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 저자 | 이경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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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전(神殿)
미켈란젤로는 무력하게
허공에 매달려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투명한 성벽을 두르고
넉넉한 방들을 만들고
먹잇감을 유혹할 미로를 설계하고 있지
한 나뭇가지와 다른 나뭇가지 사이
한 벽과 다른 벽이 만나는 모서리
한 돌멩이와 다른 돌멩이 틈에
그만의 왕국을 건설하고 있지
황금색 몸에 검은 줄무늬가 있는 미켈란젤로를
사람들은 독거미라고 부르지
노략질도 해적질도 대량 학살도 하지않으며
조용하고 평화롭게 자신의 왕국을 다스리는 통치자를
나는 미켈란젤로라고 부르지
그의 왕국에는 요람도 요새도 무덤도 있지
바람도 비도 천둥도
햇살도 어둠도 달빛 별빛도 머물다 가지
막 잡힌 싱싱한 먹잇감에서부터
천천히 아사하거나 질식사한 먹잇감까지
미켈란젤로는 무엇으로든 끼니를 해결할 거야
그의 몸에서 나온 거미줄로 그의 왕국은 완성되지
내 입에서 나온 말들로 한 편의 시가 지어지는 것처럼
어떤 시인은 흔적을 남기기 위해
아름드리나무를 베어 책을 만들지만
미켈란젤로가 살다 간 흔적은
오직 조용한 허공 한 칸
나는 그 흔적을 신전이라고 부르지

이경임 ■
1997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등단. 시집 『부드러운 감옥』 『겨울 숲으로 몇 발자국 더』, 산문집 『영혼의 약상자』가 있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