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2017
Extra Form Output
저자 최영규 

이달의시인_top(7월).jpg

이달의_시인_head(7월).jpg

 

 

 

 

 


신작시


 

 

 

 

 

카주라호驛에서 눈동자 없는 사내를 만났다

―안데스 29

 

 

 

1.

파열이 만든 깊은 간극

피켈로 얼은 눈을 찍어 저만치 던져본다

깊은 메아리로 답을 하는 크레바스* , 되돌아온

두려운 눈빛의 시간

돌아오지 못한 향기의 시간

 

장딴지를 툭 건드리는 장님의 작대기

백년은 넘었을 침목들이 버티고 있는 카주라호驛**

건너편 플랫폼

 

그곳에 그을린 석상처럼 서서

다시는 움직이지 못할 것 같은 열차, 창에는

세상에, 감옥처럼 창살이 있다

그 안쪽 컴컴한 틈새로 빠졌던 시선

돌아오는 길을 잃고 말았다

 

눈동자가 없는 눈

그와 나는 불편한 자리로 마주섰다, 크레바스,

 

당신은 나를 볼 수 없다

우리는 서로를 알아볼 수 없다

 

2.

우리는 지금을 “이때였어!”라고 하자

시간은 눈빛이거나 소리였을까

생각의 흔적마저 지워가는 것

 

냄새로 돌아오지 않는 향기

아름다움은 처음부터 사내 것이 아니었다.

 

3.

푸른 구름이 떠내려 와 해를 가린다

기온이 뚝 떨어진다

춥다

누가, 검은 눈동자를 건너는 것일까

 

지도에도 없는 크레바스

살아서는 건널 수 없는

누구나 죽어서야 다시 살아나는, 살아난다.

 

 

 

*크레바스(crevasse): 빙하가 갈라져서 생긴 좁고 깊은 위험한 틈.

*카주라호역(Khajuraho Railway Station): 뉴델리에서 남동쪽으로 620km 정도 떨어진 인도 중부의 유서 깊은 도시의 철도역.

 

 

 

 

 

 

 

 

 

 

 

바람이 되어 그 소리가 되어

―안데스 30

 

 

 

새벽까지도 바람은 텐트를 잡아 흔든다. 정신에 섬뜩 불이 켜지고, 밤새 어둠을 밟고 온 새벽은 칼날처럼 선연하다.

 

고요한 함성, 명치끝 어디쯤에 뭉쳐 있던 불꽃인가. 저기, 라마제* 때 걸은 불경(佛經) 빼곡히 적은 깃발들의 끝자락에 매달려 바람은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렇게 온몸을 뒤척이던 바람은 나를 흔들어 세우고 낭파라를, 갸브락 빙하를, 끝없는 티베트의 설원을 간다. 내가 딛고 서 있는 여기 이 땅의 끝 초오유*의 정상 너머로까지 뜨거운 갈기를 세운다.

 

아, 거대한 빙하와 속을 알 수 없는 높고 거친 설산들. 그들 앞에 팽개쳐진 듯 나는 혼자다.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그러나 가고 싶은 그곳으로 바람이 되어, 그 바람의 소리가 되어.

 

 

 

*라마제: 일반적으로 원정대들이 등반의 성공과 무사귀환을 산신에게 기원하는 전통적인 티베트의 불교의식이다.

*초오유(Cho Oyu): 히말라야 8000미터급 14좌 중 6번째의 높이를 갖고 있는 봉우리(8,201m)로 에베레스트(Everest 8,848m)로부터 북서쪽으로 28Km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 초(Cho)는 ‘신성 또는 정령’이란 뜻이고, 오(O)는 여성의 어미(語尾)로, ‘초오’는 ‘女神’이란 뜻이 되며, 유(Yu)는 터키옥(玉) 즉 보석을 뜻한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초오유를 ‘터키옥의 여신’을 뜻한다고 말하지만, ‘신의 머리’ ‘강력한 (큰)머리’ ‘강한 통치자’ ‘큰 산’ 등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서티베트 지역의 라마승들은 ‘거대한 머리’를 뜻한다고 얘기한다.

 

 

 

 

 

 

 

 

 

해빙(解氷)

―안데스 31

 

 

 

판대빙폭*

혹한(酷寒)을 잡아들고

봄비 속으로 사라진다.

 

몸마저 풀어, 찢어지면서

아랑곳없는 깊이

제 얼굴 강바닥으로 떨구며

겨울을 떠나고 있다.

