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 저자 | 조미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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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이 깨지고 그 틈에서 우리가 자랐다
우리는 같은 진입로를 향하고 있었다
서로의 감정이 조금씩 비껴가고
가까워지거나 멀어졌는데
눈치채지 못했다
사람의 마음이 몸과 다르게 흘러간다는 걸
우리가 함께 손잡고 걸어가고 싶던 장소는 분명 리스본의 주황색 지붕 아래였다
왜곡은 종종 우리의 거리를 멀게 한다
너는 블라디보스토크의 밤에 앉아 보드카를 마시고 있다
우리는 두 갈래의 오솔길처럼 걸었다
나는 리스본에서 페이스트리를 사 들고 제로니무스 수도원을 향한다
페이스트리는 겹겹의 표정으로 발효를 끝내고 모든 언어는 묵언에 든다
보드카의 밤과 페이스트리의 정오가 바스러진다
우리의 순간들이 서로의 손톱을 어루만지다 가벼운 상처로 붉은 꽃이 피고
꽃잎 사이로 악담이 몰려온다
꽃이 다 깨질 때까지 우리는 좀 더 피 흘리기로 한다
조금씩 금이 가고 어떤 틈 속에서는 다행히도 무언가 자란다

조미희 ■
2015년 《시인수첩》 등단. 시집 『자칭 씨의 오지 입문기』가 있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