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달의 시인] 박정대
신작시: 흰 눈에게 / 리스본 무용총서 / 시
자선시: 대관령 밤의 음악제 / 1023년 리스본 무용총서
[시인론] 신동옥 “스꼬라 꼰칫쨔 례따, 예따 ― 여름은 곧 끝날 거야, 이 여름이”
신작시
흰 눈에게
이렇게
하얗고 먼 그리움은
나의 것이
아니었으니
― 박정대, 「흰 눈에게」
눈의 이름
"샹은 목구멍으로 솟구치는 피를 맛보고서야 비로소 자기가 죽을 것임을 알았다"로 시작되어, "언젠가 후디에가 제게 말하길, 펭은 사람이 죽는 방법을 수없이 많이 알고 있다고 했습니다, 아마도 그건 사실일지 모릅니다, 아마도 죽는 방법은 수없이 많을 것입니다, 하지만 제가 확신하는 건, 사는 방법은 단 하나만 존재한다는 것입니다"로 끝나는 안토니오 가리도의 『시체 읽는 남자』는 확실히 이자벨 라캉이 쓴 『용의 입맞춤』과는 대상에 대한 접근 방법이 다른 소설이다
『용의 입맞춤』이 시대적 사회 계급 문제를 남녀 간의 애틋한 사랑 문제로 접근했다면 『시체 읽는 남자』는 죽고 사는 인간의 본질적 문제를 송나라 당시의 법의학적 차원에서 접근한, 추리소설 형식을 띤 작품이다
작가의 말에서 안토니오 가리도는 이런 말도 한다, 흥미롭다
“아직도 나는 한 손에 진한 커피를, 다른 한 손에는 종이 한 묶음을 들고서 내 사무실에 앉았던 날들을 기억합니다. 그 당시 나는 두 가지만 확실히 해두었습니다. 하나는 작품이 나뿐만 아니라 독자들에게도 감동을 선사해야 한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내가 써야만 할 주제를 발견하지 못하면 결코 글을 시작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이상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이 작품의 내용을 대략 구상한 후 처했던 첫 번째 어려움은 등장인물의 이름이었습니다, 중국어는 매우 복잡한 언어입니다. 대부분의 단어는 단음절이며, 하나의 음절은 다섯 개의 서로 다른 성조로 발음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이제 송, 당, 밍, 펭, 강, 동, 쿵, 퐁, 콩과 같은 성을 지닌 등장인물들이 모두 소설에 나온다고 생각해봅시다. 아마 세 페이지도 못가서 독자들은 심한 두통을 느끼면서 책을 덮게 될 것입니다”
시인이든 소설가든, 작품을 구상할 때 많은 지점에서 비슷한 고민을 한다, 현실을 통과하는 많은 예술가들의 고민도 이 지점에 상당히 맞닿아 있을 것이다
날이 흐리다, 풀들은 눕고 시 읽기 좋은 날이다
야경꾼들
램브란트의 <The Night Watch>를 상상해도 좋고 세라 워터스의 『나이트 워치』를 상상해도 좋다, 둘 다 상상하지 않아도 좋다, 인간은 드러냄과 감춤의 완벽한 위장을 통해 자신의 이미지를 형성하고, 그 이미지를 통해 대사회적 자아를 표출한다, 대사회적으로 표방된 어떤 개인의 이미지에는 아무리 감추려 해도 어쩔 수 없이 드러나는 한 개인의 희로애락이 담겨 있다, 프로이트는 그것을 정신분석의 대상으로 삼았으나 니체는 그것을 뛰어넘으려 끊임없이 자신을 복제하거나 변형하고 마치 타인처럼 묘사했다, 야경꾼들 사이에서는 흔히 있는 일이었다
새벽이면 스무 량 정도를 단 열차가 리스본 역사에 와서 정차한다, 아침이 되면 저 열차를 타고 나는 피레네산맥을 넘거나 한없이 펼쳐진 평원을 지나 그라나다나 이스파한쯤에 당도해 있을 것이다, 알람브라 외벽의 해자를 산책할 것인가, 햇살 가득한 이스파한의 뽕나무 가로수 길을 지나 이맘 광장 쪽으로 걸어갈 것인가, 아니면 모스크바에서 시베리아 횡단 열차로 갈아타고 블라디보스토크를 거쳐 청진까지 내리 달려갈 것인가, 야경꾼들 사이에는 흔히 있는 고민이다
열차 시간에 맞춰 정거장에 도착해야 한다, 아니면 저 바람 속을 홀로 걸어서 가야 한다, 젊어서 죽은 영혼이 나에게 말한다
나는 나의 길을 간다!
그러니 너는 너의 길을 가라!
젊어서 죽은 영혼한테 나는 말한다
우리가 한 모든 말은 저 허공으로 흩어질 것이다, 흩어졌던 말들은 다시 모여 눈 속을 여행하는 오랑캐의 말로 다시 태어나리라
히이힝 말의 울음 소리 들리는 여기는 리스본의 아침이다
야경꾼들은 고요히 잠들라
그 후로도 오랫동안
오래전 티베트 영화제에 갔었다
티베트 독립을 위한, 일종의 독립 자금 확보를 위한 행사였을 것이다
티베트 독립을 열렬히 지지하는 어느 기자가 나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티베트 독립을 지지하나요? 지지한다면 그 이유는 뭔가요?“
"저는 시를 쓰는 사람으로서, 티베트의 언어와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사라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영화제가 끝난 후, 명동성당 앞 2층에 있던 식당 포탈라로 갔다(지금도 있나?)
나중에 알았지만 명동 포탈라는 티베트 독립군들의 은밀한 접선 장소였다(지금쯤 중국 공안들은 이 사실을 알고 있으리라)
나는 그 이후 한 동안 티베트 독립군 복색을 하고 돌아 다녔다
중국 공안을 만나면 날릴, 이단 옆차기를 장착하고
그 후로도 오랫동안
리스본 무용총서
시
1523년 리스본의 어느 길모퉁이에 쭈그리고 앉아 겨울 햇볕을 쬐며 나는 『무경총요』를 집필하고 있었노라
군사와 전술을 다루는 책이었는데 지나가던 걸인이 다가와 물었노라
"그대가 지금 쓰고 있는 시는 무엇에 관한 것인가?“
나는 이후에 『무경총요』를 『여진의 용맹과 긍지』로 바꾸고 계속 써나갔노라
어느 날 행인이 나에게 말했노라
"조국이 없는 자는 희망도 없다, 그대는 어찌하여 희망도 없는 글쓰기를 계속하는가?“
나는 이후 『여진의 용맹과 긍지』를 『리스본 무용총서』로 바꾸어 지금까지 계속 써오고 있다
집필본의 일부를 최근에 『눈 속을 여행하는 오랑캐의 말』이라는 제목으로 출간하였다, 사람들은 그 책을 읽어보지도 않고 좋다고 말한다, 왜 그럴까?
내가 ‘오랑캐 이 강’이라는 이름으로 그 책을 냈기 때문이다
일곱 개의 언덕으로 이루어진 리스본에 밤이 찾아와
나는 밤의 계단을 밟고 고요히 나의 고독 속으로 입성하였다, 젊어서 죽은 혼과 한참을 대화하다 '아, 이곳은 어디인가? 나와 이야기하는 그대는 누구인가?' 되묻기도 하였다
리스본을 출발한 열차는 파리며 이스파한이며 저 멀리 극동의 신의주며 함흥까지도 갈 수 있다는데, 일곱 개의 언덕으로 이루어진 리스본에 밤이 찾아와 나는 그중 한 언덕을 오르며, '아, 몸도 마음도 피곤하여 나는 이제 돌아가련다, 막달레나 마리아여, 내 꽁꽁 언 발을 따스한 물에 씻겨줄 수 있겠느냐?' 묻기도 하였다
시가 인류를 구원한다고 당신은 말했다, 인류는 구원받을 가치가 있는가? 인류를 구원해서 도대체 뭘 하겠단 말인가? 인류는 그냥 망하게 둬라!
