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시인
 
이달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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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달의 시인] 문무학
  신작시: 미싱 링크
(Missing Link) / 오독사전·14 / 연령주의

  자선시: 낱말 새로 읽기·13 / 우체국을 지나며

 
  [시인론] 박진임 “문학적 전복의 표본
: 전통을 지키고 재건하는 문무학 시인”

 

 

 

 


 신작시 


 

 

 

 미싱 링크(Missing Link)*

 

 

 

    

   

  그대와 나를 잇는 고리는 무엇인가?

  집히는 게 없잖지만 긴가민가 늪에 빠져

  날마다 물음표 달고 말줄임표 찍는다

 

  그대가 나에게로 그냥 오지 않았듯이

  나 또한 그대에게 그냥 가지 않았을 터

  그것은 명사가 아닌 동사임이 분명하다

 

  그 고리 헐거워져 헐렁헐렁 너풀대면

  서느런 문장에다 밑줄만 그을 텐데

  어디서 운율을 얻고 무엇으로 은유하나

 

  모르고 읽는 생은 주제 밖을 서성이고

  순간에도 시간에도 삐걱대고 있었으니

  그 어떤 서정, 서사에 느낌표를 찍으랴

 

                           

  * 생물 진화 계열의 중간에 해당하는 종류가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데도 화석으로 발견되지 않은 것.

 

 

 

 

 

 

 

 

 

 

 



 

 

 오독사전·14

     

 

 

 

   

  모름지기

  반드시 틀림없이 이 뜻이면 맘 졸이고 마땅히 당연하게 이쯤 오면 부담이라 모른 체 지나는 것이 훨씬 편한 그런 말

  응당 그래야지 야멸차게 몰아가다 모르면 몰라도로 어물쩍 한 발 빼도 곡선은 눈 밖에 두고 직선만을 긋는다

 

 

 

 

 

 

 

 

 

   

 



 

 

 연령주의*

 

    

 

 

   

  나이를 먹으려고 욕심내는 사람 없다

 

  그러면 그 숫자가 전과 기록 아닐진대

   

  어째서 연령주의가 활개춤을 추는가

 

                           

  * Ageism. 나이를 이유로 차별하는 사상이나 태도.

 

 

 

  

 

 

 

 

 

 

 

 


 자선시 


 

 

 

 

 낱말 새로 읽기·13

  ― 바다

  

 

 

 

  ‘바다’가 ‘바다’라는 이름을 갖게 된 것은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다 ‘받아’ 주기 때문이다

 

  괜찮다

 

  그 말 한마디로

 

  어머닌 바다가 되었다.

 

 

 

 

 

 

 

 

 

 

 


 

 

 

 우체국을 지나며

    

     

    

  

 

  살아가며 꼭 한번은 만나고 싶은 사람

  우연히 정말 우연히 만날 수 있다면

  가을날 우체국 근처 그쯤이면 좋겠다

 

  누군가를 그리워하기엔 우체국 앞만 한 곳 없다

  우체통이 보이면 그냥 소식 궁금하고

  써놓은 편지 없어도 우표를 사고 싶다

 

  그대가 그립다고 그립다고 그립다고

  우체통 앞에 서서 부르고 또 부르면

  그 사람 사는 곳까지 전해질 것만 같고

 

  길 건너 빌딩 앞 플라타너스 이파리는

  언젠가 내게로 왔던 해 묵은 엽서 한 장

  그 사연 먼 길 돌아와 발끝에 버석거린다

 

  물 다든 가로수 이파리처럼 나 세상에 붙어

  잔바람에 간당대며 매달려 있지만

  그래도 그리움 없이야 어이 살 수 있으랴

 

 

 

 

 

 

 

 

 

 

문무학  l

1982년 《월간문학》 등단. 시집 『뜻밖의 낱말』 등, 시선집 『ㄱ』 등이 있음. 〈윤동주문학상〉 〈이호우시조문학상〉 〈유심작품상〉 등 수상.

