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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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이영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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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


 

 

 

 

물의 맹점

 

 

욕조에 뜨거운 물을 받습니다

조용한 틈 어딘가 미지근한 당신의 세계가 찰랑거립니다

 

나는 꿈처럼 막막하게 담겨 있습니다

당신은 보이지 않지만 사방이 허파입니다

두 개의 눈빛이 부딪칩니다

나를 떠받치고 있는 부드러운 손가락은

무수한 변곡점을 지나왔습니다

 

언젠가 내가 물밑에서 빛으로 튕겨 올랐을 때

당신이 얼른 몸을 펼쳐 나는 은박지처럼 반짝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물의 습성은 흘러가는 것

 

당신은 자신이 정한 테두리에 몸을 끼워 넣습니다

욕조 물마개는 동그란 눈으로 길을 막고 있습니다

수만 겹 물 주름을 열면

울듯이 깨진 이목구비가 있습니다

 

구멍 속으로 젖혀지는 물의 스크린도어

진짜 울게 될까봐 당신은 황급히 비워집니다

어디까지가 부력이고 어디까지가 표정인지

당신은 어디선가 다시 흔들려야 할 겁니다

 

 

 

 

 

 

 

 

롱테이크 리듬

 

 

꼬리를 잘라버린 도마뱀

선혈도 없이 뒤뚱거리는 두 개의 표정

투명하게 연결된 동작이 더 격렬했다

 

너를 통과하지 못한 나는

오래 꿈틀거린다

기억 속에 갇힌 꼬리처럼

 

떠난 꼬리와 보낸 꼬리 사이에

어떤 꼬리가 생겨 우리를 버텨준 걸까

 

또다시 날선 가윗날이 입을 벌린다

함께 가던 길이 리본처럼 춤춘다

길의 끝이 우리의 끝이 아니란 듯이

 

 

 

 

 

 

 

 

웃음공장

 

 

운동장에 여자들이 모인다 원을 그리고 웃음을 생산한다 서로를 쳐다보며 목젖이 터져라 웃는다 배를 쥐어짜며 웃음을 토해낸다 금방 만든 팔랑거리는 웃음을 두고 여자들이 떠난다 운동장에는 박장대소가 손뼉을 친다 포복절도가 나뒹군다 웃음은 웃음 이전으로 되돌아갈 수 없다 웃다가 입이 찢어진 웃음이 다시는 울지 않겠다고 숨이 끊어지도록 웃는다

 

 

 

 

 

 

 

 

 


자선시


 

 

 

 

 

고드름

 

 

 

울음을 삼켰나

 

파문을 끌어안고 잠든 물

 

밤이 칼을 지키고 낮이 칼을 뺏을 때

 

요동치던 마음을 허공에 묻었다

 

지나치게 차갑고 불에 덴 듯이 뜨겁지만

 

투명한 내부에는 어떤 미래도 융기하지 못했다

 

투쟁이라도 하듯이

 

산산조각나기 좋은 자세로 매달려

 

결심한 듯

 

똑똑

 

혀를 버린다

 

다시 돌아와 수직으로 서겠다는 듯이

 

바람에 흩어지는 물의 절벽

 

 

 

―시집 『누구도 울게 하지 못한다』

 

 

 

 

 

 

 

 

어항 속의 고요

 

 

 

 

물고기는 사나운 바다를 그리워했다

플라스틱 수초는 물고기를 위해 거짓 춤을 추었다

부드러운 진동에 익숙해졌을 때

물고기의 의심은 가라앉고

말갛게 눈뜬 평화가 물고기처럼 잠들었다

물은 소리를 누르는 힘으로 사랑을 감추고

온몸이 귀인 어항이 물고기의 눈물을 들어주었다

물은 물고기에 관해서는 모르는 게 없다

너는 내 안에서 너를 지킬 뿐이지

그렇다면 울먹이는 어항은 누구의 감정인가

물고기는 가짜 팔이 만든 다정한 품속에서

내일도 무사할 거라고 믿었다

크기를 잴 수 없는 흔들림에 올라탄 채

 

―2016년 《문예중앙》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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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경주 출생. 2004년 《시작》 신인상, 200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으로 작품 활동 시작함. 시집으로 『사라진 입들』 『누구도 울게 하지 못한다』가 있음. 제15회 〈부산작가상〉 수상. 제4회 〈백신애문학상〉 창작기금 수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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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본처럼 웃고 춤추고 자율(自律)하라

 

 

 

 

