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 저자 | 방민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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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서동
ㅡ 괭이 12
이다음 생은
원서동에 살고 싶다
창덕궁 높은 궐담 아래
원서동 볕 좋은 이 골목길에
사는 듯 마는 듯
소리 없이 살고 싶다
창덕궁5길 31번지
나즈막한 지붕에
굴뚝을 내고
조붓한 밭에
맨드라미도 심고
내 괭이만 사랑하고 싶다
그렇게 잃어버릴 줄 알았으면
단 한 번만이라도
그늘진 방에서 데리고 나올 것을
이 볕 좋은 원서동 골목길 함께 걷다
창덕궁 후원에 들어 나란히
부용 연못가에 앉았기도 할 것을
아무렇지도 않을 줄 알았지
내 괭이를 잃어버리고도
괭이라면 어느 괭이라도
다 같으려니 했지
세월이 흘러서야
슬픔을 알았지
다음 생은 정말
이 볕 좋은 원서동
들어가는 길이 나오는 길이 되는 골목에서
내 괭이와 양지바른 사랑만 하다
있었는 듯 없었는 듯
살다 가고 싶다

방민호 ■
1994년 〈창비신인평론상〉, 2001년 《현대시》 등단. 시집 『나는 당신이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숨은 벽』 『내 고통은 바닷속 한 방울 공기도 되지 못했네』 등이 있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