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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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김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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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


 

 

 

일인칭 식탁

 

 

〈단단한 접시가 쌓여간다〉는 문장을 바닥에 던진다

 

이마에 담긴 뜨거운 스프가 깨져버렸다

 

빛나는 수저는 어떤 맛일까요

허기와 과식, 발버둥치는 내가 쏟아져 나온다

 

식탁 위 태양이 흘러내려요 그래요 요리는 잘하고 싶었죠 웃다가 울던 접시가 나를 핥고 지나가네요 별 맛도 내지 못하는 요리 솜씨가 문제였을까요

 

젓가락들은 야위어가고 더 이상 식탁의 고백이 들리지 않네요 하얗게 날리는 질문을 반죽해요 날마다 불가능한 빵이 부풀고 끝내 뚜껑이 열리고 비밀들이 끓어 넘쳐요

 

나는 〈나를 꾸역꾸역 삼키고 있어요〉라는 문장을 뜯어 먹는다

 

오늘의 비명이 맛있게 익어가고 있다

 

 

 

 

 

 

 

 

 

자작나무는 나를 모르고

 

 

 

 

돌아오지 않는 나무들이 바닥에 뒹군다

얼굴 없는 흰 발자국만 떠다니는

 

숨어드는 잎사귀의 아름다운 표정들

사라지고 나타나고 다시 사라지는

 

자작나무는 나를 모르고

나를 모르는 너를 모르고 고요히

나무인 줄 모르는 나무의 이야기처럼

 

나에게 물러서라고 외치는 그대는

좁고 휘어진 길에서 뛰어내리는 중이라 말했다

 

입김 나는 투명한 언어들이 잘 자라는 구나

안녕은 안녕이란 맨발을 꺼내 보이고

 

그때 하늘은 아주 검지도 하얗지도 않았는데

어떤 가지는 눈빛이 되고 기나긴 겨울이 되지

 

슬픔이 자라는 줄도 모르고

어딘가로 떠나는 문장들

세상의 반을 찌르고 나머지 반은 삼키며

 

 

 

 

 

 

 

 

 

 

 

 

밤의 출구

 

 

 

 

꿈의 한가운데 구멍이 나 있다

 

잠 밖으로 흘러넘치는 문장들

꿈이라고 다시 불러보는

 

너는 벽 뒤로 사라지곤 했다

 

기다려도 만져지지 않는

‘여기’ 가 동그란 하품을 열고

 

보이지 않는

닿으면 사라지는 아침은

 

왜 부풀지 않고 납작해지나요

새털 같은 잠을 저울에 매달고

남아 있을까요

 

귀 기울여요 빛나는

모서리는 어디로 간 것일까요

 

‘여기’로 흐르는 물결이 다시

벽 뒤로 사라지네요

 

꿈 안에 잠든 당신과

꿈 밖에 나를 건너

 

여기, ‘여기’ 있는데

 

 

 

 

 

 

 

 


자선시


 

 

 

선글라스

 

 

그늘에 선 그는 모든 것이 검다 숨고 숨겨주고 추격하다 달아나는 시간의 뿔테, 빛을 발한다 불타는 태양의 검은 테두리를 본 것은 그 즈음, 비닐봉지 속의 생선처럼 어둠이 흐르기 시작한 것이다 햇빛이 뛰어들고 방아쇠를 당기던 한낮, 검은 선글라스의 날들이다

 

일초 전과 일초 후 다른 암호처럼

그늘은 점점 짙어지는데

흩날리는 눈동자 때문인가요?

당신의 그림자는 보이지 않네요

창문마다 물고기가 몰려다니고

휘파람 소리가 흘러나와요 어디선가

 

물고기들이 벽을 타고 오른다 회색 가스 파이프를 타고 콘크리트 건물 간판 속을 헤엄치며 산꼭대기까지 오른다 오르고 오르다 자세를 휘발하고 마는 꿈꾸는 지느러미여! 발아래 썩은 냄새가 번져나가기 시작했다

 

 

 

 

 

 

 

 

 

 

안개남자

 

 

 

 

이것은 한 여름 밤 번개를 만드는 바람의 손이며

그 손을 꽉 움켜쥔 안개, 그 마지막 눈빛을

기억하는 한 남자의 고백이다

 

