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달의 시인] 신철규
신작시: 도착하는 밤 / 복화술사 / 깊은 강
자선시: 지혈 / 여름의 증식
[시인론] 김정빈 “슬픔이라는 바다에서 하는 자맥질”
신작시
도착하는 밤
겨울은 모든 계절의 바닥이다
달의 뒤통수에 서늘한 바람이 분다
거대한 이빨을 가진 어둠이 내려온다
이빨 자국처럼 들쭉날쭉한 스카이라인
강물에 비친 가로등 불빛들이 자맥질하면서
떠내려가지 않으려고 몸부림친다
가끔 젖은 손목들이 떠내려오기도 한다
강변에 늘어선 가로등들을 하나씩 뽑아서 후 불고 싶다
아니 속으로 삼켰으면
밤하늘의 구름이 이불처럼 펼쳐져 있다
겨울마다 사람들은 전화번호부처럼 두꺼워졌다
손발에 족쇄가 채워진 채 난바다에 떠밀려진 노예들
한밤의 나뭇가지는 핏줄처럼 돋아난다
구름이 달을 잘근잘근 씹는다
훈풍으로 텁텁해진 버스에서 내려야 할 정류장을 놓치고
나는 호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어두운 상점을 바라본다
눈먼 발자국
그림자가 발목을 휘감는다
뜨거운 물 위에 떠 있는 얼음처럼
닳아가면서 닮아가는 것
마네킹의 살갗에는 주름이 없다.
착륙하기 전 비스듬하게 선회하는 비행기처럼 어둠이 나를 깎는다
뒤통수에서 퍼덕거리는 검붉은 나비
너의 시선이 굴착기처럼 가슴을 파고들었다
축축한 말
공기의 빈틈을 파고드는 아리아처럼
이 노래가 저 뻑뻑한 어둠을 뚫고 갈 수 있을까
사랑으로 지은 천국이 사랑 때문에 감옥이 된다
눈꺼풀에 쌓이는 소리
눈 속을 파고드는 소리
눈과 귀 사이에서 진동하는 소리
선물의 포장을 뜯는 떨리는 손처럼
자명종이 울릴 때
나무가 잘려나간 만큼 공중이 생겼다
밤하늘이 어두운 것은 우주가 팽창하고 있기 때문이지
우주가 캄캄한 것은
빛의 속도보다 어둠이 더 빠르게 커져가기 때문이지
별들이 서로를 밀어내면서 달아나고 있기 때문이지
멀어진 거리만큼 어둠이 들어앉고
우리는 빛나기 위해 멀어지고 있었던 것 아닌가
우주의 팽창이 멈출 때까지
팽창의 끝에 또 다른 폭발이 일어날까
이별의 끝은 불인가 얼음인가
우주는 옅어지면서 사라지는 걸까
다 타지 않은 유성
다 탈 수 없는 것
공기마저 껄끄러울 때가 있다
운석은 신의 충치 같은 것일까
빙하의 중심에는 뜨거운 이마를 식히는 운석이 잠자고 있다
전속력으로 달린 단거리 육상 선수가 결승선을 지나서도 한참을 달려야 하는 것처럼
바람이 손가락 사이사이에 나뭇가지를 훑어내듯
와르르, 낙엽들이 한 무더기씩 쏟아져내린다
복화술사
“고백이란 그것을 취소할 때에 가장 솔직한 것인지도 모른다.”
카프카, 「어느 투쟁의 기록」 중에서
나는 오늘 바깥에서 한 거짓말들을 네 귓속으로 흘려보내지
차가워진 발을 따뜻한 물에 담근다
수면에 떠서 물속을 바라본다
푸른 수영장 바닥에 비친 일렁이는 그림자
타오르는 목소리에 그늘의 감정이 묻어 있다
달력에서 숫자를 지운다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사선을 그으며
때로는 가위표로 단호하게
돌아올 수 없는 시간을
되돌리고 싶지 않은 기억을
책장의 모서리에 찍힌 희미한 지문
모든 불행한 기억을 지운다면 우리는 행복해질 수 있을까
인간이 물 위를 걷기 위해서는 얼마나 가벼워져야 할까
물 위를 걷는 것은 간단하지
한 발이 가라앉기 전에 다른 발을 수면 위에 놓는 것
그것을 얼마나 빨리 해야 우리는 물 위를 걸을까
차라리 새처럼 뼈를 공기로 채울 수 있다면
귀에다 지팡이를 쑤셔박고
습관처럼 사랑을 하고
습관이 사랑이 되고
난 널 채울 수 없어.
