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시인
 
이달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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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달의 시인] 송진권
  신작시: 수묵 / 스무고개 / 청춘 고백

  자선시: 어슴푸레한 데 / 다시 그 저녁에 대하여

 
  [시인론] 안서현 “서로 깃듦의 시학” 

 

 

 

 


 신작시 


 

 

 

 수묵    

  

 

      

 

   

  저 노랑을

  저 파랑과 하양과 붉음을

  지나지 않으면 어스름이 내려오지 않는다지요

  거무죽죽한 날개를 떨쳐입은

  숭숭 검은 털 배긴 어둠이 오지 않는다지요

  나는 등롱에 기름도 채워 두고

  심지도 가지런히 잘라두었지만요

  기다란 더듬이

  소리 없는 날갯짓의 올빼미 같은 어스름이

  검은 수레를 타고 곳곳에서 번지듯 스미어 올 때

  차마 불을 그을 수 없었음을

  뭐라고 해야 할지

 

  다 알고 있으면서도 이야기하지 않던 사람아

  차마 얘기할 수 없어서라며 고개 숙이던 사람아

  묵의 농담만으로도

  충분히 한세상을 담아낼 수 있는 것을

  온갖 색이 섞인 묵을

  명과 암 그 언저리에서 촘촘히 번지는 색 중에

  내가 모르는 그 어떤 희미한 빛을

  붉은 낙관 찍어 벽에 걸어두렵니다

  이처럼 밝은 분간이 너무나 무서워서요

 

 

 

 

 

 

 

 

 

 

 



 

 

 스무고개

     

     

 

 

  

  나는 아직 꽃이 터지기 전 녹두빛 도라지 꽃망울 속에 있고요

  그 사진 속에 있는 문 안에 숨어 있기도 했습니다

  붉은 물 돌기 전의 앵두나무 이파리 속에도 있고요

  감자의 움푹한 씨눈 속에도 숨어 있었습니다

 

  나는 목련의 겨울눈에서 잠을 잤고요

  개구리 메뚜기 토끼의 뒷다리에 숨어 있었고요

  방금 그 아주머니가 다급하게 뚜껑을 닫은 상자 속에 들었고요

  놀란 눈을 한 그 아이가 급히 삼켜버린 것이고요

  아까 그 주정뱅이 아저씨가 울며 감춘 술병 속에도 있었습니다

 

  나는 방금 떠난 기차의 기적 소리이고요

  어젯밤 지나간 소나기를 따라갔기도 하고요

  과일 장수 아주머니의 전대 속에 돈과 함께 있었고요

  포장마차 진열장 고등어 뱃속에 숨어 있기도 하고

  카운트다운이 시작되기 전

  버튼을 누르던 떨리는 손가락에도 있었습니다

 

  모든 곳에 있기도 하고

  어느 곳에도 없기도 하고

  아무 데나 있기도 하지요

  내가 누구인지 아시겠어요

 

 

 

 

 

 

 

 

 

   

 



 

 

 청춘 고백

       

   

    

      

 

  오래된 숲에서 그놈을 사로잡아 왔습니다

  놈은 발굽이 무르고 뿔이 있었으나 뭉툭했습니다

  목을 옭아매고 사지를 묶자 그 짐승,

  눈만 희번덕이며 저항도 하지 못했습니다

  겁에 질린 짐승의 울음소리라니

 

  미나리꽃 하얗게 우거진 도랑에서 놈의 멱을 땄습니다

  흰털을 적시며 핏물은 도랑물에 낭자하게 풀어지고

  숫돌에 칼 갈아 가죽 벗겨 널어놓고

  우리는 놈의 배를 갈랐습니다

  뱃속에는 형체가 갖춰지지 않은 분홍색의 새끼들이 아홉 마리 들었고

  우리가 칼을 대자 그것들은 뿔뿔이 달아나려고 몸을 뒤척였습니다

  탯줄을 자르고 우리는 그놈들을 하나하나 물에 흘려보냈습니다

  큰 통에 내장은 내장대로

  고기는 고기대로 나눠 담고

  둥글게 모여앉아서 생간을 먹었습니다

  굵은 소금 찍어 붉게 붉게 웃어가며

  탁한 술을 나눠 마시고

  피 묻은 입술을 혀로 핥으며

  물가에 앉아 손에 묻은 핏자국을 닦았습니다

 

