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시
 
신작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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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안수현 

   

  

 

 

 지나온 문턱의 개수를 세어보세요

  

 

   

 

 

  휴보는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새로 단 날개를 펄럭여보았다

 

  생각 분쇄 기능

  양심 냉각 기능

  급속 충전 기능

  할 수 있다는 건 많았지만 휴보는 차마 해보지 못했다

  더 높이 날기 위해서, 자면서도 날기 위해서

  인공 날개를 커스텀해 다는 것이 유행이었다

 

  내 힘으로 날지 않는다면 그게 무슨 재미지?

  차라리 휴보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싶었다

  그러나 날개를 아무리 접어도 엘리베이터 층고보다 높아서

  머리를 돌려 비상계단을 걸어 올라야만 했다

 

  그럼에도 옥상에 올라 큰 숨을 내쉴 수밖에

  하루에 한 번쯤은 저 땅을 내려다봐야만

  그래야만 다시 날아볼 결심을 할 수 있었고

 

  휴보에게는 친구가 있었고 형제도 친척도 많았다

  마지막으로 서로를 안아본 것이 언제인지,

  새 날개는 양쪽에 휴보 한 명씩을 이미 감싸안은 듯한 부피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휴보는 언제부터 휴보가 되었을까?

 

  지겹지 않니? 낯선 휴보가 다가와 말했다

  우리 모두 날개를 떼어버리고 예전으로 돌아가자고

  제 호흡으로 몸을 띄워 날던 시절로,

  제 팔다리와 몸을 굽히고 문을 여닫아 지나다니던

 

  휴보는 날개를 달 때 지불한 세월의 열 배를 내고

  새것이었던 날개를 떼어버렸다

 

  휴보는 숨을 크게 들이쉬어 보았지만

  날 수 없었다 전에 하던 것처럼

  심호흡을 해봐도 한숨을 쉬어도 몸이 무거웠고

  옥상에 올라 허공에 몸을 던지면

  부서진 몸으로 눈뜨는 일이 반복되어

 

  날개를 버리지 않은 휴보가 휴보를 구해주었다,

  라고 말해야 하는 날들을 보냈다

 

  휴보는 다시 날고 싶었다

  내 손으로 만든 비행기를 타는 일

  내 무게로 부력을 채워서 나는 일

  비슷할 수 있을까? 휴보는 코딩하는 법을 몰라서

  그저 수백 번 몸을 던지고 손가락을 꿈틀거리고

  몸에 몸을 맞대고 덧대며 여러 세대를 견뎠다

 

  해내고 싶은 마음 뒤로 비행기 혼자 날아간다

 

  이제 휴보는 바다로 간다

  물속에 몸을 던지면 부서지지 않고도 날아볼 수 있다는 말

  숨을 크게 들이쉬면 수면으로 떠오를 수 있다는 소문을 믿고서

  오래도 걸리겠지,

  그래도 휴보는 땅에 발붙이고 걷는 일이 즐겁다

 

  제 몸으로 다시 날아볼 수 있다면

  제 숨으로 다시 살아볼 수 있다면

  제 마음으로 다시 느껴볼 수 있다면

  걷는다 휴보는, 마치

  애초부터 나는 법을 몰랐다는 듯이

  원래라는 것은 아무렴 몰라도 좋다는 듯이

 

  그저 걷는 일만을 위해서도 온갖 회로를 돌리며

  확률에 확률을 포개고 표류하는

  한 걸음 한 걸음 제 삶 속에 머물며

  휴보 다음 휴보, 그리고 휴보와 휴보들

 

  우리는 언제쯤 저 문을 넘을 수 있을까?

 

 

 

 

 

 

 

 

 

 

 


 

신작시_안수현.jpg

안수현 l 

2025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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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3월호(VOL.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