안대를 낀 태양
거울에 자신의 얼굴을 반만 걸쳐놓은 사람
갈수록 생화와 조화를 구분하기가 힘들어진다
나의 심장은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닐까
죽어 있는 것과 살아 있는 것의 경계에 금이 간다
두 개의 굴뚝 사이에 걸려 있는 구름
저 멀리 구름이 모양을 바꾸며 다가온다
내 머리 위에 잠시 머물다가 멀어진다
이미 지나간 것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절룩거리는 구름
알고 있지만 견딜 수 없는 것
모르기 때문에 어려운 걸까
어렵기 때문에 모르는 걸까
꽃들이 결승선을 지나고 있다
달빛처럼 은은한 목소리
풀밭 위의 침대
땅이 흔들려도 하늘은 멀쩡하기만 하다
지구 자전이 느려진다
무거운 커튼을 쓰고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축축해진 귀
깊은 강
성숙한 시민은 경찰을 때리지 않는다
성숙한 시민은 도로를 점거하지 않는다
성숙한 시민은 침대 위에서 혁명을 꿈꾼다
천사들의 나팔에서 녹물이 흘러나온다
날개 잃은 비둘기들이
천국을 홍보하는 전단지를 쪼고 있다
입속에 난 가시를 씹으며
나는 천사가 아니다
나는 버려진 종탑처럼 서 있다
종이 걸려 있던 자리에는 녹슨 갈고리만 남아 있다
물속에 잠긴 종
무거운 소리
차가운 숨
누구의 관심도 끌지 못한 단식처럼
우리는 절벽에 매달려서만 인간이 된다
절벽에 매달리기 전 우리는 무엇이었나.
꽃도 하나 피어 있지 않은 절벽에
차가운 글씨만 박혀 있는 절벽에
한없이 미끄러지기만 하는 절벽에
유형지에서
눈 뜨고 볼 수 없었던 사람들이 눈을 시퍼렇게 뜨고 걷는다
돌이 되지 않으려고 몸부림치는 사람처럼
선은 넘는 것
선을 긋고 넘고 지운다
우리는 수갑을 차고 물속에 가라앉아 있어
구호 한 번 외치고 웃고
함성 한 번 지르고 웃고
눈물 한 번 훔치고 웃고
우리가 물이라면 가라앉지 않고
우리가 불이라면 꺼지지 않고
우리가 바람이라면 가만히 있지는 않았을 텐데
별빛이 돋아난 깊은 강이 흐른다
불 꺼진 청와대를 향해
악착같이 버티는 탐욕을 향해
가장 어두운 동굴을 향해
퇴보만 아니라면 우리는 가만히 전진
지구의 한 자리에 가만히 누워 있어도 우리는 공전
혼자만의 천국은 지옥보다 무섭다
이 세계는 신이 뱉은 가래침이다
촛불이 어둠을 낮춘다
꽃도 리본도 다 감옥에 갇혔다
슬픔의 사정거리가 너무 길어서
네 슬픔이 너무 멀다
검은 가면을 쓴 사람들이 우리의 입에 약음기를 물렸습니다
우리의 목소리에 검은 페인트를 들이붓고
우리는 매캐한 연기가 나는 책을 읽었습니다
이 강물은 깊고 깊어서 지구를 두 동강 낼 수도 있다
자선시
지혈
베인 손가락을 손바닥으로 감싸고 있습니다
아직 아리지는 않고 무덤덤합니다
온몸을 돌고 있던 피가 갑자기 한쪽으로만 몰려드는 것 같습니다
물구나무를 서면 피는 머리 쪽으로 쏠리고
갇힌 피 때문에 얼굴은 벌게지고
손끝이 두근거린다
나는 성장하지 않기 위해 온몸에 힘을 꽉 주었다
모든 것을 경직시키면 더 이상 자라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네모난 수박처럼
베인 자리의 살은 겹겹의 층을 이루고 있고
몸의 끝으로 갈수록 혈관은 좁아지고 갈래는 더 많아진다
잔뿌리 같은 혈맥에서 피가 배어나온다
상처를 가만히 누르면 피가 멈춘다
여기는 피가 나올 곳이 아니니
원래 가던 길로 가세요
