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 박선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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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 날짜들
내가 엄마 배 속에 있을 땐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고 해
녹슨 미닫이문 사이를 잇는 무언의 인사도
꽝꽝 울리는 망치 소리와 매미들을 불러 우는 나무들의 울음소리도
누군가 던진 돌처럼
퐁당, 퐁당, 심장이 뛰었다고 해
다만 엄마는,
가끔 흔들렸고 자꾸 무엇을 놓쳤다고 해
가장 미끄러운 때였다고 해
아마도 뱃속의 내가 얄미움을 배울 시기였을까
재채기가 되려 했고
구역질이 되려 했다고 해
툭, 소리 없이
파찰음 없이
뱃속을 도망치려는 것 같았다고 해.
어쨌든 나는 꽤나 고요한 날짜들이었고
소리도 없이 울음을 배웠다고 해
태중을 오해받는 일이 많아
기억도 나지 않는 혐의를
추궁당하는 일이 잦아
엄마가 남자아이의 이름을 선물 받을 때마다
나는 더욱 움츠러들었다고 해
좌우도 아니고 위아래도 아닌 나를 자꾸 두리번거리는
습관은 그때 생겼지 싶어
치마 길이처럼
고음의 비명을 꽉 쥔 두 주먹처럼
자꾸 숨기려는 일들을 그때 배웠지 싶어
귀와 눈은 태어나서 배웠는데
왜 자꾸 고요를 찌그러트리려 할까
어정쩡한 자세를 배운 것은 어정쩡한 것을 들고 있을 때였고
팔레스타인에 사는 친구가 보낸 편지는 자주 정전이 되고
포탄에 맞아 죽은 친구의 친구는
폭발 소리를 못 들었다고 해
내가 겪은 날짜들은 모두 고요했지만
선전포고의 기한이 아니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어
조용, 하라는 말이 다 동이 나면
어른들은 검지를 입술에 대곤 했어
나는 느낌표를 그렇게 배웠고
포탄에 맞아 죽은 친구의 친구인 내 친구는
아무 소리도 없이 올리브 나무 아래 묻혔다고 해

박선민 l
2023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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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9월호 신작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