빌어먹을 사랑 따위는 삼랑진과 저기 알제리의 오랑 사이에 대충 던져두어라, 젊어서 죽은 혼은 자꾸만 나에게 그렇게 속삭인다
하나의 언덕을 올라와 밤의 계단을 지나 생의 밀정처럼 또 하나의 리스본으로 스며든다, 커피 한 잔을 마신다, 날개가 부러진 커피 잔에는 나를 따라온 까몽이스 광장의 어둠이 담겨 있다
저 커피 잔에도 옛날에는 날개가 달려 있었다
한밤의 무용총서, 이절에서의 눈송이 낚시
갈 곳을 잃은 영혼들이 참 많더라
인류를 대신하여 울고 추운 거리를 떠도는 건 시인인 줄 알았는데 추운 거리를 떠도는 인민들이 너무 많더라
어쩌다 국경의 남쪽은 이렇게 되었느냐
슬픔이 슬픔을 주머니 속에 넣고 걸어가는 거리에서 바람은 여전히 차갑게 불어오더라
가수는 입을 다물고 시인은 펜을 내려놓는데 아무도 시를 쓰지 않는 시대, 아무도 더 이상 노래하지 않는 시대여
네 영혼은 끝내 문지방을 넘지 못하고 겨자씨처럼 작아져 어둡고 추운 방안에서 뒹굴고 있구나
너의 안온이 너의 불안이 되는 시대에 갈 곳을 잃은 영혼이여, 추운 거리에서 마지막 불빛이 꺼질 때까지 나는 너를 기다리나니
노래하는 입술이여, 시를 품은 따스한 심장이여, 이곳으로 오라
여기는 시의 심장들이 모여 여전히 노래하는 곳, 누군가 인류를 대신해 울고 있는 곳, 열두 개의 계절을 통과한 동방박사들이 별빛을 지나 하나의 숭고한 장소를 향해 찾아드는 곳
아직 꺼지지 않는 마지막 한 점의 불씨가 남아 있는 곳
이절에서의 눈송이 낚시
1644년 파리 무용총서
1622년에 태어난 장 바티스트 포클랭 몰리에르는 1644년에는 스물두 살이 되었다
파리의 어느 극단에서 나와 함께 작가 겸 배우로서 활동했는데, 그의 부모들에게는 경천동지할 일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극단의 이름을 <파리의 경천동지>로 정하고 배우와 단원들을 뽑았다
당시 시인 백인덕은 배우로 지원했는데, 치아 때문에 발음에 문제가 좀 있었지만 워낙 매력적인 캐릭터라, <파리의 경천동지>에 꼭 필요한 배우라고 나는 다른 관계자들을 설득했다
더군다나 그가 시인임을 아는 사람이 다섯 명이나 되는, 그는 파리의 유명한 시인이었다
우리는 파리의 고아들이었으며 나아가 예술의 고아들이었다
우리의 삶의 모토는 참으로 단순했다
우리는 우리의 삶을 살아간다
삶이 우리를 따라오리라
그렇지 않은 삶은 우리의 삶이 아니다
시
촛불을 켜고 바람의 모습을 본다
쌀랑쌀랑 바람이 불었다
세상을 끄고 조용히 누워
창밖으로 떨어지는 눈발의 숫자를 헤아렸다
간혹 다 지키지 못한 약속이 있었다
잠의 안팎에서 바람은 촛불의 허리를 흔들었다
멀리 있는 것들은 멀리 있어서
다행스럽게 빛났다
가까이 있는 생활은 추웠으나
촛불 한 자루로
이 겨울을 통과할 수 있을 것이다
감자 몇 알과 담배가 여전히 남아 있으니
밤새 싸락눈은 내려와 어둠을 덮어 가느니
아침이 오면 이팝나무 위로도
눈꽃 가득 피어나겠다
쌀랑쌀랑 바람이 분다
아직 잠들지 않은 새벽의 이마 위로도
눈은 내린다
자선시
대관령 밤의 음악제
ㅡ 옛날은 눈이 내리는 밤이었다
예술가는 일종의 사회적 파업 상태에 있다, 말라르메는 말한다
손에는 담배를, 탁자에는 찻잔을
그 외 나머지는 모두 우리의 내면에 있다(1)
밤새 무서록 무서록 눈이 내리고 시니피앙, 누군가 웃었다
밤새 눈은 외딴 곳으로만 내리고
밤새 눈은 자꾸만 옛날처럼 내리고
옛날은 눈이 내리는 밤이었다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는 없다, 다만 시가 있을 뿐이다
김사량의 <빛 속에>는 1939년 일본어로 발표되었고 <칠현금>은 1949년 북한에서 출간되었다
이태준은 1933년에 29세로 ‘구인회’에 참여하고 1940년에 『문장강화』를 1941년에 『무서록』을 간행한다
김사량은 종군작가단의 일원으로 한국전쟁에 참가하여 1950년 10월 원주 부근에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1946년 38선을 넘어 북으로 간 이태준은 언제 사망했는지 알 수 없다
다큐멘터리를 찍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대상을 통해 나의 경험, 나의 기억을 재현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기록하는 자의 열정이 예술을 창조한다
모든 영화의 가장 아름다운 장면은 엔딩 크레디트겠지만 모든 시의 가장 아름다운 구절은 그 어디에도 없다
그것이 시의 가장 아름다운 본질이다
시는 어느 날은 인류를 위한 감정적 광대로서 존재한다
어느 날은 그것이 시의 가장 아름다운 복무이기도 하다
『무서록』에 나오는 <만주기행>을 읽는 밤이다
만주벌판으로 이주해간 조선인들은 어떡하든 밭을 논으로 만들려고 봇도랑을 파고 만인(滿人)들은 자신의 밭이 망가질까봐 봇도랑을 메운다
생존을 위한 쟁투의 일면이다
산문을 보면 나는 자꾸만 행갈이를 하고 봇도랑을 내며 시로 바꾸려 한다
이것은 독립적 영혼의 본질인가
삶의 쟁투를 예술적 아름다움으로 치환하려는 부단한 시도인가
부단한 시도와 무한의 실패가 끝내 한 줄의 문장으로 남으리니
얼음장같이 차가운 허공을 미끄러지며 떠돌다 끝내 겨울 벌판으로 돌아와 우는 까마귀여
나는 이제사 겨우 한 줄의 문장을 받아 적는다
생각하면, 바다는 얼어 파도 소리조차 적막하던 ‘우라지오스토그’의 겨울밤(3)
평양에서 출발하는 봉천행 야간열차를 타고 가며 그는 어떻게 문장을 강화했을까
과연 문장은 강철처럼 강화되고 더 단단해졌을까
이토록 깊은 밤이면 나는 야간열차를 타고 어디로 가고 싶은 것일까
덜컹거리며 끝내 어느 생에 닿고 싶은 것일까
밤새도록 눈발을 헤치며 백무선 열차는 달려가는데
밤새도록 눈이 내려 무서록이 씌어지는 밤이다
순서도 없이 쏟아지는 이것을 무어라 부르랴
누군가는 이곳에서 아무도 읽지 않을 시를 쓰고
누군가는 그곳에서 시를 읽다가 잠들 테지만
누군가는 저곳에서 사랑의 재구성처럼 흩어지나니
눈이 내린다, 너의 이름은 무엇이냐
눈이 내리는 밤은 모두 옛날이었다
*
(1) 빅토르 최(2)의 말이다
(2) 빅토르 최(9) ― 구소련의 페레스트로이카 시대, 대중의 인기를 사로잡은 언더 그라운드 록 그룹이 있었다
특히 그룹의 보컬인 빅토르 최에 대한 인기가 뜨거웠는데 그가 세상을 떠난 지 30년이 지난 지금도 그의 음악은 여전히 높은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그는 좌절된, 그러나 우리가 집요하게 추구하는 희망을 노래한 선구자였다
오만불손하고 고약한 성미에 어둡기까지 한(전혀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빅토르 최(1962~1990)는 독특한 음색의 한국계 러시아 록 가수다
가공되지 않은 가사(내면적 리얼리즘을 바탕으로 한 상징적인 가사였다)를 쓰던 그는 선배 가수 기타리스트 싱어 블라디미르 비소츠키(1938~1980)나 이소룡을 추앙하며 짐짓 그 행동이나 몸짓을 따라 하기도 했다
빅토르 최는 구소련 말기의 유명 록그룹 리더였으나 페레스트로이카가 이뤄질 때까지 오래 살진 못했다
그럼에도 빅토르 최와 그의 노래는 오늘날까지도 굉장한 인기를 누리고 있다
러시아 록 음악은 1960년대에 맨 처음 태동했으나 이후로도 20년간 대학생이 아닌 이상 러시아에서 록 그룹을 결성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대학생들이 음악을 할 경우 두 가지 선택의 길이 있는데 하나는 정부의 통제를 받는 제도권 아티스트가 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언더그라운드 뮤지션으로 활동 하는 것이었다
전자의 경우 보컬 파트 및 악기 파트 일체로 이루어진 그룹으로서 모든 곡에 대해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했다
그리고 후자는 카세트테이프에 녹음한 음반을 자가 제작하는 경우였다
