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 저자 | 김형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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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화
검은 먹을 치는 묵화를 볼 때마다
사는 일이 흰 것과 검은 것 너머에 있는 듯하여
나는 자주 닥나무꽃 피는 쌍계사 팔상전을 서성이다 오곤 한다
한 나무 위에 올라앉은 몇 새들처럼
승속이 하나로 머물러 있는 묵화 속에는
내 생의 어느 때 만난 당신과의 인연이 있고
이 생과 저 생이 다를 것 없이
지금 붓끝 안에서 이어지고 있는
눅어진 호흡이 있음을 안다
지극히 제 죽음 속을 들여다본 자들은
먼 곳을 다녀와 본 자들은
저 검은 먹색으로 피었다 지는 억겁의 생을
아무렇지도 않은 듯 신발 속에 두고
홀연히 몸을 일으켜 떠나버릴 수도 있음을

김형미ㅣ
전북 부안 출생. 원광대학교 문예창작과 졸업. 2000년 《진주신문》 가을문예와 《전북일보》 신춘문예, 2003년 《문학사상》 등단. 시집 『산 밖의 산으로 가는 길』 『오동꽃 피기 전』이 있음. 2011년 〈불꽃문학상〉 수상.
월간 웹진 공정한 시인의 사회 2017년 5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