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2021
Extra Form Output
저자 조정 

뢴트겐 씨와 서안을 걸어

​

​

​

 

 

​  비석들 모여 사는 숲 음각된 글자에서 돋는 이끼 냄새가 목젖을 만져 촘촘한 길

  들여 켜는 소리에 생이 내 켜는 소리에 사가 담긴 얼후의 바이브레이션 위로 문이 떠 있었다

​

  옛 수도는 비에 잠겼다

  빗줄기 밖으로 흘러내린 시트 자락이 빛났다

 

  나 역시 뢴트겐 씨, 어느 간략한 빛을 발견한 거야

 

  윤곽이 선명한 방 안에서 몇은 앉고 몇은 날았다

  몇은 산도에 걸려 죽은 아기 소리를 냈다

  나는 배달되다 만 목관처럼 두리번거렸다

 

  이봐요

 

  그 나뭇가지는 누구 팔을 꺾은 건가요?

 

  왕비의 욕조에 나신을 담근 흰 연꽃이 미묘했다

  연꽃 속, 가면 못 오는 사막이 눈부셨다

  벼루 가게에서 스친 사람이 양관에 글자를 새기고 떠났다

  평(平)과 안(安) 사이에 나의 으스러지지 않는 마음을 앉혔다

​

  쿠차의 철불*이 연화대를 내려섰다

  내 미라가 비단실 같은 속눈썹 뜨고 그를 맞기까지 천 년은 짧아라

 

  뢴트겐 씨는 거리 곳곳으로 사라지는 나를 촬영했다

  흰 오리 떼 그려진 족자 들고 노래하는 나 소매 없는 러닝셔츠 바람으로 문밖 돗자리에 누워 부채질하는 나 청옥 머리핀으로 등뼈를 갈아 끼우는 나 대안탑 보주에서 날개를 펼치는 나 땅속 깊은 데서 울리는 지진의 북소리와 수평으로 날아가는 나

 

  빠르게 오른쪽 양동이 속 띠풀로 풀벌레 접어 왼쪽 양동이에 담그는 소년에게 이 위안을 냈다

  소년이 월사(月絲) 끊어 여치 허리에 묶어 주었다

 

  또박또박 서안의 뼛속을 걸었다

  여치를 몰고 오는 길에 새벽이 있었다

  서안의 뼈 사이 푸르게 찍힌 철불의 발자국이 뢴트겐 씨의 필름 밖으로 걸어 나갔다

​

​

 

*구마라즙

 

 

 

 

 

 

 

 

 

 

 

 

 

 

 

 

 

신작시_조정.jpeg

조 정​ ​​■

2000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등단. 시집 『이발소 그림처럼』, 장편동화 『너랑 나랑 평화랑』이 있음. 〈거창평화인권문학상〉 수상.