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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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한정원 

 

  비누의 현상학

 

 

  나는 기둥 없이 둥둥 떠다니는 노마드, 구름의 거울로 버터의 무게로 고양이처럼 웅크리고 앉아 있다. 지상에 집을 짓지 못하고 나는 멀어진다. 사라진다. 검불을 몸에 붙이고 살을 깎는 나는 유목민이다. 대지에 정주하지 못하는 나를 한 움큼 잡고 너는 화살을 쏘듯 나를 놓친다. 나는 혼자 날아간다. 닳아버린 매의 부리를 달고 가벼워진다.

 

  족보도 없이 사라지는 가문의 기록을 물속에서 발견한다. 물의 지문으로 남는 비늘을 긁어내며 견고했던 출생의 향기를 기억한다. 눈 못뜨고 바라보는 세상이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진다. 매운 눈물의 문장으로 쓴 마침표가 착지하지 못하고 미끌미끌 굴러간다. 어디에 가서 박히는지 거품은 삼분이면 제자리로 돌아온다.

 

  너는 점자를 해독하듯 나의 심연으로 들어와 촉감으로 말하고 들으며 오래 기다린다. 손에 꽉 잡히지 않는 미끄러운 희망을 놓친 적이 얼마나 많았는지, 꽃을 놓친 것처럼, 아침을 놓친 것처럼 나의 집은 언제나 구멍 숭숭 뚫린 밑바닥, 축축한 숨소리가 동그란 폐허를 빠져나간다. 메마른 몸이 가벼워질 때까지.

 

 

 

 

 

 

 

 

 

 

 

 

 

 

 

 

 

 

 

신작시(한정원).jpg

한정원 |

1998년 《현대시학》 등단. 시집 『그의 눈빛이 궁금하다』 『낮잠 속의 롤러코스터』 『마마 아프리카』가 있음.

 

 

 


월간 웹진 공정한 시인의 사회 2017년 2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