따라서 당국이 정한 비속어 사용 금지 및 복장 제한 등의 규정 그리고(일부 뮤지션들이 지나치게 서구권 음악의 영향을 받고 있는 만큼) 애국주의 성향을 지녀야 한다는 규칙에 저촉되는 경우라면 언더그라운드 뮤지션으로 활동하는 게 필수적이었다
러시아에서 아티스트는 타의 귀감이 돼야 하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서구권 음악이 허용된 팝그룹이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이에 언더그라운드 록 음악 뮤지션들은 제도권을 거부하는 여느 아티스트와 마찬가지로 아마추어라는 호칭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빅토르 최도 그런 뮤지션들 중 한 명이었다
한국계 엔지니어인 아버지와 교사인 어머니 사이에서 외아들로 태어난 빅토르 최는 1970년대에 미술 학교에서 퇴학당한 후 목각기술을 익히기 시작하면서 초창기 곡들을 써나갔다
아직 재학 중이던 시절 빅토르 최는 (안톤 체홉의 단편 <6호실>에서 정신병동을 의미했던 동명의 병실) ‘6호실’이란 이름으로 맨 처음 그룹을 결성한다
1981년에는 ‘가린의 살인광선’이란 이름으로 새로운 그룹을 만들었는데 1982년 이 그룹의 이름은 ‘영화관’을 의미하는 독일어 ‘키노(Kino)'로 확정된다
여타의 비제도권 아티스트들과 마찬가지로 빅토르 최 또한 생업을 병행해야 했는데 이에 1982년 상황에선 마리안나 최의 말마따나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유명인이었음에도” 보일러 기사 일을 계속한다(4)
그해 여름, 그룹 키노는 (수록곡 전체의 재생 시간이 45분이란 이유로) <45>란 타이틀의 첫 앨범을 발표한다
이로써 처음으로 인기 그룹의 반열에 오른 키노는 모스크바와 레닌그라드 무대에도 서기 시작하고 홈 콘서트도 개최한다
이 음반 작업에서 키노는 보리스 그레벤시코프의 저 유명한 그룹 아쿠아리움의 지원 사격을 받았는데 보리스는 콘서트 후 교외 기차 안에서 다가와 말을 건 빅토르 최에게 그의 노래를 들었던 당시의 소감을 전했다
“그 자체가 좋고, 쓸모까지 있는 노래를 들으면 남보다 먼저 고대의 유물을 채굴한 듯한 기분이 든다, 오늘 내가 그랬다”(5)
이후 빅토르 최의 인기는 점점 높아졌다
사람들은 몰래 키노의 음악을 듣기도 하고 홈 콘서트 같은 자리에서 이들의 음악을 접하기도 했는데 특히 레닌그라드 록 클럽 같은 무대를 통해 키노의 음악을 들었다
1981년에 생긴 록 클럽은 구소련 시대 록 음악의 발달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 곳이었다
영화 분야에서 본격적으로 개혁의 붐이 일던 1986년에는 빅토르 최도 영화계에 발을 들인다
특히 맨 처음 그를 영화계로 끌어들인 건 당시 학생 감독이었던 라시드 누그마노프 였다
라시드 누그마노프는 카자흐스탄 알마아타 출생이다
모스크바 8진이었던 김종훈과 양원식, 한대용은 나중에 최국인이 거주하는 따뜻한 지방으로 이주 했는데 그곳이 바로 알마티라고도 불리는 알마아타이다
알마아타가 카자흐스탄 남동부 쪽이라면 크질오르다는 남서부 쪽인데 빅토르 최는 어린 시절 크질오르다에서 살았던 적이 있다
또한 크질오르다에는 말년에 고려극장의 야간수위를 했던 홍범도 장군 거리와 묘역이 있다
누그마노프는 모스크바 영화 학교(VGIK) 재학 중 제작한 단편 영화에서 빅토르 최를 등장시켰다(6)
젊은 부부와 그 친구들이 빅토르 최의 콘서트에 가길 원한다는 내용의 영화였다
이후 빅토르 최에게는 출연 섭외가 쇄도했고 같은 해 그는 다수의 영화 촬영에 참여한다
알렉세이 우치텔 감독도 ‘록’이란 간결한 타이틀로 언더그라운드 그룹들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제작 했는데 누그마노프 감독과 마찬가지로 보일러실에서 일하는 빅토르 최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키예프 영화학교 학생이었던 세르게이 리센코도 자신의 졸업 작품 <휴가의 끝> 촬영을 위해 빅토르 최와 그룹 키노를 섭외했는데 키노의 여러 곡을 일종의 장편 뮤직비디오처럼 담아낸 저예산 단편 영화였다
하지만 당시 빅토르 최를 촬영한다는 것은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작업이었다
빅토르 최는 검열에서 우선순위에 놓인 인물이었고 누그마노프의 제작에 참여한 사람들도 경찰에 체포돼 수차례 구금되는 신세가 됐기 때문이다
누그마노프 본인 또한 레닌그라드 콤소몰(구소련의 공산주의 청년 동맹) 문화위원회에 소환돼 ㅡ 이에 수긍하진 않았지만 ㅡ “적절한 뮤지션 그룹”을 촬영하라는 권고를 받았다
리센코 역시 학위 발급이 거부됐다
하지만 이에 굴하지 않은 영화계에서는 1980년대 말 두 편의 장편 영화가 제작됐는데 먼저 누그마노프의 첫 장편 영화 <이글라(바늘)>(제작연도 1989년, 국내개봉 1999년)에서는 빅토르 최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자유분방하고 광기 어린 삶을 담아낸 이 영화는 구소련 시절 2년 만에 1,500만 관객을 동원한다
이 작품으로 빅토르 최는 1989년 <에크랑 소비에티크>지의 독자들이 뽑은 올해의 최우수주연상을 받기도 했다
이어 개봉한 세르게이 솔로비오프의 작품 <아사>는 개혁 개방 시대의 대표작으로 시대에 순응하지 않는 예술 분야의 대표적인 인사들(화가나 뮤지션)을 한데 모아 기존의 규칙과 질서를 강요하는 기성세대에 맞선 젊은 세대들의 모습을 담아냈다
이 영화에서 빅토르 최는 마지막 한 시퀀스밖에 등장하지 않음에도 실질적인 비중은 꽤 큰 편이었다
흐릿한 실루엣으로 그가 등장한 어느 초라한 식당은 곧 거대한 무대로 뒤바뀌고 빅토르 최는 군중들 앞에서 그의 히트곡 <우리는 변화를 고대한다>를 들려준다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 또한 이 곡에서 정치적 변화에 대한 민중의 의지를 읽었다고 할 만큼 페레스트로이카 시대의 비공식 주제가 같은 곡이었다(7)
우리의 마음이 변화를 요구한다!
우리의 눈이 변화를 추구한다!
우리의 웃음과 눈물 속에는, 그리고 요동치는 우리의 핏줄 속에서는
오로지 변화, 그저 변화만을 고대한다!
이렇듯 개혁과 쇄신에 대한 젊은 세대의 요구가 컸던 만큼 구소련의 개혁정책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빅토르 최는 이런 젊은이들의 요구를 대변하는 독보적인 인물이었다
<이제는 우리가 나선다>는 곡에서도 그는 이렇게 적고 있다
우리는 신시가지의 비좁은 아파트에서 태어났다
당신들이 우리에게 기워준 옷을 입고
우리는 이미 마음이 조급해진 듯하다
우리가 당신들에게 해줄 말은
이제는 우리가 나선다는 것이다
하지만 러시아 록 음악사를 연구하는 안나 제이체바의 지적처럼 빅토르 최는 개혁을 염원하는 젊은이들 사이에서 자신이 차지하는 이런 입지에 대해 다소 회의적이었다(이런 면은 혁명 시인 마야콥스키와도 비슷하다)
물론 그가 현실에 대한 암묵적인 저항과 당대의 답답한 심경을 그 누구보다도 훌륭히 노래로 소화한 건 사실이지만 <편안한 밤> 같은 노래에서는 다음과 같은 가사들이 눈에 띈다
나는 이 순간을 기다렸고, 내가 기다리던 그 순간이 찾아왔다
입을 다물던 이들은 더 이상 입을 다물지 않았고
더 이상 기대할 게 남지 않은 이들은 말 위에 올라타 전장으로 향했다
우리가 미처 따라잡을 겨를도 없이 이들은 멀리 떠났지만
잠을 청하는 이들이 있다면 부디 좋은 꿈 꾸길
편안한 밤이 되기를
사실 빅토르 최는 내면을 노래한 가수였으며 소소한 일상의 감정적 동요를 음악으로 표현해내곤 했다
<우리는 변화를 고대한다>를 포함해 그는 자신이 즐겨 노래하던 우울과 실의의 정서에서 결코 멀어진 적이 없었다
줄곧 삶의 힘겨움과 더불어 그 안에서 의미를 찾는 작업의 어려움을 노래해 온 것이다
손에는 담배를, 탁자에는 찻잔을
이것은 참으로 간단한 계획
그 외 나머지는 모두 우리의 내면에 있다
