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시
| 저자 | 박지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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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 위로 한 달이 지나갔다
갈피 잃은 시를 감당하다
오늘은 그만 닻을 내린다
종이에 닻이라고 쓴다
사슬 풀어 쇳덩이를 놓으면
백지에 글자 하나 출렁, 떨어진다
지면에 아주 망연한 심연이 열리고
좌르르, 내려가 해저에 쿡 박히는 글자
흔들리는 문장을 정박하고
나는 선창가 술집으로 간다
이런 밤에는 색시에게 닻을 내리고
떠다니지 않는다
종이 속만큼 깊은 산을
종이 속만큼 먼 바다를 알지 못한다
종이처럼 움켜쥘 수 있다면
삶은 벌써 내 손에 구겨졌을 것이다
심해와 수면을 하릴없이 오가는 날들
백지 밑으로 가라앉는 글자들
종이 위로 한 달이 지나갔다

박지웅
2004년 《시와사상》, 2005년 《문화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너의 반은 꽃이다』, 『구름과 집 사이를 걸었다』가 있음.
웹진 월간 공정한 시인의 사회 2015. 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