 

 

 

 

 

 

   


 시인론 / 박진임 


  

 

 

 

 

문학적 전복의 표본: 전통을 지키고 재건하는 문무학 시인

 

        

 

 

 

  문무학 시인은 현대 시조단에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는 시인이다. 아니, 한국 현대 시단 전체에서도 매우 예외적인 시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우리 고유의 시조 양식을 계승하는 현대 시조 장르를 고집하면서도 시대 정신을 고스란히 반영하는 시적 주제와 소재를 골라내어 형상화해온 시인이다. 시조 형식 자체를 텍스트의 소재와 주제를 삼아서 텍스트 해체와 재형성을 시도하기도 했다. 중장을 말줄임표로 처리하면서도 그 말줄임표조차 3, 4 음절의 특징을 일정 부분 견지하게 만든 「중장을 쓰지 못한 시조, 반도는」을 상기해보자. 그 작품에서 문무학 시인이 시조 전통을 갱신하여 현대 시조가 나아갈 길을 닦느라 들인 공을 찾아볼 수 있다. 또한 시집 『홑』을 읽으면 문무학 시인이 우리말을 얼마나 세심히 관찰하는 시인인지 알 수 있다. 『홑』에서는 한글의 자모를 분석하고 그 자모의 형성 원리를 탐색하며 발견한 바를 철학적 기반 위에 올려놓는 데에 성공하고 있다.

  한편, 문무학 시인은 아일랜드 시인이며 미국 시인이기도 한 이반 볼랜드(Eavan Boland)를 생각나게 한다. 볼랜드는 전통을 강조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 전통을 갱신하고 재건하는 일을 동시에 해내어 아일랜드 문학 전통을 더욱 강화한 시인이라고 평가 받는다. 우리의 문무학 시인의 시력도 볼랜드의 작업에 비근한 것이다. 볼랜드의 기여를 평가한 글을 읽어 보자.

      

  볼랜드는 동시에 정통 아일랜드 문학을 강조하기도 하고 갱신하기도 하는 방법을 찾아내었다. 그러한 접근 방식은 미국 학자 마릴린 라이즈바움이 지적한 바를 인용하자면 “전복이 하나의 패러다임이 되게 했다. 전통을 포용하면서도 그 전통이 결락하고 있는 부분에 동참하거나 그 결락을 반복하는 일은 없는.”

   

  Boland had found a way to simultaneously highlight and and undermine Irish literary orthodoxy— an approach in which, to quote American scholar Marilyn Reizbaum, “subversion becomes a paradigm, a way of being inclusive of a tradition while neither participating in or repeating its omissions.” (p.44)

   

  볼랜드가 아일랜드 문학의 전통을 이어받으면서도 기반이 약한 부분을 잠식하여 새롭게 해 나간 것처럼 문무학 시인 또한 현대 시조 장르를 근원적으로 탐문하면서 새로이 조직해왔다. 전통을 전복하는 방식을 통해 시조 전통을 오히려 강화해왔다. 우리 시조 문학 전통이 지닌 형식적 간결성과 운율의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고답적인 부분을 근원적인 방식으로 재건해나간 시인이 문무학 시인이라고 볼 수 있다. 신작, 「미싱 링크(Missing Link)*」를 읽어보자.

   

  그대와 나를 잇는 고리는 무엇인가?

  집히는 게 없잖지만 긴가민가 늪에 빠져

  날마다 물음표 달고 말줄임표 찍는다

 

  그대가 나에게로 그냥 오지 않았듯이

  나 또한 그대에게 그냥 가지 않았을 터

  그것은 명사가 아닌 동사임이 분명하다

 

  그 고리 헐거워져 헐렁헐렁 너풀대면

  서느런 문장에다 밑줄만 그을 텐데

  어디서 운율을 얻고 무엇으로 은유하나

 

  모르고 읽는 생은 주제 밖을 서성이고

  순간에도 시간에도 삐걱대고 있었으니

  그 어떤 서정, 서사에 느낌표를 찍으랴

 

  * 생물 진화 계열의 중간에 해당하는 종류가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데도 화석으로 발견되지 않은 것.

 

ㅡ 「미싱 링크(Missing Link)」 전문

 

