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시
 
신작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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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박찬선 

 

 

독

 

 

 

우리 집 옛 도장에서

물결처럼 주름진 큰 독이 나왔다.

민둥산처럼 부드러운 배흘림도 아니고

움푹 쭈그러진 굴곡이 꿈틀댄다.

더구나 철사로 동여맨 뚜껑이 옥죄어 있다.

삭혀야 맛이 드는 기다림

엄마 정성이 담긴 장독으로도 쓰이지 않았다.

속을 살펴보니 쥐똥 같은 볍씨가 몇 알 남아 있다.

아, 바로 이것이구나

가을 타작마당에서 올곡을 말려서 저장해둔

아늑한 생명의 보고

속에 있으면서도 숨을 쉬며 한 철을 넘긴

감싸 안은 품이 넉넉하다.

절기를 기다리는 허리 굽은 농부의 수더분한 얼굴

땟거리가 없어도 씨앗만은 지켜낸

사라지지 않는 생명의 혼이 살아있다.

우리 땅 깊은 구석 어디엔가 살아있을

지금 텅 비워 있어도

먼지를 뿌옇게 뒤집어쓰고 있어도

다시 보게 되는 덕스러운 모습

오래 묵은 양식 냄새가 난다.

싹트는 초록빛 소리가 들린다.

 

 

 

 

 

 

 

 

 

 

 

 

 

 

 

 

 

 

 

 

신작시(박찬선).jpg

박찬선ㅣ

경북 상주 출생. 1976년 《현대시학》 등단. 시집으로 『돌담 쌓기』 『상주』 『도남 가는 길』 『우리도 사람입니다』 등이 있음.

 

 


월간 웹진 공정한 시인의 사회 2017년 5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