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 김상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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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니컬한 하루
젊은 여성 세 분이 찾아왔다.
시를 배우고 싶다고.
나에게 시를?
시 선생님 자격증도 없는 일개 시인인 나에게?
나는 손사래를 치며 아주 친절하게
장안에 소문 난 시 선생님들을 소개해준다.
눈물 쏙 빼게 잘 가르쳐줄 거라며
나는 아직 그 경지까지는 가지 못했다고.
시는 제 삶의 갱도에서 캐내는 심장인데
어떻게 남에게서 배우지?
남의 시선으로 제 시선을 아무리 수정하고 수정해도
결국은 개성 없는 맹목의 혼란 속에 갇힐 텐데.
“시는 내가 홀로 있는 방식”이라고
자신을 칠십 개의 이명으로 쪼개고 쪼개어 시를 썼던
페르난두 페소아*의 시집에도 분명히 적혀 있는데……
아무렴 어때. 세상은 넓고 사람들은 다양해
제각각 자기식(式)이라는 게 있을 테고
끝도 시작도 없는 혼란 안에서 방황하는 건
이미 이 세상 유행病이 된 지 오래이니.
씁쓸한 마음에 푸른 하늘 우러르니
전깃줄 정중앙에 앉은 까마귀 한 마리
너 잘났다! 너 잘났다!
나를 향해 까악까악~ 소리친다.
언제 들어도 섬뜩하게 시니컬한 까마귀 소리.
나를 자꾸 비웃는 것만 같아
알았어요, 내 꼴은 내가 제일 잘 안다고요!
나도 모르게 위축되어 공손해진다.
저 먼 미국의 시인 에드거 앨런 포 영향 때문인지
한때는 참 신비했던 까마귀와 검은 고양이
그들은 모두 그가 죽어서 낳은 매혹의 자식들 같았지.
파가니니의 바이올린에 매달려 그 광기를 먹고 사는 멋진 음표들처럼.
집으로 돌아와 대문을 여니 천천히 사라지는 햇빛들.
빈집의 적막과 너무나 잘 어울리다 가는
저 색중지광(色中之光)의 흔적들.
그게 詩든 진실이든 환영이든 사랑이든 날카로운 착각이든
시니컬한 오늘 하루 그 위에 다정히 내려놓고
이제는 그들과 한 몸이 되어 춤추고 싶은 마음.
산 사람은 계속 스텝을 바꿔가며 살아야 하는 게 인생이고,
나는 아직 결함투성이 내 인생을 변함없이 사랑하니까.
*포르투갈의 시인

김상미 ■
1990년 《작가세계》 등단. 시집 『모자는 인간을 만든다』 『검은, 소나기떼』 『잡히지 않는 나비』 『우린 아무 관계도 아니에요』가 있음. 〈박인환문학상〉 〈시와표현작품상〉 〈지리산문학상〉 〈전봉건문학상〉 수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