어. 시든 꽃나무나 목마른 목젖에 달빛을 따라주고 싶어. 맞아. 주전자는 성선설 쪽이야. 후딱 달아오르고 쉬이 식는 게 흠이지만, 맹물이나 모래라도 채우고 나면 바닥에 착 가라앉는 느낌이 좋아. 온몸에 차가운 물방울이 잡힐 때는 이지적이란 생각도 들어. 마른 화단이나 파인 운동장에 몸을 기울일 때 가장 뿌듯해. 다 내어주어서 어둡고 서늘해질 때 나는 잠깐 황금 주전자가 돼. 하지만 황금보다는 가볍고 명랑한 황금빛이 좋아. 나는 노란 주전자가 좋아.
ㅡ 「노란 주전자」 전문
이정록의 시선은 특히 마음을 탐색하는 존재에 애정을 쏟는다. 일상의 친근한 대상인 노란 주전자를 마음에 빗대어 심리 상태를 그린다. 마음을 드러내고 어루만져주는 언어와 정서로 가득하다. 대개 마음은 꽃, 나비, 바람, 갈대, 호수 등으로 서정적이거나 아름다운 속성으로 비유되곤 하는데, ‘노란 주전자’로 형상화한 점이 인상적이다. 빛나고자 하는 마음과 그만큼 따라주지 않은 좌절 사이에 놓인 시적 화자의 마음 상태가 짐작된다. 주전자는 시끄럽고 들썩거리고 잔바람에 나뒹굴 때가 많다. 가벼운 충격에도 안으로 쭈그러져 속이 좁아진다. 상처를 지우려 해도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다. 그리고 도저히 될 수 없는 황금을 꿈꾼다. 주전자 대신 마음을 대입해 보면 우리의 마음 작용에 딱 들어맞는다. 아프고 모난 마음이 안쓰러워질 즈음 시적 반전이 일어난다. 주전자는 성선설에 기대어 시든 꽃나무와 목마른 목젖과 마른 화단에 몸을 기울일 때 뿌듯해진다. 모두 내어주는 배려, 어둡고 서늘해질 때에 빛이 나는 맑고 가벼운 명랑성이 아름답다. 시인은 힘겨워하는 사람들과 무엇보다도 청소년들에게 잿빛의 세상에서도 황금빛을 노래하는 노란 주전자 같은 위로와 응원의 노래를 불러주고 싶은 것이다.
「그렇고 그려」는 「노란 주전자」와 서로 마주하며 대화하는 화답시라고 할 만하다. 구수한 사투리는 삶의 비의를 생동감 있게 주조한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해주시는 말처럼 친근하다. “꽃도 두엇일 때는 동서남북 고개 수그린 놈 쳐든 놈 제각각이지만 무더기로 피면 그렇고 그려. 꼬투리도 열매도 당연히 모양이며 빛깔이 다 다르지. 우리네 삶도 그렇고 그려. 좋은 것도 안 좋은 것도 하나둘일 때는 나만 부실하고 응달 얼음판이고 억울하지만 살다 보면 다들 걱정거리가 꾸러미로 두릅으로 바지게 짐짝으로 거기서 거기여. 추워지면 죄다 땅속으로 자러 가는 거여. 슬픔도 괴로움도 다 무더기로 피는 꽃이여.” 상처도 결국은 존재를 빛나게 한다는 삶의 지혜, 무심한 듯 투박하면서도 친근한 입말이 큰 위로를 준다.
매끄러운 길인데
핸들이 덜컹할 때가 있다.
지구 반대편에서 누군가
눈물로 제 발등을 찍을 때다.
탁자에 놓인 소주잔이
저 혼자 떨릴 때가 있다.
총소리 잦아든 어딘가에서
오래도록 노을을 바라보던 젖은 눈망울이
어린 입술을 깨물며 가슴을 칠 때다.
그럴 때가 있다.
한숨주머니를 터트려버리려고
가슴을 치다가, 가만 돌주먹을 내려놓는다.