모든 사람은 ‘그런’ 사람이다. A는 그런 사람, B도 그런 사람. 관형사 ‘그런’이 사람을 수식하면 어떠어떠한 사람이 완성된다. 〈그런〉 사람 사이를 우리는 걷는다. ‘그런’이란 단어 속에는 미묘하고 고유한 관계가 들어 있는 것 같다. 그러니까 이영옥 시인과 나는 그러그러한 사람 사이다. 외롭지 않게 될까봐 덜컥 겁이 난다는 그런 이영옥과 아직도 나 밖으로 잘 나오지 못하는 그런 나와, 바다가 보이는 꼼장어집에서 때론 후미진 선술집에서 가끔 술잔을 부딪친다. 술자리에서 중요한 건 술이 아니라 술잔을 부딪치는 횟수야. 나는 술을 막 권하고 짝짝짝 이영옥은 박수를 친다. 박수 소리도 경쾌하게 엔도르핀이 자갈치에 퍼진다. 그 투명한 취기의 내부를 들여다보면 흐르는 것은 흐르는 것들끼리 어울리는 것을 볼 수 있다. 잔과 잔이 부딪칠 때 흘러나오는 투명한 소리처럼…. 우리는 취기를 나누는 사이다. 나(너)이면서 내(너)가 아닌, 나(너)뿐만이 아니라 내(너) 안에 무수한 타자를 거느린 詩라는 매개와 “타인은 지옥”이라고 말한 사르트르는 잠시 서랍에 넣어두고 나온 우리들, 그리고 우리는 흐트러진다.

 

내가 아는 이영옥은 스스로 그러한 사람이다. 그래서 맑다. 꾸며서 말하는 법이 없다. 자신의 감정을 통제함으로써 타인에게 긍정적인 감정을 제공해야 하는 감정노동을 하지 않는다. 감정의 주인이 더 이상 자신이 아닐 때, 필터링 없이 감정을 원하는 방향으로 놓아둔다. 그래서 솔직 담백하다. 자신의 존재가치를 부정하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그녀는 투명하다 못해 속이 훤히 보인다.

 

그녀가 어항의 맑은 물속 수초 사이로 숨을 때가 있다. 그때는 깊이깊이 시의 집으로 들어갈 때다. 계절의 속도에 맞춰 살아가는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이 상식대로 살아간다는 것을 일찍이 아는 시인이기 때문이다. 집으로 가는 길이 상식이듯, 이영옥은 세상 속으로 숨지 않는다. 자신 속으로 숨는다. 시의 세상으로 들어간다. 부딪친다. 그리고 그것들을 쓴다. 시는 언어를 재현하는 수단이 아니라 시 자체임을 보여주는 그녀의 시 한 편을 보자.

 

울음을 삼켰나

 

파문을 끌어안고 잠든 물

 

밤이 칼을 지키고 낮이 칼을 뺏을 때

 

요동치던 마음을 허공에 묻었다

 

지나치게 차갑고 불에 덴 듯이 뜨겁지만

 

투명한 내부에는 어떤 미래도 융기하지 못했다

 

투쟁이라도 하듯이

 

산산조각나기 좋은 자세로 매달려

 

결심한 듯

 

똑똑

 

혀를 버린다

 

다시 돌아와 수직으로 서겠다는 듯이

 

바람에 흩어지는 물의 절벽

―「고드름」 전문

 

이 시는 일상에 대한 관찰자의 시선이 일반적인 일상적 시선과 각도를 달리하여 나타난다. 이영옥이 각도를 달리하는 시적 지점은 ‘허공’에 대한 동경과 ‘울음’ 혹은 버리므로 다시 돌아오는 영원회귀를 지향하는 데 있다. 물의 다양한 변형태 중에서 고체의 모습이 고드름이다. 수직으로 서 있는 것 같지만 거꾸로 매달려 있다. 온도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추운 겨울 “다시 돌아와 수직으로 서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품은 채, “파문을 끌어안고 잠든” 얼어붙은 결심을 붙들고 있다. “울음을 삼키”며 혀를 버릴 만큼의 비장미가 보이지만, “바람에 흩어지는 물의 절벽”처럼 흩어질지언정 어떤 조건과 타협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렇듯 이영옥 시인의 시를 독특하게 만드는 매력은 진부함을 벗어난 시선의 각도에 있다.

내 감정의 주인은 ‘나’라고 자신 있게 발화하는 시인은 독자를 위로하려고 하지 않는다. 오히려 독자를 이성의 칼날 위에 세워두고 정신을 가다듬으라고 말하는 것 같다. 하기야 어떤 시인이 독자의 마음을 위무하려고 시를 쓴단 말인가? 이처럼 당연한 말 앞에다 나는 굳이 이영옥이란 이름을 내세워 공감한다. 그만큼 철저하게, 시인은 아무도 위로하지 않는다. 그녀는 자기 위안이나 타인을 향한 연민으로 빠지는 것을 용납하지 못한다. 어떠한 함정에서 비켜서기라도 하는 듯 차분하고 냉랭한 호흡에 집중할 수 있게 우리를 끌어들인다.

