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시
| 저자 | 김경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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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잠
찬송가를 들으면서 나는 멀리 왔다는 것을 알게 된다. 친척 곁에 앉아 찬송가를 따라 부르다가 나는 도무지 모르는 마음이 되어
잠깐 갔다 올게. 흔들흔들 친척의 손을 잡고 따라간다. 내가 모르는 산책길 희뿌연 먼지와 해 질 무렵 담벼락, 후미진 골목 재 따위로 얼굴을 부지런히 더럽히면서
아주 잠깐이면 돼. 어느새 친척은 재봉틀 앞에 앉아 희미한 빛을 들들 박아 모자를 만든다. 기다릴 수 있지? 모자가 완성될 때까지
얘야, 내 어머니는 가난한 모자 장수였지. 반쯤 잘려나간 말을 꿰매어서 만든 얼룩덜룩한 이야기, 무질서하게 이어지는 조각보 같은 이야기를 뒤집어 쓴 채 엄마는 나를 낳았단다.
나는 듣는다, 스며든 빛이 제법 환해서 다시 눈이 감길 때까지. 하루 중 가장 길다는 그림자의 길이를 생각하면서
아주 잠깐인 것 같았어. 삶이 끝나도 끝나지 않는구나. 친척은 내게 모자를 깊이 눌러 씌운다. 검푸르게 상해가는 저녁, 저무는 이파리와 제법 좋은 냄새를 풍기는 불행이 그 속에 들어 있다는 듯
나는 반짝 눈을 뜬다. 어제보다 더 하얗게 늙은 모자가 하늘에 걸려 있는 것을 보면서, 잠에서 깨어날 때까지 꿈이 사라지면 안 될 텐데, 걱정한다

김경인 ■
2001년 《문예중앙》 등단. 시집 『한밤의 퀼트』 『얘들아, 모든 이름을 사랑해』 『일부러 틀리게 진심으로』 등이 있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