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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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서정연 

 

 

 

  친절하게도

 

 

 

 

 

  사랑한다고 말해서
  너를 따라갔다.

​

  너는 때로는 삵처럼 신중하고 민첩하고 비를 맞은 듯 또한 축축하기도 했다. 친절하게도 처음으로 거웃이 선명한 성인용 잡지를 보여주었다. 영화를 보고 나오는 어느 날은 친절하게도 상영관 벽에 나이 이른 여자를 세차게 밀치며 영화 속 흥분한 사내처럼 코피를 흘렸다. 친절하게도 너의 불룩한 아랫도리를 보여주기도 하였다. 해주지 않으면 떠나겠다고 말하기도 하였다. 해준다는 것이 무엇인지는 몰랐으나 버림받아 혼자 남겨진다는 것은 무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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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마는 오지 않았다.

​

  죽은 형 이야기를 할 때는 슬퍼 보여서 너를 따라 무덤에 갔다. 너는 친절하게도 무덤가에서 손목시계를 보며 여자의 치모를 헤집고 정점에 도달하는 시간을 쟀다. 묏등의 띠는 삐비처럼 보드라운 여자의 등을 할퀴었다. 달리 할 일이 없는 여자는 몸을 빠져나왔다. 여자는 여자를 지켜보았다. 맑은 햇살이 눈을 찔러서 여자는 여자에게 이것은 내가 아니야, 라고 친절하게 말해주었다.

​

  나는 내가 아니니 나는 안전하다.
  너는 때로는 비에 젖은 살쾡이처럼 은밀하고 날렵했다. 이것이 마지막이라고도 했다. 여행을 떠났다. 너를 따라 섬에 갔다. 친절하게도 너는 각본을 가지고 있었다. 첫 술을 마셨고 나는 너의 의도를 알지 못했다. 뱀의 허물을 벗은 너의 알몸은 친절하게도 흉기였다. 목을 짓누르는 늪 같은 공포가 엄습했으므로 나는 나에게 이것은 내가 아니야, 라고 친절하게 말해주었다. 나는

​

  친절하게도 섬에 갇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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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연 | 전남 나주 출생. 2012년 『심상』 등단. 시집 『목련의 방식』이 있음. 

 

월간 웹진 공정한 시인의 사회 2016.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