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시인
 
이달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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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달의 시인] 문태준
  신작시: 물결
 – 징소리 / 손거울 / 돌

  자선시: 물결 – 渡來 / 물결 – 섬 

 
  [시인론] 이홍섭 “섬의 연대기”

 

 

 

 


 신작시 


 

 

 

 물결

 — 징소리 

 

 

 

    

   누구도 들여다보지 않은 샘에

   누가 징을 담가 두었나

   솟는 샘물에 징징 징소리가 들려오네

   쇠를 두드린 두드린 만큼

   일고 이는 물결

   달큼한 샘물

 

 

 

 

 

 

 

 

 

 

 



 

 

 손거울

     

 

 

 

 

   양지에 쪼그려 앉아

   손거울로 보내던

   빛 덩어리

 

   엄마가

   누에 치던 방

   깊숙한 데에

 

   들여보내고

   또 들여보낸

   동그스름한

   빛 뭉치

 

   집은,

   날마다 집은

   까맣고 서글퍼

 

   혼자

   짓던,

   하얀 고치 같은

   빛의 새집

 

  망개잎만 한

  손거울

 

 

 

 

 

 

 

 

 

   

 



 

 

 돌

 

    

 

 

 

   집을 비운 사이 우편배달부가 다녀갔나 봐요

   편지 한 통을 두고 갔는데 편지 위에 작은 돌을 두 개 올려놓고 갔지 뭐예요

   흙 묻은 두 개의 돌은 하얀 편지 봉투를 꾹 누르고 있었지요

   편지 봉투를 뜯고서 나비처럼 나울나울 날아가려는 당신의 문장을

   그저 그것만을 지키려고 요만큼의 돌이 되었노라고 말을 하는 듯 했는데요

   그래서 그 돌들을 그대로 뒀지 뭐예요

   이제 당신의 마음은 조그마한 돌 같은 내 속가슴에 넣어두고 열어보지 않기로 해요

 

 

  

 

 

 

 

 

 

 

 


 자선시 


 

 

 

 물결

 — 渡來

 

 

 

 

   내게 오시려면 물결을 건너주세요

   내 안뜰에 물결

   내 앞섶에 물결

   두근거리고 뛰는 물결을 건너주세요

   잠결에 들은 미열 같은 발소리

   오려다 한 걸음 물러서는 물결

   백련처럼 피었다 지는 물결

   쇠나 돌 앞에 꺼지는 물결

   쇠와 돌에게서 일어나는 물결

   지붕 위 은하에 낮밤 없이 흐르는 물결

 

 

 

 

 

 

 

 

 

 

 


 

 

 

 물결

 — 섬

    

     

    

 

   섬을 데려올 수 없으니 섬에게 매일 가는 거예요

   해녀인 내 어머니는

   우는 구덕을 흔들어주려고

  

   좌불안석의 물결을 어르는

   큰 물결 포대기를 두른 어머니

 

 

 

 

 

 

 

 

 

 

문태준  l

1994년 《문예중앙》 등단. 시집 『수런거리는 뒤란』 『맨발』 『가재미』 『그늘의 발달』 『먼 곳』 『우리들의 마지막 얼굴』 『내가 사모하는 일에 무슨 끝이 있나요』 『아침은 생각한다』 등이 있음. 〈노작문학상〉​​​​​​〈​​​​​​유심작품상〉〈소월시문학상〉〈목월문학상〉〈​​정지용​​문학상〉〈박인환상〉 등 수상.

 

 

 

 

 

 

   


 시인론 / 이홍섭 


  

 

 

 

 

섬의 연대기

 

        

 

 

 

  문태준 시인의 이번 신작시들과 근작시들은 시인이 오래 궁굴려온, 화두 같은 상징들을 담고 있다. 돌, 물결, 섬, 어머니 등이 그것이다. 시인은 이 상징들을 오랫동안 변주해 왔는데, 이들은 때로는 하나의 이미지를 오롯하게, 때로는 서로 교섭하며 새로운 이미지들을 만들어 내곤 했다. 이들 중 어느 것 하나를 선택해도 그가 그동안 보여준 시세계와 시관(詩觀)을 살펴볼 수 있지만, 이번 글에서는 ‘섬’을 중심으로 이를 따라가 보고자 한다.

