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시인
 
이달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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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달의 시인] 이사라

  신작시: 모든 뒷길 / 구멍 없는 사랑이 어디 있나 / 윤곽이 흐린

  자선시: 운명 / 울컥

  [시인론] 안상원 “시간의 겹침과 깊은 호흡의 시”

 

 

 

 

 

 


 신작시 


 

 

 

 모든 뒷길

 

 

   

 

 

  한 뼘 차이이지만

  사는 일이 다 그러하지만

 

  뒷길은 낡고 연하고 부드럽다

 

  낡지 않아도

  낡은 듯

 

  울지 않아도

  운 듯

 

  사랑하지 않아도

  사랑할 듯

 

  그런 뒷길이 좋아

  찾아 나선 사람이

  뒷길에 사는 고요를 만나

  서로 사랑하고 사랑받고

  이별하고

  흔적 지운 흔적을 품고 있다

 

  살았던 날들보다 살아야 하는 날들이 짧아도

  뒷길에서는 길게 느껴진다고

  호흡도 길어진다

 

  낯설어 설렜던 날들을 뒤로 하고

  모든 뒷길이

  홀로 저세상인 듯 그윽하다

 

 

 

 

 

 

 

 

 

 

 



 

 

 구멍 없는 사랑이 어디 있나

     

 

 

 

   

  동굴에 창이 있는

  옛사람들이 살았던 그곳에 갔다

 

  신비로웠다

 

  동굴은 동굴이고

  창은 창인 줄 알았는데

 

  그때는 아무도 알려주지 않아서

  알고 싶지도 않아서

 

  너는 너이고

  나는 나인 줄 알았는데

 

  동굴에 창을 낸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그래서 한 줄기 빛을 들이며 살았다는 것을

  처음

  알았을 때

 

  갑자기 쏟아지는 햇볕 끝에 내가 서 있으니

 

  네가 나에게 창이구나

  나는 그저 동굴이었는데

 

  하기는

  구멍 없는 사랑이 어디 있나

 

  동굴에 빛의 길을 낸 사람들이 떠났어도

 

 

 

 

 

 

 

 

 

   

 



 

 

 윤곽이 흐린

 

    

 

 

 

  잘 보이던 것이 잘 안 보이고

  잘 들던 잠이 잘 들지 않는다

 

  여전히 겨울인가 싶은데

 

  겨우겨우 힘든 잠을 잘 때마다

  두꺼운 이불을 덮은 듯 마음이 눌린다

 

  그래도 세상의 많은 어둠 견디며

  조심조심 살아왔는데

 

  늘 다니던 꿈길 놓치고

  어디 모르는 곳을 헤맬까 봐

 

  내 몸에 짧은 이 잠 못 끼워 넣을까 봐

 

  봄을 못 볼까 봐

 

  언제일지

  눈멀고 긴 잠 자고

  그런 일은 누구에게나 일어나는 일

 

  어쩌면 축복인 듯 다가오는데

 

  윤곽이 흐려지는 지금

  오히려 편안하다 해야 할지

 

  

 

 

 

 

 

 

 

 

 


 자선시 


 

 

 

 운명

   

 

 

 

 

  여기저기 상처가 보인다

  이쯤 되어보니

 

  세상이라는 몸

  몸이라는 세상

 

  오늘도

  서로

  모르는 사이에

 

  셀 수 없이

  날 선 칼이 왔다 갔다 했나 보다

 

  눈물 같은 것은

  담을 수도 없는

 

  울퉁불퉁 그런 먹먹함으로

 

  거울 닦듯

  세상을 닦는다

 

  밤별처럼 운명이 총총하다

 

─ 《문학사상》 2022년 10월호

 

 

 

 

 

 

 

 

 

 

 


 

 

 

 울컥

    

     

  

    

 

   너와 사는 동안

  순간순간

  울컥했다

 

  지나온 길이 어두워서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네가 건드린 내 심장이

  더 홍조를 띤 날이었겠지

 

  저 끝의 바닥에 고여 있던 눈물이

  삶의 바늘 끝에서 수직으로 튕겨 오르던

  그때 그때들

 

  내 것이었던 것이

  그 순간

  내 것이 아니게 되는 신비

 

  그렇게 울컥은 찾아들었는데

 

  지금은 잘 기억이 안 나더라도

  이해해 주길

 

  더 생각해보면

  그냥 밥 먹다가

  그랬는지도 이젠 모르겠다

 

  그때가 다 지났지만

  너를 생각하면 아직도 울컥하다

 

─ 《문학과창작》 2023년 여름호

 

 

 

 

 

 

 

 

 

 

이사라  l

1981년 《문학사상》 등단. 시집 『히브리인의 마을 앞에서』 『미학적 슬픔』 『숲속에서 묻는다』 『시간이 지나간 시간』 『가족박물관』 『훗날 훗사람』 『저녁이 쉽게 오는 사람에게』가 있음. 〈대한민국문학상〉 〈한국시인협회상〉 수상.