헝겊으로 손가락을 감싸 쥐고 바닥에 눕는다
등 밑으로 우툴두툴한 선로가 가로놓여 있다
피가 굳어서 딱지가 되거나
벌려졌던 살이 미세하게 접합되어 가면
출구가 나오기 전까지 모든 터널은 동굴처럼 느껴진다
바늘귀를 찾는 실 끝처럼 멀리서 기차가 천천히 터널을 향해 다가온다
― 《백조》 2024년 가을호
여름의 증식
여름이 끓어 넘치고 있다
따가운 햇살이 산책길을 달군다
햇살이 붐빈다
태양의 고도가 그림자의 길이를 결정한다
벽을 만나기 전까지 그림자는 납작하고 평평하게 눕는다
바닥과 벽에 걸쳐 구부러진 그림자
바닥에서 불쑥 솟아나온 듯한
짙은 것은 옅은 것을 지워버린다
가만히 멈춰 있는 구름들
찢어진 구름들 하나하나마다 크고 작은 프로펠러를 달아주고 싶다
그러면 자신의 살점들을 말줄임표처럼 뒤에 남기며
앞으로 나아가겠지
구름과 구름 사이에 낀 빛이 구름을 용접한다
감은 눈 속에서 아지랑이가 일렁인다
구름 발전소에서 고압의 꿈이 흘러나온다
먼 것들은 희게 빛나지
발목을 스쳐가는 가장 낮은 바람
잎사귀들이 서로를 간질인다
피아노 학원에서 경쾌하지만 물을 머금은 듯한 음악이 들려온다
커졌다 작아지고 늘어졌다 줄어드는 것에 주름이 생긴다
갑자기 흩어져 있는 구름들이 몸을 부풀리고
회색빛으로 달아오른다
뒤엉겨 드잡이를 하고 멱살을 부여잡고 얼굴을 들이민다
젖니처럼 돋아나는 물방울들
전선에 매달린 물방울들이 가운데로 모여든다
축 늘어진 가운데로
팽팽한 곳에서 완만한 곳으로
물구나무서서 울어본 적 있어?
그럼 속눈썹이 방죽처럼 눈물을 가두어서
계속 눈알 위를 맴돌아
당신의 눈동자에 빗금이 쳐질 때
세상의 모든 주름들이 펴진다
모든 증식하는 것들이 가만히 숨을 고른다
― 《포지션》 2023년 가을호
신철규 l
2011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등단. 시집 『지구만큼 슬펐다고 한다』 『심장보다 높이』가 있음. 〈신동엽문학상〉 〈김춘수시문학상〉 〈유심상〉수상.
시인론 / 김정빈
슬픔이라는 바다에서 하는 자맥질
고백합시다.
더 이상 상처받지 않기 위해 나는 둔감하기로 했다. 이로부터 얻은 것은 내가 누군가에게 주는 상처에도 둔감해지는 성정.
문득 의도치 않게 찔리게 될 누군가를 떠올리자면 한없이 죄스럽다가도, 그 마음을 되짚고 있노라면 여지없이 내가 무너질 듯하여 다시 둔감해지기로 선택하고는 한다. 내가 알아차리지 못했던 살의들을 상상하며 종종 불안하다가도, 침잠보다는 회피가 더 신속하므로. 내게 상처란 그런 것이다. 받지 않기로 선언함으로써 줄 여지가 생기는 상태.
신철규의 시 앞에서는 엎드려 죄를 줄줄 읊어야 할 것 같다. 누군가의 상처를 회피했던 시간들을, 회피함으로써 다른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었을지도 모를 시간들을 말이다.
보면,
언제나 침잠해 있는 사람들이 있다. 유독 단단하게 슬픔 속에 자리한 이들. 너무 오랜 시간 슬프면 단단해질 수도 있구나 알려주는 이들. 이들은 함부로 상처 주는 법이 없다. 다른 이의 상처를 무시하는 일도 없다. 이들은 대게 시의 화자로서 존재한다. 종종 누군가의 시 쓰는 마음에서 발견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나는 시를 읽다가 이들을 발견할 때면, 잠시나마 장비를 차고 다이빙하여 그들의 시선을 잔뜩 훔치다 그 세상을 박차고 나가는 기분이다.
