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 김준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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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융
피융- 빛이 날아올랐다 피융- 피융
불꽃이 꽃의 한 종류라면 우리가 바로 저 불꽃의 뿌리라네
한 번 터지고 사라지고
돗자리에 앉은 사람들은 조촐한 저 불꽃을 바라보네
돗자리에는 바람 때문에 놓아둔 돌과
프리모 레비의 『주기율표』라는 파란 책-우연히도 이 책의 출판사는 돌베개다
페트병에 반쯤 남은 콜라는 쓰러질 생각이고
피융- 피융- 피융-
이 피융-이 다 끝나면 이 시도 끝이 난다 시에 속도를 붙일까
말을 빨리할까, 아무 말이라도 할까, 이런 리듬으로
운문의 형식을 거슬러 올라가 위로 읽는 시를 쓸까, 피융-
솟아오르는 꽃의 힘으로
아무것도 꽃 피울 수 없는 모래사장의 빛이
하나하나 슬픈 배역이 되어도
너는 피융- 피융- 소리 속에서
졸면서 고개를 끄덕이는 것은 존재하려는 마음일까?
빛은 그때그때 다르다
파랑색, 보라색, 빨간색, 노란색 “마치 SOS 신호탄 같지 않아?”
이곳이 무인도라면 저 빛에 의미가 있기를 바랄 텐데
여기는 사람이 많으니 이 빛은 무의미라네
오천 원이면 살 수 있어, 이 정도의 빛은 무의미한 피융-
피융- 피융-
이 힘 없는 맥박은 이제 뛰기를 다할 거라네
여기서 자면 입 돌아가, 그만 일어나, 피융- 피융- 고개를 들었던
꽃이 피융- 한 번 터져나오는 소리를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질렀지, 무인도였다면 좋았을 텐데 그 큰 소리가
바다 저 너머까지 닿을 만큼 그 큰 소리가
피융에 불과해서 아 무인도였다면, 여기가
무인도였다면 나가야 한다면 그것은 의미였을 텐데 피융- 피융-
아무도 모르고 이제 마지막 피융- 빛과 함께 나는 소리가
내게만 사랑이라네

김준현 ■
2013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 2015년 《창비어린이》 동시, 2020년 《현대시》 평론 등단. 시집 『흰 글씨로 쓰는 것』, 동시집 『나는 법』이 있음. 〈문학동네 동시문학상〉 수상.
월간 웹진 공정한 시인의 사회 2020년 11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