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시
 
신작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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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임희숙 

 

 

수박씨

 

 

수박씨가 흩어진 풀꽃무늬 쟁반 위로

여름비가 내리고

우물처럼 깊어지는 풀꽃이

벌레가 두고 간 껍질과 짐승의 흰 터럭을 간지럽히는

 

어느덧 쟁반 속 풀꽃은 시들어

우물이 마르고 눈이 내리고

어긋난 무릎의 각질이 우물 속에 쌓이는 동안

다시 풀이 자라고 꽃이 피고

수박씨는 무덤처럼 부풀어

잘 발효된 수액이 붉은 홍수처럼 널브려졌다

 

다행히 빙하기는 오지 않았고

창세기는 다시 시작되지 않았다

온갖 풀꽃들과 짐승들을 키워낸 시간이

작은 씨앗의 방패를 뚫고 들어가는

이제 수박씨가 우물을 삼키는 시간

다시 우물이 수박을 키워내는 시간

누구나 한 생은 그렇게 시작된다

 

 

 

 

 

 

 

 

 

 

 

 

 

 

 

 

 

 

 

 

 

 

신작시(임희숙).jpg

임희숙ㅣ

1991년 《시대문학》 등단.

 


월간 웹진 공정한 시인의 사회 2017년 6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