그런 점에서 신철규의 첫 시집 『지구만큼 슬펐다고 한다』는(외형이 짙은 파란색인 것까지 더하여) 슬픔으로 이루어진 바다 같았다. 시집을 읽는 동안 그 바다에 들어가 침잠한 이들을 발견하고, 그들의 시선을 공유하다가 나오는 기분이었다. 시집의 말미에는 시집의 화자가 “슬픔을 증언하기 위해 인간의 말을 하는 천사”라는 해설이 붙어 있다. 누군가 엎드려 울고 있을 때, 묵묵히 곁을 지키느라 땅이 젖고 바다가 되고 가라앉아도 가만히 있었던 자. 누군가의 슬픔에 기꺼이 같이했던 존재가 하필이면 인간이 아닌 존재, 천사로 비유되었다면, 인간은 누군가의 슬픔을 기꺼이 나눠들 수 없는 것일까?
우리는 절벽에 매달려서만 인간이 된다
절벽에 매달리기 전 우리는 무엇이었나.
꽃도 하나 피어 있지 않은 절벽에
차가운 글씨만 박혀 있는 절벽에
한없이 미끄러지기만 하는 절벽에
ㅡ 「깊은 강」 부분
위 시에서는 인간이라는 상태 또는 존재의 조건에 대해서 확인할 수 있다. 이 시의 화자는 인간임을 유지하기 위해 매달려야 한다고 한다. “한없이 미끄러지기만 하는 절벽에” 그토록 처량하게 매달려야만 인간이 될 수 있음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절벽 위, 그리고 절벽 아래가 무엇인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신철규의 시 세 편을 차례로 살펴보자.
「도착하는 밤」에는 ‘처럼’이 총 10번 나온다. ‘처럼’의 향연이다. ‘처럼’을 사이에 두고 마주하고 있는 낱말들은 이렇다.
(1)
이빨 자국 + 처럼 + 들쭉날쭉한 스카이라인
이불 + 처럼 + 밤하늘의 구름
전화번호부 + 처럼 + (두꺼워진) 사람들
핏줄 + 처럼 + (돋아난) 한밤의 나뭇가지
뜨거운 물 위에 떠 있는 얼음 + 처럼 + 닳아가면서 닮아가는 것
착륙하기 전 비스듬하게 선회하는 비행기 + 처럼 + (나를 깎는) 어둠
(2)
굴착기 + 처럼 + (가슴을 파고 드는) 너의 시선
공기의 빈틈을 파고드는 아리아 + 처럼 + 노래
선물의 포장을 뜬는 떨리는 손 + 처럼 + (울리는) 자명종
(3)
전속력으로 달린 단거리 육상 선수가 결승선을 지나서도 한참을 달려야 하는 것 + 처럼 + ?
‘처럼’을 사이에 둔 낱말들을 순서에 따라 크게 세 부류로 나누어보았다. 첫 번째 부류는, 화자가 목격하고 있는 풍경과 그 위로 한 겹 덧붙여지는 이미지들이다. 화자는 겨울밤 거리의 풍경을 차례차례 바라보면서 그 위에 상상의 그림을 덧씌운다. 들쭉날쭉한 스카이라인을 보고 어둠이 거대한 이빨을 가진 것처럼 덧씌운다거나, 두껍게 입은 사람들을 전화번호부로 바꾸어 놓는다. 겨울철 사람을 보며 두꺼워졌다고 알아차리는 것은 단순히 목격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를 전화번호부로 바꾸어 바라보는 것은 상상력의 영역이다. 이때 사람들이 항아리처럼 두툼해진 것도 아니고, 굽은 김밥같이 보이는 것도 아니고, 하필 ‘전화번호부’처럼 두꺼워진 것은 오롯이 시인이 그렇게 보도록 의도했기 때문이다. 시인의 상상력이란 단순히 세상을 조금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을 넘어 어떤 의지와 자신만의 일관된 방향성이 있는 셈이다.