  ‘섬’을 선택한 것은, 이 섬이 그가 펴낸 시집들 곳곳에 두루 산재해 있기도 하고, 이 섬의 연대기를 통해 시세계와 시관뿐만이 아니라 시인이 지닌 삶의 태도와 결기 등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문태준 시인과 보낸 오랜 인연을 더듬어 보니 지금 세 개의 장면이 선하게 떠오른다. 그도 나도 젊었던 시절의 어느 날, 그도 나도 존경했던 무산 오현 스님을 보내던 날, 근래에 설악산 자락의 한 절에서 만났던 날 등이 그것이다.

  나는 시인이 소월시문학상을 받았을 때 수상집에 「복원된 ‘외로운 버러지 한 마리’의 시학」이라는 제목의 시인론을 쓴 적이 있는데 그 글에서 처음 만났을 때의 인상을 풀어놓은 적이 있다. 이 글을 쓰기 위해 다시 읽어보았더니 제법 실감이 느껴지는 바가 있어서 그대로 인용해 본다.

  

  문태준 시인을 처음 만난 곳은 10여 년 전 춘천에서였다. 그 당시 나는 춘천에서 시보다 밥이 먼저라는 일념 하에 열심히 생업에 종사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장석남 시인이 처음 보는 젊은 시인 하나를 데리고 내려왔다. 당시 장석남 시인은 내가 생업에 치여 시를 잊어버릴까 봐 이따금 내려와 잠자는 시심(詩心)의 콧털을 뽑아놓고 가곤 했었다. 선우(善友)란, 도반(道伴)이란 그런 것이리라.

  젊은 시인은 영락없는 ‘중송아지’ 같았다. 눈은 송아지처럼 맑았고, 몸은 어른 소처럼 튼실해 보였다. 나는 단박에 그가 어렸을 때 소꼴 좀 베고 다녔겠다는 걸 알아챌 수 있었다. 그는 예상대로 말없이 눈을 꿈벅거리며 주로 얘기를 듣기만 했다. 그날 밤, 우리들은 어느 골짜기로 들어가 그냥 뜻 없이 새벽까지 잘 놀았다. 미끄럼을 타던 결빙의 길과 초승달 아래 서성였던 절 마당이 떠오른다.

  뜻 없이 잘 놀던 시절은 그 이후에도 간간히 이어졌다. 그는 그가 형이라 부르는 우리 연배 시인들의 술자리에 늘 참석하는 멤버였다. 그는 여전히 눈을 꿈벅거리며 얘기를 듣는 쪽이었으나, 이따금 곰살맞은 이야기를 툭 던져 가라앉는 분위기를 순식간에 업시키는 재주도 보여주곤 했다.

  한번은 예의 ‘뜻 없는 모임’의 술자리에서 그의 춤을 본 적도 있다. 어쩌다 분위기가 업되어 하나, 둘 자리에서 일어나 춤을 추게 되었는데 그도 엉거주춤 일어섰다. 그 어깨춤이라니! 그는 몸은 가만히 있고, 어깨만으로 음악을 타는 곰살맞은 춤의 진경을 보여주었다. 이성복 시인의 표현대로 그는 “늙은 아이 같고, 아이 늙은이”(시집 『맨발』 추천사) 같았다.

   

  그가 이 상을 받았을 때가 2006년이니 시집 『수런거리는 뒤란』(2000)과 『맨발』(2004)을 펴내고 세 번째 시집 『가재미』(2006) 출간을 막 앞두고 있을 무렵이다. 이 두 권의 시집에서 섬을 다룬 시들 중 한 편이다.

      

  숫돌에 낫을 갈듯 오가는 저 파도의 날은 넘어버렸다

 

  파도야 종을 치듯 하지만 내 귀는 할망구 발톱만큼 두터워져

 

  가끔 두 근어치의 구름만 눈 안에 얹힐 따름이다

 

  섬, 거적문 안에 앉아 머리카락도 기르고 손톱도 길러

  쓸쓸한 생각들이 삼신메를 먹고 생각을 낳아 기르는

  그 胎生의 과정을 지켜보면 생각의 창도 관대해진다는 것

 

  섬, 불탄 집에 들어가 불길 지피던 예전의 바람을 보는 자는 섬에 닿지 못할 것이다

 

  저 번잡한 새들은 밤새 울어도 섬을 유혹하진 못할 것이다 

- 「섬에서 며칠」(『수런거리는 뒤란』, 2000)

 

  “못할 것이다”라는 종결어미의 반복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시는 일종의 결의, 결기가 도드라지는 작품이다. 시인은 “숫돌에 낫을 갈 듯 오가는” “종을 치듯”하는 파도를 상대하며 “가끔 두 근어치의 구름만 눈 안에 얹힐 따름이다”라고 도인처럼 말한다. 그가 섬 안에서 파도를 상대하며 그려내는 세계는 독특하다. 수행자 같기도 하고, 샤먼 같기도 한 자세를 통해 궁극적으로 “생각의 창”을 “관대”하게 만든다는 것. 그러므로 이제 “불탄 집에 들어가 불길 지피던 예전의 바람”이나 “저 번잡한 새들”은 섬을 유혹하지 못한다. 아니다. “못할 것이다”를 반복하는 것을 보면 ‘그렇게 만들 것이다’라는, 미래를 향한 결기를 드러낸다.

