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시
| 저자 | 손택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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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을 따러오는 주인 앞에서 꼬리를 흔드는 개처럼
추억이 나를 노린다 자꾸만
십 년 만의 갑작스런 통화 끝에
그 시절을 그대로 남겨두고 싶으면
사용료를 지불해야 한다는 것이다
회사로 찾아와 보험증권을 내밀거나
인감을 빌려달라고 하거나
빚보증을 부탁하거나
초인종을 누른 뒤 모퉁이에 숨어서
문이 열리길 기다리던 짝사랑의 아련함으로
항구의 슬레이트 지붕들을 도둑고양이처럼 뛰어다니던
우정결사의 이름으로, 주머니를 털어간다
빈 주머니의 먼지를 확인하곤 쯧쯧
너 아직도 시 쓰냐 대놓고 혀를 차고 간다
무서운 추억이여, 복면강도처럼 나타나
무릎을 꿇리는 추억이여
곗돈 떼이고 물어물어 찾아간 산읍 마을
지갑 속 비상금까지 탈탈 털어주고 오는 연민이
나를 망쳤느냐 번번이 자책하며
망친 길을 나는 갈 수밖에 없느냐
그래도 있잖은가 왜,
목을 따러 오는 주인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꼬리를 흔드는 개처럼, 추억이여
오랜만의 소식 앞에서 어김없이 무너지는
무너지고 마는

손택수
1998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호랑이 발자국』, 『나무의 수사학』, 『떠도는 먼지들이 빛난다』 등이 있음.
월간 웹진 공정한 시인의 사회 2015. 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