그가 28세라는 젊은 나이에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자 모스크바 도심 아르바트 거리의 한 벽은 온통 그를 추모하는 메시지로 뒤덮여 오늘날 거의 역사적 기념물에 준하는 곳이 됐다
벨라루스의 민스크, 우크라이나의 드니프로, 카자흐스탄의 알마티 역시 비슷했고 1992년부터는 그의 곡 <마지막 영웅>과 동명의 타이틀로 제작된 우치텔의 다큐멘터리를 시작으로 여섯 편의 다큐멘터리가 제작됐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그의 인기가 지금까지 지속될 수 있었던 건 라디오 전파나 온라인 조회, 길거리 버스킹, 그 외 다른 팝 가수들의 헌정 공연 등을 통해 그의 음악이 흘러나온 덕분이다
그의 곡인 <혈액형>의 경우 유튜브에서 가장 조회가 많이 된 동영상 세 편의 조회 수를 합하면 무려 2천만 뷰가 넘는다
영화 또한 그의 인기가 지속되는 데 한몫했다
유리 비코프의 영화 <바보>(2011)에서는 주인공이 부패한 시정의 간계에 훼방을 놓아 붕괴가 임박한 건물 주민들을 구하는 대목에서 빅토르 최의 <편안한 밤> 전곡이 흘러나온다
안드레이 자이세프 감독도 영화 전체를 그의 노래로 구성하는 패기를 보였다
<할일 없는 사람들>(2011)이란 제목의 이 작품에서는 그의 노래들이 오늘날 러시아의 일상과 어떻게 맞아떨어지는지 보여준다
세르게이 로반의 영화 <샤피토 쇼>(2011)의 경우 프랑스에서는 하계 시즌 동안 슬며시 개봉돼 버렸지만 러시아에서는 컬트 무비로 자리 잡았다
이 영화에서는 ‘구소련 최고의 낭만적 영웅’이라 불리던 한 인물에 대한 존경의 마음을 위트 있게 담아낸다
하지만 빅토르 최의 전설에 관심을 둔 것은 영화계만이 아니었다
그의 사후에 관련 도서들도 다수 출간됐으며 낭만주의의 표상이자 최후의 반항아, 빅토르 최의 모습을 담은 조각상도 여럿이다
2009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세워진 그의 조각상 외에도 2018년에는 영화가 촬영된 알마티에서 <이글라>에 등장하는 떠돌이 자객 모로의 모습으로 그의 조각상이 세워졌다
뿐만 아니라 러시아 도처에 그의 이름을 딴 거리나 공원이 존재한다
2018년 말 프랑스에서 개봉한 영화 <레토(여름)>(8)에서 키릴 세레브렌니코프 감독이 빅토르 최의 초창기 시절에 대해 짚어보는 한편(나는 이 영화에서 빅토르 최가 기타를 메고 숲을 지나오던 장면이 가장 좋았다), 그의 사망 1년 후 세상을 뜬 언더그라운드 록 가수 마이크 나우멘코와의 만남에 대해 다룬 이유는 단지 과거 속에 잊힌 한 인물을 되살리기 위함만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모두에게 친숙하고 모두가 아끼는 이 인물이 오늘날 가지는 의미를 재해석하려던 의도가 더 컸다
우울하면서도(아니다, 그는 상징적이고도 시적인 lyric으로 쓰여진 노래를 묵직한 저음으로 아름답게 노래한다) 변화에 대한 열망을 담은 그의 노래는 오늘날 또다시 우리의 마음속을 예리하게 파고든다
감미로우면서도 서글픈 순간으로 영화를 마무리한 것 또한 감독 나름의 의도가 있다
지난 역사를 돌이켜보면 빅토르 최의 세대가 꿈꾸던 혁명은 미완의 상태이기 때문이다
빅토르 최는 이제 막 변화의 조짐이 이는 세상 앞에서 무너진 희망을 상징하는 인물이자 자기 안으로 파고 들고자 하는 자유에 대한 채워지지 않는 욕구를 표상한다
손에는 담배를, 탁자에는 찻잔을
그 외 나머지는 모두 우리의 내면에 있다
(3) 이태준, <고완(古翫)>, ‘우라지오스토그’는 ‘블라디보스토크’
(4), (5) Alexandre Jitinski & Marianna Tsoï, 『빅토르 최의 시와 기억, 그리고 관련 기록들 Viktor Tsoï. Poèmes, souvenirs, documents(러시아어)』, Novy Gelikon, SaintPétersbourg, 1991
(6) Rchid Nougmanov, ‘야하 Yahha’, Yahha.com 사이트 인터뷰(러시아어)
(7) Lev Gankin, ‘나는 변화를 원한다! ㅡ 키노의 노래는 어떻게 러시아에서 정치적 슬로건이 됐으며, 빅토르 최는 왜 이를 원하지 않았나?’(러시아어), <Meduza>, 2017년 6월 20일, https://meduza.io
(8) 영화 <레토>는 감독의 두 번째 프랑스 개봉작으로, 앞서 2016년 <사제>가 프랑스에서 개봉된 바 있다, 하지만 키릴 세레브렌니코프 감독이 영화계에 입문한 건 199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며 <레토>는 2001년 칸 영화제에서 최우수 OST 부문의 상을 받았다, 국내에 <레토>가 개봉될 당시에 세레브렌니코프 감독은 러시아 당국에 의해 수감된 상태였다, 빅토르 최 역으로 나왔던 유태오가 참여한 시사회에서 나는 이 영화를 봤다
(9) (2) 빅토르 최는 외제니 즈본키네(Eugénie Zvonkine)가 르몽드에 발표한 것을 변형하여 인용한 것이다, 몇 구절을 읽고 외제니 즈본키네 역시 불란서 고아인 것을 바로 알았다, 불란서 고아들은 언젠가는 만난다, 무한의 창가에서, 손에는 담배를 탁자에는 찻잔을 두고서
ⓒ 장드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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펑펑펑 눈이 내리는 암살의 시대다(10)
눈은 오브제 오마주 오랑캐
눈은 먼 곳으로부터 왔다가 다시 먼 곳으로 사라진다
(10) 아르튀르 랭보, <암살의 시대(Voici le temps des Assassins)>
<암살의 시대>를 쓴 랭보에 대해 말라르메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그를 알지 못했지만 어느 문학 모임에서 한번 본 적이 있었다
그는 키가 컸으며 운동선수처럼 강인해 보였다
갸름한 얼굴은 추방당한 천사와 같았고 빗질하지 않은 밝은 갈색 머리는 헝클어져 있었고 눈동자는 옅은 푸른색이었으며 출판되지 않은 아름다운 시를 써 나간 손은 농부의 손처럼 커다랬다
짐 모리슨을 죽음으로 데려간 건 무엇이었나(11)
빅토르 초이(12)는 이 시에 왜 다시 등장하는가
눈은 밤새도록 내리고 도마뱀의 왕은 짐을 바라보는데
빅토르 최는 빅토르 초이를 하염없이 바라보는데
나는 어찌하여 그대와 다르고 그대는 왜 나와 달라야 하는가
눈을 들어 하염없이 떨어지는 눈발을 바라보면
떨어지던 눈발은 왜 잠시 허공에 멈춰 서서
내 눈동자를 바라보는가
눈의 이름을 묻는다
눈의 이름을 묻는다
시는 시에 대한 일종의 파업 상태에 있다
(11) 1971년 3월 13일 짐과 그의 여자 친구 파멜라 커슨은 센강과 바스티유 구역 사이에 있는 보트레이 거리 17번지의 수수한 아파트로 이사했다
그가 파리에서 살기로 한 이유는 시인이 되기 위해서였다
외모가 바뀐 탓에 사람들은 짐을 잘 알아보지 못했다
오후가 되면 그는 카페 드 플로르의 테이블에 앉아 혼자서 맥주를 마셨다
간혹 누가 말을 걸어오면 그는 공손한 태도로 조용히 대꾸했다
그는 매일매일 자신의 아파트에서 공책과 신문 기사 오려낸 것들에 둘러싸인 채 타자기 앞에서 시를 쓰며 시간을 보냈다
영화감독이었던 아네스 바르다는 그가 노래를 멈추고 무대 한 켠에 앉아서 담배를 피우던 모습을 기억하고 있다
그럴 때면 관객들은 숨을 멈췄다
공연장에는 마지막 숨을 내쉬기 직전과 같은 침묵이 잠시 흘렀다
죽기 얼마 전인 6월 말경 플로르 카페에서 짐을 만났던 친구들은 짐이 주로 시에 대해서 얘기했다고 기억한다
7월 3일 짐의 사망에 대한 두 가지의 상반된 기록이 있다
첫 번째 내용은 건강에 문제가 없어 보였고 기분도 좋아 보였던 짐이 욕조 안에서 잠든 것처럼 죽었다는 것
두 번째 내용은 짐 모리슨이 7월 3일 밤에서 4일 새벽까지 파리 시내의 로큰롤 서커스에 있었는데 몸이 별로 좋지 않은 상태에서 헤로인을 맞았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
