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 이나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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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당신!
소슬한 바람이 조금 열린 창문 틈으로 들어왔습니다
지난가을에 세상 떠난 사람이 이렇게 안 보이는 모습으로도 와서
내 어깨를 쓸쓸쓸 쓸어주고 싶었나 봅니다
그렇게 집안에 들어와서 거실의 안락의자며 식탁 앞에도 앉아보고
안방 침대며 티브이 앞에 앉아서 리모컨도 만지작거리고 탁자 위의
메모장에 안 보이는 메모라도 적어놓고 싶었나 봅니다
남겨놓은 약 봉투에 남은 약을 들여다보고는 깊은 한숨을 내쉬고는
아, 아직도 숨이 쉬어지네! 안심했는지도 모릅니다
내가 볼 수 있는 한계점 밖에서만 서성거리다 내가 볼 수 없는 틈만 나면
바람의 손길로 와 툭툭 머리를 건드리곤 합니다
아무리 해도 아주 갈 수는 없었나 봅니다
그건 내 탓이겠지요 물론 내 탓이에요
나도 모르게 내가 자꾸만 그를 부르는 소리를 들었겠지요
그러니까 가려다 오고 다시 가려다 오곤 하는 거겠지요
저녁 해가 마지막 가쁜 숨을 내쉬고는 서쪽 하늘 아래로 아주 넘어가듯이
그렇게는 안 되었겠지요
밤이 오면 어둠으로 달이 뜨면 달빛으로 총총한 별들 속에서도 유독 깜빡이는 별의 모습으로 당신 존재를 보여주고 싶었겠지요
그러니까 그는 어디에 있든 나를 안타깝게 바라보며 나 또한 당신을 보게 하려고 애를 썼었나 봅니다
이젠 정말 놀랍게도 나는 도처에서 그를 볼 수 있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베란다에 나가 행복나무 가지 끝에 새로 돋아나온 잎사귀 한 잎을 소중히 만져봅니다 아주 가냘프고 부드러운 그의 손이 만져집니다
아니 당신! 이제는 이렇게 파란 잎도 피울 수 있는 거야?
저기 제라늄 꽃봉오리도 이제 막 벙글어 놓았네
쉿! 지금 여기에 그가 와 있어요

이나명 ■
1994년 《현대시학》 등단. 시집 『금빛 새벽』 『중심이 푸르다』 『그 나무는 새들을 품고 있었다』 『왜가리는 왜 몸이 가벼운가』 『조그만 호두나무상자』가 있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