  낄-­낄-­낄-­낄, 물에 비친 얼굴들은

  기묘하게 일그러져서 일렁이며 흘러갔는데요

  그 표정들을 물에 흘려보내고

  무표정한 얼굴로 칼과 도구를 챙기고

  저마다 고기를 나누어 가지고 우리는 돌아왔습니다

 

 

  

 

 

 

 

 

 

 

 


 자선시 


 

 

 

 어슴푸레한 데

 

 

 

 

 

  저 어슴푸레한 데는 뭐가 있느냐

  무엇이 살고 있느냐

  어둑시니 떼가 쪼그려 앉아 있느냐

  분꽃이 피느냐

  도둑이 웅크리고 있느냐

 

  밝지도 않고 그렇다고 어둡지도 않고

  희부윰하니 들깨 같은 별 한 자루 쏟아진 데에

  박각시가 사느냐

  방상시가 사느냐

  박각시 쫓아낸 호박벌이 있느냐

  실꾸리 무릎에 끼고 앉아 감아 들이는 할머니가 사느냐

 

  오오, 우리들이 함께 무찔렀던 어슴푸레한 데

  무엇이 있느냐

  무엇이 쭈그려 앉아

  흑백이 부동인 채

  턱을 괴고 앉아 눈망울 디룩디룩 굴리며 여길 쳐다보느냐

  저 죽을 줄도 모르고 쭈그려 앉아

  불칼을 등허리에 맞고 있느냐

 

 

 

 

 

 

 

 

 

 

 


 

 

 

 다시 그 저녁에 대하여

        

   

    

  

 

  뭐라 말해야 하나

  그 집 지붕 아래 수수깡 드러난 처마에 대하여

  서까래를 밟으며 지나간 검댕 묻은 전깃줄을

  꼬옥 쥐고 있던 애자에 대하여

  처마마다 한 발이나 되게 매달리던 고드름들에 대하여

  댕그랑댕그랑 톰방톰방 뚝뚝 똑똑

  오도독 오독 하며 함께 살던 소리들에 대하여

  그 집에 살던 사람들의 사진이 걸린 파리똥 앉은 사진틀에 대하여

  저녁거리 시래기를 내리던 마른 손에 대하여

  서까래에 매달렸던 씨갑시 봉지들에 대하여

  제비 똥 떨어지지 말라고

  제비 집 아래 달아둔 송판에 대하여

  처마 밑에 매달린 둘둘 말린 멍석이며

  양말 주머니 매달고 있던 기다란 감전지에 대하여

  고드름 떨어지는 소리에 놀란 개가

  컹컹 짖던 것에 대하여

  어떻게 다 말해야 하나

  그득 불을 문 아궁이에 대하여

  처음 내게 불을 피우는 걸 알려주던 이에 대하여

  재를 헤집으면 나오던 감자알이며

  아궁이 속에 살던 강아지들에 대하여

  어떻게 다 말해야 하나

  숯검댕 묻은 굴뚝새에 대하여

  시래기 삶는 내며

  쇠죽 끓이는 냄새를 맡고

  빼꼼히 들여다보던 송아지 콧구멍에서 나오던 허연 김에 대하여

 

 

 

 

 

 

 

 

 

송진권  l

2004년 《창작과비평》 등단. 시집 『자라는 돌』 『거기 그런 사람이 살았다고』 『원근법 배우는 시간』, 동시집 『새 그리는 방법』 『어떤 것』이 있음.

