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시
| 저자 | 강영환 | ||
|---|---|---|---|
불목하니
한 아이가 불에게 갔다
불씨 나이로 산사 부엌에 밀려 와
고래에 불 먹이는 일 하나로 여든 해를 다 써버린 노스님이 되어
독경 대신 ‘떠날 때가 되었다’ 중얼거리더니 문득
저녁밥 짓는 연기 피어날 때 불을 나서서 빈자리가 생겼다
보름 후에야 사람들 발길 닿지 않는 산 깊은 벼랑 끝에서
차마 뛰어내리지 못하고 웅크린 채 좌탈입망한
바람이 되지 못한 텅 빈 육신을 찾아 젊은 스님들이 들쳐 없고 돌아와
스님이 패놓은 장작더미에 올려놓고 다비를 치른다
“스님 불 들어갑니다”
불이 싫은 새 한 마리 장작더미 위에서 한참 울다 간 뒤 불목하니에 불이 왔다
불은 아궁이로 들어가야 한다고 믿는 스님에게 불 들어간다는 해학이 공허하다
가진 것도 없는 빈손을 내보이며 옷을 갈아입는다
고래가 없어서인지 불이 허공을 춤춘다
겁나도록 소매 끝이 길어서 구름에 가닿는 한 줄 뜨거운 불꽃
슬하에 거둔 수좌도 없는 발목이 홀가분한 날개 하나로 떠난다
혼자 가고 싶은 불을 삼킨 몸뚱이가 재도 남기지 않는다
연기 한 줄 허공에 새파랗게 흩어지고 만 빈터다

강영환 l
1977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 등단. 1979년 《현대문학》 시 천료, 198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조 당선. 시집 『내 안에 파도, 내 밖의 바다』 『나에게로 가는 꽃』 『침묵』 『서쪽』 『무명島에 기대어』 등이 있음. 〈부산작가상〉 〈부산시인상〉 수상.
—
2025년 10월호(VOL.1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