로큰롤 서커스의 화장실은 옆의 알카자르 클럽의 화장실과 통해 있었고 짐은 그곳에서 의식 불명 상태로 발견됐다는 것
그러나 나는 분명한 진실을 알고 있다
짐 모리슨의 죽음은 약물 과다복용으로 인한 돌연사가 아니다
짐을 죽음으로 몰아간 것은 개인의 의지도 타인의 계략도 아니었다
그를 죽음에 이르게 한 것은 단 한 편의 시였다(13)
(12) 빅토르 초이는 1962년 6월 21일, 소련 레닌그라드에서 아버지 로베르트 막시모비치 초이(최동열)와 우크라이나계 러시아인 어머니 사이에서 슬하 무녀독남 외동아들로 출생하였다
친조부 막심 초이(최승준)는 본래 대한제국 함경북도 성진 출생이었고 후일 일제 강점기 초기에 러시아 제국으로 건너간 고려인 출신이었다
소련 레닌그라드에서 출생하였으며 지난날 한 때 소련 카자흐스탄 사회주의 자치공화국 크질오르다에서 잠시 유아기를 보낸 적이 있는 빅토르 초이는 17세 때부터 노래를 작곡하기 시작했으며 초기 곡들은 레닌그라드 거리에서의 삶, 사랑과 친구들과의 어울림 등을 다루고 있다
노래의 주인공은 주로 한정된 기회만이 주어진 채 각박한 세상을 살아나가려는 젊은이였다 이 시기에 록은 레닌그라드에서만 태동하고 있던 언더그라운드의 한 움직임이었으며 음악 차트 등의 대중 매체들은 모스크바의 팝 스타들이 장악하고 있었다
소련 정부는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가수들에게만 허가를 내 주었고 집과 녹음실 등 성공에 필요한 많은 것들을 제공하여 길들였다
그러나 록 음악은 그 당시 소련 정부에게 너무도 마땅치 않은 음악이었다
록은 자본주의 진영의 록 그룹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 외에도 젊은이들을 반항적으로 만들었으며 의사 표현의 자유 등 표현 관련 가치를 중시했다
따라서 록 밴드들은 정부로부터 거의 원조를 받지 못했고 관영 매체에 의해 마약 중독자나 부랑자라는 편견으로 그려지는 수준이었다
빅토르 초이는 레닌그라드에 있는 세로프 미술전문학교에 입학하였으나 결국 1977년에 퇴학 처분을 받았다
그 후 레닌그라드 기술전문학교에서 목공업을 공부하였으나 적성에 맞지 않아 또 중퇴하였다(이와 같은 사항들로 인하여 그의 학력은 전문대학 중퇴이다)
그러나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록 음악에 열성적으로 참여한다
이 시기에 이르러 그는 보일러 기사로 일을 하면서 파티 등의 장소에서 자신이 만든 곡을 연주하기 시작한다
그러던 중 한 연주를 록 그룹 아쿠아리움의 멤버였던 보리스 그레벤시코프가 보게 되어 그레벤시코프의 도움으로 그는 자신의 밴드를 시작하게 된다
당시 레닌그라드의 록 클럽은 록 밴드들이 연주할 수 있던 소수 장소에 속했다
이곳의 연중 록 콘서트에서 빅토르 초이는 처음 무대에 데뷔하게 된다
그는 두 명의 아쿠아리움의 멤버들이 연주를 맡은 가운데 솔로로 연주한다
그의 혁신적인 가사와 음악은 청중을 사로잡았다
그는 아무도 하지 않았던 새로운 것을 창조하기 위해 실험적으로 가사와 음악을 만들었다
이런 시도는 성공을 거두고 데뷔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멤버들을 모아 ‘키노’를 결성한다
그들은 빅토르 초이의 아파트에서 데모 테이프를 만들고 이 테이프는 처음엔 레닌그라드, 그리고 나중에는 전국의 록 마니아들에게 퍼지게 된다
1982년 키노는 첫 앨범인 45(소로크 피아트, 러시아어로 45라는 뜻)를 발표한다
이 앨범의 이름이 45로 정해진 것은 이 앨범의 재생시간이 총 45분이었기 때문이다
후에 46(소로크 쉐스찌)라는 앨범도 냈다
이 앨범에서 빅토르 초이는 음악에 정치적 목소리를 내려는 의지를 내비친다
<엘렉트리치카(Elektrichka, 소련의 광역 전철)>라는 노래는 전차에 실려 원하지 않는 곳으로 가고 있는 사람의 이야기를 다룬다
이런 가사는 분명히 당시의 소련에서의 삶을 은유한 것이었으며 이 노래는 공연이 금지된다
이 노래의 메시지로 노래는 반항운동을 하던 젊은이들 사이에 유명해지며 키노와 빅토르 초이는 그들의 우상으로 떠오른다
제2회 레닌그라드 록 클럽 콘서트에서 키노는 자신의 정치색을 더욱 분명히 드러낸다
키노는 빅토르 초이의 반전음악 작품인 <내 집을 비핵화지대로 선포한다>로 1등을 차지하고 이 노래는 당시 수만의 소련 젊은이들의 목숨을 빼앗고 있던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으로 더욱 더 유명해진다
1987년은 키노의 해였다
7집 앨범 <혈액형(Gruppa krovi)>은 ‘키노마니아’라 불리는 사회 현상을 불러 일으킨다
글라스노스트로 조금 더 개방적이 된 정치 상황은 그의 가장 정치색이 짙은 앨범인 <혈액형>을 만들 수 있게 했다
그러나 앨범의 메시지만이 청중을 사로잡은 것이 아니었고 앨범에 담긴 음악 또한 이전에는 듣지 못하던 것이었다
대부분의 곡은 소련의 젊은이들을 향한 외침이었으며 능동적으로 나가서 국가를 변화시키라고 호소했다
몇 개의 노래는 소련을 옥죄고 있던 사회문제들을 다루고 있다
이 앨범은 빅토르 초이와 키노를 러시아 젊은이들의 영웅으로 등극시켰다
1988년에는 영화 <이글라>의 주연으로 영화배우로 데뷔하기도 하였다
이후 몇 년간 그는 몇 편의 성공적인 영화를 찍었으며 영화제에 그의 영화를 홍보하기 위해 미국을 다녀오기도 했다
이후 몇 개의 앨범이 더 나왔으며 대부분이 정치적 메시지를 담았으며 밴드는 인기를 유지했다
그는 당시 소련 젊은이 모두의 우상이었지만 그런 것에 비하여 그는 소위 비교적 보통 수준의 삶을 살았다
그는 캄차트카라 불리는 아파트의 보일러실에서 살며 일했다
그는, 자신의 직업을 즐기고 있으며 정부의 보조를 받지 못하고 있고 자신들의 앨범은 공짜로 복제되어 퍼지기 때문에 밴드를 유지하기 위하여서라도 약간의 돈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런 소박한 삶의 방식은 대중들이 그와 더욱 친밀감을 느끼기에 매우 충분했다
1990년 키노는 모스크바의 레닌 스타디움에서 콘서트를 열어 6만 2천의 팬들을 모았다 1990년 8월 14일 다음 앨범의 녹음을 마쳤으며 레닌그라드에서는 다른 멤버들이 녹음을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8월 15일 아침 소련 라트비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투쿰스에서 빅토르 초이가 운전하던 차가 마주오던 버스와 충돌하였고 그 사고로 죽고 말았다
그가 운전하였던 차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도록 망가졌으며 타이어 하나는 결국 찾지 못했다
여러 사람들의 증언에 의하면 KGB가 의도적으로 초이를 살해했다고 한다
평소 반전과 평화 사상을 주장하던 초이가 러시아 권력자들의 눈 밖에 났다는 것이다
실제로 버스기사가 종적을 감추고 초이에게 유리한 목격자들의 증언이 기각되었으며, 낚시를 좋아하던 초이는 졸음운전을 전혀 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버스가 초이의 차로 돌진했다는 것, 시체가 봉인된 관에 담겨 가족에게도 공개되지 않은 채 서둘러 매장되었다는 사실 등 의문스러운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현재 러시아 경찰과 정부는 27년 동안 이 사안에 대해 철저히 침묵하고 있다
1990년 8월 17일 소련의 유력 잡지인 콤소몰스카야 프라우다는 다음과 같이 그의 죽음의 의미를 간추린다
빅토르 초이는 우리나라 젊은이들에게 다른 어떤 정치인들보다도 중요하다
왜냐하면 그는 한 번도 거짓말하거나 자신을 팔아먹은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빅토르 초이였고 그렇게 기억될 것이다
그를 믿지 않을 수 없다
대중에게 보인 모습과 실제 삶의 모습이 다름없는 유일한 로커가 빅토르 초이이다
그는 그가 노래 부른 대로 살았다