  먼저, 주체와 타자의 문제, 관계에 대해 문무학 시인이 명상한 흔적을 따라가 보자. 화석이라는 단단한 이미지를 중심에 둔 채 문무학 시인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결, 즉 관계의 문제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던지고 그 답을 모색해본다. 화석의 이미지가 텍스트 전반에 걸쳐 견고한 구심력을 제공하고 있으며 그 힘의 장력 범위 내에서 보다 작은 이미지들의 변주가 펼쳐진다. 그리하여 텍스트 내부에서는 다양성과 통합성의 변증법적 결합이 이루어진다. 무수한 질문을 던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산만하다는 느낌을 주지 않고 정합성이 결여된 듯한 상상의 고리들이 이리 저리 맞물리지만 이탈하는 요소가 눈에 띄지 않는다. 텍스트 내부의 모든 모티프들이 엉기며 미묘한 조화를 이루어내는 것을 볼 수 있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문제들과 그 의문에 대한 해답으로 기능할 다양한 가설들이 난립하는 듯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통일성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시인은 발견이나 결론을 전제하고 텍스트를 빚는 것이 아니라 텍스트를 구성해 가는 단계에서 끊임없이 가설을 제기하면서 그 과정이 한 편의 시가 되게 한다. 하나의 가설을 긍정해보고 동시에 그 긍정한 바를 다시 부정하여 처음의 자리로 되돌린다. 그러는 사이 시인의 모색 과정 자체가 텍스트의 본질이라는 것을 독자는 깨닫게 된다.

  제목 “미싱 링크”에 대해 시인이 각주를 통해 설명하듯, 부재하는 화석이 이 텍스트의 주제이다. 화석의 이미지는 드러난 증거, 부정할 수 없는 사실, 의심할 필요 없는 자명한 대상을 지시한다. 역사의 과정에 존재했던 생명체가 자신의 존재 증명으로 남긴 것이 바로 화석이기 때문이다. 존재와 부재의 경계를 짓는 것이 화석의 유무라고도 볼 수 있다. “미싱 링크”는 존재를 증명할 길 없는 존재를 지칭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는데 그렇다면 그 미싱 링크는 어쩌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 대한 가장 적확한 은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단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만이 아니라 주체와 관련된 모든 관계로도 미싱 링크는 또한 확대될 수도 있다. 시조를 써 온 시인이 시조 텍스트와 맺고 있는 관계, 그 본질 또한 미싱 링크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모든 예술가가 자신의 오브제(objet)를 대하는 자세도 궁극적으로는 미싱 링크의 본질에 닿아 있다고도 볼 수 있다. 막연하고도 모호하지만 감지되는 바가 없지는 않은데 그 대상을 정의하거나 대상에게 다가가는 순간, 마치도 사막의 신기루이기라도 했듯 대상은 순식간에 자취를 감추고 이전보다 더 아득한 거리를 둔 채 사라져 버린다. 관계의 본질은 그와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뒤를 좇기를 멈추지 않는 것이 또한 예술가의 운명일 수도 있다.

  “미싱 링크”가 지닌 이중의 정체성, 즉 존재성과 존재 증명의 불가능성을 형상화하는 과정 자체가 문무학 시인에게는 이중적 텍스트를 빚는 작업으로 드러나고 있다. “그대”와 “나”라는 시어를 접하면서 일차적으로 주체와 타자, 그리고 그 관계에 대해 명상하게 된다. 그러나 곧 그 ‘그대’와 ‘내’가 또한 문학 텍스트와 시적 화자이기도 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주체와 타자 사이를 잇는 고리는 창작 주체와 텍스트 사이를 잇는 고리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 연결 고리의 정체를 궁구하느라 문무학 시인이 동원한 은유들이 텍스트의 이중적 정체성을 직접 설명하고 있다. 동사와 명사, 물음표와 말줄임표, 문장과 밑줄, 운율과 은유, 서정과 서사…….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출발하여 텍스트와의 관계를 거쳐, 다시금 삶 속에서의 관계로 회귀하는 복합성의 여로가 텍스트를 구성하고 있다. 마침내 느낌표를 얻게 되기를 희구하지만 그 또한 불가능할 것임을 시적 화자는 이미 예견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살아간다는 일, 물음표를 던지면서 한 발짝, 한 발짝 무거운 발걸음을 내딛는 일이 문득 새로운 의미를 지닌 채 우리 앞에 다가온다. “모르고 읽는 생”이라는 구절을 수긍하게 되면 시인이 “읽다”라는 동사를 통해 이르고자 하는 바는 한 편의 시조 텍스트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우리 삶 그 자체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영어의 subject는 우리말로는 주제이기도 하고 주체이기도 하다. 그 이치가 묘하다. 주체에게 가장 요긴한 것이 주제이며 주제가 명확해진다는 것은 주체성이 분명해지는 것이기도 하지 않은가. 삶의 주체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도 그 삶의 주제를 찾는 것이고 텍스트에서 마찬가지라 할 수 있다. 시적 화자를 통해 시의 주체는 자신의 주제를 가장 효과적으로 드러내고자 노력하니 말이다. “미싱 링크”를 주제어로 삼아 이리 저리 사색하면서 문무학 시인은 확대된 시간과 공간을 독자에게 제공한다. 미싱 링크의 존재를 언급하고 미싱 링크를 서정의 형식으로 서사화함으로써 미싱 링크라는 말의 뜻에 내포된 빈 공간을 탐색한다. 미싱 링크는 영원히 미싱 링크로 남으리라는 것을 시인은 미리 알고 있었으리라.

