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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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이성렬 

  소묘 5

  ㅡ 우리 기쁜 젊은 날

 

 

  수덕사에서 산길을 휘돌아 하루를 걸어온 객의 몸은 무겁다. 늙은 내외가 살아가는 초가. 자식들은 어디에 있는지 그는 묻지 않는다. 개심사 나한들이 부릅뜬 눈을 내리고 입적하는 시각. 달빛 아래 책 속의 시인이 나직이 부르는 여인의 이름, 혜수. 저승에서 돌아오는 바람의 발소리가 그러한가, 겨울 대나무들이 서로의 살갗을 부비며 펼치는 검푸른 소리의 파도. 창호 사이로 쏴아아… 쏟아져 들어오는 시간의 알곡을 씻는 손길에 귀 기울이며, 청년은 오랜 후에 시인이 될 것임을 예감한다. 열린 상흔들을 떨쳐버리려 떠나왔으나 비극은 어두운 뜨락에 이제 막 피어나. 먹빛 우울은 부어오른 눈가에 타오르는 것. 뚝, 뚝, 텅 빈 산자락에 버려진 초분의 눈썹이 떨어져나가는 소리. 어디선가 찢어지는 댓잎의 육성과 함께, 유성 한 점이 그 밤의 긴 행로를 서녘으로 내린다.

 

 

 

 

 

 

 

 

 

 

 

 

 

신작시(이성렬).jpg

이성렬 ㅣ

2002년 《서정시학》 등단. 시집 『비밀요원』 『밀회』 등, 산문집 『겹눈』이 있음. <문학청춘 작품상> 수상. 현재 경희대학교 교수.


웹진 월간 공정한 시인의 사회 2017년 12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