그는 록의 마지막 영웅이다
놀랍게도 교통사고에서 온전하게 건질 수 있었던 유일한 것은 다음 앨범에 쓰일 그의 목소리를 담은 테이프였다
목소리는 남은 멤버들의 나머지 녹음과 합쳐져 현재는 ‘블랙 앨범’으로 불리는 앨범으로 남아 있다
이 유작 앨범은 밴드의 가장 인기 있는 작품이고 러시아 록 역사에 있어서 키노의 자리를 확고하게 했으며 빅토르 초이를 최고의 영웅이자 전설로 만들었다
빅토르 초이는 아직도 러시아 전역에서 흔적을 남기고 있다
레닌그라드 벽에는 그에 대한 그래피티가 그려져 있고 모스크바의 아르바트 가에는 한 벽 전체가 그에게 헌정되었으며 그곳에는 그를 기리기 위해 수시로 팬들이 모인다
사망 10주기였던 2000년에는 러시아의 록 밴드들이 모여 빅토르 초이의 38번째 생일을 맞아 빅토르 초이의 헌정 음반을 만들었다
2010년 8월 16일은 그의 20주기로 러시아 곳곳에서 추도식이 있었다
또한 2018년에는 그와 그 주변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인 <레토>가 개봉되었으며 한국에는 2019년 1월 개봉되었다
<레토>는 칸 영화제에서 사운드트랙 필름 어워드를 수상하였다
빅토르 초이가 죽었을 때 그의 나이는 만 28세였다
(13) 삶은 일종의 삶에 대한 파업 상태를 유지할 때 충분히 고독해지고 아름다워진다
짐의 관심사는 보들레르와 랭보를 불러낼 수 있는 도시인 파리에서 시를 쓰는 데 있었다
짐은 샤를르 보들레르가 멋쟁이 댄디 청년 시절을 보냈던 케당주 17번지의 로쟁 호텔을 보기 위해 일생 루이 지역을 돌아다닌 바 있다
센강의 왼쪽 둑에 있는 몽파르나스는 짐이 파리에서 제일 좋아했던 지역이었다
그는 오스카 와일드가 한때 살다가 죽은 보자르 거리의 조그만 호텔에서 잠시 묵기도 했다
짐은 생제르맹데프레 구역의 카페 거리와 카페의 단골손님들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다
카페 르슬렉의 피카소 카페 되 마고의 장드파 그리고 카페 드 플로르의 자기 자신까지도
헤밍웨이가 그랬고 에즈라 파운드가 그랬고 헨리 밀러가 그랬던 것처럼
그는 미국을 떠나 파리로 자발적인 유배를 떠났고 7월 3일에서 4일 사이 삶을 마감했다
1971년 죽기 전까지 파리에서 보낸 몇 달이 짐의 가장 아름다운 삶이었다
짐은 페르라셰즈에 묻혔다
묘비에는 ‘짐 모리슨 1943~1971’이라고만 새겨져 있다
이것이 그가 남긴 단 한 편의 시였다 만 27세였다
*
옛날은 눈이 내리는 밤이었다
눈이 내리는 밤은 모두 옛날이었다
시는 일종의 시적 파업 상태에 있다
*
담배에 관한 짧고 아름다운 한 권의 책

1023년 리스본 무용총서
쿵, 펭, 칭, 밍, 자는 내 벗의 이름이라, 신의주와 산뚱을 거쳐 사마르칸트와 이스탄불을 지나 달빛 전구 반짝이는 이곳까지 왔으나 역병이 창궐하여 공연은 취소되고 달빛 아래 상연하던 그림자극마저 취소됐으니, 불취불귀라
취하지 않으면 돌아갈 수 없게 되었노라
댄스의 발자취를 기록하는 것은 무용[useless]의 본질이라, 질은 조카이니 아는 이의 공연을 조카의 일처럼 도우려했으나 조카가 할 일은 조카가 하는 게 맞고 조커의 일은 조커가 하는 게 맞느니, 나는 공연에 참석하지 않겠노라 통보하는 게 최선의 방책이었으나 뭐 그런 통보는 보통의 일이라 미루어 두노라
날씨가 갸륵하게 쌀쌀해졌으므로 <1023년 리스본 무용총서>에 한 줄로 짧게 기록해 두노라
박정대 l
1965년 강원도 정선에서 태어나 1990년 《문학사상》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단편들』 『내 청춘의 격렬비열도엔 아직도 음악 같은 눈이 내리지』 『아무르 기타』 『사랑과 열병의 화학적 근원』 『삶이라는 직업』 『모든 가능성의 거리』 『체 게바라 만세』 『그녀에서 영원까지』 『불란서 고아의 지도』 『라흐 뒤 프루콩 드 네주 말하자면 눈송이의 예술』 『눈 속을 여행하는 오랑캐의 말』이 있다. 현재 ‘이절 아케이드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으며, 무가당 담배 클럽 동인, 인터내셔널 포에트리 급진 오랑캐 밴드 멤버로 활동 중이다.
시인론 / 신동옥
스꼬라 꼰칫쨔 례따, 예따 ― 여름은 곧 끝날 거야, 이 여름이
ㅡ 박정대의 신작에 부치는 사족(蛇足)
박정대는 장형의 서술시에 능란하다. 박정대의 시에서 장형의 서술이 파편적인 아포리즘의 형태로 처음 등장하는 사례는 첫 시집 『단편들』(1997)을 닫는 마지막 시 「나 자신을 위한 調書」로 거슬러 올라간다. 근래에 보여주는 다채로운 인유를 바탕으로 한 어법이 완성되는 본보기는 「불란서 고아의 음악 ― 톰 웨이츠의 「Jockey Full of Bourdon」(『불란서 고아의 지도』, 현대문학, 2019)에서 찾을 수 있다. 공통적인 특징을 찾자면 총칭적인 발화라고 명명할 수 있겠는데, 일견 수다스러우면서도 강력한 아우라로 다가오는 박정대의 어법은 유례가 없는 것이었다. 정서적인 감염력을 유발하는 박정대식의 발화는 그만의 표지가 되었다. 근래에는 무차별적인 인유와 직관이 버무려진 모습으로 장르의 관습을 넘나드는 자유로움을 향해 나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어법이나 태도의 자유가 강한 원심력을 가졌더라도 시라는 구심점으로 맥놀이 하게 마련이다. 혁명적인 발화는 ‘시 그 자체’가 허용하는 변주 아래 포섭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로지 시만이 절대다.
시는 한 권의 절대적인 책으로 완결된 우주다. 절대를 구성하는 세부는 음악과 철학과 자유의 결사에 의해 대리보충 된다. 한 편의 시는, 한 권의 시집은 바로 그 절대를 향한 (불)가능성을 분유(分有)하는 거울과 같다. 아무리 큰 거울이라도 세계를 부분으로 나누어서 비춘다. 절대는 파편화된 채로 시라는 이름 아래 상연된다. 절대를 되비추는 시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절대적인 자유를 갈구하는 발화가 시를 이끌어가는 동력이 된다. 시적 발화는 단편화(fragmentation)의 방식으로 시인이라는 단독자의 절대적 내면을 들추어 보인다. 단편화를 통해서 절대를 인식하고, 총칭적 발화를 통해서 파편화의 한계를 넘어선다. 이러한 맥락에서, 슐레겔 형제의 미학으로 지지되는 초기 낭만주의 결사의 자기주장은 저항의 미학이었다. 자율성과 성찰성을 바탕으로 언어를 미학화하는 초기 낭만주의의 전략은 직접적 으로는 상징주의로 이어지며, 역사적으로는 초현실주의로 계승되는 문학적 발화의 수원이었다.
시적 절대에 대한 희구는 현실에 대한 강력한 부정에서 출발한다. 근대 초기의 다층적인 모순을 상상력의 힘으로 돌파하고자 했던 낭만주의 미학의 소구력은 바로 여기에 있다. 박정대의 시에 접근하는 독법 역시 여기서 출발한다. 여기서 우리는 “시인의 무의식의 수원에는 어떤 원체험이 자리하고 있기에 이토록 도저한 부정과 열렬한 희구를 뒤섞은 어법으로 시종일관할 수 있었을까?” 되묻게 된다. 지난 30여 년 동안 박정대는 단 한 번의 곁눈질도 없이 자신만의 미학을 건립하는 데 골몰해왔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오래전 시인이 스스로 풀어 쓴 연보의 첫머리가 떠오른다.
1965. 12. 25. 강원도 정선군 정선읍에서 아버지 박영철(朴永哲)과 어머니 한근숙(韓根淑) 사이에서 3남 2녀 중 차남으로 태어남. 위로 누나, 형, 아래로 남동생과 여동생이 있음. 아버지는 본적이 황해도 은율군 장련리로 1.4 후퇴 때 단신으로 월남함. 외할머니는 고향이 평안북도 박천으로, 강서 출신이면서 길림과 봉천을 오가며 독립군 활동을 하던 외할아버지 한진환을 만나 만주 봉천에서 외동딸을 낳고 해방 전에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시자 딸과 함께 월남함. 집안의 이러한 북방적인 정서가 어려서부터 자의식에 영향을 끼침.