 

 

 

 

 

 

   


 시인론 / 안상원 


  

 

 

 

 

 

시간의 겹침과 깊은 호흡의 시

ㅡ 이사라론

        

 

 

 

  

  시간의 겹침과 모순의 시어

 

  이사라 시인의 시에서는 시간이 지나간 흔적을 섬세하게 살피는 시선을 만날 수 있다. 사라지는 모래 언덕, 먼저 나를 기다리는 시간의 박물관, 미래를 예감케 하면서 지금 내 곁에 이미 와 있는 ‘훗날 훗사람’이 자리하기 때문이다. 켜켜이 쌓아둔 시간의 흔적을 따라가다 보면, 허겁지겁 헤집던 일상을 차분히 가다듬는 시인의 깊은 숨결만이 아니라 우리가 잃어버린 무언가를 마주하게 된다.

  1981년 《문학사상》에 시 「히브리인의 마을 앞에서」로 등단한 시인은 동명의 시집을 시작으로 『미학적 슬픔』 , 『숲속에서 묻는다』, 『시간이 지나간 시간』, 『가족박물관』, 『훗날 훗사람』, 『저녁이 쉽게 오는 사람에게』, 『더 헐렁하게 사랑하든지』를 출간한 바 있다. 시집의 제목에서부터 알 수 있듯 그는 미학과 슬픔, 시간이 지나간 시간, 헐렁한 사랑이라는 모순적인 시어를 결합하거나 히브리인, 시간, 박물관, 훗날, 저녁 등 ‘시간’을 중심으로 한 상상력을 제시한다. 세계의 모순성을 인식하며 시간의 흔적을 다시 읽는 시적 자아의 시선에 붙들리는 것은 무엇이며 그가 돌려주는 삶의 풍경은 무엇일까. 함께 읽을 다섯 편의 시를 중심으로 그 호흡을 따라가 보려 한다.

   

  상처가 만드는 틈새  

 

  근대적 주체는 시간의 흐름을 직선적으로 인식한다. 과거는 현재를 위한 초석이며 미래는 현재의 확장이다. 양적 측정이 가능한 축적된 자원은 예측가능한 현재와 미래를 담보한다. 그러나 포스트모던한 시대에서 측정가능한 세계는 존재할 수 없으며 미래를 예측하는 근대적 주체의 통제감 역시 기대하기 어렵다. 이사라 시의 시적 자아는 과거-현재-미래라는 직선적인 시간을 해체한다. 회상을 통해 갑작스럽게 끼어드는 과거와 제각각 다른 두께로 내려앉는 시간의 비균질성 앞에서 자신의 우위성을 기꺼이 내려놓는다.

  근대적 주체의 우위성이 사라진 순간 시적 자아가 마주하는 것은 뜻밖에도 ‘상처’이다. 상처는 상대와 나의 미숙함과 서투름에서 비롯될 경우가 많은데, 시적 자아는 자신의 무결함을 위해 상처를 무시하거나 그것을 자기완성의 도구로 격상하는 대신 상처의 지분을 인정한다. 자신과 상처가 ‘같이 갈’ 수밖에 없음을 받아들임으로써 다른 형태의 시적 각성을 제시하는 것이다.

 

   동굴에 창을 낸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그래서 한 줄기 빛을 들이며 살았다는 것을

   처음

   알았을 때

 

   갑자기 쏟아지는 햇볕 끝에 내가 서 있으니

 

   네가 나에게 창이구나

   나는 그저 동굴이었는데

 

   하기는

   구멍 없는 사랑이 어디 있나

 

   동굴에 빛의 길을 낸 사람들이 떠났어도

— 「구멍 없는 사랑이 어디 있나」 부분

   

   오늘도

   서로

   모르는 사이에

 

   셀 수 없이

   날 선 칼이 왔다 갔다 했나 보다

 

   눈물 같은 것은

   담을 수도 없는

 