어딘가에서 사나흘 만에 젖을 빨고
막 잠이 든 아기가 깨어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촛불이 깜박,
까만 심지를 보여줬다가
다시 살아날 때가 있다.
순간, 아득히 깜깜한 먼 곳에
불씨를 건네주고 온 거다.
ㅡ 「그럴 때가 있다」 전문
이 시는 견딜 수 없는 비명, 위로, 동행하고 연대하는 상황의 독특함을 보여준다. 이것은 무언가 심각하게 파괴되어 있다는 인식이 작동한 데서 비롯된다. 나와 가까이 있는 존재들이 연결되어 있듯 이곳과 지구 반대편 저곳이 연결되어 있다는 인식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전혀 연관되지 않을 것처럼 보이는 일들이 거듭되어 원인과 결과로 발생할 때처럼 말이다. 나의 덜컹거림과 지구 반대편 누군가의 울음, 소주잔의 떨림과 전쟁 속 어린 아이의 젖은 눈망울, 가슴을 치는 돌주먹과 간신히 잠든 아기의 관계성을 포착한 지점이 감동적이다. 내 발등에 찍히는 도끼만이 무겁고 아픈 것이 아니라 지구 반대쪽의 눈물 한 방울 역시 그만큼의 무게와 고통을 지니고 있다. 가까이 보면 안 보이는 것이 멀리 넓게 보면 보이는 것들로 변화된다. 일상 속 사소한 변화가 지니는 의미와 일상적인 순간과 대비되는 극적인 순간을 연관시킴으로써 나의 세계가 타자의 세계와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성찰하게 한다. 하나의 사소한 사건은 나비효과를 통해 공동의 문제가 된다. 우리 모두는 연결되어 있다는 ‘연대의식’과 그 연결됨을 사고하고 실천하자는 사회적 윤리를 담고 있다.
모든 흔들림과 울림은 고요로 향하고, 모든 설화(舌話)는 침묵으로 향하고 본질은 지키되 현상은 변화하는 것, 이것이 우주의 원리이다. 균형을 향하는 생명이 지닌 근원적 속성이다. 생명과 존재의 가치의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 이것은 선악의 문제도 아니며 파괴조차도 평화를 지향한다. 지금은 모든 슬픔과 고통에서 외롭지 않음을, 모든 울음에 위로가 필요한 ‘그럴 때’이다. 함께하고 위로하는 동행, 쓰다듬고 돌보려는 인정과 공존의 세계, 무엇보다도 더 나은 방향으로의 감정의 회복이 절실한 때이다.
내 서랍은
당신의 호기심보다 깊지 않아요
손끝에 닿지 않는 설렘까지
꺼내가지 말아요
내 밥그릇은
당신의 허기처럼 물방울이 맺혀 있어요
발끝에 떨어지는 눈물처럼
마냥 식어가게 두지 말아요
내 우물 속 하늘은
당신이 높아질수록 깊어지지요
마냥 밤하늘이 고이게 하지 말아요
당신의 한숨만 퍼 올리지 않겠어요
나의 봄은
당신의 입김이 닿을 만큼에서 피어나요
발끝에 차이는 돌멩이처럼
가까이에 있을게요
ㅡ 「돌」 전문
일상에 당연한 것은 없었고 돌아보니 평범했던 일상은 모두 소중했다. 일상의 당연한 것들이 당연해지지 않는 경험을 통해 당연한 것들의 소중함을 깨닫는다. 크게 돌보지 않았던 마음과 당신과 나 사이의 관계 또한 그러하다. 항상 주변에 있지만 큰 관심을 두지 않았던 존재들인 내 서랍과 당신의 호기심, 내 밥그릇과 당신의 허기, 내 우물 속 하늘과 당신의 깊이, 나의 봄과 당신의 입김, ‘나’는 누구이며 ‘당신’은 누구인가. 부탁하는 어조에서 결심의 어조 그리고 약속의 어조로의 전개가 당신이 나에게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가늠된다. 이 시의 묘미는 타자에 대한 지극한 사랑은 관계의 밑바탕에 스스로 건강한 주체일 때 가능해진다는 점을 역설한 지점이다. 세 번의 부정적 술어 ‘말아요’의 후에 “돌멩이처럼 가까이에 있”겠다는 다짐은 관계 안에서 일방적이거나 주체성의 부재나 결여가 아닌 신뢰와 노력이 필요함을 의미한다. 관계에는 물리적이고 심리적인 상처와 울림의 흔적이 있다. 자기중심, 존재의 가치, 회복하려는 주체의 노력이 그래서 필요하다. 실용적 가치를 넘어 작동하는 주체적 역량, 방해하는 것들을 유연하게 포용하는 태도, ‘도외시’의 시선이나 폭력을 이겨내려는 의지와 회복하려는 작용과 반작용이 중요한 이유다.