 

 

 

 

 

 

   


 시인론 / 안서현   


  

 

 

 

 

서로 깃듦의 시학

ㅡ 송진권 시인의 최근 시 읽기

 

        

 

 

 

  시는 주체와 세계가 언어를 매개로 만나는 고유한 방식이다. 백 사람의 시인이 있다면 거기에 백 개의 만남이 있다고 해도 좋다. 그리고 그 만남의 고유함을 가장 잘 드러내는 말이 곧 그 시인의 시 세계의 열쇳말이다. 송진권 시인에게 그 말은 ‘깃들다’는 말일 것이다. 시인의 시에서 주체와 세계가 ‘서로 깃드는’ 방식으로 만나고 있기 때문이다.

  전에도 다른 글에서 언급한 적이 있지만, 송진권 시인의 시는 독자로 하여금 백석 시인이 시에서 말로 마을을 지어내고 그 안에 사람들을 살게 하거나, 말로 사람을 지어내고 그 사람 안에 마을을 불러일으키기도 하던 것을 떠올리게 한다. 여기서 상술할 수는 없지만, 백석의 「마을은 맨천 구신이 돼서」와 「고향」을 각각 떠올려보면 된다. 그런 주체와 세계 사이의 ‘서로 부름’의 관계의 시학과도 닮은 ‘서로 깃듦’의 시학을 송진권 시인의 시에서 밝견할 수 있다. 말과 자연과 사람과 귀신과 짐승과 음식과 이야기가 모두 서로에게 깃들어 있던 예전의 공동체를 시인의 시 안에서 만나곤 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원근법 배우는 시간』(창비, 2022)에 실려 있는 이런 시를 읽어보자.

   

  오박골 도롱골 큰골 작은골 골짝서 불던 바람이며 오백거리 강변에서 새떼나 날리던 바람이 모두 우리 정지로 들어와서 함석지붕을 떠메고 갈 듯 흔들어대는 날이면 두부를 해 먹었습니다 아부지는 아궁이에 단으로 밀어 넣은 깻대 위에 참나무 장작을 공구며 가마솥에 설설 물을 끓이고 엄마는 바가지로 콩물을 퍼 붓습니다 (중략) 뭐가 궁금한지 놓아먹이는 닭들과 개들이 문을 얼씬거리고 외양간으로 기어들다 어미에게 쫓겨난 송아지를 어루만지면 엄마 아부지는 광목 자루에 퍼 담은 콩물을 양쪽에서 홍두깨로 누릅니다 빨랫줄에 걸린 족제비 가죽이며 토끼 가죽 위로 눈발이 치고 함박눈이 날비지같이 소담하게 굵어지는데 콩물이 설설 끓어오르면 엄마는 간수를 깨서 담아 녹여 붓고는 커다란 주걱으로 휘휘 젓습니다 자두꽃처럼 몽글몽글 뭉쳐지는 두부를 퍼 담을 때 나는 쓸쓸한 숨두부는 싫고 간수 빠진 고소한 두부나 먹었으면 싶습니다 다듬잇돌을 얹고 물 담은 함지박을 얹어 두부를 누르면 그 차가운 바람들은 여기 우리 정지 아궁이 속에서 몸이나 데우다 하나로 엉기고 뭉쳐져서 뜨시고 허옇고 고소한 것이 됩니다 (「두부」)

   

  마을을 짓고 바람과 짐승과 집과 가족과 세간을 불러와 그 안에 엉기게 하면 그 감각을 따라 나라는 주체가 환기된다. 그 세계의 구체성 안에 내가 깃드는 것이다. 백석이 여러 번 “이것은 무엇인가”라고 불렀던 국수가 여기서는 두부가 되었다. 어느 눈 오는 날에 온 자연과 사람과 짐승이 어우러져 만들어지는 것, 소담하고 희고 고소한 그것은 꼭 백석의 국수와도 닮은 송진권 시인의 두부이다.

