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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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김중일 

   

 

 

 

 매일 네가 야위어가는 지구 과학적 이유

 

 

 

 

  *

 

  물 한 잔 떠오는 사이

  너는 책장 한 페이지 정도 야위었다

  허공을 휘저어 손에 넣은 한 줌 산소와 수소의 무게쯤

  그것은 밤사이 지붕 위에 약 몇 초간 흩날린 눈발만큼의 무게도 되지 않지만,

  매일 쌓인다면?

 

  내가 떠온 물 한 잔 마시면

  너의 몸은 물 떠오는 사이 야윈 만큼 잠시 불어났다

  너의 몸은 먼 파도처럼 밀려갔다 밀려왔다

  너의 몸은 밀물과 썰물을 한 장씩 이어 붙인 책이다

  너의 안색은 젖은 백지처럼 얇고 하얗다

 

  기억처럼 페이지를 넘길수록

  자꾸 야위어가는 너를 계속 보고 있으면

  자꾸 야위어가는 이유를 모르겠다

 

  보통 도무지 모르겠다는 것은,

  인정하고 싶지 않을 뿐 사실 알고 있다는 것

  너는 너의 살갗을 한 장 한 장 뜯어 시를 썼고

  그것으로 무엇이든 접어 하늘 땅 바다에 띄워 보냈다

 

  넘어간 페이지들이 떠돌고 있을 하늘 땅 바다 바람……

  남겨진 페이지들처럼 야위어가는 너

 

  종이로 보통의 생각보다 다양하고 많은 것을 접을 수 있듯

  너의 시를 읽은 기억이라도 한 장 한 장 모아보니 제법 두툼하다

  그만큼 너는 야위었다 이 하늘 땅 바다 바람 속에서

  낱장의 책장처럼 낙엽처럼 너는 흩날린다

 

  널 어떡해야 할까, 바람에 밟혀도 바스락 부서질 것 같은

  너를 그저 한가롭게 무릎에 펼쳐 안고 시만 읽어줘도

  사라지지 않을 수 있을까

  

  *

   

  너의 몸 어디든 손을 올려놓으면,

  순간 내 손이 물에 잠기는 돌덩이처럼 무거워진 느낌

  그동안 그렇게 무심결에 잠긴 무수한 내 손들을 싣고

  밀물이 지구 끝에서부터 밀려와서 텅 빈 해변을 텅 텅 때리는 소리!

  그리고 썰물이 빠져나간 해변처럼 텅 텅

  너의 몸이 빠져나간 너에 대한 기억 위에 쓴다

 

   선잠 위에 떠 있는

   눈꺼풀에 달라붙은 얇은 햇빛의 무게만큼 지구는 매일 야위어가고 있어. 그 햇빛의 무게가 한 계절 동안 빠진 만큼 너는 꼭 십이 킬로그램쯤 야위었어. 죽은 아이의 몸무게만큼 빠져나갔어. 그것이 네 영혼의 무게였어.

 

  바다는

  내던져도 깨지는 일 없이, 물결처럼 우그러진 거울이며

  보풀 같은 포말이 쉼 없이 피어나는 지구가 걸친 코트이며

  코트 안쪽 주머니 속에 꽂힌, 파도를 모두 묶어 만든 시집이며

 

  지구 반대편 전쟁 폭음처럼 파도 소리가 먼저 덮쳐오는데

  나는 무모하게 무방비로 햇볕의 끝단과 바다의 끝단을 기워 붙인 곳까지 너를 업고 달려갔다가

  먼저 온 파도 소리의 꼬리를 잡고, 진짜 파도가 밀려오는 순간

 

  사실 파도가 밀려오는 게 아니라

  육지가 나만 그 자리에 남겨두고 눈 깜짝할 사이,

  내 걸음으로 한 열두 발자국쯤 뒷걸음치며 밀려가는 것이라는 걸 뒤늦게 깨달았으나

  그 깨달음의 무게 때문에, 나는 그 자리에서 꼼짝없이 신발이 다 젖었다

 

  그래도 너의 신발이 젖지 않아 다행이다

  그런데 지구가 자꾸 야위어서 걱정이다

  너는 영혼처럼 너무 가벼워서 밀려온 파도를

  옷자락처럼 실수인 듯 밟으면 어쩌면 파도도 그 핑계로 이제 그만 멈추지 않을까, 물속 같은 상념에 잠겨

  호젓한 해변의 소나무 숲에 해먹을 걸고 누워만 있어도

  나와 너는 바다로 밀려갔다 밀려오고 있었다

  파도처럼 기억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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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일​​​​  l

200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등단. 시집 『국경꽃집』 『아무튼 씨 미안해요』 『내가 살아갈 사람』 『가슴에서 사슴까지』 『유령시인』 『만약 우리의 시 속에 아침이 오지 않는다면』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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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2월호 신작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