 

먹먹한 빗발 속에서 격막에 갇혀

몸을 여는 저 굉음의 밖,

우리가 찬 손등을 포갤 때

그것은

투명했던 시간의 심장이

천둥 같은 음악으로 되돌아오는,

처음 그때로 돌아가는

마지막

한 판 춤,

 

아, 눈부셨던 경직(硬直).

 

 

 

*판대빙폭: 강원도 원주 판대유원지에 있는 100m 높이의 인공빙폭.

 

 

 

 

 

 

 

 

 

이달의_시인_썸네일(7월).jpg

강원 강릉 출생. 1996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등단. 시집 『아침시집』 『나를 오른다』 등이 있음.

〈서사시문학〉 동인. 한국시인협회 사무총장 역임. 〈한국시문학상〉 〈경기문학상〉 〈바움작품상〉 수상.

 

 

 

 

 

 

 

 

 

 

시인론head(7월).jpg

 

 

 

a Peak & a Pulse

 

 

 

1.

약속 시간을 두 시간여 앞두고 서둘러 출발했다. 늘 그랬지만 100번 고속도로는 판교 부근에 닿을 때까지 휑하니 뚫려 있었다. 시간이 남으면 팔당 근처 찻집에서 북한강을 바라보며 차 한잔하자고 들떠 있었다. 그랬지만 판교에서 하남을 빠져나올 때까지 차는 적당한 밀려주었고, 우리 일행은 그리 늦지 않게 조안면에 닿을 수 있었다. 커다란 밤나무 그늘 아래서 최영규 옹(?)의 히말라야 원정을 축하(?)하는 조촐한 환송연이 시작되었다. 햇빛 짱짱한 정오에, 게다가 전날 김상미 시인의 출판기념회를 빡세게 달린 몇몇 인사들은 시작부터 인사불성에 가까웠다. 물론 최후에는 필자가 일착으로 대취(大醉)에 이르러 보잘 것 없는 기억의 테이프를 또 끊어버렸지만, 어쨌든 최영규 시인은 우대식 시인의 최근 작품에 등장한 어휘를 차용해 정의하자면 ‘따궈(大兄)’ 기질이 농후하다. 산이나 축구나 시에서나 형은 마치 든든한 배후(背後)처럼 장(場)을 열고, 또 깔끔하게 마무리한다.

컷 1, 까맣게 그을린 초췌한 얼굴이 왼쪽 45도쯤의 사선으로 내려다보고 있다. 오른쪽에는 눈 덮인 까마득한 고산준봉(高山峻峰)이 보인다. 컷 2, 한낮의 햇빛이 작열하는 잔디 위 검은 반바지에 빨간 상의를 입은, 아니 안경 안쪽 토끼 눈을 한 아저씨가 뛸 자세를 취한다. 컷 3, 잘 다려진 하얀 반팔 와이셔츠 차림으로 흰 얼굴 하나 오른손에 적포도주가 반쯤 담긴 와인 잔을 들고 흐뭇하게 앳되거나 원숙한 면면의 좌중(座中)을 둘러보고 있다.

제 아무리 이미지의 시대라지만, 캡션이 붙지 않은 이미지의 단순 나열은 결코 의미를 생성하지 못한다. 앞의 3컷은 시인 최영규의 초상(肖像)이다. 나는 소일거리 삼아 작은 블로그를 운영하는데, 거기 ‘앨범’ 코너에서 찾아볼 수 있는 사진이다. 첫 번째 것은 최영규 시인이 보내준 히말라야 원정 때의 것인데, 공격 대상은 기억이 나지 않고 그 초췌한 행색에 괜히 가슴이 아팠던 기억만 난다. 두 번째 것은 시인축구단 〈글발〉의 경기 중에 찍은 것인데, 유니폼이 빨간 상의라면 이 또한 거뜬히 몇 년이 흐른 것일 것이다. 마지막은 한국시인협회 사무국에서 허영자 선생님을 회장으로 모셨던 인연으로 가끔 모여 식사를 하는데, 그때의 사진이다. 이쯤이면, 필자와 최영규 형과의 관계가 어느 정도는 드러났으리라 짐작한다. 정말 중요한 것들도 다 드러났다. 시인 최영규가 지향하는 목표와 그가 견지(堅持)하려는 생의 자세, 그리고 언제나 배어 나오는 그의 성품까지 말이다. 단 하나 아쉬운 점이 있다면 그의 시 세계에 관한 것인데, 비록 이 글이 작품론이 아니고 시인론의 성격을 가져야 하지만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마구 뭉뚱그려 써볼 작정이다.