- 「수상 시인 연보」(《서정시학》 13권2호, 서정시학사, 2003.6)
황해도 은율이라면 시인 김종삼의 고향이다. ‘북의 고향’(전봉건)이라는 불가능한 공간성을 향한 열망은 어쩌면 그의 피 한 자락을 덥히는 원망(願望)의 동력일 지도 모른다. 그의 외가의 핏줄은 저 평북 끄트머리 약산 동대를 기대고 넘어 ‘가산, 정주, 박천’을 돌아 돌아 그 너머 길림과 봉천에까지 가닿는다. 시인 박정대에게 가장 강한 원심적 자장은 외할머니였을 터였다. 외할머니라는 증환 바로 그 ‘어머니의 이름’이 세계에서 지워진 것은 1986년, 시인이 22살을 넘기던 무렵이었다. 시인은 그해 1년을 백혈병으로 투병 중이었던 외할머니를 간호하며 보냈노라고 자술 연보에 썼다. 근본경험이 언어를 경유하면서 삶으로 육박해 들어오는 순간, 바로 그 순간을 견디며 인간은 시인으로 거듭난다. 1986년 박정대는 「도화도화(桃花桃花)」 등의 시편을 거둔다. ‘복사꽃’ 이미지는 이후 거듭 변주, 확장되며 박정대의 시를 지탱하는 고갱이 가운데 하나가 된다. 박정대의 시편에 드러나는 시공간감, 무차별적인 인유, 확산하는 아우라의 연원은 어쩌면 그의 피와 뼈에 아로새겨진 디아스포라의 감각에 있었던 것은 아닐까? ‘디아스포라’라는 단어의 사회역사적인 하중이 탐탁지 않다면 ‘망명자의 감각’으로 고쳐 써되 되리라. 태생적인 망명자의 감각으로 태어나는 시는 물론 ‘망명정부의 시’일 터. 그 출발은 이러했다.
바람은 바람의 말로써 나를 가르친다
하늘 저편, 아직도 나의 피가
몇 송이 자목련으로 피어오르는 땅
할아버지의 청춘이 더욱 당당하기 위하여
숨어들던 장백산, 그 깊고 어두운 침묵을 깨고
바람은 내 마음속 만주벌판으로 불어와
차가운 눈발로 내 의식의 허약한 유리창을 흔들고
살아서 무덤에 갇힌 사람들의 두 눈에 등불을 달며
달려가라, 동편으로 서편으로
오오, 달려가라 호령한다
바람은 바람의 몸짓으로 나를 가르친다
하늘 저편, 아직도 나의 사촌들이 목단강을 지나
서안이나 사평으로 말을 달리는 땅
초승달보다 깨끗한 이마의 여인들이 길쌈을 하는 곳
어릴 적 마차를 타고 성묘를 가던
어머님의 추억을 밀며
그 아득한 곳에서 바람은 불어와
내 마음속 그리운 이름들을 깨우고
잃어버린 고향과 때묻지 않은 별들을 일깨우며
조국의 벌판 만주로 가라
오오, 만주로 가라 호령한다
- 「내 마음속 만주벌판」 (『단편들』, 세계사, 1997) 전문
‘여우난곬’에서 출발한 백석이 마침내 웅혼한 대지의 사랑을 마주한 바로 그 ‘아무르, 숭가리’에서 박정대의 시편은 출발한다. 백석과 이용악은 박정대의 시편에서 자주 오마주 되는 시인이다. 박정대의 시에서 백석은 소월을 거슬러 김억으로 이어지는 우리 근대시의 토대에 도사리는 ‘시혼(詩魂)’의 현현으로 형상화된다. 백석의 행로와 언어가 저 ‘북방’에 이르러 역사적 수원을 발견했다는 점, 바로 그 백석의 태생지가 박정대에게는 ‘외할머니 즉, 어머니의 이름’과 상상적인 동일화 기제로 작용한다는 것은 짚어두어야 할 점이다.
1930년대 중반 일본 조치[上智]대학에서 수학하던 이용악은 밑바닥을 전전하는 유학 생활 와중에 시인이 된다. 러시아, 만주 국경인 함북 경성(鏡城) 출생 이용악은 방학이면 으레 만주 등지를 떠돌며 자신의 뿌리를 더듬어 시로 옮겼다. 이용악과 백석이 남긴 시편 속에서 우리는 역사적 실체 속의 ‘북방 이미지’를 추체험한다. 저 첫 시집 무렵의 박정대가 ‘서안’, ‘사평’, ‘조국의 벌판 만주’라고 썼을 때 그 기저에는 핏줄의 내력을 소곤거리는 외할머니의 육성이 겹친다. “잃어버린 고향과 때묻지 않은 별들”이 존재할 시원을 갈급하며, 시인의 아버지가 그러했듯, 천지를 홀홀단신 주유하는 시선의 근저에서 ‘성찰적 유토피아니즘’을 톺아 읽을 수 있는 이유다.
빅토르 최는, 저 ‘우라지오(이용악은 블라디보스토크를 이렇게 표기했다)’ 부근에 뿌리를 둔 혈족이 스탈린에 의해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당한 뒤 대를 이어 디아스포라 3세대로 태어난 고려인 가계의 러시아 가수다. ‘어머니의 이름’을 기제로 하는 상상적 동일화를 저항의 동력으로 거느린 박정대의 어법은 ‘빅토르 최’와 접속하며 시적인 접합의 작인을 스스로 발명해 내기에 이른다. 피의 소근거림을 전략으로 전유한 다음 정서적인 파상력에 기대어 원심적인 인유로 나아가는 박정대의 어법은 이렇게 태동한다. 여느 첫 시집이 그렇듯 박정대 역시 자신의 근본체험에서 시적 동력을 얻고 있었던 것이다. 그의 시집에서 ‘빅토르 최’가 처음 등장하는 장면은, 첫 시집 『단편들』(세계사, 1997)의 표제작에서 확인할 수 있다.
깊은 밤에 빅토르 최라는 천막을 하나 치고 알전구에 몸을 데우다 보면 태양이라는 게 뭐 별건가요. 그는 캄차트카의 火夫였다는데 화부 일을 오래 하다 보면 알게 되죠, 태양이라는 게 뭐 별건가요. 화부, 화부라는 직업 참 좋죠. 자고로 남자로 태어난 사람이라면 한 번쯤 해볼 만한 일이죠. 왜 거 있잖아요,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작가의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라는 것도 알고 보면 모두 화부를 위한 작품이죠. 불 때는 남자, 그럴듯하지 않아요? 아궁이에 불 넣는 남자. 태양이라는 게 뭐 별건가요. 바닷속 물고기의 눈동자에도 태양은 있어요. 하지만 깊은 밤에 잠들지 못하고 빅토르 최의 노래를 듣는 사람은 태양을 등진 사람이에요.
- ‘3 태양이라는 이름의 별에서’, 「短篇들」 (『단편들』, 세계사, 1997) 부분
이 서술시는 이후 박정대가 보여줄 시적 행로를 도해하고 있다. 「단편들」은 1에서 6까지 연번을 달아 놓은 여섯 편을 엮어서 썼다. 리처드 브라우티건의 소설 『워터멜론 슈가에서』, 왕가위 감독 영화 <동사서독>, 구 소련 록구룹 키노의 앨범 《태양이라는 이름의 별에서》와 <여름이 끝나가다>(《검은 앨범》)가 인유되고 있다. 인유라기 보다는, 앞서 썼던 표현을 다시 쓰자면, 접합하고 있다고 써야 옳으리라. 원본에 자리한 아우라보다 시인이 자기 편으로 끌어들여 현재화한 모티프가 더욱 도드라지기 때문이다. 세계가 한 권의 책이라면, 박정대의 독법은 행간을 채워가는 어법이 아니라 행간의 나머지를 이어붙이며 자신의 ‘독해 감각’을 확장하는 데 바쳐지고 있는 셈이다. 시를 이끌어가는 그이는 엄정한 취향을 바탕으로 섭식하듯이 ‘문화자본’을 자신의 방식으로 살아낸다. 그 밑바탕에는 무제약적인 동일화의 전략이 자리하는 것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시집이 거듭되면서 ‘박정대 유니버스(?)’가 촘촘하게 지도 그려진다.