   울퉁불퉁 그런 먹먹함으로

 

   거울 닦듯

   세상을 닦는다

 

   밤별처럼 운명이 총총하다

— 「운명」 부분

 

  인용한 두 시는 사랑하는 이가 남긴 상처를 섬세하게 탐색한다. 흥미롭게도 상처는 동굴의 ‘구멍’-‘창’ 그리고 ‘울퉁불퉁’한 ‘거울’처럼 몸의 기억으로 남는 것이자, 자아의 삶에서 지속될 어떤 것으로 그려진다. 그 상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네’가 “구멍”을 내면서 남거나, “날 선 칼”이 “왔다 갔다 하면서” 생겨난다. 이러한 상처는 새겨진 순간부터 돌이키거나 메울 수도 없는 지표가 되어 시적 자아를 압도한다. 그리고 자아는 상처를 단순한 고통이나 결핍으로 치부하지 않고, 그것이 삶과 자아를 재구성하는 중요한 통로로 기능함을 보여준다.

  먼저 「구멍 없는 사랑이 어디 있나」에서 시적 자아는 자신을 “동굴”로 비유하며, 비바람을 피하고자 만든 동굴에 “구멍”이 ‘상처’로 남았음을 고백한다. 외부의 비바람과 상처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려 했던 나의 동굴에 창을 낸 것은 애정 대상인 ‘너’이다. 사랑과 미움, 우정과 고통 등을 복합적으로 느끼게 했을 ‘너’는 내게 영구적인 상처를 남긴 채 떠난다.

  시적 인식의 전환이 일어나는 것은 그다음이다. 상처가 외부를 바라보는 ‘창’이 되기 때문이다. “동굴의 창” 사이로 “쏟아지는 햇볕”은 나-자아의 내면을 고스란히 비춘다. ‘빛’은 고통과 깨달음, 상실과 발견을 양가적으로 드러낸다. 떠난 사랑의 기억이 자아와 세상을 연결하는 통로가 된 것이다. 시적 자아는 햇볕도 바람도 거부하지 않은 채 그것을 고스란히 받으며 그 영향 아래 자신을 둔다. 그리하여 삶과 사랑이 떠났을지라도 그 흔적인 ‘창’을 통해, 또다시 쏟아져 들어올 빛과 바람, 그리고 눈비를 맞을 것을 예감한다. 어떠한 상처는 영구하게 남아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 자아가 타자를 대하는 태도를 규정할 것이다. 그것조차도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 우리는 사랑을 이해하게 된다. 곧 사랑이란 상처와 결핍을 동반하는 불완전한 것이며 이 사실을 받아들임으로써 자아는 상처를 준 상대만이 아닌 상처받았던 자신을 용서하게 된다. 여기에는 긴 시간이 필요하며 그 모든 것을 기억으로 받아들이는 것까지가 ‘사랑’임을 깨닫는 것이다.

   「운명」 역시 마찬가지이다. ‘날 선 말’을 환기하는 “날 선 칼”은 수없이 시적 자아에게 상처를 남김으로써 시적 자아의 마음을 “울퉁불퉁”하게 만든다. 말과 행동에서 상처를 받으려면 상처를 주고/받는 대상이 서로 친밀한 관계에 있어야 한다. 의미있는 대상의 날 선 말이나 행동이 나를 ‘먹먹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적 자아는 애정 대상과 주고받은 상처를 무시하지 않는다. 상처 주지 않은 것처럼 눈 감지 않고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덮어버리지도 않는다. 대신 상처를 “닦는다”. 순식간에 다가오는 격통은 아닐지라도, 수없이 남아 자아의 형상을 “울퉁불퉁”하게 바꾸는 엉긴 상처는 우리 삶의 지난한 고통을 떠올리게 한다. 피가 나고 진물이 고여 울퉁불퉁해진 상처 앞에서 시적 자아는 그것을 매만짐으로써 자신만이 아닌 세상을 닦는 아름다운 창으로 변주한다. 돌이키고 싶고 지워버리고 싶은 것들을 지우지 않고 나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태도가 구성하는 아름다움을 만나는 것이다. 이러한 시적 자아의 태도는 ‘반짝, 보석처럼 박히는 물먹은 별’(정지용, 「유리창1」)을 환기한다. 상처를 상처로, 사랑을 사랑으로 받아 들이는 의연함은 ‘창’/‘거울’이라는, 자신과 세계를 바라보는 문(門)을 만들어낸다. 그리하여 상처와 고통으로 빚은 “운명”은 총총한 별이 되어 나와 또다른 누군가의 삶을 밝힐 것이다.