 

6과 9사이 안개가 가득하다

 

거꾸로 매달린 빌딩 사이로 한 남자가 떠가고 있다 안개에 손목을 넣고 흔들자 빌딩의 벽과 창이 휘어진다

 

눈동자, 안개의 피를 수혈하는 눈동자가 다가온다

 

물방울이 떨어진다 그때마다 휴대폰에서 희뿌연 골목이 흘러나오고 네가 보낸 문자를 읽을 수가 없구나

 

손바닥을 펴서 안개 속으로 사라지는 일을 생각한다 막다른 햇살은 어디로 갔나요

 

빠져나가는 모래알들을 세어봐요

 

빌딩을 덮은 거대한 동공이 소리친다 태양을 가린 안개가 지나, 지나갑니까

 

내일이 뚝뚝 끊어져 내린다 흘러내리는 표정일까 손바닥이 젖어버렸어

 

남자는 미끄러지는 모래알을 던져버린다

태양이 그림자를 끌고 날아간다

 

 

 

 

 

 

 

 

스프링

 

 

 

 

이것은 나선형 미로,

스프링의 환상에 대한 기록이며 움츠렸다

펴지기를 반복하는 스프링을 향한

당신의 무심한 시선이기도 하다

 

삐걱대는 스프링의 신음은 탄성을 반증하는 소리

아마 그것은 당신 아래 찌그러져 잠든

녹슨 스프링의 노래일지도 모른다

 

또한, 점점 증폭되는 스프링의 몸짓에

모르는 척 등 돌리는 우리들의 이야기가 아닐까

 

스프링이 스프링이기를 포기할 때까지 그녀는 달린다 우리를 자동 반복시킨다 온몸을 돌리고 돌리며 회전시킨다 안에서 밖으로 휘어지게 한다 그의 몸에서 떠나지 못하게 한다 바깥을 휘어감아 안으로 넣는다 속으로 깊어진다 앞뒤로 흔들린다 이것은

 

말하지 않은 약속을 지키는 것이다

세상 바깥으로 튕겨나가지 않는 것이다

스프링이 스프링이기를 포기할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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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현대시》 등단. 시집 『하드와 아이스크림』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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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시인이 있다

 

 

 

 

그리스어는 시간을 ‘크로노스(Chronos)’와 ‘카이로스(Kairos)’, 두 가지로 표현한다. 크로노스는 우리가 통속적으로 생각하는 시간이다. 즉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져서 똑같이 흐르는 객관적인 시간, 일직선으로 지속되는 연대기적 시간, 달력의 시간이다. 반면 카이로스는 상대적이고 주관적인 시간이다. 크로노스 안에서 각자가 맛보는 경험의 순간, 충만한 감동의 순간, 고유한 의식으로 가득한 시각이다. 크로노스가 일상의 시간이라면 카이로스는 그 일상에서 시간이 특별한 의미를 가지면서 완성되고 향유되는 때이다.

카이로스는 제우스의 아들인 ‘기회의 신’의 이름이기도 하다. 이 신은 생김새가 우스꽝스러운데 앞머리는 풍성하나 뒷머리가 없고, 어깨와 발에 날개가 달려 있다. 그리스의 카이로스 석상에는 그 연유가 적혀 있다고 한다. “내 앞머리가 무성한 이유는 사람들이 나를 쉽게 붙잡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뒷머리가 없는 이유는 내가 지나가면 다시 붙잡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어깨와 발뒤꿈치에 날개가 달려 있는 건 최대한 빨리 사라지기 위해서다. 내 이름은 카이로스, 바로 기회이다.”

크로노스 속에서 마주치는 저 카이로스는 비일상적인 고양의 한때라는 점에서 시적 순간이기도 하다. 견고하게 이어지던 일상이 잠시 허물어지며 이성과 질서의 그늘에 가려져 있던 것들이 모습을 드러낼 때, 세계의 이면이 투명하게 비치고 사물들이 우리에게 말을 걸어오는 영감의 순간, 앞머리밖에 없는 기회의 신을 놓치지 않기 위해 펜을 든 시인은 이때를 시로써 영원으로 되살려낸다. 시인은 일상을 영위하는 생활인과 시를 쓰는 자 사이에서 흔들리며 이러한 카이로스로서의 시적 순간을 다시 기다리지만, 안타깝게도 그런 일은 자주 벌어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무작정 손을 놓고 있을 수만은 없는 노릇이어서 고민 끝에 몇 줄을 적어보지만 성에 차는 문장 하나를 쓰는 것은 지난한 일이다. 마침내 시인은 “〈단단한 접시가 쌓여간다〉는 문장을 바닥에 던”져버리고야 만다.

