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시
 
신작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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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오성일 

창호지에 쓴 가을 동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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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 깊숙이 가을볕이 번져오던 하루는

가진 것 없는 내 엄니랑 아부지가

창호지를 새로 바르던 날이었는데요,

 

가난 같은 거 깜빡 잊기라도 한 듯,

소꿉을 노는 계집애와 그의 사내나 된 듯,

세상 재미나고 이쁜 짓을 하는 모양으로

문고리 옆엔 코스모스 꽃잎 따다 넣고

그 아랜 한들한들 이파리도 붙여넣고선

손에는 꽃자국, 뺨에는 꽃물이 든 채로

안팎으로 갈라 앉아 손을 마주대기도 하며

말갛게 비치는 웃음을 웃고 그랬는데요,

이가 빠진 문살과 아귀가 안 맞는 살림도

한몫씩 소란을 거들기도 했지요, 그때

 

달그락달그락 저녁을 먹고 나면

앞산 솔밭을 넘어온 달이

양철 차양 아래 마루를 환히 물들여

방안 가득 풀이 마르던 냄새를 생각하면……

뒷문 밖에 익어가던 사과의 향내를 생각하면……

 

그날 밤은 그네의 무릎 아래 어여쁜 짐승

창호지 방패연을 조르다 잠든 나를 내려다보다가,

문밖을 서성이던 달이 사립을 돌아간 뒤에

꽃숨 쉬며 초야의 사랑 같은 거 나눴을 거라고,

이슥토록 풀냄새가 피어나는 방안에서

새로 바른 창호지가 파르르르 떨리도록

달뜬 사랑도 나눴을 거라고,

 

오늘은 달이 뜨고 세상일 귀치 않고

창호지 문밖으로 누가 가만 온 듯한 날

나는 웃으며 그런 짐작을 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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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성일 ​■

2011년 《문학의봄》 등단. 시집 『외로워서 미안하다』 『문득, 아픈 고요』 『사이와 간격』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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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웹진 공정한 시인의 사회 2020년 10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