      

  낡고 늙는 것의 변주  

 

  낡아가는 것, 늙어가는 것에 대한 가치평가는 통념상 부정적인 것에 가깝다. 낡아가고 늙어가는 것에 의미 부여를 하지 않고 그러한 경험에 귀 기울이지 않기에, 그것을 두려움, 슬픔, 밀려남 등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연약해지고 서툴러지는 것, 드러나지 않고 밀려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하나의 통념이 되는 것이다. 시적 자아는 이러한 통념의 압력에서 벗어나 기꺼이 ‘뒷길’로 간다. 그리고 낡고 늙은 것, 서툴고 부족한 것의 의미를 성찰한다.

  말해지지 않고 기록되지 않는 것을 이해하려면 시끌벅적한 풍경을 벗어나 다른 곳으로 가야 한다. 그래서 시적 자아는 ‘고요’한 풍경, 깊은 ‘꿈길’의 ‘흐릿한 윤곽’, ‘잘 기억나지 않는’ 어떤 순간을 탐색하는 것이다.

 

   그런 뒷길이 좋아

   찾아 나선 사람이

   뒷길에 사는 고요를 만나

   서로 사랑하고 사랑받고

   이별하고

   흔적 지운 흔적을 품고 있다

 

   살았던 날들보다 살아야 하는 날들이 짧아도

   뒷길에서는 길게 느껴진다고

   호흡도 길어진다

 

   낯설어 설렜던 날들을 뒤로 하고

   모든 뒷길이

   홀로 저세상인 듯 그윽하다

— 「모든 뒷길」 부분

   

   늘 다니던 꿈길 놓치고

   어디 모르는 곳을 헤맬까 봐

 

   내 몸에 짧은 이 잠 못 끼워 넣을까 봐

 

   봄을 못 볼까 봐

 

   언제일지

   눈멀고 긴 잠자고

   그런 일은 누구에게나 일어나는 일

 

   어쩌면 축복인 듯 다가오는데

 

   윤곽이 흐려지는 지금

   오히려 편안하다 해야 할지

— 「윤곽이 흐린」 부분

    

   저 끝의 바닥에 고여 있던 눈물이

   삶의 바늘 끝에서 수직으로 튕겨 오르던

   그때 그때들

 

   내 것이었던 것이

   그 순간

   내 것이 아니게 되는 신비

 

   그렇게 울컥은 찾아들었는데

 

   지금은 잘 기억이 안 나더라도

   이해해 주길

— 「울컥」 부분

 

  「모든 뒷길」, 「윤곽이 흐린」, 「울컥」은 각각 낡고 늙어가는 삶, 그리고 그에 수반되는 상실과 이별의 경험을 고요히 성찰하며, 통념적으로 부정적인 것으로 여겨지는 것들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다. 사회적 인정이나 주목을 받는 ‘앞길’을 거부하고, 소외되고 잊힌 ‘뒷길’로 기꺼이 들어선 시적 자아는 흔적, 흐릿한 윤곽, 그리고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삶의 신비를 마주하며 성찰한다.

  「모든 뒷길」에서 “뒷길”은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단순한 물리적 공간만이 아닌, 주류에서 벗어난 어떠한 공간을 상징한다. 이곳은 “고요”가 깃든 곳으로, 시끌벅적한 세상의 소음과 대비된다. 이곳에는 사람의 수많은 경험, 즉 사랑과 이별 등이 자리하지만, 그것은 “흔적 지운 흔적”처럼 희미하고 은밀한 기억으로 존재한다. 시적 자아는 이러한 흔적을 읽어내며, 낡고 늙어가는 삶의 윤곽을 상상한다. “살았던 날들보다 살아야 하는 날들이 짧아도/뒷길에서는 길게 느껴진다”는 시적 자아의 목소리는 삶의 유한성을 인식하면서도, 고요한 성찰 속에서 그 순간을 확장하는 각성을 보여 준다. 시간의 객관적 짧음과 주관적 깊이 사이의 간극을 포착하며, 늙음을 쇠락으로만 이야기할 수 없음을 전하는 것이다.

