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 저자 | 황성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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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의 쓸모
아무것도 모르고 있을까 봐 오래 두려웠다
거리에선 다들 남남처럼 인사도 없이 지나치고
구름으로 얼룩진 하늘에는 태양이 넘쳐나는데
손의 사용은 아무 데서나 스스럼없이 일어나고
이다음 장면에서 나는 갑자기 사라질 것 같았다
재빨리 내가 알고 있는 것들을 떠올려보았다
아침에 들었던 비정치적 성향의 피아노 연주곡과
특정 집단에 대한 분노로 행사한 조잡한 한 표와
줄지어 선 사람들이 만들어 낸 몇 종류의 분노를
여기가 혹시 긴급재난지원금 신청하는 줄인가요?
뒤에 섰던 사내가 묻길래 아니라고 대답해주었다
내가 아는 것을 물어봐주어서 고마웠고
그가 모르는 걸 알고 있어서 다행이었다
그 순간 나는
이곳의 재난 속에 서 있는 것이 하나도 이상하지 않고
시간을 흘려보내는 일에 능숙한 사실의 생명체 같았다

황성희 ■
2005년 《현대문학》 등단. 시집 『앨리스네 집』 『4를 지키려는 노력』 『눈물은 그러다가 흐른다』 『가차 없는 나의 촉법 소녀』가 있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