 

  죽어도 농사는 안 짓겠다고 임대 아파트에서 임대 아파트로 소쩍새처럼 옮겨 다니며 살다가 솔미집으로 이사 온 다음 해 가죽나무가 저절로 돋아나더니 담을 넘을 만큼 키가 커져서 새순을 꺾어다 장떡 부치고 나물을 해먹었다 이상하게 가죽나무 수액 같은 끈적끈적한 것이 자꾸만 따라다녀 가죽나무에서 가죽나무 그늘로만 옮겨 다닌 가계다 (「가죽나무에서 가죽나무로」, 부분)

    

  이것은 또 백석 식의 가계 풀이를 떠오르게 한다. 처음 할아버지가 터를 잡았을 때부터 이리저리 옮아 다니며 사는 동안 내내 가죽나무 그늘에 산다는 이야기는, 실은 주체가 계속 끌고 다닌 어떤 마음을 떠올리게 한다. 마을을 떠나도 나의 안에 가죽나무 수액처럼 끈적거리는 것이 남아 있어, 그 감각을 따라 이전의 세계가 소환된다. 나의 연결감 안에 세계가 깃드는 것이다.

  송진권 시인의 근작 시들을 읽으면서 찾아보게 되는 것이 바로 ‘깃들다’라는 말의 어원이다. ‘깃’은 새의 둥지를 뜻하고, ‘깃들다’는 말은 새가 집에 드는 모양을 가리킨다. ‘깃들다’라는 말이 송진권 시인의 이번 시들에는 한 번도 나오지 않았지만, 그 시들을 읽으면서 이 말을 숨겨진 시인의 열쇳말로 떠올리게 된다. 가령 「다시 그 저녁에 대하여」에서 시인은, 둥지에 새가 깃들 듯이 집에 깃들어 있는 모든 것을 “어떻게 다 말해야 하나”라고 하면서 읊조려본다.

    

   어떻게 다 말해야 하나

   그득 불을 문 아궁이에 대하여

   처음 내게 불을 피우는 걸 알려주던 이에 대하여

   재를 헤집으면 나오던 감자알이며

   아궁이 속에 살던 강아지들에 대하여

   어떻게 다 말해야 하나

   숯검댕 묻은 굴뚝새에 대하여

   시래기 삶는 내며

   쇠죽 끓이는 냄새를 맡고

   빼꼼히 들여다보던 송아지 콧구멍에서 나오던 허연 김에 대하여 (부분)

  

  집 안 구석구석에 담기고, 품기고, 안기고, 들어차고, 매달려서 그 안에서 살아가는 것들에 대해 말하고, 또다시 말하는 시편이다. 집이라는 구멍 안에 다시 굴뚝, 아궁이, 외양간까지 여러 개의 구멍이 나, 무엇이 깃들고 또 깃든다. 그 깃들고 또 깃든 그 구조를 말하다가 마침내 송아지 콧구멍까지 이르면 어느새 슬며시 웃음이 나온다.

  「스무고개」도 「다시 그 저녁에 대하여」와 유사한 반복과 나열의 구조다. 이번에는 이 세상의 모든 것에 어리고, 서리고, 스미고, 삼켜지고, 그 안에 숨어 있는 것들에 대해 시인은 말한다. 스무 번이 아니라 더 계속해서라도 말할 수 있는 이유는 “모든 곳에” 그것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이 구조의 상동성에서 이 세계의 구조, 즉 주체는 세계에 깃들고 세계는 주체에 깃든다는 상호적인 ‘서로 깃듦’을 또 발견하게 된다.