  「윤곽이 흐린」과 「울컥」 또한 마찬가지이다. 시는 “살았던 날들보다 살아야 하는 날들이 짧”아지는 순간이 올 것을 예감한다. 이때 직접적으로, 언젠가 다가올 죽음과 이별을 두려워했던 마음이 솔직하게 드러난다. 「윤곽이 흐린」에서 자아는 깊은 잠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생의 활력인 “봄”을 더 이상 마주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불안을 드러낸다. 「울컥」에서도 비슷한 불안의 양상을 “내 것이었던 것이” 더 이상 “내 것이 아니게 되는” 상황에서 찾아볼 수 있다.

  순간마다 시적 자아를 압도하는 불안 앞에서 그는 두려움을 부정하지 않는다. 주어진 삶과 이별한다는 것, 내 삶을 구성하는 사랑하는 것들과 분리된다는 것은 충분히 고통스럽고 두려운 것일 수 있으나, 막연하기에 더 공포감을 자아내곤 한다. 그렇기에 시적 자아는 늙음, 죽음, 이별을 둘러싼 현실을 포착한다. 인간은 잠깐의 젊음을 누린 후, 긴 늙음과 모두와 이별하는 죽음을 경험할 수밖에 없다. 이 엄숙한 사실을 이해하고 불안을 직시하게 되는 것이다. 그 결과 시적 자아는 “눈멀고 긴 잠”이 언젠가 올 뿐 아니라, “누구에게나 일어나”는 공평한 숙명이며, 우리 모두가 피할 수 없는 슬픔임을 각성한다. 그럼으로써 그는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어떻게 누릴지를 탐색하는 것으로 방향을 바꾼다. 지금의 순간을 충만하게 누릴 때, 어떠한 통념에도 지배당하지 않는 자신만의 오롯한 삶을 소유하기 때문이다.

  동시에 그는 자신만이 아닌 타인의 운명도 차분히 읽어나간다. 흔적으로만, 그것도 지워진 흔적으로만 남은 타인의 빛나는 사랑의 기억, 남루한 이별의 슬픔이 고요한 침묵과 성찰을 통해 내 눈앞에서 풀려날 것이다. 삶의 한 편린을 포착하고 그것을 수직적으로 깊게 읽어내는 시인의 눈으로 옮겨온다. 삶의 기록을 찬찬히 읽어나가는 고요의 풍경 속에서, 짧은 삶을 길게 누리며(“뒷길에서는 길게 느껴진다고”) 누구에게나 일어날 마지막을 “편안”하게 “축복”으로 받아들이는 전환(“신비”)을 이루는 것이다.

    

  깊고 느린 숨을 위하여  

    

  시간의 밀도를 달리하는 뒷길, 꿈길 너머 슬쩍슬쩍 보이던 깊고 먼 잠, 잦아드는 울컥한 순간 뒤에는 얕고 가쁜 호흡 대신 깊고 느른한 숨결이 있다. 생리적인 호흡을 넘어 자기 본질을 되새기는 성찰의 시간 앞에서 발견하는 시적 태도는 온건하고 부드러우며(“낡고 연하고 부드럽다”), 미리 질러 판단하지 않는(“이쯤 되어 보니”) 유연함으로 나타난다. 다섯 편의 시는 느린 숨결을 통해 과거의 흔적을 다시 읽는 행위를 제안하며, 독자로 하여금 시간의 흐름 속에서 자신을 재발견하도록 이끈다.

  거칠고 단단한 것이 아닌 부드럽고 고요한 것들, 뒤늦게 다가오는 성찰에 주목하는 시선은, 세상의 날카로운 모서리를 어루만지는 느린 호흡에서 비롯된다. 미리 판단하지 않는 태도는 성급한 결론 대신 열린 마음으로 서투름과 모자람을 받아들일 때 가능해진다. 삶의 복잡한 결을 헤아리고, 상처와 흔적을 보듬으며, 결국 자신과 세계를 온전히 이해하는 길로 안내하는 것이다. 설사 그 성찰이 누구와도 나눌 수 없는 ‘흔적’으로 사라질지라도, 언젠가 누군가가 또다시 고요함을 찾아 뒷길로 올 것이며 흔적을 읽으며 지나간 호흡을 떠올릴 것이다. 수많은 시인들이 그러했듯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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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원  l 

문학/문화연구자. 저서 『백석 시의 ‘기억’과 구원의 시쓰기』, 공저 『젠더스피어의 정동지리』가 있음. 2018년 세종우수학술도서 수상. 현재 이화여자대학교 호크마교양대학 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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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6월호(VOL.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