  그렇다. 돌이켜 보니 1970년인 시인은 1965년생인 나를 비롯한 우리 연배의 시인들과 어울려 다녀도 큰 미동이 없었다. 이성복 시인이 그에게서 “늙은 아이 같고, 아이 늙은이”같은 모습을 본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보통 그 연배 때는 파도와 정면으로 맞서거나, 없는 ‘유혹’도 만들어서 ‘섬’을 유혹하지 않던가. 첫 시집 이후에도 그의 시에서 끓어 넘치는 낭만이나 파토스의 세계가 좀체 보이지 않는 것은 이러한 균형 감각, 중심 잡기가 있어서 가능했을 것이다. 아래 시는 두번 째 시집 『맨발』에 수록된 작품이다.

   

  저녁에

  물결의 혀를 빌려 조금씩 고운 모래톱을 바깥으로 밀어내놓은 작은 섬을 바라본다

  외부에서 보는 섬은

  새뜰로 가는 길에 있던 돌비석이 들려주는 옛날 이야기 같기도 하고

  뒷마당에서 시득시득 말라가다 천천히 무너져내리는 나뭇동 같기도 한데

  저녁에

  조금씩 바깥으로 흘러보내는 것들을 보는 일은 참으로 슬픈 일이다

- 「저녁에 섬을 보다」( 『맨발』, 2004)

 

  이 작품에서 시인은 바깥에서 보는 섬을 묘사한다. “외부에서 보는 섬”은 앞서 살펴본 “섬에서 며칠”과는 확연히 다르다. 안에 있을 때는 그만의 방식으로 파도와 맞섰지만, 바깥에서 바라본 섬은 “돌비석이 들려주는 옛날 이야기” 같기도 하고, “천천히 무너져내리는 나뭇동” 같기도 하다. 이 시에서 중요한 것은 그것을 바라보며 “참으로 슬픈 일”이라고 노래하는 시인의 마음이다. 범박하게 표현하면 앞의 시는 ‘내강(內剛)’이요, 뒤의 시는 ‘대비(大悲)’다. 이러한 내강에서 오는 균형 잡기, 중심 잡기와 대자에서 오는 연민, 슬픔이 이후 그의 시를 지배하게 될 것임을 이 시들은 예비하고 있다.

  두번 째 장면은, 그도 나도 존경했던 무산 오현 스님을 보내던 날의 모습이다. 시인은 설악산 신흥사에서 영결식이 끝나고 스님의 법구를 일주문까지 이운할 때 만장을 들고 이 장엄한 이운 행렬에 동참했다. 스님의 살아생전 곁에서 스님을 시봉했던 나는 반쯤 정신줄을 놓고 있었는데 문태준 시인은 마치 자신의 의무인 듯 만장을 들고 이운 행렬을 따라갔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나이를 떠나 “아, 이 친구는 삶의 질서가 있고, 시작과 끝을 아는 드문 친구”라는 생각을 했다. 이는 부처님께서도 자주 강조했던 가르침이다. 이러한 행동이 선험적이든, 그가 오래 근무해 온 직장, 즉 불교 방송국에서의 공부를 통한 체득에서 온 것이든 나에게는 참으로 비범하게 다가왔다. 이야기가 나온 김에 시인이 “무산 오현스님께”라는 부제를 붙인 시를 음미해보자.

    

  백담사 계곡에서

  흰 반석을 보니

 

  한 철에는 물 아래 눈 감고

  한 철에는 물 위에 눈 뜨고

 

  쏟아져 흐르는 때에

  얼고 마르는 때에

 

  앉아만 있으니

 

  구름은 가버리고

  또 생겨나도

 

  고요뿐

 

  흰 뼈만 남은

  고요뿐

- 「흰 반석 ㅡ 무산 오현 스님께」( 『내가 사모하는 일에 무슨 끝이 있나요』, 2018)

 

  위의 작품은 오현 스님이 쓴 다음과 같은 시를 차용해 쓴 작품이다. 비교해 음미할 만하다.

