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 저자 | 이기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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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스운 오늘의 케이크
흰빛은 처음부터 말을 하지 않기로 했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을 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면 어두워진다
시간이 흘러 비로소 찾아오는 빛은 뚱뚱한 미소를 좋아한다
둥근 탁자에 앉아서 오래된 날짜를 세며 물개박수를 친다
구석에서 달콤하고 푹신하게 일어나는 보푸라기 짝꿍들
축하해 너의 생일은 깊은 수면에서 떠오르는 거울과 어울린다
오늘은 생크림 케이크가 찾아와서 외투를 벗고 머리에 촛불을 꽂는다
식탁보의 착한 무늬를 풀어서 잉잉 타오르는 노래를 묶는다
귀여운 샴페인 코르크 마개가 터트려놓은 황홀한 기분처럼
너의 이름에 묻은 생크림을 눈썹에도 어둡게 발라놓는다
검은 지느러미를 찾으러 간 밤하늘의 별들은 촛농처럼 굳어가고
창문에 부딪친 폭죽 소리는 지우개 똥처럼 지워진다
그렇게 뭉개진 구름처럼 흰빛이 감싸는 탁자가 웅크린다
생크림 케이크에는 안개꽃의 부스럭거림이 혼자 숨어 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사라지지 않는 파도의 우스운 생일
손가락으로 하얀 케이크에 구멍을 숭숭 뚫어준다
기울어진 빛이 흘리는 설탕 가루 같은 표정들
흰빛은 처음부터 말을 하지 않기로 했는지도 모른다
케이크의 볼과 눈꺼풀은 망가지기로 했는지도 모른다

이기인 ■
2000년 《경향신문》 등단. 시집 『알쏭달쏭 소녀백과사전』 『어깨 위로 떨어지는 편지』 『혼자인 걸 못 견디죠』 등이 있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