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 조정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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뢴트겐 씨와 서안을 걸어
비석들 모여 사는 숲 음각된 글자에서 돋는 이끼 냄새가 목젖을 만져 촘촘한 길
들여 켜는 소리에 생이 내 켜는 소리에 사가 담긴 얼후의 바이브레이션 위로 문이 떠 있었다
옛 수도는 비에 잠겼다
빗줄기 밖으로 흘러내린 시트 자락이 빛났다
나 역시 뢴트겐 씨, 어느 간략한 빛을 발견한 거야
윤곽이 선명한 방 안에서 몇은 앉고 몇은 날았다
몇은 산도에 걸려 죽은 아기 소리를 냈다
나는 배달되다 만 목관처럼 두리번거렸다
이봐요
그 나뭇가지는 누구 팔을 꺾은 건가요?
왕비의 욕조에 나신을 담근 흰 연꽃이 미묘했다
연꽃 속, 가면 못 오는 사막이 눈부셨다
벼루 가게에서 스친 사람이 양관에 글자를 새기고 떠났다
평(平)과 안(安) 사이에 나의 으스러지지 않는 마음을 앉혔다
쿠차의 철불*이 연화대를 내려섰다
내 미라가 비단실 같은 속눈썹 뜨고 그를 맞기까지 천 년은 짧아라
뢴트겐 씨는 거리 곳곳으로 사라지는 나를 촬영했다
흰 오리 떼 그려진 족자 들고 노래하는 나 소매 없는 러닝셔츠 바람으로 문밖 돗자리에 누워 부채질하는 나 청옥 머리핀으로 등뼈를 갈아 끼우는 나 대안탑 보주에서 날개를 펼치는 나 땅속 깊은 데서 울리는 지진의 북소리와 수평으로 날아가는 나
빠르게 오른쪽 양동이 속 띠풀로 풀벌레 접어 왼쪽 양동이에 담그는 소년에게 이 위안을 냈다
소년이 월사(月絲) 끊어 여치 허리에 묶어 주었다
또박또박 서안의 뼛속을 걸었다
여치를 몰고 오는 길에 새벽이 있었다
서안의 뼈 사이 푸르게 찍힌 철불의 발자국이 뢴트겐 씨의 필름 밖으로 걸어 나갔다
*구마라즙

조 정 ■
2000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등단. 시집 『이발소 그림처럼』, 장편동화 『너랑 나랑 평화랑』이 있음. 〈거창평화인권문학상〉 수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