  텍스트의 한 구절인 “모르고 읽는 생”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모든 인류의 숙명일 것이다. 문무학 시인은 그 운명적 요소를 새로운 방식으로 탐색하고 거기에 자신만의 철학을 투영하며 가장 친숙한 시어로 깨우친 바를 형상화한다. 전통을 계승하면서 동시에 그 전통의 전복을 시도하는 일, 참으로 지난한 작업이다. 그러나 예술의 본질이 거기에 놓인다. 그 난해한 작업을 가장 절묘한 방식으로 이루어내는 시인이야말로 우리 시대가 요구하는 시인이 아닐 수 없다.

  「미싱 링크」에서 제기된 “모르고 읽는 생”에 대한 시적 사유는 그 폭을 넓히면서 오독의 은유로 전이된다. 대상이 삶이든 책이든 우리의 독서가 모르고 읽는 일에 불과하다면 모든 독서는 결국 오독이 될 것이다. 그런데 그 오독에서도 얻을 것이 있으니 오독의 과정에서 깨칠 수 있는 슬기로움이 있을 것 같다. 문무학 시인은 서로가 서로를 오독하는 상태에서도 확신에 찬 주장을 일삼는 우리 삶에 주목한다. 편견과 아집으로 가득 찬 세상을 바라보면서, 거기에서 자유롭게 통용되는 확신의 부사들을 채집하여 텍스트를 구성한다. 시인이라면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말들이 지닌 힘과 영향에 민감하게 반응해야 할 것인데 문무학 시인은 「오독사전·14: 모름지기」에서 우리 시대의 부사어 사용을 비판하고 있다. 우리 삶이 종종 정독이 아닌 오독의 삶인 것처럼, 우리 소통의 도구인 언어도 그 정체가 불투명하고 불안하다. 부사 또한 사용되기보다는 오용되고 남용되고 있다.

     

  반드시 틀림없이 이 뜻이면 맘 졸이고 마땅히 당연하게 이쯤 오면 부담이라 모른 체 지나는 것이 훨씬 편한 그런 말

  응당 그래야지 야멸차게 몰아가다 모르면 몰라도로 어물쩍 한 발 빼도 곡선은 눈 밖에 두고 직선만을 긋는다  

ㅡ 「오독사전·14 : 모름지기」 전문

     

  모름지기, 반드시, 틀림없이, 마땅히, 당연하게, 응당, 그래야지……. 확신에 찬 주체들이 거침없이 구사하는 말들이 저잣거리에 넘쳐난다. 서로가 어깨를 기대고 살아가야 할 세상에서 함께 얼려 살아가면서도 타자를 배려하는 말은 찾아보기 드물다.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말들을 모아 놓고 보니 참으로 확고한 대상이 또한 말이라는 것을 알겠다. 문무학 시인이 골라낸 그 부사들이 마치도 창검처럼 타자들을 겨누는 말들임을 깨닫게 된다. 그 반대편에는 유보의 함의를 지닌 완곡한 표현이 존재할 터이지만 우리 사회에 넘쳐나는 것은 힘의 부사들이라는 점이 분명해진다. 문무학 시인은 “곡선은 눈 밖에 두고 직선만을 긋는다”라고 선언하면서 그러한 세태를 비판하고 있다. 우리 주변에 이토록 강렬한 말들이 널려 있었던가? 매일 산소를 호흡하듯, 물을 마시듯 단호함이 가득 담긴 부사들을 듣고 또 발화하고 있었던가? 문득 놀라게 된다. 문무학 시인은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명사, 동사, 부사의 속성을 다시 점검해보자고 이른다. 시인 옥타비오 파스(Octavio Paz)가 언급한 적 있듯이 우리가 매일 언어를 사용하면서 그 언어를 훼손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시인의 임무 중에는 그 훼손된 말들의 결을 어루만지고 가다듬어서 원래의 고운 모습을 유지할 수 있게 하는 일이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문무학 시인은 누구보다도 앞서서 그 일을 시작하고 있다. 우리가 우리 삶에 주어진 날들을 흘려보내면서도 결국 모르고 사는 생을 살아내고 있으니 우리의 독서 또한 그처럼 오독일 터이다. 모르고 살면서도 확신에 차서 단언하기를 일삼고 오독하면서도 오독인 줄 모르는 인생, 문무학 시인은 그 가련함을 노래한다. 그러나 잉여를 경계하여 감정의 개입을 멀리하고 지극히 건조한 말들을 의도적으로 선택하고 배치하여 텍스트를 빚는다. 말의 속성을 유심히 관찰하고 말을 사용하면서 우리가 사용하는 말을 정화해야 하는 것이 시인의 역할임을 잘 알고 있는 까닭에서다.