    

   나는 아직 꽃이 터지기 전 녹두빛 도라지 꽃망울 속에 있고요

   그 사진 속에 있는 문 안에 숨어 있기도 했습니다

   붉은 물 돌기 전의 앵두나무 이파리 속에도 있고요

   감자의 움푹한 씨눈 속에도 숨어 있었습니다

 

   나는 목련의 겨울눈에서 잠을 잤고요

   개구리 메뚜기 토끼의 뒷다리에 숨어 있었고요

   방금 그 아주머니가 다급하게 뚜껑을 닫은 상자 속에 들었고요

   놀란 눈을 한 그 아이가 급히 삼켜버린 것이고요

   아까 그 주정뱅이 아저씨가 울며 감춘 술병 속에도 있었습니다

 

   나는 방금 떠난 기차의 기적 소리이고요

   어젯밤 지나간 소나기를 따라갔기도 하고요

   과일 장수 아주머니의 전대 속에 돈과 함께 있었고요

   포장마차 진열장 고등어 뱃속에 숨어 있기도 하고

   카운트다운이 시작되기 전

   버튼을 누르던 떨리는 손가락에도 있었습니다

   

  이 작은 자연물과 사물들에 일일이 담긴 이것은 무엇일까. 그 무엇이 답일 수도 있겠으나 절대로 틀리지 않을 답을 하나만 말하라고 하면 그것은 바로 비밀이다. 이 세계의 비밀이 이 세계에 깃든 것들 안에 다시 깃들어 있다. 죽 냄새에 송아지가 내뿜는 허연 김에도 다시 깃들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어쩌면 이러한 ‘서로 깃듦’이란, 이와 같은 연결이 오래전에 단절된 지금의 세계에서는 이미 찾아보기 어렵게 된 것은 아닐까. 서로가 서로에게 엉기고 끈적거리며 살아갔던 시절이란 동화나 옛날이야기처럼 뜬구름 잡는 이야기, 추상적인 세계관, 또는 덧없는 노스탤지어는 아닐까. 이 단절감을 시인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이제 송진권 시인의 시는 그 단절을 품는 데까지 나아간다. 백석 시인의 고향이 다시 당대 현실을 배경으로 삼고 있었듯이, 그 모든 것이 잊히고 있는 지금이라는 주체의 발화 위치를 놓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온갖 색이 섞인 묵을

   명과 암 그 언저리에서 촘촘히 번지는 색 중에

   내가 모르는 그 어떤 희미한 빛을

   붉은 낙관 찍어 벽에 걸어두렵니다

   이처럼 밝은 분간이 너무나 무서워서요(「수묵」, 부분)

   

  이 “밝은 분간이 너무나 무서워서”라는 구절, 바로 이 무서움이라는 감정 속에 현재의 단절에 대한 인식이 숨어 있다. 근작 시에서 시인은 그 단절을 다시 연결로 회복하기 위해서는 “어스름”(「수묵」), “어슴푸레한 데”, “희부윰”(「어슴푸레한 데」)한 빛을 유심히 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내가 모르는 그 어떤 희미한 빛”을 담아낸 수묵화를 걸어두는 마음에 관해 말했다. 그 빛과 어둠의 분간이 어두운 “희미한 빛”이 귀하게 생각되는 것은 무섭도록 밝은 분간 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붉은 낙관 찍”고자 하는 나의 마음속에도 그 분별은 숨어 있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청춘 고백」에도 알아도 모르는 척, 몰라서 모르는 척, 무엇이 무엇에 깃들어 있는지를 모르는 체하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새끼 품은 산돼지를 잡아 새끼들은 물에 흘려보내고 그 고기를 나누는 청춘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어슴푸레한 데」를 읽으면 알 수 있는 것처럼, 귀신이 무서운 것이 아니라 귀신이 깃들 곳이 없는 세상이 더 무서운 법이다. 그것을 아는 사람이라면, 이 시에 얼굴들과 그 무표정이, 일견 있을 법하면서도 한없이 무섭게 느껴질 것이다. 나와 너의 사이에 얼마나 밝은, 그리고 무서운 분간이 있었다면, 새끼 돼지들을 물에 흘려보내고 술 추렴을 할 수 있었던 것일까. 그러나 그 무서움마저도, 나에게 집중할 수밖에 없는 호기와 허세의 계절인 ‘청춘’이라는 이름으로 이 세계에서 통용된다는 것을 시인은 안다. 깃들 수 없는 이 무서움의 세계에서, 시인은 다시 꿈을 꾼다.

