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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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조인호 

초능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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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벤치에 앉아 있다.

다리가 고장 난 벤치. 그래서 조금은 기우뚱하게.

앉아 있었지.

고양이 한 마리 지나간다. 줄무늬. 잡종. 귀여운 것.

아, 귀여운 고양이를 오래

오래 보았더니 녀석은 줄무늬만 남기고 쓱 빠져나간다.

공간에 고양이만 한 창살이 남았다.

영영 벤치에 갇혀 있는 것만 같아.

나는 무슨 훌륭한 잘못을 저지른 것처럼 우쭐해져.

공원 벤치는 조금 기우뚱하고,

옆에 거리 두기로 앉았던 사람이 일어선다.

있는 줄도 몰랐다.

당신이 떠나던 순간

벤치는 다시 기우뚱거리고. 나는 흔들린다.

아주 잠시.

 

그때, 지진이 왔다.

 

구겨진다.

나는 스타일에 신경 쓰는 남자.

멋진 포마드 컷 스타일만 남았지.

그것은 툭 튀어나온 풀포기 같다.

누군가 발에 걸려 제발 좀 넘어졌으면 해.

그런 생각을 하니까 공원 바닥에 눈 똥이 된 기분이다.

천사가 가위로 구겨진 사람들을 오려낸다. 아이처럼. 잔인하게.

나는 뺨을 주기적으로 맞는 사람. 뺨을 맞았을 때

꽃이 흔들리는 게 좋았다. 무슨 초능력처럼.

나는 가능해진다.

 

초능력을 설명할 순 없지.

유리 겔러는 코로나 백신을 맞으면서도 숟가락을 구부렸다.

미친놈. 그게 초능력이지.

숟가락을 어떻게 구부렸나요?

내게 설명을 요구하는 것들.

공원에 줄 세워놓고 한 명씩 차례대로 뺨 때려주고 싶다.

너도 흔들려봐.

꽃처럼.

숟가락처럼.

 

섹스는 스타일이지.

내 남성 호르몬보다 지구의 석유가 먼저

고갈될 줄 알았어.

진심이야.

이제 난 도무지 흔들 자신이 없다.

흔들려야지만 가능한 것 중

섹스가 제일 좋겠지.

관에 누운 당신을 흔들고 싶었지만,

흔들어서 뭐 하겠니.

 

당신과 해변에 발 담그고

앉아 있으니 참 좋다.

파도가 발을 밀어낸다. 이봐, 더러운 발 치우고 모래사장 밖으로 꺼져.

거대한 고래 한 마리 백사장에 누워 있었다.

있는 줄도 몰랐어. 그냥 모래 언덕인 줄 알았지.

그 덩치로는 조금도 흔들리지 못한다.

이 착한 해변의 사람들 좀 봐.

줄지어서 플라스틱 바구니로

신부 견습생처럼 성수를 뿌리며

눈물 흘리지.

우리 때문에 불쌍한 고래가 죽어가.

오늘 태어나 처음 본 고래. 놓칠 수 없지.

고래야#미안해#플라스틱#아웃

고래는 바람 빠진 열기구처럼 구겨진다.

교활한 고래.

해변에 빠져 죽다.

 

빠져 있지,

공원을 둘러싼 담장에 벽돌 몇 개.

자세히 보면 벽돌이 빠진 틈이

그래픽처럼 깨져 있다.

무슨 능력일까?

이 공원의 프로그램에서 벗어난 녀석의 능력.

나는 어깨 한쪽이 그래픽처럼 이미 깨져

무너지고 있다는 걸.

누군가 날 흔들며, 유리 겔러의 숟가락처럼

구부리고 있었다는 걸.

 

이게 바로 초능력이지.

 

 

 

 

 

 

 

 

 

 

 

 

 

 

 

 

 

신작시-조인호.jpeg

조인호​ ■

2006년 《문학동네》 등단. 시집 『방독면』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