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시
| 저자 | 이재훈 | ||
|---|---|---|---|
구렁
저주의 말을 함부로 쓰고 살았다
우리는 전혀 다른 종족일까
아무런 불빛도 남지 않을 때
지구 밖에서 당신을 보고 싶다
누군가 잡아당기는 느낌에 잠이 깼고
외딴 별의 부족들에게만 허락된다는
동굴의 일부를 훔쳐보았다
자각하는 마음을 버려두기로 한다
잡을 수 없는 환영에 대해
흐르는 것의 아름다움에 대해
이 땅과 무관한 것이라 말한다
상처 없는 빛은 없을 것이다
베이고 찔리고 헤어졌다
어쩌면 오래 잊고 있었는지 모른다
저 멀리서 늘 암호를 보냈는데도
당신은 깊은 어둠에 들곤 했다
나는 작명하는 사람
당신은 작두 타는 사람
우주에서는 인간이란 이름이 들리지 않는다
나는 노래하거나 울지 않았다
먹고 싸고 싶어 소리치는 것
오래 배운 침묵을 잊어가는 밤
비옥한 어둠에 내 연보를 묻어두는 밤

이재훈 | 1972년 강원 영월 출생. 1998년 《현대시》로 등단. 시집 『내 최초의 말이 사는 부족에 관한 보고서』 『명왕성 되다』, 저서 『현대시와 허무의식』 『딜레마의 시학』 『부재의 수사학』, 대담집 『나는 시인이다』가 있음. 〈현대시작품상〉 〈한국시인협회 젊은시인상〉 수상.
월간 웹진 공정한 시인의 사회 2016. 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