그 일관된 방향성이란 두 번째 부류에서 잘 드러난다. 파고들고, 찢고, 깨고, 부수고, 뚫는 이미지들이 가득하다. 그들이 찢는 것은 어떤 경계들이다. ‘굴착기’가 파고든 가슴의 안팎이라든가, ‘아리아’가 뚫은 소리와 고요의 경계, ‘떨리는 손’이 뜯은 선물의 포장지, ‘자명종’이 깬 진공과 진동의 사이는 모두 서로 맞닿아 있는 성질의 개념들이다. 너무나 가깝게 맞닿아 있고 겹쳐 있어 곧 비슷해 보이지만 절대 섞일 수 없이 반대의 개념이다. 마치 “나무가 잘려나간 만큼” “공중”이 생기듯이, “우주가 팽창”하는 만큼 “어둠이 들어앉”듯이 이것이 아니면 곧 저것일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시인의 ‘처럼’은 이것과 저것을 곧잘 넘나든다.
마지막 부류의 ‘처럼’은 사실 경계를 드나드는 일이 얼마나 많은 힘이 필요한지를 여실히 보여 준다. 결승선이란 통과하는 순간 경주가 종료된다는 점에서, 경주와 경주 아닌 것을 구분하는 경계다. 다만 그 경계는 (온 힘을 다해 임하지 않으면 경주가 성립되지 않으므로) 전속력으로 달려야만 통과할 수 있고, 그렇다 보면 결승선을 지나서도 한참을 달릴 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경계를 오가는 것은 큰 에너지가 드는 일일 수밖에 없다.
세 차례의 ‘처럼’을 통과하며 시인의 의도된 상상력은 어떤 경계를 오고 가는 형상을 갖춘다. 꼭 물속과 밖을 자맥질하는 것처럼. 자맥질이란 물에 온전히 잠수하는 것도 아니고, 바깥으로 온전히 나가는 것도 아니니, 수면이라는 경계를 오가는 행위이며, 큰 힘이 든다. 그러므로 종종 원하는 대로 몸을 가누기 어려울 때가 있다. “떠내려가지 않으려고” 자맥질을 했으나 “가끔 젖은 손목들이 떠내려” 온다는 것은 자맥질만으로는 떠내려가든 떠내려가지 않든 온전히 한쪽 세계로의 편입에 실패할 수밖에 없음을 보여준다.
차가워진 발을 따뜻한 물에 담근다
수면에 떠서 물속을 바라본다
푸른 수영장 바닥에 비친 일렁이는 그림자
(중략)
모든 불행한 기억을 지운다면 우리는 행복해질 수 있을까
인간이 물 위를 걷기 위해서는 얼마나 가벼워져야 할까
물 위를 걷는 것은 간단하지
한 발이 가라앉기 전에 다른 발을 수면 위에 놓는 것
그것을 얼마나 빨리 해야 우리는 물 위를 걸을까
차라리 새처럼 뼈를 공기로 채울 수 있다면
ㅡ 「복화술사」 부분
고개를 바다에 처박고 헤엄치다 보면 이런저런 색깔이 가득하다가도 고개를 들면 쨍한 햇빛과 텅 빈 하늘이다. 새삼스럽게 물 바깥과 물속은 전혀 다른 세상이다. 색채부터 생태계, 압력까지 전혀 다르니까. “수면에 떠서 물속을 바라”보는 행위는 서로 다른 세상의 경계에 안정적으로 걸쳐있는 듯하면서도, 물속으로 시선을 둔다는 점에서 어느 세상으로 조금 더 치우치고자 하는지 방향성을 담고 있다. 물론 언젠가 다시 고개를 들어 숨을 쉬어야 한다는 점에서 불안정하다.
침잠과 부유의 경계에서, 나란히 놓인 두 질문은 의미상 맞닿아있다고 볼 수 있겠다. 그러니까 물 안으로 침잠하는 것은, 어떤 슬픔을 모두 수용하여 무거워지는 것이며, 물 위를 걷는 것은 행복만 취하고 가벼워지는 모습으로 읽을 수 있겠다. 질문에 대한 답은 금방 찾을 수 있는데, “새처럼 뼈를 공기로” 채우거나, 빠른 속도로 한 발이 가라앉기 전에 다른 발을 수면 위에 놓으면 된다. 물론 둘 다 불가능하다.