    

  외설악 천불동 계곡을

  좋다는 말 하지 말라

 

  거기 반석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다가

 

  흐르는 반석 밑으로

  물소리나 들을 일을……

- 「무설설 3」(조오현문학전집 『적멸을 위하여』, 2012)

   

  오현 스님의 시에서는 삶의 무상함을 봐버린 수행자가 온갖 번다함을 버리고 무념무상의 경지 속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비치고, 문태준의 시에서는 그 끝에서 “흰 뼈만 남은 / 고요”를 낚아 올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오현 스님께 드린다는 부제가 붙어 있는 것으로 보아 이 시에서의 고요는 오현 스님의 모습을 그린 것이거나, 나의 현재 모습을 그려 오현 스님께 바친 것이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외설악 천불동 계곡”에 있는 반석이든 “백담사 계곡”에 있는 반석이든 이들 시에서 장소성은 그리 중요치 않다. 눈여겨볼 것은 수행과 시 쓰기를 겸비하셨던 오현 스님의 시와, 한참 아래 연배의 문태준의 시가 참으로 자연스럽게 어울리며 화답을 이루는 경지이다. 다시 돌아가 섬을 다룬 시를 더 감상해보자.

 

  조용하여라.

  저 가슴

  꽃 그림자는 물속에 내렸다

  누구도 캐내지 않는 바위처럼

  두 손을

  한가운데에

  모으고

  누구든

  외로워라

  매양

  사랑을 묵상하는

  저 섬은

- 「섬」(『먼 곳』 , 2012)

     

  깊은 해저에서 새벽하늘이 수면으로 떠올라요

  별들은 하나둘 소라껍데기 속에 숨어요

 

  사람들이 각자의 집으로 모두 돌아간 흰 해변엔 파도치는 푸른 소리뿐

 

​  나는 밤새 뒤척이고 다섯 번 마음을 고쳐먹었어요

- 「섬」 ( 『내가 사모하는 일에 무슨 끝이 있나요』, 2018)

 

 

  시집 간행 기준으로 6년의 격차를 두고 발표된 위의 두 편의 시에서 시인은 수식 없이 ’섬‘을 오롯하게 전면에 내세운다. 앞의 시에서 섬은 “매양 / 사랑을 묵상”하는 존재로, 뒤의 시에서 섬은 “밤새 뒤척이고 다섯 번 마음을 고쳐”먹는 곳으로 등장한다. 가슴으로 비유된 앞의 시에서의 섬은 순결함, 지극함, 순수한 외로움 등을 포괄하는 존재이다. 뒤의 시에서 섬은 “나”가 화자인 시인인지, 아니면 의인화된 섬 자체인지는 불분명하지만. 밤새 뒤척이면서 다섯 번 마음을 고쳐먹는 ‘미혹(迷惑)’ 속의 존재이다. 이번에 발표한 신작시 「돌」과 같이 이 계열의 작품은 “~요”의 종결어미로 끝나면서 연시(戀詩)풍의 형식과 어조를 지니는 공통점이 있다. 이 같은 형식과 어조는 일찍이 앞서 인용한 이성복이 보여주었던 세계의 연장선상에 있기도 하다.

  앞의 시에서 순일함을, 뒤의 시에서 설렘을 느끼게 되는 것은 각각의 시가 실린 시집의 풍광과도 관련이 있다. 확연하게 차별되는 것은 아니지만, 시인은 다섯 번째 시집 『먼 곳』에 이르러 앞의 시가 보여주는 것처럼 한 행 속에 한 두 시어만 담는 행갈이를 통해 형식과 리듬의 변화를 꾀하는 시들을 여러 편 선보였다. 이러한 변화는 그의 시의 특징 중 하나였던 서사가 약화되고, 순정한 마음의 상태가 강화되는 양상을 가져왔다. 이러한 변화로 그의 시는 보다 섬세해지고, 미묘한 떨림에 반응하게 되었다. 초기 시인 「섬에서 며칠」 「저녁에 섬을 보다」와 위의 두 편의 시를 비교해보면 이러한 변화가 확연히 느껴진다.

