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 저자 | 금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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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서
노인은 오늘도 마당 한가운데 앉아
물려줄 사람 없는 볕을 끌어 모으고 있다
굽은 등으로 날아온
날파리들의 발가락이 찌르는 걸까
움찔거리는 등이 울고 있는 것 같다
진물 나도록 무화과는 익어가는데
애인 만나러 나간 아들이 돌아오지 않는다며 중얼거린다
오늘은 운세 좋은 날,
성큼성큼 다가올 것 같은 아들의 발자국 소리
가끔 향과 쌀의 힘을 빌려 아들을 기다린다
말을 잃은 노인의 입에서 곡(哭)과 노래가 뒤섞여 들린다
하늘에서 긴 손이 내려와
노인을 데려가 달라고 기도라도 할까
질긴 것은 잘라내고
깊은 것은 퍼올려야
물속과 바깥이 하나가 되나
삶에서 죽음으로 가는 하나의 방향을 틀어
다른 길을 낼 수 있다면
덜덜거리는 트럭을 몰고 아들이 돌아올지도 모른다
차마 울 수도 없는 사람 곁에는 천사가 있다는데
노인이 쓴 마스크가 눈을 가렸기에
천사를 보지 못한다
하나같이 다른 모양을 만들고 사라지는 구름
노인과 플라스틱 의자는 꼼짝 않고 그 자리에 있다

금 란 ■
2013년 《시로여는세상》 등단. 시집 『얼굴들이 도착한다』, 전자시집 『나는 마녀가 아니에요』가 있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