 

 

<단단한 접시가 쌓여간다>는 문장을 바닥에 던진다

 

이마에 담긴 뜨거운 스프가 깨져버렸다

 

빛나는 수저는 어떤 맛일까요

허기와 과식, 발버둥치는 내가 쏟아져 나온다

―「일인칭 식탁」 부분

 

 

그때 하늘은 아주 검지도 하얗지도 않았는데

어떤 가지는 눈빛이 되고 기나긴 겨울이 되지

 

슬픔이 자라는 줄도 모르고

어딘가로 떠나는 문장들

세상의 반을 찌르고 나머지 반은 삼키며

―「자작나무는 나를 모르고」 부분

 

 

꿈의 한가운데 구멍이 나 있다

 

잠 밖으로 흘러넘치는 문장들

꿈이라고 다시 불러보는

 

너는 벽 뒤로 사라지곤 했다

―「밤의 출구」 부분

 

 

이상 김미정 시인의 신작시 3편에는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단어가 하나 있다. 바로 ‘문장’이다. 이 문장들은 아직 시가 되지 못한 말들, 시인이 시로서 되살려주기를 기다리고 있는 또는 시인이 시로써 복원하고자 하는 카이로스의 언어들이다. “빛나는 수저”나 “숨어드는 잎사귀의 아름다운 표정들”(「자작나무는 나를 모르고」)로 표상된 저 세계 이면의 언어는 그러나 눈 깜빡할 사이 “어딘가로 떠나”가거나 “사라지곤” 한다. 강력한 일상의 탄성은 곧장 시인을 크로노스로 떠밀어버리고, “더 이상 식탁의 고백이 들리지 않”는 현실에는 시가 되지 못한 “하얗게 날리는 질문”들이 부유할 뿐이다. “날마다 불가능한 빵이 부풀고 끝내 뚜껑이 열리고 비밀들이 끓어 넘”치지만 이 카이로스는 찰나적이며, “별 맛도 내지 못하는 요리 솜씨가 문제였을까요”(이상 「일인칭 식탁」)라는 고백처럼 그것을 형상화한 작품 역시 시인 스스로 보기에는 매번 어딘가 부족하게 느껴진다.

크로노스와 카이로스, 일상과 시적 순간, ‘문장’과 시 사이에서 흔들리며 방황하는 시인의 정황은 3편의 신작시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일인칭 식탁」에서의 ‘허기/과식’, 「자작나무는 나를 모르고」에서의 ‘세상의 반/나머지 반’, 「밤의 출구」에서의 ‘꿈 안/꿈 밖’ 그리고 ‘닿으면 사라지는 아침/빛나는 모서리’가 그렇다. 이 양극단의 세계에서 “발버둥치는” 시인은 자연스레 이들의 조화와 균형을 꿈꾼다. “그때 하늘은 아주 검지도 하얗지도 않았는데/어떤 가지는 눈빛이 되고 기나긴 겨울이 되지”라는 구절은 ‘검다/하얗다’ 같은 이분법이 소거된 그러한 세계의 정경을 보여준다. “입김 나는 투명한 언어들이 잘 자라는구나/안녕은 안녕이란 맨발을 꺼내 보이고”(이상 「자작나무는 나를 모르고」)에서처럼 그곳의 언어는 시화(詩化)를 기다리는 ‘문장’이 아니라 그 자체로 이미 완성된 시다. 세계의 이면에 도사리고 있던 진리나 시인이 해석해야 할 사물의 말이 아니라 스스로 오롯한 언어다.