  문무학 시인은 현실을 가장 정확하고 냉철하게 이해하고자 한다. 그래서인지 앞서 「미싱 링크」에서 보듯, 문무학 시인의 시적 세계에는 물음표와 말줄임표로 상징되는 불확정성과 침묵의 철학이 우세하다. 느낌표를 밀어내고 미루어 두면서, “날마다 물음표 달고 말줄임표 찍는다”고 노래한 부분을 상기해보자. 시인이란 상식과 편견의 대척점에 서서 세상을 유연하게 바라볼 수 있는 자이기도 하다. 사회는 이미 고령화 사회라는 이름에 걸맞게 변화하고 있는데 그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세태를 비판한 「연령주의」를 보자.

   

  나이를 먹으려고 욕심내는 사람 없다

 

  그러면 그 숫자가 전과 기록 아닐진대

 

  어째서 연령주의가 활개춤을 추는가

ㅡ 「연령주의」전문

   

  시조의 전통을 되짚어 보면 송강 정철의 「훈민가」에서 조선 시대 노인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이고 진 저 늙은이 짐 풀어 나를 주오”하고 경로의 자세를 권면한 바 있다. 예이츠(W. B. Yeats)가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고 노래하면서 비잔티움으로의 항해를 꿈꿀 때, 한반도의 미풍 양속은 젊은이로 하여금 노인을 도와 모두가 함께 하는 사회를 꿈꾸게 했다. 노인이라는, 어쩔 수 없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돌봄의 미학이 우리 문화의 전통을 이루고 있을진대, 문무학 시인은 이제 그 사회적 약자로 하여금 스스로 발화하게 한다. 문무학 시인의 시적 화자는 정확하고 직접적인, 자신의 고유한 목소리로 연령주의를 비판하고 노인에 대한 편견이 팽배한 사회를 비판한다. 텍스트의 시적 주체는 스스로 자신을 주장할 수 있는 독립적 주체일 뿐, 비잔티움으로 상상의 여행을 떠나지 않는다. 자신의 짐을 후속 세대에게 넘겨줄 생각도 없어 보인다. 담담히 발화하고 그런 방식으로 자신의 자리를 지켜가고 있다. 문무학 시인이 그려낸 신풍속도라고 볼 수 있는데 시대의 변화상을 시조 텍스트를 통해 흡수하고 재현한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새롭다.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관습에 얽매이지 않고, 전통의 약해진 지반은 개선하여 변화된 시대의 새로운 기운으로 채우고 다져가는 작업을 문무학 시인은 그처럼 폭넓게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대들보는 튼튼히 지키면서 회벽은 새롭게 발라가는, 믿음직한 목수가 한국 현대 시조단을 지키고 있다.

 

   

  참고한 글

  Randolph, Jody Allen. Eavan Boland: A Critical Companion W.W. Norton & Company.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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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임  l 

2004년 《문학사상》 등단. 연구서 『비교문학과 텍스트의 국적』 『Narratives of the Vietnam War by Korean and American Writers』, 평론집 『두 겹의 언어』, 편저 『꽃 그 달변의 유혹: 박재두 시전집』 등이 있음.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및 동 대학원, 미국 워싱턴주립대학교 영문학과 학사, 오리건주립대학교 비교문학과 석·박사, 시카고대학교 박사후과정 연구원, 스탠포드대학교 풀브라이트 강의 교수, 서던캘리포니아대학교 객원교수 역임. 현재 평택대학교 국제지역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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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9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