그러니까 인간은 물 아래든 위든 하나의 세계로 완전히 편입되는 것이 불가능한 존재다. 영영 불행하거나 영영 행복만 할 수는 없다. 불행한 기억을 다 잊을 수도 없는데 알고 있다고 견뎌지는 것도 아니다. 두 개의 굴뚝 사이에 걸려있는 “구름”처럼 경계에 걸쳐있는 것이 인간의 본질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그런데 그 두 세계의 경계가 무너진다면 어떨까. “생화와 조화”, “죽어 있는 것과 살아 있는 것”은 경계에 금이 가서 구분이 어려워지고 있으며 “구름”은 두 개의 굴뚝 사이에 걸려 있고, 꽃들은 결승선을 지나고 있다. 땅은 흔들리는데 하늘은 멀쩡한 것처럼, 상반되는 영역이 맞닿아 있고 그 경계가 점점 흐려진다면 경계에 놓인 사람들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이쪽과 저쪽을 계속 오가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사이를 자맥질하며 오가는 것은 어쩌면 행위가 아니라 상태일지도 모른다.
다시 처음의 질문을 던져본다. 인간은 누군가의 슬픔을 기꺼이 나눠들 수 없는 것일까?
절벽 위와 절벽 아래라는 경계 사이에 걸쳐 있는 상태로만 인간이 된다면 나눠들 수 없는 게 아닐까. 누군가 물속-또는 슬픔, 또는 불행, 또는 어둠, 또는 고요, 또는 부조리-에 침잠해 있을 때, 인간은 잠시 잠수해 그를 바라보더라도 기어코 바깥으로 나와 잠시나마 숨을 돌려야 한다. 동시에 완전히 그 세계를 외면하고 떠날 수 없다. 이 두 세계를 끝없이 자맥질하는 형태로 인간은 존재하니까, 침잠할 수는 없는 게 아닌가.
「깊은 강」에서는 화자가 두 가지 형태로 등장한다. “나”라는 개인으로 존재할 때는 천사가 아니며, “나”는 종 없이 버려진 종탑에 비유된다. 그 종은 “물속”에 잠겨있다. 그러나 “우리”로 등장할 때는 “수갑을 차고 물속에 가라앉아” 있다. “혼자만의 천국은 지옥보다 무섭다”고 서술하며, 홀로 서 있는 것보다 “우리”를 택한다. “우리”는 “검은 가면을 쓴 사람들”에 의해 고통받는다. “우리”는 가라앉고, 꺼지고,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한순간 인식은 완전히 반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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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보만 아니라면 우리는 가만히 전진 지구의 한 자리에 가만히 누워 있어도 우리는 공전
혼자만의 천국은 지옥보다 무섭다 이 세계는 신이 뱉은 가래침이다
촛불이 어둠을 낮춘다 꽃도 리본도 다 감옥에 갇혔다 슬픔의 사정거리가 너무 길어서 네 슬픔이 너무 멀다
검은 가면을 쓴 사람들이 우리의 입에 약음기를 물렸습니다 우리의 목소리에 검은 페인트를 들이붓고 우리는 매캐한 연기가 나는 책을 읽었습니다
이 강물은 깊고 깊어서 지구를 두 동강 낼 수도 있다 |
ㅡ 「깊은 강」부분
인식을 지구 차원으로 넓혔을 때, “퇴보만 아니라면 우리는 가만히 전진”하는 중이며, “지구의 한 자리에 가만히 누워있어도 우리는 공전”하는 중이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잠겨있는 “이 강물은 깊고 깊어서 지구를 두 동강 낼 수도 있다”고 한다. 물리적으로는 말이 안 되지만, 두 동강난 지구를 상상해 볼 때, 강물을 사이에 두고 지구 반쪽과 다른 반쪽이 마주하고 있는 형태의 이미지가 생각난다. 이때 강물은 “물속”이라는 세계라기보다는 그 자체로 경계가 된다. 이 반쪽과 저 반쪽의 경계에 있다. 그 경계(물속)에 있는 “우리”들은 인간이 된다.
“나”, 그러니까 개인으로서의 인간이 도달할 수 없는 영역이었으나 “우리”는 갈 수 있다. 기꺼이 침잠하는 방식으로, 누군가의 슬픔을 나눠 들면서. “우리”가 함께 침잠할 때, 우리는 천사나 다른 인간 아닌 것의 이름을 빌릴 필요가 없다. 인간으로서 그곳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 깊은 형태로의 자맥질이다.

김정빈 l
2020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문학평론 등단.
—
2024년 11월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