최영규 형은 1996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시 「부의」가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1990년대 중반은 특정한 의미에서 한국 현대시의 최대 활황기였다고 할 수 있다. 주지의 사실이지만 동서냉전과 한반도를 휘감았던 극단적 이데올로기의 대립이 느슨해지면서 7, 80년대 (자기검열이었든 외부의 압력 탓이었든) 금기시되었던 과도한 자의식과 욕망을 마구 분출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시대와 사회에 조금은 무책임하게 보이는 그렇다고 치열하게 반항적이지도 않은 이런 경향들이 ‘젊은’이라는 빛나는 수식어를 달고 서서히 스크럼을 짜기 시작했을 때 형은 공식적으로 시단에 첫발을 내딛었다.

 

봉투를 꺼내어

부의라고 그리듯 겨우 쓰고는

입김으로 후ㅡ 불어 봉투의 주둥이를 열었다

봉투에선 느닷없이 한 움큼의 꽃씨가 쏟아져

책상 위에 흩어졌다 채송화 씨앗

씨앗들은 저마다 심호흡을 해대더니

금세 당당하고 반짝이는 모습들이 되었다

책상은 이른 아침 뜨락처럼

분홍 노랑 보라빛으로 싱싱해졌다

씨앗들은 자신보다 백배나 큰 꽃들을

여름내 계속 피워낸다 그리고 그 많은 꽃들은 다시

반짝이는 껍질의 씨앗 속으로 숨어들고

또다시 꽃 피우고 씨앗으로 돌아오고

나는 씨앗 속의 꽃이 다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한 알도 빠짐없이 주워 봉투에 넣었다

봉투는 숨 쉬는 듯 건강해 보였다

머니 마실 다니시라고 다듬어 드린 뒷길로 문상을 갔다

영정 앞엔 늘 갖고 계시던 호두알이 반짝이며

입 다문 꽃씨마냥 놓여 있었다

―「부의」 전문

 

초기작은 언제나 그 시인의 진면목(眞面目)을 알아보는 데 좋은 길라잡이가 된다. 시적 발상이나 시어의 고른 숨결(신춘문예 당선작인데, 무슨 말을 덧대랴.), 시적 현실을 형상화하는 이미지의 힘 등은 논외(論外)로 하고, 이 작품을 볼 때마다 탄복하게 되는 것은 구조적 안정성이다. 그것은 단순히 습작 기간이 길었다거나 아주 훌륭한 스승을 모셨기 때문이라는 식으로 환원할 수 없다. 어리면 미숙하기 마련이고, 그 미숙함은 치기(稚氣)로 곧잘 이해되곤 한다. 하지만 어느 정도의 연륜이라면 그에 걸맞은 자기 구조를 건설해야만 한다. 시는 어휘의 진열이나 조합이 아니고 분할과 배치에 더 가깝기 때문이다. 어쨌든 최영규 형이 보여준 놀라운 ‘구조적 안정성’에도 불구하고 형이나 나나 지난(至難)한 시인 시절을 보내야만 했다.

 

 

2.

최영규 형에게서 ‘따궈’의 기질이 엿보인다고 했지만, 실제로 내가 연루(連累)된 추억들은 형의 그런 면을 실증적으로 보여준다. 딱 하나만 공개하면, 본령(本領)에 충실하지 못한 인사일수록 위계와 서열을 따지기를 좋아한다. 나는 그런 인사들 중에서도 하류에 속한다. 형보다 5년 먼저 등단했다고, 나는 〈글발〉 축구단의 창립멤버고 형은 영입인사라고 얼마나 찧고 까불었는지 모른다. 그때마다 형은 “에이, 이놈아!” 하면서 호탕하게 웃어 넘겼다. 그리고 강산이 한번 바뀔 즈음에 모든 것은 달라져 있었다. 형은 늘 그랬듯이 바쁘고 산에 갈 궁리에 몰두하고, 시작에 골몰할 뿐인데, 이제는 절로 ‘형!’ 소리가 나온다. 자기 실천으로 주변의 헛소리를 잠재우는 것, 이것이 최영규 형이 가진 진정한 ‘대형’의 기질이다.

