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2021
Extra Form Output
저자 김륭 

삼천포

 

 

​

 

미친 비행기를 타고 와서 이렇게 살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이건 쥐나 거북이 이야기가 아니다.

 

누군가가 내 귓밥을 파주거나 발을 닦아주는 장면으로

시작해서 내가 누군가의 손톱을 깎아주고 발목을 잘라주는

이야기로 끝나는, 그러니까 누군가가 전기밥통에 쌀을 안치기 전에

가만히 내가 밥이 되어 대소변까지 받아주는,

 

여기까지 쓴 나는, 잠시 잘못 살았다는 생각을 한 다음

이어나갈 이 이야기의 제목을(가칭) 생각한다. ― 「미친 비행기를 타고 와서

미치지 못하고 다시 돌아감」

 

나는 삼천포에서 중학교를 다녔고 학교와 집 사이

토끼섬처럼 떠 있던 삼천포여고 앞을 부끄러워 지나다니지 못할 만큼

삼천포를 사랑했을 뿐, 잘 나가다가 삼천포로 빠진 것은

아니다, 정말이다. 나는 어시장을 퍼덕거리는 물고기들이 그때

내가 짝사랑했던 누나에게 끝내 전하지 못했던

사랑한다, 사랑한다, 사랑한다고 곱디곱게 머리 깎아

바다 깊숙이 던져놓았던 내 목소리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너무 기대하진 마세요.(가칭, 이란 말은 다시 건축되어야 한다)

구형 휴대폰을 고치는 일이 쉽지 않은 것은 아직도 옛날을 살아서

퍼덕거리는 내 목소리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몸 깊숙이 손을 집어넣고

건져 올리는 말이, 지긋지긋하다는 말이 쥐포 같아서

나는 이 세상을 나만 사는 듯이 살았다. 내가 세상을 산 게 아니라

세상이 나를 살았고 그때마다 토끼섬에서 바라보던 바다가

떠올랐다. 그러니까 모년 모월 모시 아직도 쓸데없이 건강한 내가

죽고 싶은 나를 데리고 올 거라며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삼천포에게 가면 아직도 물고기로 사는, 그런

처녀가 있을 것 같은데

 

이건 말이 안 된다

미친 비행기를 타고 와서

혼자라니,

 

​

 

 

 

 

 

 

 

 

 

 

 

 

 

신작시_김륭.jpeg

김 ​륭​ ​​​​■

2007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시, 《강원일보》 신춘문예 동시 등단. 시집 『살구나무에 살구비누 열리고』 『원숭이의 원숭이』 『애인에게 줬다가 뺏은 시』, 청소년시집 『사랑이 으르렁』, 동시집 『프라이팬을 타고 가는 도둑고양이』 등, 이야기동시집 『달에서 온 아이 엄동수』가 있음. 〈문학동네동시문학상〉 대상, 〈지리산문학상〉, 〈경남아동문학상〉, 〈동주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