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시
 
신작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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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정한용 

빈자리

 

 

 

 

  며칠 전까지 꽃잎 날리던 나뭇가지에 지금은 연록 잎사귀가 꽂혀 있다. 향기 머물던 자리엔 누군가 서성인 발자국이 얼룩덜룩하다. 오래전 어머니가 상추 가꾸던 텃밭에 오늘은 내가 쑥갓을 심는다. 흙에 버려져 반쯤 묻힌 플라스틱 통에서 민들레가 피어났다. 숲으로 이어져 느릿느릿 산보하던 길에는 어느새 최신형 전기차가 다닌다. 묵은 원한으로 쏜 총알이 순간 멈춰, 노래가 되기도 하고 격렬한 호소가 되기도 한다. 어디에도 빈틈은 없다. 꿰맨 흔적조차 남기지 않는다. 어제의 갈피를 오늘이 뚫듯, 오늘의 간극은 내일의 에테르로 메꿔진다. 꽃 진 자리에 곧 새똥 같은 열매가 돋으니, 지워졌다 새겨지는 오랜 내력이 인류세가 지난 다음에도 계속될 것 같다. 그러니 지금 헐렁헐렁한 틈도 참을 만하고, 내가 곧 지워져도 괜찮다. 고개를 끄덕끄덕, 살래살래, 갸우뚱…… 다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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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한용​ ■

1985년 《시운동》 시 발표로 작품활동 시작. 시집 『거짓말의 탄생』 『천 년 동안 내리는 비』 등, 영문시집 『Children of Fire』 등이 있음. 〈천상병시문학상〉 〈시와시학상〉 등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