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 저자 | 이수익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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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의 입술
막막한 어둠 저편에서
교묘한 요설로서 희롱하는, 악마의
입술처럼 생긴 수상한 물체들이 흐느적거렸다 증언자의 입으로
고백하건대 이건 분명히 살아 있는, 기동력이 매우 뛰어난 귀신의
출현 이외에는 달리 표현할 수가 없는 것으로서 왜 귀신은 그토록
밤을 사랑하는가 밤에 죽었다가 밤에 태어나는 저주의 생애를
흐느낌처럼 안고 지내는가 고백하건데 옛날 우리 마을 저 아래쪽엔
제법 큰 저수지가 하나 있었는데 캄캄한 밤이면 붉고 푸른 귀신들이 숲속에서
눈 깜빡할 사이 나타났다간 금세 사라지는 기이한 광경을 보여주곤 했었는데
죽은 이들이 낮을 피하여 밤마다 황홀한 도취의 불꽃들을 피우고 싶어서 그랬겠지,
라는 추측도 가능했을 거라고 나는 믿었다
막막한 어둠 저편에서 악마의 입술처럼 생긴 물체들을 귀신이라고 믿는
나의 허구의 진실을 제발 긍정적으로 믿어다오 커다란 공포에 휩쓸리는 밤
11시부터 12시, 1시, 2시… 그 사이를 흐느적, 흐느적거리고 있는

이수익 ■
1963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등단. 시집 『조용한 폭발』 등이 있음. 〈현대문학상〉 〈한국시인협회상〉 등 수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