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시
| 저자 | 하린 | ||
|---|---|---|---|
검은 우산
검은 우산이 펼친 상상은 딱 고만고만했다 입을 오무렸다가 벌린 상태, 고만고만 친절했다 그러니 오늘 급체처럼 뛰어든 유기견에겐 잘못이 없다 젖은 몸을 터는 순간에도, 축 처진 꼬리를 뒷다리 사이에 감출 때에도 비는 비의 감각으로 쏟아졌고 개는 개의 감정으로 웅크렸다 저 눈망울을 어디서 꼭 한번 본 것 같은데, 나의 상상은 짖기를 곧바로 멈춘다 신앙이 될 때까지 맹목적으로 비굴해지려는 본성이 내 안에 있다
윤리의 영역을 검정이 정할 뿐이라지만 검정은 무엇을 어디까지 가릴 수 있을까 마지막에 나는 개가 가진 비참에 목줄을 채워주고 떠나야 한다 개는 나를 물 것인가 용서할 것인가 중심으로부터 밀려난 것이 내가 아니라 개라고 믿으며 외면하려는데, 루저와 루저 사이 대화를 끝내려는데 자꾸 다리 사이로 파고든다, 폭우는 나에게만 집중되고 버스는 한 시간째 오지 않고……

하린 ㅣ
전남 영광 출생. 중앙대 대학원 문예창작과 졸업. 2008년 《시인세계》 등단. 시집 『야구공을 던지는 몇 가지 방식』 『서민생존헌장』, 연구서 『정진규 산문시 연구』, 시 창작 안내서 『시클』이 있음. 〈청마문학상〉 신인상, 〈송수권시문학상〉 우수상, 〈한국해양문학상〉 대상 수상. 계간 《열린시학》 부주간.
월간 웹진 공정한 시인의 사회 2017년 7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