시는 인간에 대한 질문이다. 우리는 지금, 바로 여기에서 상처와 아픔을 이야기해야 한다. 고통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외면하는 것은 모지락스러운 일이다. 무언가 아프다는 것은 균형을 잃고 한 쪽으로 쏠리고 있다는 신호다. 그것이 경제력이든, 정보력이든, 한쪽이 다른 한쪽을 바라볼 수 없다면 이미 ‘나’도 없게 되는 것이다. 타자를 통과할 때에야 비로소 내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정록의 시편은 존재와 삶에 관한 태도로서의 시 쓰기이다. 그는 ‘살피는 일’에 집중한다. 감정을 살피고, 일의 때를 살피며, 당신과 나를 살핀다. 시의 정조와 분위기가 한결 부드럽고 다감한 이유는 살피고자 하는 심성 때문이다. 부서지고 무너져 고통스럽고 무참해진 존재들에게 다가가기 위함이다. 타자를 배려하고 포용하고 공감하려는 것이다. 그 사이에 작가의 시선과 관계성이 배어 있다. 이정록은 존재에 대한 응시와 감수성을 통해 공감과 공존의 가치로 나아가고 있다. 사랑으로 설레어 들썩이는 마음, 조금 날카로운 마음, 위로하고 응원하고 자존감을 높여주는 시편들로 사람들을 ‘안전하게’ 돕고자 하는 것이다. 그의 시편은 독자들의 마음에 스미고 공감하면서 시의 힘과 예술의 공공성을 발한다. 가장 가까이 핀 꽃은 가장 먼 곳의 악취를 지운다.
시 읽기를 마치면서 이정록과 그의 시가 전해주는 선한 에너지를 다시금 느끼게 된다. 비유하자면 그는 나무 같은 시인이다. “마을이 가까울수록 나무는 흠집이 많다. // 내 몸이 성하다”고 노래한 「서시」가 보여주듯 그는 작고 연약한 존재들에게 가까이 다가가 함께 상처 받고 위로한다. 유머가 장착된 시들로 슬픔 너머의 견디는 삶에 대해 노래한다. 생명과 더불어 살고자 하는 그의 시세계는 그런 이유로 공감과 독서의 지속성을 획득하고 있다. “마을 쪽으로 등이 굽은 나무. 봄이 되면 싹눈 환해지는 나무. 그늘보다 땔감이 더 제격인, 옹이 많은 나무 한 그루.”(『버드나무 껍질에 세 들고 싶다』, 시인의 말)가 되고자 소망한 이정록은 애정 어린 시선으로 작고 약한 존재들을 보듬는 한결 같은 시적 태도로 어느새 그늘 깊은 나무를 닮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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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숙 ■ 문학평론가 1999년 《작가마당》으로 평론 활동 시작. 저서 『한국소설과 주체의 호명』 『한국소설과 언어의식』 『한국소설과 상상력의 스펙트럼』 등이 있음. 현재 충남대학교 부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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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웹진 공정한 시인의 사회 2020년 07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