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시
| 저자 | 손병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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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명(淸明)
겨우내 얼어서 뜬 흙의 결막이
뿌리들의 동파를 막아낸 걸 알게 된 건
일생 흙을 일군 어르신이 알려준 그날부터다
흙막이 내려앉는 소리가 푸푸거리고
살짝 뜬 돌멩이와 돌멩이 틈을 파고들어 가
수맥을 빨아당긴 뿌리가 탱탱해질 때
혹한을 막아준 어르신의 비닐하우스 문이 열린다
새파란 모종들이 밭고랑을 달구는
가없는 온도의 적절한 때가 이때여서
채 펴지 못한 꽃잎들도 활짝 펴지고
텃밭 건너 산기슭 물소리가 훈풍을 일으킨다
적확한 빛을 대지에 골고루 펼치는
맑고 푸른 시간을 허공이 끌어안고
노을빛 잘 익은 계절에 다다를 수 있을까
향기의 잔여를 앞세운 꽃술들이 흩날리는
들판도 산도 빈틈없이 파릇한 표정들도
어쩌면 하늘이 낮게 임하시는 자세인지도 모른다
두 손으로 어루만지는 바람이 보드라운 정오
낮과 밤을 골고루 담아온
절기들의 공력이 몸속으로 스며 올 때
땀방울 맺힌 어르신의 이마를 일구는 햇살의 파종이 바빠진다

손병걸 l
2005년 《부산일보》 신춘문예 등단. 시집 『푸른 신호등』 『나는 열 개의 눈동자를 가졌다』 『통증을 켜다』 『나는 한 점의 궁극을 딛고 산다』, 산문집 『열 개의 눈동자를 가진 어둠의 감시자』 등이 있음. 〈구상솟대문학상〉 〈대한민국장애인 문화예술인상〉 〈중봉조헌문학상〉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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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5월호(VOL.1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