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 저자 | 강연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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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무늬 그릇
짓이겨진 자만이 안다
바위와 자갈과 모래를 지나온 흙이다
바위와 자갈과 모래를 지나오는 동안
형편없이 짓이겨져 으깨진 흙이다
덩어리인지 뭔지 엉거주춤한 흙이다
그 위에 엉거주춤 꽃이 핀 흙이다
꽃은 제 내력을 짐작조차 못하겠지만
제 내력을 짐작조차 못하겠다는 듯 뚱하지만
가령 짓이겨져 으깨지는 동안의 비명 같은 것
비명을 삭혀 체로 걸러낸 앙금 같은 것
바위와 자갈과 모래에 얼굴을 문대며
치렁치렁한 불길을 몸서리치게 받아낸 울음 같은 것
고스란히 잊었다는 듯 어리둥절한 표정이지만
달리 말하자면 흙의 완성이기도 하다
완성에 대해 알고 싶다면 짓이겨질 일이다
짓이겨진 자만이 겨우 알 일이다
짓이겨진 자만이 고슬고슬 밥알을 담고
뜨겁게 국을 퍼서 올릴 일이다

강연호 ■
1991년 《문예중앙》 등단. 시집 『비단길』 『세상의 모든 뿌리는 젖어 있다』 『기억의 못갖춘마디』 등이 있음. 현재 원광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