이를 형의 두 번째 시집, 『나를 오른다』(문학아카데미, 2012)의 표4에서 정진규 시인께서 정확하게 짚어냈다. 그대로 인용한다. “최영규의 「안데스」 연작 13편을 비롯한 또 다른 ‘시산(詩山)’들을 오르면서 주역의 ‘감지(坎止)’라는 말이 거듭 떠올랐다. 물이 흘러가다 구덩이를 만나면 구덩이를 다 채워 넘칠 때까지 기다린다. 묵묵히 역경과 시련을 감내하면서 본래의 자신을 찾아가는 진솔한 과정을 뜻하는 말이다. 그런 ‘감지’의 정신이 최영규의 시 정신이요 존재론이다.” 이 해석은 오늘도 유효하다. 그것은 형이 ‘항심(恒心)’의 소유자라는 것의 다른 말이 아니다.

 

매일같이 내 속에는 자꾸 산이 생긴다

오르고 싶다고 생각만 하면

금세 산이 또 하나 솟아 오른다

내 안은 그런 산으로 꽉 차 있다

갈곶산, 육백산, 깃대배기봉, 만월산, 운수봉…

그래서 내 안은 비좁다

비좁아져 버린 나를 위해 산을 오른다

나를 오른다

간간이 붙어 있는 표식지를 찾아가며

나의 복숭아 뼈에서

터져나갈 것 같은 장딴지를 거쳐 무릎뼈로

무릎뼈에서 허벅지를 지나 허리로

그리고 어렵게 등뼈를 타고 올라 나의 영혼에까지

더 높고 거친 나를 찾아 오른다

기진맥진 나를 오르고 나면

내 안의 산들은

하나씩 둘씩 작아지며 무너져 버린다

이제 나는

오르고 싶다는 생각을 지울 수 있다

나를 비울 수 있다.

―「나를 오른다」 전문

 

앞에서 이미지엔 캡션이 필요하다고 했지만 도저한 진술에는 앞에나 뒤에 군말을 덧댈 이유가 없다. (실제 모 신문에 형의 이 시를 소개할 기회가 있었다. 나는 군말 없이 전문만 싣자고 했지만 거부당했다.) 형의 ‘산맥’ 연작은 앞으로도 당분간 이어지겠지만, 그 이유가 앞의 작품에 명료하게 드러난다. 그것은 “더 높고 거친 나를 찾아 오른다”는 것인데, 여기서 내가 좋아하는 니체를 원용해 “비상하려면 추락해라” 같은 말을 늘어놓는다면 정말 ‘대취’ 상태에 불과한 것이므로 삼킨다.

우리는 흔히 시작에서 자신을 극한으로 몰고 간다고 주장하는 인사들을 보기도 한다. 그 진정성이야 확인할 길이 없지만, 최영규 시인이 ‘산’에 오르는 이유는 자못 명확하게 드러난다. 그것은 그의 존재가 현현하는 순간이 거기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시공의 위치를 조금 바꾸면 형이 ‘시’를 통해 존재를 발현시키겠다는 자기 의지에 아직 충실하다는 의미도 된다. 그러므로 ‘산과 시’는 결국 제 ‘꼬리를 입으로 문 형국’이라 할 수 있는데, 아픔이 투지를 만들고 그 투지로 더 이 악물어봐야 더 큰 고통이 불가피한 것은 뭇 생명의 생존방식이고 존재 근거일 뿐이다. 그러므로 형의 “나를 비울 수 있다”는 바람은 지극히 개인적이며 보편화된다.

 

 

3.

우리는 모두 자기의 ‘산’을 각기 다른 형상으로 껴안고 산다. 최영규 형은 이번 원정에 남다른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미뤄 짐작할 수 있는 여건의 변화가 여럿 있다. 이미 매듭을 묶었는데 징징대야 무슨 소용? 스스로 자기 행장을 다 푸는 봄날을 기대한다. 그러나 이번 원정이 끝나도, 장담컨대 형은 나를 온전히 비워내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시’가 아직 남았고, “우리 영혼은 일생을 살지 않아도 충분하다”고 선언한 해롤드 블룸의 말처럼, 종지부(終止符)가 찍히기 전까지 우리 ‘영혼’은 끊임없이 새로운 시의 산맥을 치솟게 할 것이니, ‘형의 등반은 나의 침강(沈降)과 다르지 않다’고 믿는 새벽, 슬쩍 전화를 넣고 싶다.

 

 

 

글 · 백인덕 | 시인. 1991년 《현대시학》등단. 시집 『단단함에 대하여』 등이 있음.

 

 

 

 

 

 

 

 

월간 웹진 공정한 시인의 사회 2017년 7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