저 “맨발”의 “투명한 언어”가 김미정 시인이 도달하고자 하는 경지라면, 시 쓰기는 양극단의 세계를 통합하여 그 경지를 열어줄 빅뱅이다. 하여 시인은 각고의 노력으로 때로는 “좁고 휘어진 길에서 뛰어내리는”(「자작나무는 나를 모르고」) 과감성으로 시를 써나가지만, 이러한 수고는 시적 순간의 찰나성과 세계의 이면에 바로 조응하지 못하는 언어의 근본적인 한계 앞에 번번이 실패를 맛본다. “기다려도 만져지지 않는/‘여기’가 동그란 하품을 열고”에서 ‘여기’는 일상이 전복되는 정동의 찰나, 시의 손길을 기다리는 카이로스의 순간일 것인데, “‘여기’로 흐르는 물결이 다시/벽 뒤로 사라지”(이상 「밤의 출구」)는 것을 시인은 안타깝게 바라볼 뿐이다. “나는 〈나를 꾸역꾸역 삼키고 있어요〉라는 문장을 뜯어 먹는다”(「일인칭 식탁」)는 그렇게 세계와 사물과 언어 앞에 좌절하는 시인의 숙명을 상기시킨다. ‘나’는 ‘나를 꾸역꾸역 삼킨다’라는 문장을 쓰고, 내가 쓴 그 문장을 내가 뜯어 먹는 끝없는 자기 순환의 폐쇄성. 김미정 시인의 신작시 3편은 시를 향한 허기와 그것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시 쓰기 사이에서 고뇌하는 시인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출구가 보이지 않는 이러한 절망 앞에서도 시인이 결코 시 쓰기를 멈추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자작나무는 나를 모르고/나를 모르는 너를 모르고 고요히/나무인 줄 모르는 나무의 이야기”(「자작나무는 나를 모르고」)에서 ‘나무의 이야기’는 곧 ‘시’다. 미지(未知)는 끝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알 수 없음으로 인해 무한한 가능성의 영역이 된다. 그 가능성을 향해 이야기는 계속 이어진다. 이상(李箱)의 말처럼 “절망은 기교를 낳고, 그 기교 때문에 또 절망”할지라도 끝끝내 쓰는 일. 늘 좌절하는 것이 시인의 숙명이라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를 놓지 않는 것은 시인의 사명이다. “오늘의 비명이 맛있게 익어가고 있다”(「일인칭 식탁」)라는 구절은 이에 대한 김미정 시인의 태도를 드러낸다. ‘오늘의 비명’이 절망이라면 ‘맛있게 익어가고 있다’는 절망을 극복하려는 기교의 비유다.

“여기, ‘여기’ 있는데”(「밤의 출구」)에서 ‘여기’는 저 “오늘의 비명이 맛있게 익어가고 있”는 시각이자 ‘사라지면서 도래’하는 시간의 역설이 발생하는 공간이다. ‘여기’는 쉬지 않고 흘러가며 소멸하는 동시에 항상 ‘여기’에 현현하지 않는가. 매 순간 소멸하는 ‘여기’가 카이로스로서 “닿으면 사라지는 아침”이라면, 매 순간 도래하는 ‘여기’는 시를 추동하는 희망이자 가능성으로서의 “빛나는 모서리”다. “하늘은 아주 검지도 하얗지도 않”은, 소멸과 생성이 공존하는 마법 같은 황혼의 시간, 그 ‘여기’에 시인은 꿋꿋이 서 있다. ‘식탁’에서 밥을 먹고 산책길에 ‘자작나무’를 만나고 피곤한 몸을 뉘어 ‘잠’에 드는 크로노스에 두 발을 디딘 채 그 ‘식탁’과 ‘자작나무’가 말을 걸어오며 ‘꿈’ 같은 상상력이 작동하는 카이로스를 기다리고 있다. 비록 “이마에 담긴 뜨거운 스프가 깨져버”리는 일이 반복될지라도, 시인은 이 ‘맛있는 비명’에 “귀 기울”(「밤의 출구」)이는 일을 그치지 않는다. 그렇게 “세상의 반을 찌르고 나머지 반은 삼키며” 살아가는 시인은 ‘여기’에서 늘 현재진행형이다. 우리가 김미정 시인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이다.

 

 

글 · 이현호 | 2007년 『현대시』 등단. 시집 『라이터 좀 빌립시다』가 있음.

 

 

 

 

 

 

 

 

 

 

월간 웹진 공정한 시인의 사회 2017년 2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