첫 시집 무렵 ‘워터멜론슈街’라는 공간, ‘눈먼 무사’라는 형상 속에서 원본의 변주를 캐묻는 것은 무익하다. 저 고유명들은 이제 박정대가 발명한 고유 기표로 읽히기 때문이다. 박정대의 발화는 인간적인 시선으로 재현되는 개념들을 모두 지우고 시인이 발명한 아우라를 덧입하는 식으로 이어진다. 마치 음파가 공기층을 가로질러 몇 개의 공간에 편재하듯, 음악의 형상으로 변주되는 시공간감의 중첩이 지배적이다. 예를 들어, “말라가에서 계속 해안을 따라가다 보면 세투발에 닿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들은 비고와 히혼을 거쳐서 라로셸로 향한다, 라로셸에서 바라보는 비스케이灣의 황혼은 아름답다, 그러나 칼레로 가는 우리는 비스케이만의 아름다움에 쉽게 눈멀지 않는다, 더 아름다운 것을 보기 위하여 우리는 계속해서 해안선을 따라”(「나는 음악처럼 떠난다」(『내 청춘의 격렬비열도에는 아직도 음악 같은 눈이 내리지』, 민음사, 2001) 부분)라고 썼을 때, 무한과 절대를 기준으로 재배치한 정동의 지도를 마주한다. 스스로 비추어 보아도 미만(未滿)하기에, ‘더 아름다운 경지’를 향해 갈급하듯 뻗어가는 길을 마주한다. 세계라는 고유명을 재발명하는 ‘삶이라는 직업’이 계속되는 것이다. 이를테면 이런 시,
가령 인터뷰를 하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보이지는 않지만 당신과 나 사이로 천사가 지나간다
가스통 바슐라르, 갓산 카나파니, 닉 케이브, 라시드 누그마노프, 마르셀 뒤샹, 미셸 우엘르베끄, 밥 딜런, 밥 말리, 백석, 블라디미르 마야콥스키, 빅또르 쪼이, 아녜스 자우이, 악탄 압디칼리코프, 앤디 워홀, 에밀 쿠스트리챠, 장 뤼크 고다르, 조르주 펠렉, 지아 장 커, 짐 자무시, 체 게바라, 칼 마르크스, 톰 웨이츠, 트리스탕 차라, 파스칼 키냐르, 페르난두 페소아, 프랑수아즈 아르디, 프랑수아 트뤼포, 피에르 르베르디
그러니까 최대의 고통은 사랑을 전제로 한다, 마찬가지로 최고의 사랑은 고통을 전제로 한다, 같은 감정의 다른 이름인 것이다, 아니 모든 감정은 하나의 이름으로부터 온다
- 「파르동, 파르동 박정대」 (『체 게바라 만세』, 실천문학사, 2014) 부분.
어느 해인가 시인은 유럽의 북구 어느 나라에서 이 시를 낭송했다. 독자들은 열광했다. 끝없이 이어지는 이름들이 이미지로 연쇄되면서 만들어내는 아우라로 공속했던 것일까? 푸코는 『말과 사물』 서문에서 저 유명한 보르헤스의 ‘중국식 백과사전’의 동물 분류법을 이야기한 적 있다. 푸코에 따르면, 기준도 범주도 찾기 힘든 ‘경이로운 분류법’ 속에서 우리는 ‘누구에게나 난데없이 다가오는 것’, ‘또 다른 사유의 이국적인 매력’을 동시에 느낀다. 그 이유는 우리의 사유 역량을 모두 가져다 써도 ‘그것을 사유할 수 없다는 적나라한 사실’을 마주하기 때문이다. 바로 그 ‘적나라한 사실’이 시적 절대의 이미지가 아닐까? 이국의 독자들이 끝도 없이 한국어로 발화되며 이어지는 이름들에 열광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가 아닐지.
작품에서는 적어도 280개 이상의 고유명이 나열된다. 이름 하나를 쓰면 어떤 발화 효과도 생기지 않는다. 이름과 사람 사이의 관계는 극단적으로 자의적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누군가의 이름을 맥락을 떼어놓고 받아적어 두고 보면 언어의 물질성이 극적으로 드러난다. 거꾸로 말할 수도 있다. 기표의 물질성을 극단까지 밀어붙이면 모든 단어는 이름이 된다. 박정대는 발화행위에서 비롯되는 모든 목적론적 효과와 절연한 지점에 이름을 할당하고 본다. 그 이름들이 스스로 제 운명을 써나가는 모양을 지켜본다. 박정대에게 시 쓰기는 그러한 방식으로 세계를 걸머지는 수행의 다른 방법이었을 지도 모른다. 어느 순간 종이 위에 부려진 낱말들은 스스로 자신의 운명을 개척해 나갈 것이다.
시인은 문자 그대로 언어를 돌보는 자다. 테리 이글턴은 비유의 원관념과 보조관념이 맺는 관계의 우연성을 언급하면서 셰익스피어의 『오셀로』에 나오는 대사를 예로 든다. “질투는 녹색 눈을 가진 괴물이다.” 비유에 가닿기 전에 사람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녹색 눈의 괴물’을 상상하기 바쁘다. ‘질투’라는 지배적인 의미를 향해 인도하는 것은 애당초 시적인 발화의 목적이 아니다. 저마다의 방식으로 그려낸 녹색 눈의 괴물을 세상에 풀어놓는 것이 시적 발화의 본질일 수도 있다. 박정대가 밑도 끝도 없이, 한국어로, 수많은 이름을 낭송할 때 독자들은 그 이름들을 저마다의 ‘녹색 눈을 가진 괴물’로 되살려냈을 것이다. 바로 그 ‘밥 말리’는, ‘짐 자무시’는 스스로 제 운명을 써나가는 생명처럼 다가왔을 것이다. 그 낯선 감각이 얼마나 짜릿했을지. 그럼에도 누군가와 이름을 나누어 갖는다는 ‘공동의 문화적 지지기반’을 확인한다는 느낌, 그것을 한 편의 시가 매개한다는 느낌은 따스했을 것이다.
세계를 한데 묶는 인용부호를 벗기고, 잘못 할당된 아우라의 굴레를 풀고, 강세를 옮긴 다음, 다른 세계의 정서를 이 세계와 맞갖는 지점에 건립하는 것이 박정대의 방법론으로 자리 잡아간다. 총칭적인 발화는 한 편의 공연이 되고, 공연을 위한 시놉시스의 형식으로 한 권의 시집은 기획된다. 저 「파르동, 파르동 박정대」의 작법은 「의기양양(계속 걷기를 위한 삼중주)」(『그녀에서 영원까지』, 문학동네, 2016)에 변주되며 또 다른 방식으로 확장된다. 근래에는 「대관령 밤의 음악제 ― 오, 브이 포 벤데타」, 「대관령 밤의 음악제 ― 옛날은 눈이 내리는 밤이었다」(『라흐 뒤 프루콩 드 네주 말하자면 눈송이의 예술』, 민음사, 2021)로 이어지며 또 다른 양상을 선보인다. 「의기양양」까지는 확장과 원심적인 발화에 강세가 주어졌다면, ‘대관령 밤의 음악제’ 시편에서는 고요와 정적의 구심적 발화에 강세가 주어지는 미묘한 변화를 감지하게 된다.
그사이 어떤 변화가 있었던 것일까?
몇 해 전, 시인 박정대는 고향인 강원도 정선군 정선읍 ‘이절’로 집을 옮겼다. ‘대관령 밤의 음악제’는 바로 그 결과물이다. 피가 소곤거리던 자리에 집을 짓고 시를 이어가는 일이 과연 가능할 것인가? 시인은 이절에서 태어나게 될 시편을 일러 ‘이절 아케이드 프로젝트’라고 명명했다. 그리고 그 시적 방법론을 ‘시적 파업’이라고 명명했다. 이 역설이 2024년 근방의 박정대를 이끌어가는 동력이다. 내리는 눈송이를 낚아채듯 언어는 이어지고, 방념 상태에서 깜박이는 모니터 속에서 번역된 정보들이 무작위로 산입되기도 한다. 시적 절대를 섬기는 박정대식의 저항은 여전히 아름답고 도저하다. 그와 함께하는 반려견 ‘양조위’의 눈도 아름답고, 정성껏 이름을 붙여 심은 이절의 자작나무도 아름다우리라.
촛불을 켜고 바람의 모습을 본다
쌀랑쌀랑 바람이 불었다
세상을 끄고 조용히 누워
창밖으로 떨어지는 눈발의 숫자를 헤아렸다
간혹 다 지키지 못한 약속이 있었다
잠의 안팎에서 바람은 촛불의 허리를 흔들었다
멀리 있는 것들은 멀리 있어서
다행스럽게 빛났다
가까이 있는 생활은 추웠으나
촛불 한 자루로
이 겨울을 통과할 수 있을 것이다
감자 몇 알과 담배가 여전히 남아 있으니
밤새 싸락눈은 내려와 어둠을 덮어 가느니
아침이 오면 이팝나무 위로도
눈꽃 가득 피어나겠다
쌀랑쌀랑 바람이 분다
아직 잠들지 않은 새벽의 이마 위로도
눈은 내린다
- 「시」( 《공정한시인의사회》 4월호) 전문
그러나 무엇보다도, 고요하게 응시하는 몸짓으로 박정대가 밝히는 한 점 촛불은 여전히 그윽하고 아름답지 않은가? 촛불 한 자루로 겨울을 통과하듯 그가 건네는 시 한 편으로 이생쯤은 가뜬히 건널 수 있을 것만 같지 않은가? 아직 잠들지 않은 새벽의 이마 위로 한 줄 시가 내린다.

신동옥 l
2001년 《시와반시》 등단. 시집 『악공, 아나키스트 기타』 『웃고 춤추고 여름하라』 『고래가 되는 꿈』 『밤이 계속될 거야』 『달나라의 장난 리부트』 『앙코르』, 산문집 『서정적 게으름』, 시론집 『기억해 봐, 마지막으로 시인이었던 것이 언제였는지』가 있음. 〈노작문학상〉 〈김현문학패〉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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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4월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