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시
 
신작시
Extra Form Output
저자 휘민 

 

 

눈사람과 몽당비

 

 

 

 

해거리하는 늙은 감나무에 눈송이 내려앉으면 온 세상 잘 타 놓은 햇솜처럼 폭신폭신했지. 장독대의 금 간 항아리들도 목련꽃송이처럼 활짝 피어서 온밤 내 뒤뜰이 봄 언덕처럼 환했네.

 

아침이 되어 아버지는 눈을 쓸고 나는 아버지보다 커다란 눈사람을 만들기로 했네. 그러나 너무 깨끗한 눈은 잘 뭉쳐지지 않았지. 내 안의 어둠과 아집, 치기를 밀어 넣은 뒤에야 몸통 하나 내주던 겨울. 내가 밟고 지나온 발자국마저 거두어 머리 올리고 아버지의 싸리비 꺾어 눈도 붙여 주었네.

 

오늘밤 또 눈이 내리고 고향집 금 간 항아리에도 사박사박 하얀 어둠 쌓일 것이네. 밤새 조바심하다 새벽녘에 첫눈을 밟는 아이 이제는 없지만 아침 연기 흩어져 섣달 하늘에 스밀 때쯤 들릴 것이네. 싸르락싸르락 아버지의 비질 소리. 그 소리 놓칠까봐 창문이 훤해도 눈을 못 뜨겠네. 현관 밖에 몽당비 한 자루 서 있을까봐 눈 그치고 날 저물어도 문을 못 열겠네.

 

 

 

 

 

 

 

 

BD_C5_C0_DB_BD_C3_C8_D6_B9_CE.jpg

휘민 시인

휘민 | 2001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생일 꽃바구니』가 있음. 〈시힘〉 동인.

 


월간 웹진 공정한 시인의 사회 2016.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