  마지막 장면, 근래에 설악산 자락의 한 절에서 만났던 날도 오래 기억에 남는다. 시인은 이날 설악산 자락의 한 절에 머물고 계신 스님 한 분을 인터뷰하러 방송국 직원들을 데리고 제주도에서 건너왔는데 나도 마침 동행하게 되었다. 오랜만에 만났는데 그의 얼굴이나 몸에서 이전에는 느껴보지 못했던, 백석시에 등장하는 깨끗하고 맑다는 의미의 해정함이 느껴졌다. 이 해정함의 정체가 무엇인지, 그 근인(根因)이 무엇인지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탈속(脫俗)한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어떤 맑음과, 동심(童心)으로 돌아간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해맑음이 공존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나는 시인이 2018년에 펴낸 일곱 번째 시집 『내가 사모하는 일에 무슨 끝이 있나요』의 해설을 쓴 적이 있는데, 시인은 이 시집에 「동시 세 편」이란 시를 실어서 그의 시에 나타난 동시적 세계의 의미를 분석한 바 있기 때문에 더욱 그러한 느낌에 빠져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이번에 발표하는 신작시들과 근작시들을 받아보니 당시 내가 받았던 느낌이 크게 틀린 것이 아니었음을 알게 되었고, 그 해맑음의 정체와 근인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섬’이란 부제가 붙은 근작시 「물결 ㅡ 섬」은 다음과 같이 노래한다.

    

  섬을 데려올 수 없으니 섬에게 매일 가는 거예요

  해녀인 내 어머니는

  우는 구덕을 흔들어주려고

 

  좌불안석의 물결을 어르는

  큰 물결 포대기를 두른 어머니

- 「물결-섬」

   

  시인은 “섬을 데려올 수 없으니” 내가 “섬에게 매일” 간다고 말한다. ‘구덕’은 ‘바구니’의 제주도 사투리로, 시인이 섬에게 매일 가는 것이 어린아이로 돌아가기 위함이라는 알 수 있게 해준다. 이 “우는 구덕”의 이미지는 다시 “좌불안석의 물결”을 낳고, “우는 구덕을 흔들어”주며 달래는 어머니는 “큰 물결 포대기를 두른 어머니”로 전이된다. “섬을 데려올 수 없으니 섬에게 매일 가는 거예요”라는 구절은 애틋하고도 슬프게 다가온다. 내가 한없이 작아져 가고 싶은 세계가 거기에 있다. 신작시 「손거울」에서도 드러나 있듯 시인에게 유년기의 집은, “까맣고 서글”픈 세계이다. 시인은 첫 시집부터 오랫동안 이 ‘까맣고 서글픈 세계’를 온전히 그려내는 데 천착해 왔는데 그 시작과 끝에 아버지, 어머니가 서 있다. 특히 그의 시에서 어머니는 “큰 물결 포대기를 두른 어머니”로 영원(永遠)하다.

  이처럼 문태준 시인이 그려내고 있는 섬의 연대기는 그의 시인으로서의 성장과 변화를 잘 보여준다. 초입에서 말한 바 있듯이 이번에 발표한 시들의 소재가 된 물결이나 돌, 어머니 등도 연대기를 쓸 수 있을 만큼 시인이 오랫동안 궁굴려온 화두이다.

  평론가 김주연은 미당문학상 수상 작품집 작품 해설(2005)에서 “젊은 시인 문태준의 출현은 우리 시의 새로운 쇄신”이라고 평가했고, 시집 『그늘의 발달』(2008) 해설에서 “의뭉스러운, 느린 걸음의 노래”(해설 제목)로 그의 시 세계를 함축했다. 평론가 김인환은 시집 『먼 곳』(2012) 해설에서 “어떤 시를 고르더라도 모두 교과서에 실어도 좋을 만큼 다듬어져 있다는 것이 문태준 시의 특징”이라며 해설의 끝에 이르러 “바라건대, 문태준이 방황의 끝까지 갈 수 있기를, 그의 언어가 마케팅 사회에 대한 위대한 거절이 되기를, 그리고 그의 노래가 이 땅의 대중에게 나날의 메마름을 견뎌내게 하는 영혼의 강장제가 되기를” 기대했다. 이 글을 쓰면서 두 원로 평론가의 평가를 다시 읽어보니 여기에 더하고 뺄 것이 없겠다 싶어 두 분의 평가와 기대로 글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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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섭  l 

1990년 《현대시세계》 신인상(시), 2000년 《문화일보》 신춘문예(평론) 당선. 시집 『강릉, 프라하, 함흥』 『숨결』 『가도 가도 서쪽인 당신』 『터미널』 『검은 돌을 삼키다』 등이 있음. 〈현대불교문학상〉 〈유심작품상〉 〈박재삼문학상〉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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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7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