    

   밝지도 않고 그렇다고 어둡지도 않고

   희부윰하니 들깨 같은 별 한 자루 쏟아진 데에

   박각시가 사느냐

   방상시가 사느냐

   박각시 쫓아낸 호박벌이 있느냐

   실꾸리 무릎에 끼고 앉아 감아 들이는 할머니가 사느냐

 

   오오, 우리들이 함께 무찔렀던 어슴푸레한 데

   무엇이 있느냐

   무엇이 쭈그려 앉아

   흑백이 부동인 채

   턱을 괴고 앉아 눈망울 디룩디룩 굴리며 여길 쳐다보느냐

   저 죽을 줄도 모르고 쭈그려 앉아

   불칼을 등허리에 맞고 있느냐 (「어슴푸레한 데」, 부분)

    

  이 시를 읽으면서 어쩔 수 없이 백석의 「박각시가 오는 저녁」을 떠올리게 된다. 그 시 안의 풍경은 이렇다. 문이란 문은 활짝 열어젖힌 여름 저녁에 박각시 주락시가 날아오고 또 돌우래 팥중이가 울어댄다. 그러다 보면 밤이 되어 별이 콩을 펼쳐둔 마당처럼 하늘에 깔린다고 백석 시인은 썼다. 요란한 벌레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송진권 시인은 그것을 들깨가 한 자루 쏟아진 저녁 하늘로 바꾸었다. “밝지도 그렇다고 어둡지도 않고” 어스푸레한 시간이다. 박각시도 호박벌도 찾아온 것은 물론이고, 귀신들이 찾아와 같이 머물고 있다. 어둑시니와 방상시, 그리고 삼신할미가 같이 머문다. 어둑시니는 햇빛이 밝은데도 저 죽을지도 모르는 채 속 편하게 앉아 있다. 방상시도 이상하게 어둑시니를 쫓지 못하고 제 무서움을 잃었다. 삼신할미는 자약하게 삶의 실꾸리를 감아들인다. 삼신할미가 실을 풀어내면 누군가 태어나듯이, 실을 묶어내면 누구와 누구가 가약을 맺듯이, 실을 감아들이면 그것은 누군가가 이승을 떠나간다는 뜻이다. 그래도 모두가 태평하다. 이렇게 평화롭고 유쾌하고 안온한 곳, 무엇이든지 깃들 수 있는 곳, 도둑도 귀신도 그리고 죽음도 차라리 깃들 수 있는 이곳이 바로 ‘어슴푸레한 데’이다. 이러한 장면을 마음 속에 수묵화처럼 걸어두고 살아가면 어떨까.

  모든 색이 먹에 깃들고, 모든 식구가 올망졸망 집에 깃들고, 모든 존재가 삶과 죽음 사이, 황혼의 어슴푸레한 시간 속에 깃든다. 빛과 어둠이, 새와 둥지가, 그리고 존재와 세계가 서로가 서로에게 깃들어 있다. 가끔 그것들을 명백하게 분별하려는 마음을 보지만, 그 무서운 간극마저도 결국은 그 안에 깃들일 수밖에 없음을 안다. 서로가 깃들고 깃들어가는 상호의 깃듦, 깃들지 말았으면 하는 것도 깃들어버리는 궁극의 깃듦, 깃들 수 없는 것까지도 깃들게 하는 역설의 깃듦, 그 알 듯 모를 듯한 이치가 바로 시인이 걸어두고 바라보는 ‘어슴푸레한 데’의 풍경 안에 담겨 있다.

 

 

 

 

 

 

 

 

 

 

시인론.png

안서현  l 

2010년 《문학사상》 문학평론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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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6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