 

이영옥 시인의 두 번째 시집 『누구도 울게 하지 못한다』에 수록된 백미의 문장, “접히는 우산처럼 나를 떠났던 방향들이 순식간에 돌아왔다”(「물앵두꽃」)를 나는 신뢰한다. 하나의 문장을 읽으면 두 개의 문장이 딸려 나오는, 이영옥의 시가 갖는 힘은 바로 여기에 있다. 긴 여운의 울림에 있다. 울림이란 애초의 파장을 죽이면서 태어나는 것이기도 하지만 단순한 서정이 아닌 끌어올리는 힘과 그것을 열어주려는 움직임이 긴밀하게 만나 길항하는 사이에도 있다. 울림은 공명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오는 것이다. 이때 ‘오직’의 상태를 일러 간절함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이영옥은 간절함으로 오직의 시를 쓴다. 가장 직접적인 삶의 바로미터는 시라는 듯이……

 

그녀의 눈에 포획된 것들은 서로를 응집한다. 이는 그녀가 섣부른 자기연민을 배제하고 미련 없이 돌아서기 때문인 것인가. 자유분방한 카오스를 툭 열어놓고 그 혼돈을 낯선 물의 시선으로 천천히 채우는 다음의 시를 보자.

 

욕조에 뜨거운 물을 받습니다

조용한 틈 어딘가 미지근한 당신의 세계가 찰랑거립니다

 

나는 꿈처럼 막막하게 담겨 있습니다

당신은 보이지 않지만 사방이 허파입니다

두 개의 눈빛이 부딪칩니다

나를 떠받치고 있는 부드러운 손가락은

무수한 변곡점을 지나왔습니다

 

언젠가 내가 물밑에서 빛으로 튕겨 올랐을 때

당신이 얼른 몸을 펼쳐 나는 은박지처럼 반짝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물의 습성은 흘러가는 것

 

당신은 자신이 정한 테두리에 몸을 끼워 넣습니다

욕조 물마개는 동그란 눈으로 길을 막고 있습니다

수만 겹 물 주름을 열면

울듯이 깨진 이목구비가 있습니다

 

구멍 속으로 젖혀지는 물의 스크린도어

진짜 울게 될까봐 당신은 황급히 비워집니다

어디까지가 부력이고 어디까지가 표정인지

당신은 어디선가 다시 흔들려야 할 겁니다

―「물의 맹점」 전문

 

그녀의 시를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작품 곳곳에 배치된 “무수한 변곡점”이나 “울 듯이 깨진 이목구비”가 있는 이미지 자체가 아니라, 그러한 이미지를 통해 확보되는 절묘한 균형감이다. 그것은 잘 부려 쓴 시어가 주는 말맛과 생동하는 기운이 주는 아름다움이다. 다시 말해서 시인의 모든 시적 발화는 황홀한 거리재기의 철저한 수행이기도 하다. 가령, “물의 습성”은 흘러가는 것과 찰랑거리는 것, 황급히 비워져서 없어지는 일정한 거리이며, 미처 생각이 미치지 못하는 것이기에 늘 흔들리는 것임을 깨달음과 동시에 더욱 간절하다고 느끼는 것이다. 소리에서 물소리로, 반향에서 잔향으로, 빛에서 눈빛으로, 몸 바깥으로 나오는 소리와 몸 안으로 스며드는 소리를 낼 줄 아는 최후의 시인 이영옥.

 

시인은 아무것도 되어선 안 된다. 오직 시인만이 되어야 한다. 아무것도 되지 않기 위해 오로지 지(作)어야만 한다. 지나친 역설일까? 그러니 나를 좀 제발 그냥 놔두시오. 좀머 씨처럼 그렇게 말할 줄 알아야 한다. 당연하게도 어떤 존재가 끝없이 맴돌아야 하는 삶이란, 삶의 유비적 공간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시인은 바로 이곳 지금 여기, 삶의 자리에서 (무엇?)을 보아야 한다. 지적 호기심의 과잉이 지적 유희로 흐르는 경향이 짙은 요즘의 넘쳐나는 시에 단순한 보탬이 아닌 빛나는 금과옥조의 시인이 되기를 바래본다. 우리는 잔인할 정도로 시에게 솔직해져야 하지 않을까. “그 무엇도 시도할 용기가 없다면 인생은 무슨 의미가 있는가?”라는 고흐의 말이 경계를 넘고픈 모든 이들에게 주는 따스한 격려로 다가올 때, 그 정점에 이영옥은 있다.

 

“오, 고귀한 가문에서 태어난 자여”(『사자의 서』), 시인이다.

 

 

 

글 · 권정일 | 1999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등단. 시집 『양들의 저녁이 왔다』 『수상한 비행법』 『마지막 주유소』, 산문집 『치유의 음악』이 있음. 〈부산작가상〉 〈김구용문학상〉 수상.

 

 

 

 

 

 

월간 웹진 공정한 시인의 사회 2017년 12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