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시
| 저자 | 길상호 | ||
|---|---|---|---|
돌칼
둥글납작한 잿빛 돌 안에서
낯익은 칼 한 자루가 태어났다
나는 강가에 쪼그리고 앉아
뜻밖의 전생을 마주한 사람처럼
깨진 돌을 바라보았다
쓰지 않은 감정처럼 무뎌진 칼,
심장에 올려놓고 물을 적셔 갈아대니
무늬에 갇혀 있던 바람이
쓰윽-쓱 다시 불기 시작했다
어떤 물고기의 살갗을 지나왔을까
칼날에 박혀 있는 비늘 조각
잠시 배부른 저녁이 떠오르다가
다 발라먹고 가시만 남은
우리들의 사랑이 떠오르다가
강물이 굴리며 놀던 돌 속에는
부장품처럼 묻혀 있는 전생이 많았다
시간을 거슬러 칼을 가는 사이
저녁은 또 단단해지고 있었다

길상호 ㅣ
충남 논산 출생. 2001년 《한국일보》 등단. 시집 『모르는 척』 『우리의 죄는 야옹』 등과, 사진에세이 『한 사람을 건너왔다』가 있음.
월간 웹진 공정한 시인의 사회 2017년 3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