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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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이위발 

과거와 미래에 대한 시대적 고찰

 

 

 

1.

읍내에 다녀온 할배가 마루에 앉자마자 한숨부터 내쉰다. 장터에서 선거 운동원에게 받은 명함에 아들 사진이 박혀 있었다. 마당에서 고추 꼭지를 따고 있던 할매는 대문을 들어선 할배한테 눈길 한번 안 준다. (과거의 시간은 가면 갈수록 가치가 없어지기 마련이다) 며칠 전 읍내에 사는 첫째 놈이 시의원에 출마한다고 일방적인 통보를 하고는 가버렸다. 그때부터 할배와 할매 사이는 꼬이기 시작했다. (미래의 시간은 모두가 즐길 수 있는 것으로 나가야 되겠지만 현재로선 암울하기만 하다) 할배는 아들한테 한 말이 목에 걸린다. 니가 내 아로 태어나긴 했는데, 사람으로 살면서 차마 하기 어려운 일이 뭔지 아나?, 그게 정치인들 존경하는 거다! 이 자슥아~ 니가 정치판에 띠들면 그땐 호적 팟뿐다 캣나~안 캣나!”

​

2.

할매는 아들 녀석이 의원 배지를 달고 마을로 입성하는 모습을 상상하면 웃음이 절로 난다. (사는 게 안개라면 죽음은 선명한 무지개다) 사는 게 안개 같아도, 할배가 목을 내밀고 죽겠다고 말려도, 할매는 그저 음흉스럽게 미소만 지을 뿐이다. 할배는 얼마 전 시주 온 스님에게 화두 같은 말을 들었다. (번민은 붉고 번뇌는 검습니다!) 할매의 속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그럴수록 아들에 대한 미움은 가시질 않았다. 할배가 목격한 구조대원의 말 또한 기가 막혔다. 장마 진 날 강물에 빠진 마을 성당 수녀와 정치인을 긴급 구조대가 와서 정치인부터 구하자 옆에 있던 이장이 왜 정치인부터 구하니껴? 구조대원의 답은 간단명료했다. 이장 어른! 정치인을 먼저 건져 올려야 강물이 덜 오염 되니더!

 

3.

할배는 자식 없는 셈 치면 그만이지만 할매가 문제였다. 아~하고 싶은 거 가마 안 놔두면 내가 디지든지 두고 보이소! 아들은 진정한 소가 되어 보지도 않고 뒷걸음치다 개구리 잡겠다는 식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할매는 어릴 때 아들이 맞고 들어오면 싸움닭이 되어 상대를 제압해 주었다. 아들이 신주였고 아들은 할매가 구세주였다. 할배는 아들을 키우면서 어떤 경우에도 속임수를 쓰지 말라 가르쳤다. 정치인이 되겠다는 아들에게 잘못 가르친 것 같아 후회막급이다. (미래는 예측해 가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얼마나 성장했느냐 하는 것이다) 할배는 아배가 도의원에 출마했다 떨어지면서 인생이 꼬이고, 비틀어지고, 나락으로 떨어지는 신세가 되었다.

 

4.

아배로 인해 조상대대로 내려오던 땅마저 다 팔아 거덜 나고, 전국을 떠돌아다닌 지 삼십 년, 살고 있는 집을 오랜 시간 손수 지었다. (산다는 것은 집을 향해 가는 여행이다) 아배의 망령이 손자에게 옮겨진 것을 막으려고 무당을 불러 굿도 해보았다 (과오는 과오로써만 변호될 수 있고, 허위는 허위로써만 감추어질 수 있다.) 할배는 아배의 유언을 지워버리고 싶었다. 내 죽거든 정태한테 내 한을 꼭 풀어달라 캐라! 아들은 구태의 답습을 뿌리치고, 새롭고 미래를 내다보는 정치를 해야 된다고 게거품을 물고 덤벼들었다.(정치꾼은 다음 선거를 생각하고 훌륭한 정치가는 다음 세대를 생각한다) 아들은 입 발린 소리로 꾼의 길로 들어선 것이다, 그 길의 종점을 알고 있는 할배는 억장이 무너진다.

 

5.

선거 당일, 할매는 히죽거리며 할배의 옆구리를 찌르며 친한 척을 한다. 이보소! 정태한테 찍었능교? 아무리 그래싸도 자식 이기는 장사 없다 안 캤니껴? 한 표라도 보태줘야 댈꺼 아이껴? (강한 신념이야말로 거짓보다 더 위험한 진리의 적이다) 할배는 입을 굳게 다문 채 아배가 묻힌 곳으로 길을 잡는다. 할매는 소식이 둔해서 그렇다 치고, 투표소에서 나오는 아지매들이 할배를 힐끗거리며 쑥덕거린다. 망해도 어예 저래 망할꼬! 표는 깨봐야 안다카지만 꼬배이는 따논 당상이라 카던데! (만일 똑같은 사람이 두 명 존재한다면 세상은 그들을 받아들이기에 넉넉할 만큼 충분히 넓지 않다.) 아배 산소 옆 소나무엔 할배가 매달아 놓은 하얀 끈만이 햇살에 아리도록 시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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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위발​​​​​ ​​​ ​​​​​​​​​​■

1993년 《현대시학》 등단. 시집 『어느 모노드라마의 꿈』 『바람이 머물지 않는 집』 『지난밤에 내가 읽은 문장은 사람이었다』, 산문집 『된장 담그는 시인』, 평전 『이육사』가 있음. 현재 이육사문학관 사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